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 > 상단호위
호위의 첫날은 매우 평화로웠다.
산길에 들어서기 전이라 평지로만 이루어져 있어 도적떼들을 만날 위험도 적었고, 마인 출몰이 의심된다는 곳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백우진은 마 음 놓고 술을 들이 켰다.
“여,여기 안주….”
안세 하가 바라보는 두 사람은 그야말로 의 문 투성 이 였다.
‘저 자들이 정녕 명가의 자식들이 맞나?’
섬서백가의 자제란놈은하루 온종일 술이나퍼마시고 있고, 옆에 앉아있 는 귀 신 … 아니 , 제 갈가의 여 식 은 손가락만 꼼지 락대 다가 무언 가 결심 한 듯, 보따리를 풀더니 육포를 꺼내어 잘게 찢어 사내놈이 한모금 들이킬 때마다 하나씩 건네고 있다.
“크으, 이게 인생이지.”
아무리 봐도 저 놈은 한량이 분명하다.
안세하는 눈을 감았다. …
본격적인 상단 호위 임무는 산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산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기다렸다는듯 등장하는 산적 놈들에 의해 전투가 시작됐다.
“크하하핫! 죽고 싶지 않으면 가진 걸 모두 내려두고 가거라!”
통행료 협상조차 않고 다짜고짜 다 빼 앗으려는 걸 보면 욕심 이 과한 놈이 거 나, 산채 를 차린 지 얼마 되 지 않아 이 바닥의 생리를 잘 모르는 놈임에 틀 림 없었다.
“어리석구나!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다니!”
산적들의 명대사 중 손가락에 꼽히는 주옥같은 대사로 전투는 시작됐다.
백우진과 제갈연지는 상단주의 요청에 따라 그가 머물고 있는 마차 앞에 서 이쪽을 향해 달라붙는 산적들을 상대했다.
수는 제법 많았지만 실력들이 죄다 고만고만한 이류에 불과한 탓에 여럿 을 상대하는 데에도 큰 무리는….
“우웁
왔다.
눈을 번들거리며 달려드는 산적 두 놈을 일수에 해치운 뒤, 백우진은 곧장 몸을 날렸다.
전투로부터 멀어진 백우진은 곧장 나무에 기대어 먹었던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웨 엑!”
치 열하던 전투가 순간 멈췄다.
산적, 표사, 낭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어이없는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배백공자…!”
섭선으로 자신을 노리는 산적들을 모두 제압한 제갈연지가 신법까지 사 용해가며 달려갔다.
“괘,괜찮아요…?”
백우진에 게 다가간 제갈연지 가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등을 토닥여주 는 모양새 를 보며 낭인 중 하나가 넋이 나간 얼굴로 읊조렸다.
“저딴게…, 정파를 이끌어갈후기지수…?”
정사지 간에 서 있는 낭인들은 결심 했다.
‘개같이 멸망하겠구나, 정파!’
혹여 정파와 사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 사파로 붙어야겠다고.
“어우…, 너무 마셨나.”
이게 다육포때문이야.
제갈연지가 하나씩 건네주는 육포는지금까지 숱하게 먹어본것들 중단 연 1등이었다.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짭쪼름한 맛이며, 식감이 건량이라기엔 너무 나도 훌륭했다.
“여,여기 물….”
“고마워.”
제갈연지가 건네주는 수통의 물로 입을 헹군 뒤 마차로 돌아가자 전투는 이미 끝나 있었다.
산적들이 워낙 초짜였던 탓에 부상자도 없어 모두가 사후처리에 힘쓰는 중이었다.
“고,고생하셨소.”
마차에 붙어있던 안세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과연 그것이 싸우느라 고생했다는 건지, 토하느라 고생했다는 건지는 모 르겠다.
다시금 출발한 상행은 해가 저물어갈 즈음에 멈춰 섰다.
“야영 준비를 시작하게.”
“예.”
산의 중턱에서 야영이 시작됐다.
상단의 인원들이 야영 준비에 한창일 때, 백우진은.
“아우, 더는 못 마셔….”
음냐음냐.
게워낸 속을 다시 채운답시고 마신 술에 취해 마차 안에서 제갈연지의 무 릎을 베고 누워 잠꼬대나 하고 있었다.
“히, 힛….
제 무릎에 누운 백우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들썩이는 제갈연지 의 정수리에서 영문모를 귀기(鬼氣)를느낀 안세하는오싹해진 등골을 어 루만지며 마차를 벗어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으음…?
문이 열리는소리에 백우진이 잠에서 깨어났다.
“아, 아아….”
하늘 위로 치솟던 감각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메다꽂혔다.
앞머리 사이로 가려진 제갈연지의 눈동자에 원망이 감돌았다.
“아니, 이게 왜문에서소리가….”
부담을 느낀 안세하는 도망치듯 마차를 빠져나가 총관을 붙잡고 호통을 쳐댔다.
“자네는대체 마차관리를어떻게…!”
