<5화>복귀
정무학관이 소란스러워졌다 .
사건의 발단은 섬서백가의 차남이자 1학년 생도인 백우진의 임무 미복귀 사태로부터였다.
임무기한인 열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학관에서는 조사대를 편성했고 ,임무지인 영암산 산적들의 산채로 향했다.
아직까지 숨이 붙어 노략질을 하고 있는 산적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 확했다.
임무실패.
실제로 그들을 붙잡아 심문한 결과 보름 전에 한 생도가 찾아왔고, 그가 상처를 입고 산속으로 부리나케 도망쳤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허,이런일도다 생기는군.”
최 하급 임 무였다. 산채의 두목이 삼류, 나머지는 무공을 익히 지 않았거 나 삼류도 되지 않은 시정잡배들.
정무학관의 누가 가도 완수해야 할 임무를 실패한 것도 문제지만, 그가 어딘가 실종되 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 였다.
“제가가서 찾겠습니다.”
사실 학관의 입장에서 백우진은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 었다. 애초에 임 무 중에 생도가 사망 또는 실종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
허나, 눈앞에서 으르렁대는 생도는 달랐다.
백무혁.
실종된 백우진의 두 살 터울의 형이자섬서백가의 장남.그리고 唐학년 생도들을 이끄는 용의 별호를 지닌 기재.
“백무혁 생도의 마음은 잘 이해하네. 허나, 생도에게 조사를 맡길 수는 없네.”
“그럼 임무 수행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아…, 임무를 핑계로 나가 영암산으로 갈 것이 뻔한데 그걸 허락할 것 같나?”
백무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붉은 피가 입술을 적셨다.
‘우진아.’
착하고 여 린 동생 이 었다. 정의 롭고 심 성 이 고와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협객이 되겠다며 밤낮으로 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쑥스러워 좀처럼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런 동생을무척 아꼈다.
“그렇다면….”
이를 악물었다.
“저를퇴관시켜주십시오.”
콰앙
백무혁과그가 이끄는 조를 담당하는 강백 교수의 주먹이 책상을 때렸다.
“자네지금제정신인가!”
정파의 후기 지 수들이 모두 모이 는 정무학관. 그곳에 서의 강제 퇴 관은 본 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행위로 남게 된다.
백무혁은 고개를 들어 강백의 눈을 응시했다.
“저는 지 금 그 어느 때보다 제 정신입 니 다, 교수님.”
“허어…!
무림세가의 형제들은 대부분이 우애가 좋지 않다. 명예와 권력을 움켜쥘 수 있는 가주라는 직책을 두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백무혁과 백우진도 비슷한 사이일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 다.
“조금만 기다려보게.상부에 탐색대 파견을 건의할테니.”
“•••감사합니다.”
백무혁은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숙인 뒤 등을 돌려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오,오라버니.”
그런 그를 기 다리고 있는 건 백 우진의 소꿉친구인 신예화였다.
“•••예화야.”
“어떻게 되었나요?”
“탐색대 파견 건의를 해주겠다고 하시더구나.”
“아…! 정말 다행이에요.”
신예화는 백우진의 실종에 제법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조금더 신경 썼어야했는데.’
언제나 함께 행동하던 사이였다. 임무도 언제나 같이 나가고, 식사도 대부 분함께 했다.그런데 백무혁이 돌아오고 난 이후부터 떨어져 있는시간이 훨 씬 더 길어졌다.
조급했다. 백무혁이 나날이 승승장구할수록 많은 여성들이 그에게 구애 했다. 이 러다간 마음조차 전하지 못한 채 그를 빼 앗길 것만 같았다.
그래 서 조금이 나마 같이 있는 시 간을 늘리 기 위 해 백 우진을 내 쫓다시 피 했다. 백우진을 이용해 백무혁과 함께 임무 수행을 떠나기로 약속을 잡은 뒤 몰래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대체 왜 그랬지 ?’
뒤늦은 후회 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면 임무를 떠나기 며칠 전에 보았던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말라 있었다.
‘왜 이제야 알아챈 거야.’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자그마치 15년을 함께 해온 소꿉친구였다.
자신이 조르면 투덜거리면서도 무엇이든 해주었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대신 뒤 집 어쓰고 혼이 나면서도 괜찮다고 웃어주던 착한 친구.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그의 얼굴을 떠올리 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 았다.
“괜찮다, 예화야.”
백무혁이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오라버니….”
“우진이는 괜찮을 거 야. 내 가 꼭 데 리고 오마.”
어깨에 닿은 그의 팔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녀는 기쁨과 슬픔 사이를 노 니는 제 감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탐색 대 가 파견되 었다.
일류 무사 열 명에 이류 무사 스무 명으로 조직된 탐사대는 영암산으로 향 하는 모든 길목을 샅샅이 훑어가며 백우진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흐흐! 이대로 놈이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텐데. 안 그래, 연 매?”
남궁수의 섬뜩한발언에 유화연은애써 입꼬리를말아 올리며 고개를주 억 거렸다.
‘어떻게 된 거죠….’
백우진의 실종. 그것은 유화연의 마음을 크게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유씨세 가와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바랐다.
