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화 > 회자정리(픁淏定蠤)
예 상치 못한 상황에 뇌 정 지 가 찾아왔다.
“아니, 왜?”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자, 백우진은 눈앞의 여인에 게 직접 물어보기로했다.
“너도 임무 찾으러 온 거라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백우진은 게시판에 붙은 임무 같지도 않은 꽝 덩어리들을 일일이 가리키 며 열변을 토해냈다.
“이 거지같은 임무들을 맡고싶은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니면 이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다시 한번 저어지는고개.
“그럼 대체 왜?”
한 바퀴 크게 돌아 결국 처음에 물었던 ‘왜?’로 돌아왔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시 머뭇거리던 여인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바르르 떨고 있던 입을 뗐다.
“술 냄새…, 나요.”
“ 아.”
완벽하다 생 각했던 음주선공의 두 번째 단점이 발견되 고야 말았다.
‘첫인상이 완전 최악이 되잖아!’
매 일 같이 술 냄 새를 풍기 며 다니는 사람이 라니 , 누가 봐도 망나니 또는 주정뱅 이가 아닌가.
‘향수라도… 아니, 여기는 향수가 없으니 향낭이라도 차야하나.’
현대였다면 집에 돌아다니는 탈취제라도 뿌리고 다닐 텐데, 이곳에 그런 게 있을 리가만무했다.
이곳에서 향을 내는 거라고 해봐야 향낭이 전부인데, 가격이 매우 비싸돈 많은 집 자식이 아니면 차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녀석이 었다.
섬서백가 자제 정도면 차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백우진은 아니 었다.
내놓은 자식에게 향낭을 사줄 리가.’
오랫동안 경지가 지지부진했던 탓에 섬서백가 내에서 백우진에 대한 기 대치는 바닥을 뚫고 내 려간지 오래 다.
그 탓에 매월 전해지는 용돈도 빠듯하게 생활하고 나면 군것질거리 사먹 을 돈도 없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존재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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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선공은 성취도가 오를수록 보패 호리병의 효용성이 증가한다고, 주 선이 말했다.
깨끗하게 빚은 보패 속 술에 같은 재료를 넣어도 음주선공의 성취에 따라 그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라고.
실제로 주선은 매일 같이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술을 마셨는데도 몸에 서는 시원 한 향기 가 날 뿐, 악취 나 불쾌 하다고 여 겨 질 만한 냄 새 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 그리고….”
“•••또 있어?”
술 냄새만 어떻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의심스러워요….”
“•••내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고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친절이라고?’
백우진은 눈앞의 여인에게 친절하다고 여겨질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단순히 다가가서 임무에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거절당했을 뿐인 데 친절이라니?
“내가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야.”
“말씀하세요….”
“방금 내행동이 친절했나?”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느 부분이?”
“저한테 말도 걸어줬고…, 이, 임무도같이…,흣!”
들릴 듯, 말듯한목소리로 얘기하다가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사람과대화하는 게 너무오,오랜만이라그만….”
백우진은 자기 스스로가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있다고 생 각했다. 그래 서 눈 앞의 여인에 대한 평가또한완벽했다고 여겼고.
‘야, 이거 완전 찐이네.’
근데 오판이었다.
백우진은 설마 하는 심 정으로 물었다.
“혹시…, 마지막으로사람과대화해본 게 언제냐…?”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둘씩 접기 시 작했다.
접힌 손가락은 세 개.
‘에이, 설마.’
저 손가락 하나당 달은 아니겠지.
“세,세달전이요….”
맙소사.
…
백우진이 원한 건 데면데면한 동료였다.
공적인 얘기만 딱 나누고, 사적으로는 별다른 말없이 임무에만 집중하는 딱 그 정도.
“제 이름은…, 연지예요.”
“그래, 연지구나.”
“공자는…, 백우진 공자...맞죠?”
뒈그,그래.,,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지난비무도 봤어요…. 어, 엄청대단… 했어요.”
칭찬도 들었다.
“사실은 저, 가끔 백공자를 본적이….”
분명 사적인 대화는 원하지 않았는데.
단순이 음침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정에 목마르다 못해 죽기 직전 인 여자였다.
더듬거리면서도 끊임없이 이 어지는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백우진은 말과 말 사이의 짧은 틈을 파고들었다.
“저기, 연지소저?”
“아,네…!”
그녀가 퍼뜩대답하며 고개를들어올리더니 이내 다시금 푹 숙였다.
“미 안하지 만 내 가 임무를 같이 나갈 사람을 찾아봐야 해 서 ….”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저,저랑 같이 가요.”
잠깐 망설이는 사이 주둥이를 물려버렸다.
“…아까는 같이 안간다며?”
“그,그때는공자에 대해서 잘몰랐으니까요….”
지금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차마 면전에다 대고 쓴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저,누군가와 임무를 같이 가보는 것도 처음이라 너, 너무 떨려요.”
후하후하.
심호흡까지 해 가며 들뜬 사람한테 쓴소리를 해댈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한게 문제였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럼…, 우리 임무수주하러 갈까…?”
“네에…!”
임 무 수주를 위 해 선 담당 교수에 게 보고를 해 야 했다. 그래 야만 임 무 기 간 동안의 부재를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1학년을 담당하는 교수는 총 넷. 백우진은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염 철진 교수의 교수실로 향했다.
“교수님, 백우진입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있던 염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우 진과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연지를 반겼다.
“어서오게, 백우진 생도. 뒤에는…, 음?”
“아,안녕하세요오….”
예상치 못한조합에 염철진의 얼굴에 당황한기색이 어렸다.