몸을 일으킨 백우진은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제갈연지를 바라보았 다.
“많이 불편했지 ? 미 안.”
“아, 아, 아니에요! 절대로! 다, 다음에도또 베고 자도돼요…!”
“그,그래….”
어 마어 마한 박력 이 었다.
열린 마차 문 너머에선 야영 준비가 얼추 끝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백우진은 뭐가그리 좋은지 헤벌쭉 웃고 있는 제갈연지를 향해 말했다.
“우리도 슬슬 야영 준비를….”
그때였다.
“소협,소저 ! 두 분의 잠자리 를 마련해 두었으니 그쪽으로 가시 지 요.”
“•••끝내 두었다네?
염소수염 총관의 준비성에 감동했다.
야영지는 자연스럽게 두 곳으로 나뉘 어져 있었다.
상단의 표사 및 쟁 자수들이 머무는 지 역과 고용된 낭인들이 머무는 곳으 로.
백우진과 제갈연지가 마차에서 나오자 제법 많은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 로 향했다.
“흐음.
99
대부분낭인들의 것이었다.
술 먹다가 토한 탓일까,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불량하다는 걸 느 꼈다.
‘이놈들 봐라.’
이세계에서 생환 이후 판타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몇 달간 주구장창 무협을 파온 백우진이 다.
대부분이 사문이나 스승 없이 무공을 독학하여 무림에 나선 이들이 낭인 이다.
든든한 뒷배경이 없는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눈치를 잘봐야만 한다.
싸워도 되는 상대와 그렇지 못한 상대 만 구분해도 최 소 唐년은 더 살아남 을수 있기에.
그들에게 있어 대문파의 제자 또는 명가의 자식들은 걸어다니는 벽력탄 이나 다름없다.
잘못 건드려서 터지기라도 했다간 본인에게 박살이 나든, 사문 또는 가문 에 박살이 나든 어느 쪽이든 좋은 꼴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이토록 불민한 시선을 보내온다는 건 딱 하나다.
‘제대로 얕보였네?’
그걸 다 감안하고서라도 상대가 만만해 보일 경우다.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명가의 자식이란 때때로 벽력탄이 아니라 훈장이 되기도 한다.
정식 비무나 대련에서 승리하는 순간 평생의 술안주감은 물론이요, 명성 이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기회 이 기도 하니 까.
“허허.”
백우진은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했다.
그래서 짜증이 났다.
“속도 안좋아서 좀쉬려고했더니 ….”
첫 번째 이세계 생활에서 백우진은수많은 동료들과함께 했다.
...
...
전투를 겪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리가 비게 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인물로 채우기 마련인데, 그들 중에는 그가 새파랗게 젊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멸시하려는 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과 척을 지기 싫어 앞으로의 생활로써 보여주면 된다 여겼 다.
그런데 아니었다.
최소한의 손실로 끝낸 전투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이겨야만 했다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로 우겨대는 꼴을 보며 백우진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 얘네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구나!’
그때부터였다.
백우진의 특기가서열 정리가된 것은.
‘다녀석들을 살리기 위한 거야.’
백우진과 낭인들은 동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서 손 발을 맞춰 야 할 사이 임 에 는 틀림 없다.
그런데 백우진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이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잘못된 선택을 한그들의 목숨이 어떻게 되겠나.
그러니 빠른 서열 정리를통해 정신을 개조시키는 건 그들의 목숨을 살리 는일이기도했다.
“음으 음 으 •
나중에 다 내게 고마워할 거야.
모두가 고맙다며 포권을 취할 그날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 짓던 백우 진이 낭인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낭인들이 하나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낭인들의 특징이다.
든든한뒷배경이나 인맥 없이 거시기에 찬 부랄두 쪽만 지닌 채 거친 무림 의 세계에 나선 이들이다.
살아남기 위해 팍팍한 삶을 살아온 탓에 지들끼리 죽기 직전까지 싸우다 가도 외 세 에 맞서 야 할 때는 자연스럽 게 모여서 힘을 합친다.
약간 친형제와 비슷하다.
형 이 동생을 패는 건 되 지 만 밖에 서 맞고 돌아오면 꼭지 가 돌아가서 어 떤 놈들이 그랬냐며 다그치지 않던가.
“무슨 일이시오.”
야영지 지척까지 당도하자 낭인들의 대주인 석대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확실히 대주로 뽑힐 만한 자였다.
실력이야 둘째 치고, 남들보다 한 수 뛰어난 눈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예로 모두가 아니꼬운 시선을 보낼 때, 석대만이 평온한 시선으로 이쪽 을 보고 있었다.
“아아, 별건아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하대를했다. 그러자 몇몇 낭인들의 시선이 더 흉흉하 게 변했다.
백우진은 그런 녀석들을 손가락으로 콕콕 집 어냈다.
“너,너, 너.”
총세명이었다.
“저 녁 다 되 려면 시 간도 좀 남았는데,몸이 나 좀 풀까?”
한 판 붙자 새 뀌 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