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용봉 비무제 (迥퓒쩤籌祭)
백 가와 마찬가지 로 섬 서 에 위 치 한 신 가장.
월도로 펼치는 그들의 가전 무공 회선광풍도법(回旋狂風刀法)은 웬만한 대문파의 절기와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 없는 뛰 어난 절기로 손꼽힌다.
실제로 현재 신가장의 장주인 신적은 무림백대고수 중 상위권에 속한 고 수중의 고수였다. 개인의 실력만으로 따지면 섬서백가의 가주인 백영학도 한수 접어줘야 할 정도.
허나, 뛰 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가문은 여전히 일 개 장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 었다. 장주인 신적이 천상 무골이라 무공을 제외하면 지극히 무욕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섬서백가의 가주 백영학은 그들이 언제든지 승천할준비가 되어 있는 이 무기 라고 표현했다.
무림 세가에 필요한 것은 결국 뛰어난무공과 고수다. 그리고 신가장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
그들이 욕심을 내어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순간, 적잖은 세월이 걸 릴지언정 오대세가에 버금가는 위세를 자랑하게 될 거라고 확언했다.
“하아앗!”
거센 기합성과 함께 월도가 허공에 반월을 그렸다.
백우진은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며 상대방의 공격에 맞서기보다 흘려내는 쪽을 택했다.
비스듬히 세운 검면을 타고 흐르는 월도에는 거센 파괴 력 이 담겨 있었다. 아마 막아내는 걸 택했다면 이 검의 수명은 그 순간 끝났으리 라.
월 도와 함께 몸을 한 바퀴 돌리 며 재 차 공격 이 가해진다. 고개 를 젖혀 가 슴께를 가르고 지나가는 시퍼런 날을 끝까지 쳐다보며 그녀의 다음을 예측한다.
후웅! 후웅!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공방이 이 어졌다. 지독한 살초가 아님에도 불구하 고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치료하는 데에는 최소 두 자릿수 이 상의 날짜를 필요로 할 듯하다.
“흐읏!”
이를 악문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하고싶은 말이 뭔데.”
하단을 노리 고 들어오는 다리 후리 기를 피해 내 며 물었다.
“나!,,
후웅!
“이제 알았어 !”
후우웅!
공격이 허공을 가를때마다그녀의 입에서 한마디씩 튀어나왔다.
“네가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카앙!
강맹한 힘을 담고 찔러 들어온 월도가 검의 오른쪽 검날을 때리고 지나갔 다.
검날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신예화가 잠시 공격을 멈춘 채 숨을 골랐다.
“내가 강해지 려는 이유는 너를 지키고 싶어서였어.”
신가장의 회선광풍도법 (回旋狂風刀法)은 타고난 신력과 더불어 강인한 육체 가 뒷 받침 되 어 야만 제 대 로 된 위 력을 발휘 할 수 있는 무공이 다.
신적은 자신의 딸이 여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기 위해 어린아이 가 감당키 어려운 훈련들을 끊임 없이 강행시 켰다.
신예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에 수십 번 눈물을 흘리면서도그녀가포기하지 않은건오로지 단한 사람, 백우진 때문이었다.
내가 지킬거야!’
집착에 가까운 의지를 내비치며 웬만한 어른들도 혀를 내두르고 도망칠 훈련을 모조리 깨부수고 나아가는 모습에 아비인 신적은 백우진에 대한 질투심을 터뜨렸을 정도였다.
허 나, 백우진에 게 약혼자가 생 긴 순간 모든 의 지 와 맹 세는 흐지 부지 하게 변해버렸다.
| |.....
!..
....
언제나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헤헤 웃던 소꿉친구는 어느새 자신보다 약혼녀의 손을 잡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백우진을 그 불여우 같은 약혼녀 유화연에게 빼 앗긴 것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그녀는 단순히 백우진 을 위해주는 친구가 한 명 더 늘어난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말았다.
그렇게 여기까지 시간이 흘렀다.
‘다시는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화연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불여우가 호시 탐탐 노리고 있다.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백대고수인 신적마저 경악하게 만든 강인한의지 가되살아났다.
어릴 때처럼 바보같이 물러서는 일 따위는, 더 이상하지 않으리.
“나!”
숨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그녀 가 땅을 박찼다.
한껏 뒤로 당겨졌던 월도가 내기와 함께 주변의 바람마저 휘 감았다.
“늦었지 만 지금이 라도 얘 기 할래!”
회선광풍도법의 초식 중하나인 회선강격(回旋强擊)이 펼쳐졌다.
“네가 좋아!”
거대한 바람이 백우진을 덮쳤다.
…
두 번째 빙의는 첫 번째와 많이 다르게 진행됐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하지 못해 미쳐 날뛰지도 않았고, 이 상황을 받아들 이기 위해 몇날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 어뜯으며 울부짖느라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놈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원 치 않는 빙의 였지 만 그래도 두 번째라고 모든 것이 수월 했다.
단하나만 빼고.