“둘이서어쩐… 일인가?”
“임무수주하려고요.”
“으음…, 둘이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로군.”
마인을 만날 수도 있는 제법 위험한 임무였다. 원래였다면 절대 가지 못하 게 막았을 테 지 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백우진이 라면 충분히 가능하리 라 생 각했다.
“연 소저하고 후딱 다녀오겠습니다.”
진심이다.
상단을 닦달하는 한이 있어도 임무 수행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말리 라 다짐했다.
“두 사람이라면 괜찮겠지 …. 그런데, 연 소저라고 했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염철진이 되 묻자,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예, 연지소저말입니다.”
이름이 연지니까 연 소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염철진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쏟아졌다.
“그…, 정확히는 제갈 소저라고 불러 야 하지 않나?”
“•••예?”
놀란 백우진이 고개를 황급히 뒤로 꺾어 연지를 쳐다봤다.
“제갈연지?”
“네에…?”
그녀가 대답했다.
猌,,
오대세가.
그중에서도 학문, 진법, 기관에 일가견이 있고, 무림맹의 군사 자리를 독 식하다시 피 하는, 권세 로만 따지 면 남궁세 가의 뒤 를 바짝 쫓는 명 가 중의 명 가.
그녀는 제갈가의 여식이 었다.
‘씨 팔.’
아무래도 당한 것 같다.
…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녀, 제갈연지와 간신히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백우진은 당했다 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말을 걸었지….”
말을 건 것도, 임무 동행을 제 안한 것도 분명 자신이 다.
그런데도 이 찜찜한 기분은 대체 뭘까.
“에이, 몰라.”
당했으면 당한대로, 아니면 아닌대로후딱 다녀오면 되겠지.
복잡한 생 각을 애써 지워 내고 호리병의 뚜껑을 열어 술 한 모금 더 들이 키 려 할때였다.
“ 가가.”
남자 기숙사근처에 유화연이 서 있었다.
어스름한 하늘 아래에서도 그녀의 미모는 빛을 발했다.
“어디 다녀오셨나봐요.”
그녀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백우진이 입맛을 다시며 호리병 뚜껑을 다 시 닫았다.
“임무수주좀하느라고.아직 鋝점이나더 채워야하거든.”
“그러셨군요….”
유화연이 잠시 고개를 떨궜다.
그러기를 잠시.
마침내 고개를 들어올린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에 느끼지 못한 결심 이 서려있었다.
“•••남궁 공자에게 들었어요.”
아.”
과연 그런 결심이 었나.
백우진은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의지를 비로소 이해했다.
“언제…, 아셨나요?”
“한달하고도 십삼일.”
명확한 대답에 유화연의 안색 이 흐려졌다.
대략 한 달 정도 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그 날의 기억이 남아있었다.
영혼이 바뀌 었음에도.
‘미련인지, 분노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최하급 임무에서 실종된 것에, 제 탓도 있었겠네요.”
아니기를 바랐다.
백우진이 임무를 떠나기 전에 이미 자신과 남궁수의 관계를눈치 챘고,그 로 인해 정신이 어지러워져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은 것만은 아니기를.
“예,맞아요. 저는…, 남궁 공자와 새로이 연을 맺기로 했어요.”
그녀는 처연하게 웃으며 말을 이 었다.
“그러니…, 저와 파혼해 주시겠어요?”
백우진의 머릿속에 스스로 겪지 못했던 추억들이 하나둘씩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래.
그녀는 모른다.
이미 그녀와약혼을맺은 ‘백우진’은고혼(孤魂)이 되어 이 세계를 떠나갔
멍청할 정도로 착하고, 여린 그 청년이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내 뱉었을까.
원독어린 말로그녀를 조금이나마 더 상처 입히려 했을까, 아니면 성격 그 대로 착하게 뒤로 물러나주었을까.
모르겠다.
이 건 좀 알고 싶은데, 영 영 알 수는 없겠지 .
그러니 여기서부턴 백우진의 방식대로 끝을 맺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 등신 보듬어주느라 고생했어.”
등신은 ‘백우진’을 의미했다.
유약하고, 여리다.
착하고, 사람을 쉽게 믿는다.
너무나도 잘속고, 작은 상처에 죽을 듯이 아파한다.
그런 백우진’을 지켜온 건 눈앞의 유화연과소꿉친구인 신예화였다.
본심이야 어떠했든, 어린 시절 넘어지면 쉽게 좌절하는 백우진을 끈기 있 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그녀의 공이 컸다.
“파혼에 대한책임은 내게 있는 걸로해.”
‘그건…!
유화연이 놀란 얼굴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백우진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끝은 비록 최 악이 지 만, 지금껏 그녀 가 한 행동에 대한 공은 보상받아 마땅 했다.
“매 일 같이 술이 나 퍼 마시는 남자랑 혼인을 하고 싶은 여 자는 없지.”
허리춤에 매달린 호리병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매일 같이 술이나 퍼마시고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는 한량이라고 이유를 갖다 붙이 면 파혼 사유로는 충분할 터.
백우진은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는 낯으로 그녀에게 끝을 고했다.
“부디 원하는걸 얻길 바라, 유소저.”
그 말을 끝으로, 백우진은 그녀의 곁을 지나쳐 기숙사 안으로 모습을 감추 었다.
“아….”
그가 떠 나가기 가 무섭게, 유화연은 그 자리 에 풀썩 주저 앉고 말았다.
유소저.
웃으면서 건넨, 모두에게 불리는 그 말이, 약혼 관계가 비로소 끝이 났음 을 여실히 증명했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음에도, 그녀는 왜 이토록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한 지, 알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