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38화 (38/215)

< 38화 > 용봉 비무제 (龍퓒 쩤籌祭)

NovelGod은 이 소설에 총 세 장의 일러스트를 뽑았다.

신예화, 유화연 그리고 당선영.

그는 글은 개같이 못 쓰지만 일러스트 하나만큼은 어마어마하게 잘 뽑는, 이른바 일러스트 맛집 이었다.

신예화, 유화연. 당선영으로 이어지는 일러스트 세 장, 그중에서도 당선영 의 퇴폐미 넘치는모습은 백우진의 넋을 쏙 빼놓았고, 당선영이 등장하는 부 분을 직접 보겠다고 작가명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소설을 읽다가 이 사 달이 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원한이나원망 같은 어두운 감정을 품고 있 지는 않았다.

원 망하기 엔 그녀는 무척 이 나 매 력 적 이 었고, 원한을 가지 기 엔 작가가 그 녀에게 부여한 설정은 가혹했기에.

“백우진입니다.”

백우진은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살짝 낮춘 채 포권을 취했다.

깍듯하게 예를 취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당선영의 두 눈에 흥미가 어 렸다.

‘재미있네.’

당선영이 평가하는 백무혁은 목석같은 인간이다. 수많은 남자들을 홀린 교태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신경을 자극하는 말들로 도발을 걸어봐도 넘어오지 않는다.

길게 자란 머리만 아니면 섬서백가의 자식이 아니라소림사의 제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는 깊은 수양을 쌓은 고승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딱한가지. 백무혁이 격한반응을 보이는 주제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생인 백우진에 대한 이야기였다.

혹여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백우진을 홀릴지도 모른다고 생 각했는지, 그녀의 입에서 백우진이 라는 이름 석 자가 나올 때마다 그는 흉흉 한 기세를 뿌리며 동생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서슬퍼런 경고를 남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당선영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이를 포기한 것은 아 니었다.

‘바보 같긴. 내 가 그런다고 접근하지 않을 줄 알고?’

천만에.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그녀는 하지 말라면 더욱 집착하는 유형의 인간이 었다.

“원래는 나중에 백룡을 통해서 소개받고 싶었는데 …, 네 목소리가들리지 뭐니.”

“제 목소리라면…?”

“술을 마시고 싶은데 용돈이 부족하다면서 ?”

“ 아.”

백우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개쪽팔리네, 진짜.’

돈 없어서 술도 못 마신다는 말을 여자가 듣게 하다니!

쪽팔림이 치사량 수준까지 다다랐다.

“후후,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없어.”

몇마디 대화를 통해 백우진의 경계도가 낮아졌음을 확인한 당선영이 그 를 향해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마침 나도 오늘 술이 마시고 싶었는데.”

괜찮다면…, 이 누나랑함께 마시지 않으련?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온 그녀와의 거리가 어느덧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 가되었다.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살결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맡을수록 계속 맡고 싶어지고, 아예 코를 가까이 가져가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싶어지게 만드는 강렬한충동심마저 일으키는 냄새가.

백우진은그녀 모르게 자신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제법 강한통증과 함께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아찔한 감각이 온몸을 엄습 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백우진이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조금만늦었다 면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냄새를 들이마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머.”

당선영 또한 놀란 것은 마찬가지 였다.

‘물러났어?’

당선영 이 풍기는 냄새 에는 남자만 반응을 보이는 미 약이 섞 여 있다. 은은 하지만 효과가 제법 강력하여 이것을 맡은 남자들 대다수가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들었는데 백우진은 도리어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새빨간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너…, 정말재미있는애였구나.”

아까와는 비교도 되 지 않는 강렬한 호기 심 이 솟구쳤다. 눈앞의 사내 가 자 신을 두고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피 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서 풍기는 냄새 가 한층 강렬해졌다.

백우진은 그에 맞춰 한 걸음 더 뒤 로 물러섰다.

‘이건무리다.’

음주선공의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더 추가됐다.

음주선공을 통해 끊임없이 내력을 축적하기 위해 백우진은 언제나 술에 취해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취기란 녀석은 오르면 오를수록 사람의 이성을 흐릿하게 만든다.

‘당선영과의 상성이 최악이야.’

그녀의 냄새 또한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둘이 합 쳐지자 철옹성 같은 백우진의 정신력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사정없이 흔들 리고 말았다.

‘곤란한데.’

이곳에 오게 만든 주범 중의 주범 이 바로 그녀다. 2D로 보았던 얼굴은 실 제 로 보아도 전혀 그 느낌이 퇴색되 지 않았다.

벼 랑 끝에 핀 꽃을 보고 있는 기 분이 었다. 찬란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가질 수 없음에 더욱 애달픈, 그런 기분.

“무리 좀해보지 뭐.”

“응?

당선영이 시시각각 변하는 백우진의 표정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백우진 은 내기를 잔뜩 끌어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앗…!”

눈 깜빡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졌다. 당황한 당선영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사이, 지척까지 다다른 백우진이 뻗은 팔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끌어 당겼다.

“히극!?”

|  |....

!..

........

그녀의 입 에 서 귀 여운 비 명 이 새 어 나왔다. 지금까지 숱한 남자를 구렁 텅 이로 밀어 넣은 그녀였으나 이토록 직접적으로 사내의 신체가몸에 닿은 것 은 처음이었다.

