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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0화 (10/215)

<10화 > 회자정리 (픁淏定蠤)

“지금부터 비무를 시작하도록하겠다.”

종리혁의 외침에 마주보고 있던 구왕수와 백우진이 검을 뽑아들었다.

구왕수는 언제든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도록 제 몸 앞에 검을 세웠고, 백 우진은 뽑은 검을 그대로 늘어뜨린 채 비무가 시 작되 기 만을 기 다렸다.

“언제 나 말하지 만 살수는 금지 다. 조금이 라도 위 험 한 수가 보이 면 비무를 중지시킬 테니 유의하도록.”

마지막 말과 함께 종리혁이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럼, 시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왕수의 발이 땅을 강하게 박찼다.

철저히 괴롭혀주마!’

그의 마음속에서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 남은 것은 남궁수가흡족해 할 수 있도록 백우진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것.

“하앗!”

짧은 기합성과 함께 백우진의 머리 위로 검이 떨어졌다.

구씨세가의 가전 무공은끊임없이 이어지는 연(連)의 묘리를 따른다.

초식과 초식이 물 흐르듯이 이어져 상대를 검격 안에 가두고 그 공간을 서 서히 장악해 나간다.

“자아, 이번에도 꼴사납게 굴러보아라!”

구왕수는 두 달 전쯤 이루어졌던 백우진과의 비무를 떠올렸다.

자신의 연계 공격에 변변찮은 반격 한 번 못하고 피하기에 급급하다 결국 엔 검을 놓치고 땅바닥을 구르던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 다.

그때만큼은 무얼 해도 멋지다, 잘생겼다며 그를 추켜세우던 여생도들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남생도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자신의 이름을 연호했 다.

구왕수가 가지고 있는, 정무학관에서의 몇 안 되는 통쾌한 일들 중 하나였 다.

그의 예상대로 백우진은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었다.

“하핫!”

흥이 났다.

조금만 있으면 예전처럼 녀석이 땅바닥을 구르며 흙투성이가 될 거라 확 신했다.

그러한 마음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졌고,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초식과초식 사이에 간극이 벌어졌고, 그것도모른 채 더욱몰 아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던 그의 얼굴에 뜨거운 열기를 팍 식게 만들 차가 운 감촉을 지 닌 무언가가 목에 닿았다.

“••••••!”

백우진의 검이었다.

검선(劍仙)에 의해 창안된 주선검결(酒仙劍蕡)과 취선보(醉仙步)는 주 선(酒仙)의 독특한행동과생각이 그대로투영되어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 이성적인 논리보단 감정과 본능이 앞 서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하게 주장하던 말을 손쉽게 뒤집는다.

세상에서 제 일 강한 듯 떠들어 대다가도 진짜 강자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 는듯, 쪼그라든다.

종잡을 수 없고, 괴팍하다. 동시에 찌질하다.

그것이 무공이 되니 변화무쌍하여 검로(劍路)를쉬이 예측할수 없고, 앞 으로 나아간 걸음을 언제 그랬냐는 듯 뒤로 돌려버리니 어느 곳으로 움직일 지 가늠할수 없다.

환(幻)과유(柔)의 극치.

검선이 자신을 위해 만든 두 무공을 두고 그리 말했다며, 주선은 자랑하듯 말했다.

백우진은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검격을 살폈다.

‘너무정직해.’

그와는 반대로 구왕수의 검은 정직했다.

연(連)의 묘리를 살리기 위해 초식의 전개만을 생각하다 보니 검로가 너 무 정직해졌다.

‘어렵지 않겠어.’

음식은 아는 맛이 제일 무섭지만, 어디로 향할지 아는 검은 세상에서 제일 우습다.

백우진은 그때부터 춤을 추었다.

넘어질 듯,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자빠질 듯 뒤로 훌쩍 물러나고, 비틀 거리며 좌우로 몸을 흔들다 검격이 향하는 반대편으로 체중을 기울였다.

그야말로 주정뱅 이 가 흥에 겨워 주체할 수 없는 몸을 억지로 움직 여대는 듯한 모습.

취선보(醉仙步).

“프하하핫! 저 꼴 좀 보라지.”

“주정뱅이가따로 없네.”

“곧 있으면 스스로 쓰러지겠는걸 !”

이를 바라보는 생도들에 게선 웃음이 터져 나왔고, 구왕수는 확신을 얻었 다.

곧 있으면 상대방이 더 이상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리 란 확신 을.

이른 도취는 필연적으로 조급함을 자아낸다. 승리 이후에 벌어질, 얻어질 것들을 생 각하며 앞서 간 마음을 따라잡으려 몸을 닦달한다.

그러한 간극은 고스란히 검 으로부터 드러 난다.

정직할지언정 그 간격만큼은 촘촘한 그물 같던 연계가 어그러졌다.

