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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27화 (27/215)

<27 화 > 백사파(白楙둥)

이른새벽.

아침을 알리는 닭조차 울지 않는 어둠 속에서 거친 함성과 함께 백사파 내 에서 반란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수적 열세를극복하기 위한백모사의 기습이 시작된 것이다.

“방주님!”

갑작스러운 소란과 부하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왕종구는 곧장 머리맡에 놓아둔 대도(大刀)를 손에 쥐며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일이냐.

“부방주가 기습을 해왔습니다!”

“이 배은망덕한놈이 기어코…!”

설마 이토록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방심에 대한 대가를 뼈저리게 치르게 된 왕종구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밖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커다랗게 들려왔다.

“백우진이 포함되어 있느냐?”

“백우진은 보이지 않고, 부방주 옆에 복면을 쓴 검수가하나 있긴 합니다.”

“으음…!”

복면을 쓴 검수란 필시 백우진일 터.

고리타분한 정파인이 사파의 권력다툼에 끼어들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 간 망신살이 뻗칠 테 니 복면이 라도 쓰고 나온 거겠지 .

왕종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백모사를 막기에도 벅찬데 백우진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  |.....

!..

!..

“방주님, 어서나가보셔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둘 중 누구든 막아서지 않으면 부 하들이 입을 피해가 눈덩이 굴러가듯 커질 테니 지금은 빠르게 행동해야 할 때다.

“일단가세한다!”

“예!”

왕종구가 대 도로 문을 부숨과 동시 에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그때 였다.

비어버린 침소에 흑의무복을 입고 복면을 쓴 괴한이 침입했다.

천장에서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앉자 존재감을 감출 수 없는 커다란 흉부 가들썩거렸다.

“후우!”

괴한, 신예화는 이리저리 어질러진 방 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찾는담.”

그녀가 이곳에 잠입한 목적은 단 하나, 백사파가 지금까지 기록해둔 비밀 장부를찾기 위해서였다.

“정말여기에 있긴 할까.”

백우진이 말하기를, 비밀 장부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선 안 될 극비 중의 극비라 했다. 그녀로서는 그것이 과연 침소에 모셔져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 지만, 백우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람 믿기 힘든 놈일수록 극비는 제 몸 가까이에 두는 법이라고.

“그러니 침상을 확인하라고했었지 …?”

백우진이 일러준 말을 토대로 그녀는 성인 서넛이 누워도 거뜬할 법한 거 대한 침상을 방 한쪽 구석으로 쭉 밀어냈다.

침상의 바닥에 실선 자국에 칼을 집어넣어 뒤집자 장판이 들어 올려지면 서 숨겨져 있던 금고가드러났다.

“와!”

임무 완료.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백우진의 예상대로 왕종구는 오늘 기습이 가해질 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 다.

덕분에 방비 가 조금도 되 어 있지 않은 놈의 부하를 몇이나 베어넘기 며 수적 열세 를 조금이 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

‘흐흐, 더군다나 내게는…!’

백모사의 시선이 제 옆에 비딱한자세로서 있는복면인, 백우진에게로 향 했다.

그의 눈에는 정파인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복면을 쓰면서까지 나서준 백 우진에 대한 고마움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흑도로서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신뢰감이었다.

“아우, 계획대로 하자고.”

“걱정 마십시오! 제가종구 놈을 막고 있을 테니, 형님은 다른 녀석들을 부 탁합니다.”

“그래.

미리 정해둔 계획 이었다. 백모사가 왕종구와 맞서 버티는 동안 백우진이 주변을 휩쓸어 승기를 굳힌 뒤 합류하기로.

처음에 는 백우진 이 왕종구와 맞서 기 를 바랐지 만 지 금은 적 이 라지 만 부 하들을 거침 없이 베 어 넘기는 모습을 보이면 충성심 에 문제 가 생 길 수도 있 다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이놈들!

마침내 왕종구가 노기 어린 음성을 토해내 며 전장에 나타났다.

대도가 휘 둘러지 자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백모사 쪽 부하의 몸통이 반으 로 갈라졌다.

“백모사, 이 배은망덕한놈아! 어디에 숨어 있느냐!”

그가 호랑이처 럼 울부짖자 전황이 뒤 바뀌 기 시 작했다. 그와 함께 나타난 무사 하나가 검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방주께서 함께 하신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우오오오!”

왕종구의 등장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더 이 상 지 체 했다간 돌이 킬 수 없는 사태 가 벌어 질 것임을 예 상한 백모사 가 다급하게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왕가야, 나를 찾느냐!”

“이노옴!”

쩌엉

왕종구의 대도와 백모사의 창이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음을 토해냈다.

“크흑!”

힘 싸움에서 먼저 물러난 쪽은 백모사였다. 대도를 나뭇가지처럼 휘두르 는그의 신력에 맞대응하기란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어차피 시간은 나의 편이다!’

백모사는 곁눈질로 전장을 휘젓고 다니는 백우진의 존재를 살폈다.

그가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주변 부하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흐흐, 왕가야.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하E마.”

“닥쳐라!”

화가 머 리끝까지 치솟은 왕종구의 대도가 허공을 갈랐다. 백 모사는 침 착 하게 뒤로 물러나며 짓쳐드는 대도의 끄트머리를 슬쩍 쳐내며 공격을 차단 했다.

“이익…!”