약혼 상대로 정해진 백우진이 크게 성장하여 자신을 높은 곳에 데려다주 었음 했지만 지난 唐년간 아무리 그를 다독이고 일으켜세워도 좀처럼 나아지 질 않았다.
지쳤다. 그리고 가망이 없다 여겼다.
때마침 다가온 남궁수라는 남자는 그녀가 바라는 것을 지니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결심이 섰다.
그를 떠 나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가 죽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녀는 며칠 전 자신을 찾아온 신예화와 크게 말다툼을 했다.
-약혼녀라는 년이 어떻게 그렇게 신경을 안쓸 수가 있어!
그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저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는 당신은! 소꿉친구라면서 대체 뭘 했죠?
칼부림까지 벌어질 뻔했지만 주변인들의 만류 덕분에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숨을 내쉬 었다.
녹색 에서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가기 시 작한 나뭇잎들이 아득하게 높아 진 하늘을 수놓는다.
가을이 시작됐다. 늦가을 즈음이면 정무학관의 축제와 더불어 각 학년마 다 용봉지회 가 열린다.
유화연은 남궁수가 용 중 으뜸인 신룡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 확신했다. 그 때를 위해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공교롭게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쩌면….’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말의 죄책감이 그녀의 가슴을무겁게 만들었다.
…
정무학관의 부관주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하급 임무를 실패하는 버러지를 위해 탐색대를 파견하다니, 쯧.”
일류 무사 열 명과 이류 무사 스무 명이라는 대대적인 탐색대를 운영하기 위해선 적잖은 돈이 필요했다.
고작 최하급 임무를 실패하고 사라진 실종자를 찾기 위해 피 같은 돈을 써 야하다니.
“백무혁 놈만 아니었어도….”
백 우진이 야 어 떻 게 되 든 상관할 바가 아니 지 만 백 무혁은 이 야기 가 다르 다.
담당 교수에게 퇴관까지 요청했다는 걸로 봐선 동생을 끔찍이 아낀다는 뜻인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정파 무림을 이끌어갈 동량 하나를 잃는 셈이 나 다름없으니 지금은 탐색대가 하루 빨리 백우진의 시체를 찾아왔으면 바 랄뿐이었다.
그때였다.
“부,부관주님!”
부관주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 며 들어온 것은 唐학년 담당교수인 강백 이 었 다.
“강백 교수! 대체 이게 무슨 무례인가!”
“죄,죄송합니다! 헌데 급한 일이 ….”
“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야?”
“시,실종 됐던 백우진이 돌아왔습니다.”
“오, 탐색대가 백우진의 시체를 찾아온 겐가?”
부관주의 입가에 미소가그려졌다. 생각보다빨리 백우진의 시체를 찾았으니 운영비도크게 아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그게 아니라 백우진이 직접 복귀했습니다.”
“뭐라?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부관주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을 하고 있었다.
“백우진은지금어디에 있나?”
“아직 학관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오는 중이라는 겐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뭔가.”
부관주가 짜증 섞 인 말투로 되 묻자 강백 은 부관주실 창문 너 머로 보이 는 학관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백우진의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오고 있답니 다.”
“사람들? 무슨 사람들을 말하는 겐가?”
“복색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산적인 것 같다고….”
“그게 무슨 해괴한소린가!”
“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학관 경비소에서 온 보고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젠장.”
궁금증을 참지 못한 부관주는 부관주실을 박차고 나가 학관 입구로 향했 다. 그곳엔 이미 수많은 생도들과교수들이 진을 치고 바깥쪽을 바라보고 있 었다.
“허어, 대체 이게 무슨….”
입구 쪽에 가까워질수록 밖으로부터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졌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출입문 앞에 선 부관주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수많은 인파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의 가장 앞에 선 것은 여기저기 찢어진 흑색 무복을 입고 한손엔 검, 다른 한손엔 작은 호 리병을 쥐고 있는 백우진이었다.
“아, 아니 저게 대체 무슨….”
평범하게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백우진은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팔을 위 아래로 흔들거리 며 덩실덩실 춤 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줄줄이 묶인 채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험 상궂은 사내들 또한 마찬가지 였다.
거리 가 조금 더 가까워 지자 백우진의 입 에서 새 어나오는 소리 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얼〜 씨구씨구 돌아간다.”
“어이!”
그가 노래를 부르면 뒤 따르는 이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절〜 씨구씨구 돌아간다.”
“어이야!”
처음 들어보는 노래 였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얼씨구!”
그런데 묘하게 흥이 나생도들의 발이 들썩인다. 그러면서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한(恨) 또한 느껴져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느덧 출입문 코앞까지 다다른 그가 마지 막 가사를 입 에 담았다.
| |....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조오타!”
한바탕 놀이를 마친 백우진은 뒤로 돌아서서 줄지 어 따라오는 사내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자리에 섯!”
“하나, 둘!”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걸음이 멈추고, 오와 열이 깔끔하게 맞춰진 다. 마치 군대를 연상시 키는 움직 임이었다.
재차 돌아선 백우진은 출입문 너머로 모인 생도와 교수들을 향해 소리쳤 다.
“1학년 생도 백우진, 산적 토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슴다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