“무,무슨짓이야.”

최대한 냉정한 척해보려 했지만 당황한기색은여전히 얼굴에 가득했다.

그 모습을 천천히 음미하던 백우진은 이내 그녀의 허리춤에 닿았던 팔을 풀고 뒤 로 물러 났다.

짧은 순간 접촉했을 뿐인데 내기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당선영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당황으로 물들어 있던 그녀의 얼굴이 표 독스럽게 변했다.

“너…!”

사내에게 농락을 당하기는 처음이 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상당한 굴욕감 을 선사했다.

그녀의 손에 암기가 쥐어졌다. 모두 쏘아낼 것처럼 자세를 취하자 놀란 백우진이 손을 들었다.

“어허, 진정해.”

“너 같으면 진정하겠니 ?”

“안 당해봐서 모르지.”

“이익…!”

얄미운 표정과 대답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한 그녀가 손에 쥔 암기 중 하나를 쏘아냈다.

쐐액!

상대를 죽일 생 각은 없는지 적 당한 속도로 쏘아진 암기를 백우진은 몸을 틀어 피해냈다.

그녀가 재차 암기를 던지려 하자 백우진은 얼마 남지 않은 내 기로 경신법 을 운용했다.

도망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백우진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는 정말술 한잔 할수 있을 정도가되어보자고.”

그럼 이만!

빠르게 줄행랑을 치는 백우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선영은 맥 이 풀린 듯 암기를 쥐고 있던 팔을 축 늘어뜨렸다.

“대체 뭐야….”

자신의 냄새를 버티는 것으로 모자라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는 신체 접촉까지 당하다니.

“으으…!”

조금 전의 순간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없이 가깝게 다가온사내의 얼굴,허리춤에 전해지는사내의 손길, 사내 의 짙은음성.

백우진에 게선 처음 맡아보는 향긋한 술 냄새 가 풍겼다.

“제 법 좋은 냄새 … 내 , 내 가 무슨 소릴!”

달빛 아래 비춰진 그녀의 얼굴이 능금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백우진을 깨운 것은 아침의 따사로운 햇빛도,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아닌 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쓰림이 었다.

“어욱, 죽겠다.”

마지막 남은 내기로 경신법을 운용하여 기숙사로 돌아오니 단전이 텅텅 비 어버렸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겠다고 과음을 하고 잠들었더니 속이 말이 아닌 상태다.

“으음, 그래도 내기는 빵빵해졌어.”

속 아픈 보람은 있는 듯했다.

백우진은 배를 쓰다듬으며 작은 서랍에 고이 모셔둔 제갈세 가의 특제 숙 취해소제를 꺼 냈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요긴하게 쓰일 때였다.

껍질을 벗겨 약재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단약을 입에 넣고 씹자 얼마 지나 지 않아물처럼 변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전신에서 청량감이 느껴 진다.

“으음, 이 느낌이야.”

시원한느낌과동시에 온몸에 힘이 충전되는듯한기분. 매일 아침마다 이 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악마에 게 영혼을 팔 수 있을지도.

몸 상태를 회복한 백우진은 허리춤에 검과 호리병을 차고 기숙사를 나섰 다.

“백우진 공자다!”

“백 공자님이야…!”

“아아,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아.”

대연무장으로 가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 험난했다.

진이 빠진 채로 비무대에 다다르자 미리 도착해 있던 신예화와눈이 맞았 다.

“…….”

언제나 발랄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잘대던 입 또 한 단단히 다물려 있어 뜻 모를 굳은 의 지 가 전해졌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장수처럼 비장함을 뽐내던 그녀는 이내 시선을 거둔 뒤,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속이 조금 답답해졌다. 아예 안보이는 곳에서 저러면 모르겠는데, 자꾸만 눈앞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그 이유를 물으려고 해도 말조차 나 누려 하질 않으니.

“왔구나.”

그녀가눈앞에서 사라지고 얼마 안 있어 찾아온 백무혁이 그의 등을 가볍 게 두드렸다.

가볍게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 미 쳐 다보던 백우진은 문득 충 분히 그럴싸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형,혹시 말인데.”

“응?

“예화가형한테 고백했는데 형이 거절했나?”

뜬금없는 물음에 백무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아니, 형도 알잖아. 예화가 형 좋아하는 거.”

백무혁은 눈치가 빠르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을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둔감하고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으음, 글쎄.”

그럼 에 도 그는 의 뭉스러운 표정으로 대 답을 회 피 했다.

백우진은 더욱 속이 답답해졌다.

“아니, 그것도 아니면 요 며칠 동안쟤 상태가대체 왜 저러는 건데?” 형이라면 대화를 나눠봐서 알 거 아니야.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자 백무혁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이유는 아마 대련이 시작되면 알 수 있을 게다.”

“뭐?

“우진아.”

어느새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낸 백무혁이 백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가는대로 하거라.”

"무슨소리야, 그게."

뜬금없는 말에 어 리둥절해 진 그가 되 묻자 백 무혁은 다시 금 웃는 얼굴로 물러났다.

“객석에서 지켜보고 있으마.”

그 말을 남긴 채, 백무혁은 질문에 대한 답도 않은 채 멀어져갔다.

"아놔, 진짜.’,

다시금 혼자가 된 백우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답답해진 속을 술로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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