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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33화 (33/215)

< 33 화 > 용봉 비무제 (®M 比武祭)

“백우진 승!”

가볍게 3승째를 거머쥐는 백우진의 모습을 보며, 백무혁은 수많은 인파 를 뚫고 동생에게로 향했다.

“축하한다, 우진아.”

“이제 본선 진출인데 뭘.”

자신의 축하 인사에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그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정말 강해졌구나.”

무던히도 노력해온 동생이 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보상에 좌절 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부쩍 강해진, 앞으로도 더 강해질 것 같은 단단한 모습에 대 기만성 (大板晩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시겠다.”

“흐흐, 그럴까.”

백 우진 이 회 의 적 인 태 도로 대 답하자 백 무혁은 쓰게 웃었다.

가문은 백우진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다. 태어난 아기의 근골이 뛰어나다 는 이유로 멋대로 기대했다가 또 멋대로 실망하여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 를 안겨주었다.

그로 인해 이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었다. 원치 않았다곤 해도 동 생에 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미 안한 마음이 종종 들곤 했다.

“이 제 어 디로 갈 테 냐? 갑조에 는 예화가 있고, 을조에 는 제 갈 소저 가 있을 텐데.”

“아….”

난감한 상황. 허 나, 생 각에 대 한 답은 의 외 로 빠르게 튀 어 나왔다.

“난제갈소저한테 갈테니,형은 예화한테 가.”

|  |.....

!...

......

백무혁이 싱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예화가 많이 실망할텐데?”

백우진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으쓱였다.

“형이 가는데 그럴 리가.”

오히 려 더 좋아해 야지 .

“글쎄다. 내 생각엔 아닐 것 같다만.”

의미심장한말에 백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싶었던 백무혁은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럼 저 녁 에 보자. 그땐 아버 지도 좀 뵙 고.”

“•••그래.”

뭔가 찝찝한 기분을 가슴에 안은 채 백우진은 서쪽에 있는 을조 예선 비무 대로 향했다.

한창 비무가 진행되 는 와중이 었다. 이름조차 잘 기 억 나지 않는 생도 둘이 서 치열하게 싸우다한쪽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면서 싸움이 순식간 에 끝났다.

“이무생 승!”

“으아아아!”

唐승을 거머쥐게 된 생도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백우진은 비무대 주변을 돌며 가장 사람이 드문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소심하고 음침한 제갈연지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가장 드문 곳을 찾아 들 어간다.

“저깄네.”

아니나 다를까, 아름드리 나무 뒤에 숨어서 비무대를 힐끗거리는 제갈연 지를 발견했다.

“어이.”

가볍 게 어 깨를 두드리 자 히 익 , 하고 놀라며 돌아보는 제 갈연지.

“배백공자….”

그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그녀의 입 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웃을때가아냐. 비무해야지?”

“그,그게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을조에는 이미 13명의 본선 진출자가 나왔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망설이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자, 가자.”

“아앗…!”

그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맥없이 그의 손에 이끌렸다.

조금 전 비무가 끝난 이후 비무대는 비워져 있었다. 모두가 조금씩 눈치를 보고 있다.

“올라가.

“제,제가요?”

“이대로 탈락할 거야?”

“아, 아니요. 하지만….”

어지간히도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어떡한다.’

이런 찐따스러운 모습이 그녀의 매력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모습에 그녀가 남들에게 상처 입을 순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바꿔놓아 야했다.

“당당하게 唐승챙겨서 와.그러면 네가원하는 거 다들어줄게.”

“•••저, 정말요?”

새초롬하니 드러난 그녀의 눈동자가 전에 없던 빛을 품고 있었다.

“대신무대 위에서 벌벌 떨고,꼴사납게 지는순간나너 안본다.”

“그,그건 싫어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젓는 그녀의 모습에 달래주 고 싶 었지 만 지 금은 참아야 했 다.

‘강하게 키워야지, 암.’

아닌 듯 보이지만 그녀는 머리 회전과 상황 판단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심지어 현령을 회유하여 관군을 이끌고 온 것도 그녀가 자원해서 한 일이 었다.

백우진은용봉 비무제를 통해 용이 될 생각이다.그렇게 되면 조장이 되어 자신만의 조를 이끌어야하고. 그때 제갈연지를 참모로 기용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것이다.

‘다만 지금 모습으론 좀 힘들지.’

앞서 말했듯 음침함과 찌질함은 이미 그녀의 매력 중 하나가 되었다. 남들 에 게 는 몰라도 적 어 도 자신에 게 는 그랬다.

다만, 저 모습을 유지한 채 남들에 게 꼭 필요한 말만큼은 확실하게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백우진은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너한테 불가능한 일 시키는 거 아니야.”

“백 공자아….”