백우진은 그 틈을 놓치 지 않았다.

주선검결 (酒仙劍蕡).

세 상에서 가장 자유분방하고, 줏대 없고, 마음 따라 휙휙 바뀌는 검법이 그 의 검끝에서 펼쳐졌다.

상대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 곳으로부터 시작된 궤적은 갓난아기가 붓을 잡고 그린 듯, 삐뚤빼뚤한궤적을 남기며 구왕수의 목에 닿았다.

“이,이게 무슨….”

뒤늦게 깨달은 구왕수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제 목에 닿은 검과 백우진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할 뿐,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거대한 충격이 강타하고, 장내는 침묵에 잠겼다.

백우진의 모습에 웃고 떠들어대던 생도들은 벌어진 입을 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들의 표정과는 반대로, 백우진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그린 채 구왕수의 남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난 이때가 정말 좋아.”

어깨를 두드리던 손을 깊게 뻗어 그의 목에 감아 어깨동무를 하며 놀란 생 도들의 면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봐봐. 다들 놀라가지고선 뱀을 본 개구리마냥 전부 얼어있잖아.”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두각을 드러내는 그의 존재를 의심하고 불신 하던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백우진은 그럴 때마다 상대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 자신을 증명해냈다. 그 리고 바늘과 실처럼 따라붙는 이 고요한 시간 속을 홀로 만끽하는 걸 즐겼다.

선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반달형의 웃음 띤 시선이 구왕수에게로 향 했다.

시선을 마주한 구왕수의 몸이 흠칫 떨렸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속에 영문 모를 꺼 림칙함이 잔뜩 배 어나왔다.

“앞으로 조심하자, 광수야.”

“내, 내 이름은구왕….”

“아,조심하자고. 광수야.”

눈치 안챙겨?

웃는 눈이 마치 으르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구왕수는 조용히 눈을 내리 깔았다.

종리혁 이 굳은 얼굴로 외 쳤다.

“이번 비무는 백우진의 승리다.”

대이변.

이보다지금의 상황을 표현할수 있는 단어가또 있을까.

최 약체 로 평 가받는 백 우진과 중상위 권 에 위 치 한 구왕수.

누가 봐도 뻔한 싸움이 었다.

승패와 관계없이 백우진이 얼마나 버틸 것이며, 또 어떻게 나가떨어질까 에 주안점을 두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던 가운데, 단 한 번의 역습으로 백우진이 승리를 거머쥐 었다.

“야…, 이게 어떻게 된거냐?”

“그,글쎄.”

삼자의 입 장에 서 본 비무는 그야말로 의 아함 그 자체 였다.

삼류가 휘둘러도 그보단 나을 거라고 속으로 비웃고 있던 삐뚤빼뚤한 검 이 너무나도 자연스럽 게 그곳이 응당 있어야 할 자리라는 듯, 구왕수의 목에 다다랐다.

“왜안막은 거지?”

“신이 나서 공격하다가놓친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나게 떠들어대던 생도들은 결론을 내렸다.

구왕수가 병신이 었다고.

구왕수는 방심했고, 백우진은 운좋게 휘두른 검이 그의 목에 닿은 거라고 •

눈앞에서 백우진이 구왕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구왕수가 영문 모를 두 려움에 고개를 떨구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게 사실이라 여겼다.

“병신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수가 조용히 뇌 까렸다.

의심암귀(疑心暗鬼)가 생도들의 눈을 가렸다. 백우진은 약하다는, 아니 약해야만 한다는 그릇된 편견과 선입견이 눈앞의 상황을 보고도 승패가 뒤 바뀐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

‘구왕수가 방심한건 맞다.’

촘촘했던 연계 가 일순 흐트러졌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 각한 구왕수가 방심 한 것은 분명 한 사실이 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패배 원인이 고작방심 때문이라고? 천만에.

백우진 따위 가 찾아낼 틈이 아니 었단 말이 다.’

이류 수준에 불과한 백우진의 눈썰미로는 절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틈은 작고 좁았다.

그 틈을 명확하게, 상대 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찔렀다는 건.

‘허언이 아니었다.’

실력이 늘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얼핏 보아도 일류 초입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실종되었던 한 달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저리도 달라졌 단말인가.

죽을 고비 라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나 바꿀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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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남궁수는 지척에서 타인의 기척을 느끼고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백우진이 웃는 얼굴로 걸어오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광수…, 아니 , 구왕수와 서 열 정 리를 끝마친 백 우진은 자신을 뚫어 져 라 쳐 다보고 있는 남궁수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왔다.

백우진’을 괴롭혔던 따까리들의 수장이자 이를 사주한 진범.

약혼자 있는 여자를 가로채려는 천하의 쌍놈.

남궁세가의 수(또).

백 우진은 문득 궁금해 졌다.

“안녕, 궁수야?”

이러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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