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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1화 (11/215)

<11화 > 회자정리(픁淏定蠤)

백우진과남궁수.

최 약체와 최상위권 사이에서 나누는 시선 속에서 묘한기류가 흘렀다.

“안녕, 궁수야?”

처음으로 내던진 말은 그야말로 파격.

남궁세 가의 일원임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건 눈앞의 상대 를 넘 어 오대 세 가 중 으뜸이 자 천추제 일검 가(千秋第銜劍家)라 불리는 대가문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기에.

물론 백우진이 거기까지 내다보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섬서백가주제에 대 남궁세가를 욕보일 셈이냐.”

남궁수가 짙은 검미를 꿈틀거리며 호랑이 가 울부짖듯 낮은 소리로 얘기 하자, 백우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 이며 대 답했다.

“인사하는데 갑자기 가문 얘기가왜 나와?”

“내 가 남궁세 가의 적 자임을 알면서 그딴 식으로 불렀다는 것 자체 가 모욕 이다.”

“그렇다면 미안하고.”

전혀 미 안하지 않은 표정이다.

남궁수는 잠시 망설였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쪽은 백우진이다. 그것도 남궁이라는 성씨를 건드려 가면서. 그렇다면 훈계 목적으로 녀석을 때려눕혀도 되지 않을까.

서서히 투기를 끌어올리려 할 때, 백우진의 어깨 너머로 유화연과 시선을 마주쳤다.

무언가 일이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자신을 걱정해서 지은 표정은 아닐 거란 생각에 더욱 분노가 치밀었으나 이내 눈에서 힘을 풀었다.

“용건이나 말해라.

이 렇듯 당당하게 다가왔다는 것은 용건이 있다는 뜻일 터. 빠르게 이 야기 를 끝내고 서로 등을 돌리는 게 심상에 이로울 듯했다.

“네가준비한 내 첫 번째 성장 발판은 잘밟았다.”

구왕수를 말하는 것이 었다.

주선검 결과 취 선보의 사용은 산을 넘어 복귀 하면서 싸웠던 일류급 산적 두목과 싸웠을 때 이후로 두 번째였다.

구왕수와의 짧은 비무를 통해 주선검결과 취선보의 성취를 조금 더 늘리 는데에 성공했다.

‘이놈은 아직 무리겠네.’

백 우진은 눈앞의 남궁수가 아직 넘 기 엔 무리 가 있는 높은 담벼락처 럼 느 껴 졌다.

경 험으로 차이 를 메 꾸는 데 에 도 한계 가 있는 법 이 다.

일류 중입에 겨우 발을 들여놓은 정도로는 절정의 벽을 허물어 가는 남궁 수를 상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그는 남궁수의 부하를 자처하듯 그의 뒤에 서 있는 생도들을 싸늘한 시선 으로 훑었다.

“다음 발판은 누구야? 얘 猌 아니면 쟤?”

좌우에 있는 녀석들을 손가락으로 한 번씩 가리키며 말하자 금세 얼굴이 구겨진다.

행동 하나하나가 몹시도 거슬렸다.

남궁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호흡을 최대한 길게 이어가며 낮은 소리 로 부르짖 었다.

“구왕수 녀석을 이겼다고 기고만장 하나본데, 그렇다고 네놈 따위가 내 앞에서 깐족거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 각하나?”

당장에라도 물어뜯길 듯한 기세에도 백우진은 싱긋 웃으며 입술을 달싹 였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오감이 크게 발달한 그에 게 만 들릴 수 있게 .

“버젓이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날름 채가려는 행동은 말이 되고?”

그 말이 남궁수의 역린을 건드렸다.

“너…!”

남궁수의 커다란손이 대차게 뻗어 나와 백우진의 멱살을 쥐었다.

그 우악스러운 손길에도 그의 말은 이 어졌다.

“많이 놀랐나 보다?”

“••••••!”

정곡을 찔린 이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하수는 단순히 발뺌을 하고, 중수는 제 무고함을 피력하기 위함이라는 듯 도리어 성을 낸다.

남궁수는 딱 중수였다.

‘이놈이 대체 어떻게…!’

유화연과의 만남은 첩보 작전이 방불케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수업 시간에 만나도공적인 대화외에는 절대 나누지 않았으며, 시선조차 거의 마주치질 않았다.

만남 또한 아주 참고 또 참은 뒤 에 야 모두가 잠든 새 벽 학관 깊숙한 구석 에서 만나 짧은 시간동안 소회를 털어놓은 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은 채 헤어졌는데.

연 매가 벌써 말을 했을 리는 없는데.’

이 모든 행동이 공식 적으로 백우진이 라는 약혼자가 있는 만큼, 모든 걸 정 리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 전까진 철저히 비밀로 해두고 싶다는 유화연의 바

람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대체 어떻게!’

심 지 어 이 관계는 유화연과 자신 외 에는 아무에 게도 알리 지 않았다.

‘그렇다는건….’

언제인지는 몰라도 자신과 유화연이 만나는 모습을 백우진이 직접 목격 했거나누군가에게 전해 들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젠장, 그토록 조심했거늘!’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만약 백우진이 이 사실을 모두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순간 모든 게 어그러 진다.

그가 공론화하는 순간, 다른 생도들이 그의 말을 믿든, 안 믿든 유화연과 는 더 이상 맺어질 수 없는 사이가되 어버린다.

남궁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풀어 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어우,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야.”