“할수있어. 날 믿어.”

일말의 동요조차 없이 올곧은 눈빛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제 갈연지는 그 강인한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이토록 확고하게 자신을 믿 어준 이는 없었다.

‘싫어.’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

이것마저 잃어버리면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릴 거야.

‘싫어!’

다른 건 모두 빼 앗겨도 좋다. 그러 나, 백우진은 안 된다.

“알겠어요….”

마지막으로 백우진의 눈을 일별한뒤, 그녀는 작은 보폭으로 비무대를 향 해 걸어갔다.

“하,할수있다.”

할수있다아….

비무대에 오르자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그 하나하나가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 해부하려 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물러서진 않았다.

“제가도전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도전자가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를 얕보고 꽁으로 1승 챙기겠 다는 속내가 훤히 드러났다.

열띤 성원 끝에 비무대 위에 올라선 이는 중위권 성적의 여자 생도였다.

“무슨 자신감으로 먼저 올라온 거 야, 너 ?”

올라오자마자 조롱부터 날린 그녀는 평소 제 갈연지를 괴롭히 던 여인들 중한명이었다.

중소방파의 문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운 좋게 정무학관에 입관한 뒤, 자신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 임을 실감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그리고 그들에 준하는 세력까지. 그들에게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간 자신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 어버릴 것만 같은 공 포마저 느꼈다.

‘가증스러운 년!’

그래 서 그녀는 제 갈연지 가 싫 었다. 무려 제 갈세 가의 딸로 태 어 나 저토록 어벙하고 멍청하게 사는 것이 꼭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 졌다.

그때부터 그녀를 슬며시 건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두려운 마 음이 앞서 친구 사이라면 웃어넘길 수도 있는 가벼운 장난이었다.

소심한 제갈연지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도 못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그 녀의 장난 수위는 더 이상 장난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가 되 었다.

“지금이라도 기권하고 내려가는 게 어떠니?”

주변 시 선을 의 식 한 그녀 가 짐 짓 사근사근한 목소리 로 말하자 제 갈연지 가 고개를 가로저 었다.

“싫어….”

“하! 온몸을 벌벌 떨면서 싸울 수나 있겠어?”

“이 길 거야.”

이겨야만해.

제갈연지는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오로지 눈앞의 상대를 쓰러 뜨리고 승리를 거 머쥐 는 데 에 만 생 각하자, 온몸을 콕콕 찌르듯 느껴 졌던 주 변의 시선을 무시할수 있게 되었다.

철선을 손에 쥔 채 기수식을 취했다. 여자 생도는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머금으며 그녀를 향해 검을 겨눴다.

“후회해도 몰라.”

오롯이 집중 상태에 빠져든 제갈연지는 듣지 못했다.

“비무시 작!”

비 무가 시 작되 자 여생 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리 바보 같 아도 그녀의 가문은 제갈이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쥔 다면 알량한 명성이나마 얻을 수 있을 터.

“하앗!”

주인의 탐욕을그대로 담아낸 검이 짓쳐들었다.

넓게 펼쳐진 철선이 호선을 그리며 정직하게 날아오는 검의 끝을 쳐냈다.

“아앗!?”

엉뚱한 방향으로 검끝이 향하자 그녀의 신체 균형이 무너져내렸다.

무인에게 방심은 독이다. 황보준걸 또한 방심한 탓에 고작 일 수 만에 백 우진에게 패배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 였다. 무인이란 언제나 다음 수와 그 다음의 수를 염두 에 두고 공격을 해야 한다. 그녀는 그 기초를 망각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공 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최 악을 향해 내달렸다.

제 갈연지는 이를 놓치 지 않았다. 앞으로 흘러 내 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 어팔을 뻗었다.

퍼엉!

“꺄악!

99

강렬한 일장이 여생도의 가슴팍에 꽂히자 가죽북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신형이 허공에 붕 떴다가바닥에 떨어졌다.

“아으윽…!”

장법은 상대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타격을 주는 무공이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그녀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몸을 바르르 떨어대고 있 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이 제갈연지를 향해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부릅뜬 채였다.

심판이 곧장 끼어들었다.

“제갈연지 승!”

“아….”

승리 선언이 들리고 나서야 제갈연지는 집중의 흐름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작은 소저가 대단하네.’,

"쉿, 제갈세가여식 이잖나!’,

"역시 명가의 자제답구만.’,

막아두었던 둑이 터진 듯, 무시하고 있었던 시선과소음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에서 막 깨어난 아기새 가 어 미새를 찾듯, 제 갈연지는 고개를 돌려 백우 진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서 있었다. 조금 전처럼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입꼬리가희미하게 올라가 있는게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녀는 온몸을 옥죄고 있던 긴장감이 조금씩 해소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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