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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26화 (26/215)

<26 화 > 백사파(白楙둥)

폭풍전야(暴風前夜).

매서운 폭풍이 오기 전날의 밤처럼 오늘하루는 굉장히 고요했다.

그러나 벌써 며칠째 백사파에서 식객으로 머물고 있는 백우진 일행은 느 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속에서 긴장감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당장 내일 아니, 오늘 밤 야음을 틈타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분위 기 가 백사파 상층부에 흐르고 있었다.

백우진은오랜만에 술을 적당히 마신 상태였다.

“이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한 며칠 전부터 난술에 취해 깨어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지 ….”

이게 본격적인 계획의 시작을 앞둔오늘.

놀랍도록 고요하고 잔잔한 바람에 적 막감이 맴 도는 지금.

신예화가 우려하던, 제 갈연지 가 걱정하던,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다.

그들의 걱정과 우려가 현실이 될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결과가 말 해줄것이 다.

“쟤 왜 저래요?”

“그,글쎄요….”

아까 전부터 이상한 혼잣말을 막 하던데 ….

두사람의 걱정과우려는 계획이 아닌 백우진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젠장, 젠장!”

쾅쾅!

하루를 마치고 침소에 든 백모사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탁상을 몇 번이나 내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왕종구가 자신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왕종구, 그자가 자신이 방주 자리를 노 리고 있음을 의 심하는 것을 넘어 거의 확신하고 있다는 것.

“드러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

요 며칠은 더욱 그러했다. 갑자기 맞이한 백우진과 그 일행들 비위 맞추느 라 온종일 진땀을 빼고 있지 않던가.

심지어 백우진 그 빌어먹을 술고래 비위 맞춘다고 마신 술 때문에 숙취 가 가라앉질 않아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래, 그놈 때문이구나!”

백우진의 존재를 떠올리고서야 그는 왕종구가 왜 자신을 견제하기에 이 르렀는지 깨달았다.

“내가 백우진을 꼬드겨서 자기를 제낄 거라 생각한 거로군.”

비릿한 미소가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실제로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도울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얘기하라는 말을 들었을 땐 참지 못하고 왕종구를 밀어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얘 기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

제 스스로는 같은백 씨라내적 친밀감이 더 쌓이니 뭐니 했지만그는 이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 친근함 속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아 더욱 몸을 웅크 렸다.

사람을 믿지 않는 흑도다운 방식 이 었다.

“젠장.”

방주와의 사이가 갈라지 기 시 작했다. 깨진 도자기를 아무리 붙여본들 그 모양이 온전치 못하듯 왕종구와 백모사의 사이 또한 그러했다.

의형제 ? 그딴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혈연관계도 쉽게 배신하는 게 흑도 의 방식인데, 술잔 앞에 맺은 관계가 무에 중요하다고.

그저 각자의 이 익 을 위 한 관계 였을 뿐이 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 익 관계를 개의치 않을 정도로 자신은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빌어먹을.

99

이제는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봐온 성급한 성격의 왕 종구라면 당장오늘 자신에게 살수를 보내도 이상치 않을 작자였다.

“순순히 죽어줄 것 같으냐!”

절대 그럴 수는 없지.

백모사는 호위를 대동한 채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백우진이 기거하고 있는 별채였다.

“형님, 저 백모사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별채의 문이 열렸다. 마중나온 이는 신예화였 다.

“어머, 부방주께서 야밤엔 어쩐 일이세요?”

“그것이…, 형님께 잠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일단 들어오세요.”

“예:

신예화의 뒤를 따라 별채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백우진이 연분 홍색 얼굴로 모습을 드러 냈다.

“아니, 아우가 이 밤에 어인 일로 찾아왔나?”

백모사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나이 차만 생각하면 무려 띠를 한 바퀴 가볍게 돈다. 그런 자신을 자연스럽 게 아우 취급하는 놈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화가 치솟았다.

“형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 왔습니다.”

“으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탁자를 가운데 에 두고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제 갈연지 가 쭈뼛 거 리 는 걸음으로 다가와 따뜻한 김 이 피 어오르는 찻잔을 내 려놓고서 고개를 푹 숙인 뒤 돌아갔다.

“자,뭐든 말해보게.”

내 가능한 거라면 힘이 닿는데까지 돕겠네.

자신만만한 미소에 백모사는 저도 모르게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가는 것 을느꼈다.

저 미소는 바닥에서 굴러먹는 자신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많은 걸 손에 쥐고 태 어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었다.

‘그래. 어차피 잘된 것일지도모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백우진과 섬서백가를 뒷배경 삼아 백사파를 손에 넣자.

동네 흑도 방파를 상대로 섬서백 가가 꿍꿍이를 지니고 있다 한들, 뭐 그리 대단할까.

“형님! 이 아우 좀 살려주십시오!”

생각을 마친 백모사가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의자를 뒤로 밀어놓고 넙죽 엎드렸다.