한쪽은 끊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다른 한쪽은 끊임 없이 물러 났다.

벌써 수십의 합을 겨뤘으나 왕종구는 백모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 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도망칠 셈이냐!”

“흐흐, 무식하게 힘만센 네놈과 맞대결을 펼쳐줄 성싶으냐?”

여유 있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백모사는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

‘젠장, 무식하게도 세구나!’

왕종구는 일류 중입, 백모사는 일류 초입의 경지였다. 같은 일류라고 해도 경지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더군다나 타고난 신력에서 오는 차이까지 더해져 풍차처럼 날아오는 대 도를 가볍게 쳐내며 방어에 전념했음에도 창을 타고충격이 전해져 손이 저 려올지경이었다.

‘백우진은대체 뭘 하기에…!’

다급한 시선으로 전장을 훑으며 백우진의 존재를 찾던 백모사의 눈동자 가서서히 커져갔다.

“이,이게 무슨….”

백우진은 전장 한가운데를 누비며 춤을 추듯 매끄럽고 부드러운 움직임 으로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병장기들을 피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검 이 향하는 곳에 선 반드시 피 가 쏟아졌고, 상대는 무기를 땅에 떨군 채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여 기 까지 만 보면 백 우진이 제 대로 활동하고 있구나 안심 했겠으나 문제 는 그 검을 휘 두르는 대상이 었다.

‘저, 저 놈이 왜 내 부하들까지 !’

백우진의 검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있었다. 왕종구의 편이든, 백모사의 편이든가리지 않고상대방의 팔또는다리를베어 더 이상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무력화시켰다.

“서,설마…!”

그의 머릿속에 최악의 그림이 그려졌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백우진이 바라는 진짜 모습이었다면.

“감히 한눈을 팔다니, 배짱이 좋구나!”

온몸이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고 있을 때, 백모사가 한눈 판 틈을 타 왕종 구가 달려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휘두른 대검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헉!”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황급히 몸을 날렸으나, 미처 피해내지 못한 도극 이 백모사의 허벅지를 길게 베고 지나갔다.

서걱!

“끄허 억!”

균형을 잃은 백모사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으으…!”

“크흐흐흐!”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처가 긴 탓에 고통이 생각보다 심하 여 운신에 지장이 생겼다.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왕종구가 낮게 웃으며 서서히 다가왔다.

“흐, 흐하하.”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던 백 모사가 허 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 렸다.

대도를 휘두르면 당장 놈의 목을 떨 어뜨릴 수 있는 곳에 다다른 왕종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죽음을 앞두고 실성한게냐?”

그의 말에 백모사는 손가락으로 그의 뒤 편을 가리 켰다.

“프흐흐! 네놈도 눈이 있다면 한 번 보거라.”

왕종구는 놈의 목에 대도를 겨눈 채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곁눈질로 그 가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전투가 끝나 있었다. 어느 쪽의 승리도 아닌 채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팔또는 다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고통어린 신음을 쏟아내고 있었 다.

서 있는 것은 오로지 한 사람, 어느새 복면을 벗고 술을 들이켜고 있는 백 우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느낀 백우진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역시 땀 흘린 뒤에는 술이 제격이 야. 너희들도 한모금 할래?”

“이,이게 무슨 짓이냐.”

왕종구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상황이 말해주는 건 백사파의 완전한 몰락이라는 결말뿐이었으니

“이,이놈이이익…!”

백우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왕종구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되었다.

백모사의 목에 겨눠져 있던 대도를 회수하여 곧장 휘둘렀으나 백우진은 몸을 가볍게 휘청이는 것으로 회피했다.

“죽어, 죽어어 엇!”

왕종구에게 있어 이곳 백사파는 자신만의 성이요, 황궁이 었다.

이곳에서의 자신은 모두를 굽어보는 황제요, 절대자였다.

그랬던 곳이 단숨에 무너졌다.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이 하룻밤사이에 송두리째 뿌리 뽑힌 것이다.

“내 평생이 담겨 있었단 말이다!”

울분을 토해냈지만 백우진에겐요만큼도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이거아주 웃기는 새끼네.”

판타지든, 지구든, 무림이든.

남의 것을 빼 앗고 사는 놈들, 남을 등쳐 먹고 사는 놈들은 거주지를 막론 하고 가지는 공통점 이 하나 있다.

남의 것 빼앗을 때는 일말의 죄 책감도, 동정도 없는 주제에 제 것을 빼앗 길 땐 목숨이 라도 빼 앗긴 사람처 럼 울부짖고, 원 망한다는 점 이 었다.

“여기에 네 것이 어디 있는데.”

싸늘하다 못해 시선이 마주치면 얼어붙을 것만 같은 한기어린 동공이 왕 종구를 응시했다.

“이곳에 있는 거라곤 빼앗긴 사람들의 것뿐이지, 네 것은 없어.”

으리으리 한 전각, 비 단으로 만든 의 복, 맛있는 음식과 술.

“하물며 이곳에 아무렇게나자란풀한포기,흙한줌조차도.”

네 것은 없다.

나지 막한 음성 에는 죄 인을 심 판하는 판관의 추상과도 같은 기 세 가 서 려 있었다.

“그러니 닥치고 기다려.”

네놈에게 주어질 심판을.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놈의 뒷덜미를 강하게 후려쳤다.

녀석의 몸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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