과장된 몸짓으로 켁 켁 거 리는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 었지 만 초인적 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갑이 아닌 을이기에.

“원하는게 뭐냐.”

남궁수는 오히려 이를 기회라고 여기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 게 말하지 않고 자신을 먼저 찾아온 것은 분명 바라는 것이 있을 터.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유화연과의 파혼까지 종용할 심산이었다.

“원하는 거? 없는데.”

문제가 있다면 눈앞의 녀석이 좀처럼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는것이다.

사실 남궁수에게 다가갔을 때까지만해도 백우진은두 사람에 대한이야 기를꺼낼 생각은 1도하지 않고있었다.

녀석에게 남궁수가 아닌 궁수라고 부르면 어떻게 반응할지 단순히 궁금 했던 것처럼 오만하고, 거만한 놈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어떤 표정 을 할지 궁금했을 뿐.

원하는 게 뭐냐고? 없다. 이미 궁금증은 녀석의 일그러진 얼굴을본 것만 으로 해결됐으니.

아, 하나 있긴 있네』

손가락을 들어 남궁수의 좌측 뒤 에 서 있는 사내를 가리 켰다.

“다음엔 쟤가 좋겠다.”

내 두 번째 성장 발판.

“그럼 수고.”

할 말만을 끝낸 채 돌아서서 멀어져가는 백우진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남 궁수의 눈동자에는 현재 느끼는 혼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음주선공 (飮酒仙功).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백우진에게 있어 가히 최고의 내공심법.

그러나 최근 백우진은 완벽하다 생 각했던 이 심법에 서 자그마한 단점 하 나를 발견했다.

마신 약주로부터 내기를 축적하는 심법의 특성상 백우진은 활동하는 시 간 대부분을 취 기 가 오른 채 로 보내 게 된 다.

“감정 조절이 쉽지 않네.”

술에 취한 사람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뜬금없다.

지금의 백우진이 그랬다.

궁수라고 부르면 어떻게 반응할까?

장난기 섞 인 호기 심 에 오대 세 가 중 으뜸인 남궁세 가를 남/궁세 가로 만들 어버렸고.

내가둘의 사이를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불현듯 떠오른 궁금증에 자신이 쥐고 있는 패를 시원하게 까버렸다.

“사용할 패도아니었긴 하지만, 쩝.”

가지고 있는 건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던가.

“뭐,기분은 나쁘지 않네.”

남의 눈치 안 보고 사는 거,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삶 아닌가.

“될 대로되라지.”

어차피 빠른 시일 내로 정리해야 할문제였다.

아직까지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거리를두려고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싹 다 정리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하나둘씩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신예화가 다가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팔꿈치 가 뾰족해 생 각보다 아팠다.

“뭐 가 어떻게 돼. 마음에 안 드는 놈 손봐주고 온 거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백우진의 모습에 신예화는 이유 모를 거리감 을느꼈다.

실종되었던 한달동안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사람이 이토록 바뀌었을까.

“너 정말 많이 바뀐것 같아.”

뭐에 홀린 듯 저도모르게 내뱉은 말에 신예화는 제 입을 손으로 가리며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 답했다.

“늦든, 이르든. 사람은 변화의 순간이 찾아오는 법이지.”

사람에 게는 언제 나 무언가를 격변의 시 기 가 찾아온다.

내적이든, 외적이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만한 계기를 맞이하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 삶이 옳았는지,옳지 않았는지.

바뀌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아가야할지, 멈춰야할지 등.

모든 선택을 결정짓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변화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물론 백우진은 영혼 자체 가 바뀐 케 이스라 아무런 연관없는 얘 기 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고 얘기를 해둬야 앞으로 편해 질 테니 꺼낸 말일 뿐이었다.

“그렇구나….”

아직 그 순간을 맞이하지 않은 신예화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변화를 결심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정도.

그 변화에 자신의 탓이 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 그녀가 애써 웃는 표정을지 었다.

“우리 수업 끝나고 임무 찾으러 가자!”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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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 아직 수행 점수 다 못 채웠잖아. 내가도와줄게!”

고마워하라는 듯, 부풀린 가슴을 앞으로 쑥 내미는 행동에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헤벌쭉 올라가는 입 꼬리를 억 지 로 끌어 내 리 며 고개를 저 었다.

“됐어. 나 혼자 갈 거야.”

“어,어?”

없다.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로고맙다며, 역시 너밖에 없다며 말하던 백우진 이.

그는 평소에 지은 적 없던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조금전에 얘기했지? 사람은누구나변화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그녀가 풀이 죽은 얼굴로 대 답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떨쳐내고 말을 이 었다.

“너와나도 마찬가지야.”

“너랑내가왜…?”

그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올려다보자 꼭 장화 신은 고양이가 불 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웃으며 검지로 그녀의 이마 를 쿡 찔렀다.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갈 때가 됐단 얘기다, 욘석아.”

무언가를 얻기 위 해선 가지고 있는 하나를 내줘 야 할 때가 있다.

신예화도 마찬가지 .

“우리 형, 좋아한다며?”

“O 으”

—, 으 •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거기에 집중해. 내 걱정은 말고.”

아까 내 가 구왕수 한 방에 끝내버 리는 거 봤잖아?

노골적으로 등을 떠미는 모습에 신예화는 멍한 얼굴로 백우진을 바라보 다 이 내 자신의 가슴 앞섶을 꼬옥 쥐 었다.

|  |.

!....

!..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꽈악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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