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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7화 (17/215)

<17 화〉마인(虎시

산 속에 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새 소리 나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 지 않 았다.

칼날보다 싸늘한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건 긴장한 무사들이 마른침을 넘 기는 소리 뿐.

비 쩍 마른 동물들의 시 체 무더 기 를 발견했을 뿐,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 지 못했다.

그들의 긴장감을 고조시 키는 건 다름 아닌 백우진의 표정이 었다.

산적들을 눈앞에 두고도 술에 취한 사람 특유의 몽롱한 시선을 유지하던 그가 상행 중 처음으로 긴장한 얼굴로 칼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좆된것 같은데.’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상대 의 강함을 예 상하는 데 에 는 느껴 지 는 분위 기 만으로 충분하다.

무협 에 서 흔히들 말하는 반박귀 진의 경지 가 아닌 이상 자연스럽 게 새 어 나오는 기세는 기운을 감추는 데에 특화되 어 있는 살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니.

‘대체 얼마나피를 빨아먹은 거야?’

마인은 마기에 의해 혼탁해진 선천지기를 격발한다.

선천지기란 생명의 근원임과 동시에 목숨.

그것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녀석들은 살아있는 것들의 피를 빨아 그 힘을 보충한다.

빨아들인 피 가 선천지기를 보충하고도 남으면 그것은 그대로 녀석의 힘으로 쌓인다.

마인을 최대한 빨리 죽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에 있다.

백우진이 느낀 녀석의 경지는최소 일류 최상위에서 절정 사이.

숲에서 변화를 거쳤다는 건 이 숲을 자주 오가는 평범한 이가 마기를 받아 마인이 되었다는 뜻인데, 고작해야 일류 수준에 불과했을 녀석이 절정에 오 르기까지 얼마만큼의 동물들이 녀석에게 죽어 나갔을지 상상조차하기 어려 웠다.

‘어쩐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 확실하다.

녀석은 분명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쪽은 녀석이 어느 방향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조차 알수 없으 니 지금 녀석이 습격해온다면 누군가는 필히 죽을 터.

“할 수없지.”

상대방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면, 제발로 나타나도록 만드는 수밖에.

“다들 정신단단히 차려.”

녀석을 불러낼 테니.

무사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와중, 제갈이라는 성씨를 물려받은 여식답게 영 민한 제 갈연지 는 그의 행동을 예 측한 듯 놀란 표정을 지 으며 달려 갔지 만 백우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흡.”

백우진은 손에 쥐고 있는 칼을 역수로 쥐 어 제 팔을 길게 그었다.

상처 난 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혈향이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한순간, 비로소 강렬한 기척이 느껴졌다.

“키에에에에!”

마인이란 결국 맹목적으로 사냥감을 좇는 이성이 마비된 존재들이 다.

백우진은 이 점을 이용하기 위하여 제 팔을희생시켰다.

혈향을 맡은 마인이 빠른 속도로 산을 내달려 백우진을 향해 짓쳐들었다.

“더럽게 빠르… 네!”

하나의 거대한 점이 되어 날아드는 녀석을 간발의 차로 피해낸 백우진은 곧장 검을 휘둘러 훤히 드러난 녀석의 등을 베었다.

카가각!

인간의 살갗을 베 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와 감촉에 인상을 와락 구겼 다.

“지 가골렘이야, 뭐야.”

생각 이상으로 피부가 단단했다.

검이 베고 지나간 녀석의 등에는 얇은 상흔만이 남아있을 뿐, 제대로 된 피해는 입지 않은 듯보였다.

움찔한 마인이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펼쳤다.

“어,어어….”

佒척이 넘는 키, 짙은회색빛 피부, 길게 자라난손톱,구별 없이 새빨간눈.

마인은 마기를 받아들인 이후 극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어떤 녀석은 팔이 다리처럼 길게 늘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녀석은온몸이 채찍처럼 휘어지는 말도 안되는 유연성을 얻고,또 어떤 녀석은 온몸을 강철 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각각의 변화에 따라 마인은 세부적인 분화를 거친다.

눈앞의 녀석은 회색빛 피부와 강철 같이 단단한 피부, 길게 자라난손톱을 지녔다.

사람들이 이르길, 불괴(不壞).

강철 같이 단단한 몸을 특징삼은 녀석에게 붙여진 이름이 었다.

“부, 불괴다.”

낭인들 중 하나가 녀석의 특징을 알아보고선 홀린 듯 녀석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마인, 그중에서 불괴는 낭인들 사이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하수들의 재앙….”

하수(下手)들의 재앙(災獾).

강철 같이 단단한 몸은 내 기를 실은 검으로도 쉬 이 파괴할 수 없다.

절정에 이르러 사용 가능한검기(劍氣)는되어야녀석을수월히 베어낼 수 있는데, 낭인들 대다수는 절정에 이르지 못한무인들이다.

절정에 이르지 못한무인 수십이 모여 있어도불괴 하나를 감당해내지 못 하니, 녀석은 낭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으, 으아아아!”

낭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들 자리를 지켜라!”