“네가 좋아!”
몸과 마음 양쪽에서 거세게 부딪쳐 오는그녀의 모습에서 깊은 혼란을 느 꼈다.
이미 소설의 정사대로 흘러가는 건 포기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고 백을 들을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난감하네.’
신 예 화를 바라보는 백 우진의 눈 속에 복잡한 감정 이 그대 로 드러 났다.
어느 인물에 빙의되면 그순간부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마치 자기가 겪 은 일인 것처럼 스며들게 된다.
이 기억은심지어 원주인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까지 기억나게 해준다 . 조금 전 신예화의 물음에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인지,원래 빙의라는 게 이런 건지는모 르겠다.
분명 그 세상에 적절하게 녹아들기 위해 원주인의 기억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은 틀림 없지 만, 도리 어 그것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선 더 큰 혼 란을 겪게 되기도 한다.
‘나이되, 내가아니다.’
신예화가 좋아한다고 고백 한 대 상은 ‘백 우진’이고, 자신은 그가 아니 다.
그녀를 반하게 만들었을 백우진’의 모습을, 자신은 보여줄 수가 없다.
마음을 받아준들 그녀는 머지않아 백우진’과 자신 사이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에 실망하게 될 것이고, 실망은곧 이별을불러온다.
종착지는 결국 그녀는 물론이고 자신마저 상처 입는, 누구 하나 행복할 수 없는 결말.
이미 뼈저리게 겪어본 일이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었고, 더 많 은 걸 할 수 있었음에도 결말을 바꾸지는 못했다.
뻔히 보이는 비극적 결말에 두 번이나 속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다잡은 백우진이 검을 강하게 움켜쥐 었다.
거세게 들이닥치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불규칙한 흐름에 몸을 맡겼다.
취 선보는 사방이 요동치 고 흔들리 는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 서 더 큰 빛을 발했다.
극에 달한유(柔)의 움직임으로공격을 해소한뒤,쾌(快)하나에 모든걸 바친 섬서백가의 보법 일섬보(銜쪅步)를 펼쳐 그녀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 다.
“앗…!”
당황한 음색을 토해내면서도 월도를 들어 방어를 굳혀가는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
주선검결의 초식이 펼쳐졌다.
취선운월 (醉仙雲越).
술에 잔뜩 취해 남의 집 구름담을 넘어 가곤 했던 주선의 은밀한 움직 임을 그대로 담아낸 검이 소리소문없이 흘러 방어를 위해 당겨진 월도 자루와 신 예화 사이에 난좁디좁은 틈을 비집고들어가 기어코 그녀의 목에 닿았다.
턱에 맺힌 그녀의 땀방울이 목에 닿은 검면을 타고흘렀다.
“우,우진아.”
애타는 목소리.
백우진의 한마디 사과 속에서 불길함을 예 감한 듯, 사정 없이 흔들리는 두 눈동자가 애처롭게 이쪽을 향한다.
“안타깝게도 너무 늦었어.”
네 가 좋아하던 백우진은 이 미 죽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뒷말을 꾹눌러 삼킨 채, 그녀의 목에 겨눴던 검 을 거뒀다.
까맣게 죽어버린 그녀의 눈동자를 일별한뒤, 백우진은등을 돌렸다.
심판의 뒤늦은승리 선언이 들려왔다.
“배,백우진 승!”
열렬한 환호 속을 거닐어 비무대를 내려온 백우진은 곧장 연무장을 벗어 나자취를 감췄다.
“하아.”
대충 인적이 드문곳에 도달하여 걸음을 멈춰 서서 넓게 깔린 잡초위에 주 저 앉았다.
꿀꺽꿀꺽!
끊임없이 쏟아지는 술을 연신 삼켰다. 그럼에도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시발.”
억울하다.
백우진 이 죽은 건 본인의 부주의 였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 선을 다 한다는데, 이 등신은 사자보다도 약한 주제에 준비 물품은 물론이고 넋까지 빼놓고 가서 산적 나부랭이한테 칼 맞고 멋대로 뒤져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 또한 피해자다. 놈이 그렇게 죽지만 않았어도 자신이 이 몸뚱어리에 빙의할 일 따위는 없었을 거 아닌가.
“그래, 이게 맞지.”
이게 맞는 건데.
왜 자신이 백우진을 죽이고 이 몸뚱어리를 빼앗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에 사로잡혀야 한단 말인가.
왜 한여자의 절절한 사랑을 짓밟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냔 말이다.
“개새끼….”
자신을 이곳으로 밀어 넣은 작가놈에 대한 증오가 솟구쳤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 때리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면전에다 욕이라도 시원하게 갈겨주고 싶다.
“이 세계를 확뒤집어 엎어버리면 나타나려나.”
천마모가지를 딸 게 아니라 아예 마교에 투신해서 천마와 손을 잡고 더블 천마데스빔으로 이 세상을 불태우면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스갯소리로 무거운 기분을 조금 덜어내려 했지만 돌아오는 건 자조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