당황한 백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아니, 자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살려달라니 猌 누가 아우를 죽이 기라도 하 겠다던가?”

그런 놈이 있으면 말하게! 내 당장치도곤을 내줄 터이니!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얼굴을 붉힌 채 화를 내는 백우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정말로 그가 자신에 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말입니다….”

그때부터 백모사의 기구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비록 흑도에 불과하지만 부푼 꿈을 안고 왕종구와 백사파를 세웠고, 그가 마을에 대롱을 꽂아 온갖수탈을 일삼을 때 오로지 자신만이 이에 대항하여 겨우 그 수위를 낮췄다는 등.

왕종구는 거침없이 내려치고 자기 자신은 조심스럽게 올려친다. 교묘한 화법이 꼭 뱀의 혀를 가진 것만 같았다.

‘새끼, 애쓴다.’

물론 백우진에겐 조금도 통하지 않았지만.

기나긴 신파극의 결말은 결국 정해져 있다.

“이참에 악덕한 방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백사파로 거듭나려 합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형님!”

바닥에 머리를 찧어가며 부탁하자 백우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앉아서 얘기하세.”

“예….

백모사를 자리에 앉힌 그는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척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놈은 애가 타고, 자신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날 터. 그럴수록 자신이 어떤 말을해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내 솔직하게 말하지.”

“경청하겠습니다.”

“자네가 말하는 새로운 백사파라는 것, 내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말이야.”

백우진은 제 모습을 보라며 두 팔을 뻗 어 보였다.

|  |....

!.

!.

.....

“이 우형은협이니 의니 하는 것들은관심이 없단말일세.”

지 금까지 백우진 이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망나니 의 정 석과도 같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의니 협이니 논하며 새로운 백사파로 거듭나게 도와주겠 다고 말하면 오히 려 백 모사는 의 심 을 하기 시 작할 터.

“그러니 의미 없는 것들은 집어치우고 내게 하나만 약조하게.”

“무엇을…?

“백사파에서 거둬들이는수익의 일부를 내게 주게.”

백우진의 눈동자에서 강한 탐욕이 일었다. 백모사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 다.

그에 대한불신이 가셨다.도리어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그만큼그의 눈동 자 속에 담긴 탐욕이 강렬했다.

저런 탐욕이 라면, 충분히 이 익 관계로 맺어질 수 있겠지.

“매달 거둬들이는 수익의 1할을 드리겠습니다.”

백 사파가 이곳 마을에 서 거둬 들이는 수익 의 양은 남들이 쉬 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고리 대금으로 쪽쪽 돈을 빨아먹고, 보호비 랍시고 달에 몇 번이 나 받아먹 고,도박장에 투기장에서 나오는 이익 또한 어마어마했다.

그중 1할이라면 제아무리 섬서백 가의 아들내 미라도 만족할 수 있을 터.

“2할.”

그러 나 눈앞의 상대 가 지 닌 욕심 은 상상 이 상이 었다.

“혀,형님.

“절대 많은금액이 아닐걸세.”

백우진은 웃는 얼굴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는 지금 백 사파를 차지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금액으로 1할을 요구한 다고 생각하나?”

“•••그것이 아니었습니까?”

“아닐세, 아니야.”

백 사파를 손에 넣은 이후도 생 각을 해 야지,안 그런가?

“아…!”

개 안을 하는 듯한 기 분이 었다.

‘이것이 명가의 자제인가!’

고작 백 사파를 손에 넣을 생 각에 만 급급했던 어 리석은 자신과 달리 , 백우 진은 그 이후에 있을 다양한 일들까지도 모조리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파와 사파이 니 대놓고 연을 맺을 수는 없지 만 무려 섬서백 가와의 인연 일세.”

지금도 2할의 수익 이 아깝게 느껴 지 나?

백 모사는 침 을 꼴깍 삼켰다.

“드,드리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조아리자 백우진은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럼 이제 계획을 짜보도록하세.”

“예,형님. 제가무얼 하면 좋을지, 말씀만하십시오!”

충실한 종복처럼 대답하는 백모사의 모습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백우진은 입가에 띠고 있던 미소를 말끔히 지워냈다.

“자네를 따르는 무리들의 수가 분명 열세라고 했지.”

“예,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사실 내가아무리 날뛴다고 한들숫자 앞에선 한계가 있는법이야.”

일리 가 있는 말이 었다. 제 몸에 호신강기를 두르고 다니는 고수가 아닌 이 상, 눈 먼 칼에 맞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인 법이니.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세.”

“무얼 하면 되 겠습니까?”

“지금 당장 부하들을 불러 모으게.”

“당장이라시면…, 설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이라면 왕방주도 채비를하기 전일 터.”

야밤을 틈타 기습을 하는 건 어떻겠나.

백 모사와는 비 교도 할 수 없는 요사스러 운 혀 가 날름거 리 기 시 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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