석대의 외침에도 들썩이는 낭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불괴의 시선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백우진의 팔에 고정되 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녀석은 그래도 방금 전 등에 입은 피해가 신경 쓰 였는지,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있는상태였다.

백우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옆에 선 제갈연지를 향해 물었다.

“제갈소저, 검기 사용가능해?”

“아,아뇨…. 죄송해요.”

“괜찮아.”

1학년 제일 기재로 불리는 이도 절정의 벽을 거의 허물었을 뿐이라고 하니 , 그녀가 검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진정해라.”

백 우진의 나지 막한 음성 이 작은 파도처 럼 퍼져 나갔다.

“녀석의 시선은내게 고정되어 있다.”

그러니 너희는 아직까진 안전하다.

들불처럼 퍼지기 시작한동요를 어떻게든 진화한뒤, 백우진은 생각에 잠 겼다.

‘어쩐다….’

수십의 하수보다 한 명의 고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녀석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도 대부분의 공격은 허사로 돌아갈 터.

“지금부터 곧장 玗인 1조를 편성한다. 도끼나 창을 든 무인을 중심으로 검 수가 붙는다.”

검기 없이는 녀석의 몸을 부수기 힘들다.

바꿔 말하면 힘들지만 ‘가능은’ 하다는 것.

지금 상황에서 검수들은 녀석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

오히려 강한 파괴력을 보일 수 있는 부수(饜手)나 한 점을 강하게 찌를 수 있는창수(槍手)가공격 역할에 알맞을터.

“검수들은 혈귀의 공격을 막아내고, 부수와 창수는 녀석의 머리와 다리를 노려 공격한다.”

표두와석대 가명민하게 움직였다.

4인으로 이루어진 조는 총 여덟.

唐인의 검수가 각각 앞에 서고, 공격을 담당하게 될 창수와 부수는 그들의 보호 아래에 강력한 한 방을 노리기 위해 기세를 가다듬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라! 막고, 공격한다! 언제까지? 될 때까지!”

“되,될때까지!”

절정의 무인이 없는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판단이었다.

백우진을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된 낭인과 표사들이 서서히 녀석을 압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키이이….”

슬슬 서로의 공격권에 닿아가는 그 순간, 가만히 서 있던 불괴가 땅을 박 찼다.

“캬아앗!”

날카롭게 자라난 손톱들이 허공을 갈랐다.

쉬이익!

눈으로쫓기 어려울정도의 속도에도백우진은 침착하게 검을 들어 녀석 의 공격을 막아냈다.

“지금!”

수비에 성공했으니,공격의 차례였다.

가장지척에 다다라 있던 조의 창수가창에 내기를 실어 힘차게 내질렀다.

머리를 노리고 들어간 창은 불괴 가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허 공을 갈랐다.

“ 아깝다!”

“지금처럼만하면 이길 수 있겠어!”

공격 에는 실패했지 만 무사들의 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 였다.

공방이 이어졌다.

피를 흘리는 백우진에게 주된 공격이 쏟아졌고, 백우진은 이를 막아냈다.

조의 창수와 부수들이 그 뒤를 이어 공격을 거듭했지 만, 녀석은 민첩한 움 직임으로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키이! 키이이익!”

또 한 번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불괴 녀석이 땅을 마구 밟으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백우진의 피를 빨기 위해 맹목적으로 움직이던 녀석의 행동 양상이 달라 지기 시작했다.

“캬악!

“으, 으아악!

자신을 방해하는 무사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없이 많은 전투로 단련된 백우진의 눈으로도 쫓기 어려운 속도였다.

가공할 빠르기에 당황한 검수들의 손이 뒤엉키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피 를흘리는 이들이 생겨났다.

“ 아악!

손톱에 할퀴어진 배에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  |....

!...

........

불괴는 제 손톱에 묻은 피를 핥은 뒤 낭인의 몸에서 쏟아진 내 장을 주워 입에 가져갔다.

“크카카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내장을 맛보는 녀석의 모습에 무사들은 분노 와 절망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 아아…!”

전장에서의 공포란 전염병이다.

아니 , 그 어 떤 전 염 병 보다 전 염되 는 속도가 빠르다.

하나둘씩 피를 흘리 며 쓰러 지 는 동료의 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무사 들의 눈에 공포가 차올랐다.

“씨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첫날 대련에서 백우진의 놀라운 기예를 본 낭인들은 이후로도 자진해서 약초를뽑아그에게 건네 뒤, 넌지시 가르침을 요청했다.

백우진은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가르치는 것들은 가문에서 배운 절기도 아니요, 혼란한 전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은 것들에 불과했기 에.

사람과 사람은 무언가를 나눌수록 정이 쌓이기 마련이 다.

고작 나흘에 불과했지만, 백우진은 그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진창 속에서 발버둥치는 이들을, 백우진은 외면할 수 없었 다.

자신 또한그러했기에.

“제갈소저.”

“네,넷…!”

“힘들겠지만놈의 움직임을 조금만 방해해줘. 무사들이 조금더 수월하게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게.”

“아, 알겠어요…!”

저, 힘내볼게요…!

작게 다짐하며 제갈연지 가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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