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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42화 (42/215)

< 42화 > 용봉 비무제 (龍퓒 쩤籌祭)

백우진이 비무대를 내려오자 신예화가 곱게 접힌 비단으로 땀을 닦아주 었다.

“아,이런거 부담스러운데.”

부담스럽다는 투로 말하자 신예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원래 우리 이 정도는하는사이잖아.너 지금나의식하는거야?”

“••••••.”

원래 이렇게 뻔뻔한애였나.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니 이쪽에서 할말을 잃고 말았다.

땀을 흘린 탓에 술기운이 조금 떨어졌다. 이를 채우기 위해 한쪽 바닥에 주저앉아 호리병 마개를 열어 목구멍에 술을 흘려 넣으며 비무대 위를 응시

했다.

16강전의 세 번째 비무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여유작작한표정으로 비무대에 오른 남궁수는 상대에게 수를 양보했던 64강, 32강 때와는 다르게 시작부터 화려한 검술로 휘몰아쳐 상대를 압박 했다.

“제왕검형이다!”

마지 막으로 선보인 것은 이번에도 제왕검형이 었다.

강한 압박을 이 겨 내 지 못한 상대 가 뒤 로 계속 물러 나다가 엉 덩 방아를 찧 으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남궁수 승리!”

승리 선언이 들리기가 무섭게 남궁수는 백우진이 있는곳을 내려다보며 비 릿한 미소를 지 었다.

“허허, 저 새끼 봐라.”

굳이 꺼내지 않아도될 제왕검형을 선보인 것은오로지 자신에게 보여주 기위함이었다.

봐라, 이 래 도 제 왕검 형 을 무시 할 수 있느냐고 묻는 듯한 오만한 표정 이 몹 시 꼴사나웠다.

백우진은 멀리 있는 상대방도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커다란 입모 양으로 대답했다.

“등.신.”

뜻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단숨에 구겨지는 남궁수의 얼굴이 제법 볼만했 다.

제왕검형 (帝王劍形).

남궁세가최고의 절기답다. 아니, 남궁을 넘어 무림 전체를 기준으로 잡아 도 이만한 수준의 무공은 보기 힘든 수준이다.

백우진은 이 런 대 단한 무공을 폄하한 것이 아니 다. 그저 그 대 단한 무공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익혀놓고 기세등등하게 구는 놈의 어리석음을 폄하했 을뿐이다.

“저건 언제 사람되려나몰라.”

남궁수는 분명 뛰 어 난 무재를 지 녔지 만 그 성 격 이 너무 오만방자하다. 누 군가 그것을 꺾 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으면 인간을 초월해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 화경에 이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아,어쩔수 없지.

동기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라잖은가.

아무리 밉상에 못난 놈이어도 동기가 어긋난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가만 히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 우진은 지옥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 가는 심 정으로 사랑의 회 초리를 들리라 결심했다.

시답잖은 생각으로 낄낄대고 있는 사이, 남궁수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우 승 후보로 점쳐지는 명진이 상대를 일격에 잠재우며 佒강에 안착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대를 향해 합장을 하는 모습에 백우진은 등골이 오 싹해졌다.

“저게 부처님의 자비…?”

불가에 적을 둔 소림사의 무공은 하나 같이 강맹한 위력을 자랑하기로 유 명했는데, 여러 번 때려서 아프게 하지 말고 일격에 끝내버리라는 게 부처님 의 자비인가 싶었다.

쓰러진 상대가들것에 실려가고, 명진이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그리고.

와아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떨기 아름다운꽃이 비무대 위에 피어났다.

정무학관 내에는 정무사화(正武四花)라고 하여, 1학년부터 玗학년까지 각 흐卜켠에서 가장 예쁜 여생도 넷을 통칭하는 단어가 있다.

이 정무사화라는 단어는 생 각보다 그 전통이 오래되 어 학관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유명했는데, 관객들이 남궁수, 명진의 등장때보다 더 큰환호성을 내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비무대 위에 올라선 그녀, 유화연이 바로 정무사화의 일원이기 때문 이었다.

“유화연! 유화연!”

“유 소저! 제발이쪽 한 번만 봐주시구려!”

“이쪽 볼 때까지 숨 참는다, 흡!”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모두가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를 기 원했다. 웬만큼 강철 심장이 아닌 이상 상대로 하여금 긴장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

“난리났네:

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상대가 제갈연지다.

제 갈연지 가 쭈뼛거 리 며 비무대 위 에 올라섰다. 한눈에 봐도 평소보다 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떼 잉.”

백우진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저 찌질한 표정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우웁.”

곧장 목소리 에 내 기를 실어 그녀를 응원하기 시 작했다.

“제갈연지-! 힘내라아!”

소림사의 사자후를 방불케 하는 소리가 쩌렁쩌 렁 울려퍼졌다. 사람들이 어찌나 놀랐는지, 유화연을 향해 부르짖던 관객들의 소리가 잠시 멈췄을 정도였다.

“쫄지 말고 자신감 있게 싸워 !”

비무대 위에 선 두 사람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집중되었다.

제갈연지는 크게 감동 받은 표정이었고, 유화연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히힛•••,백공자가응원해줬어.”

언제 그랬냐는듯, 긴장 대신 만면에 미소를 띤 제갈연지.

“비무시작!”

철선을 손에 쥔 그녀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유화연을 향해 먼저 말 을걸었다.

“고마워요, 유소저.”

|  |.....

!..

......

....

난데 없는 감사 인사에 유화연이 의 아한 표정으로 대 답했다.

“전 제갈소저에게 감사받을 일을 한 적이 없어요.”

“아니요, 있어요.”

단호하게 대답하는 제갈연지. 유화연은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기회 를 선물해주었다.

“백 공자와 헤어져 줬잖아요…?”

키득키득웃는그녀의 모습에 유화연의 얼굴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유 소저가 있을 때는 도무지 끼어들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제갈연지가백우진을 처음본 것은 학관에 입관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 다.

처음에 는 사내의 미모가 저리 출중해도 되는 건가 싶어 관심 이 갔다. 그녀 는 저도 모르게 백우진의 뒤를 쫓아다니며 얼굴을 훔쳐다 보곤 했다.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자신과 다를 것 없 는 사람임을 알게 되 었을 때였다.

반푼이.

백 우진과 제 갈연지 가 가문 내 에서 칭해 지는 말이 었다.

뛰 어난 형제를 둔 탓에 언제나 멸시 아닌 멸시를 당해야만 했던 이들.

단순히 동질감 때문이 라면 그토록 그에 게 끌리 지는 않았을 터다. 형제, 자 매에게 밀려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가는 자신과 달리, 백우진은 끊임 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한쪽은 멈춰 섰고, 한쪽은 끊임없이 나아가려 애쓴다. 어디에서 그 차이가나왔을까. 제갈연지는그때부터 백우진의 일거수일투족 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뒤, 제갈연지는확신이 섰다.그와함께라면 멈춰 있 는 자신도 그를 따라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

허나, 그의 곁에는 도무지 끼어들 틈조차 안 보이게 만드는 완벽한 약혼녀 가 있었다.

“역시 난 안되는구나 싶어서 포기하려 했는데 ….”

백우진과 의 뢰 소에서 만난 건 실로 우연이 었다. 매 일 같이 그를 따라다닌 탓에 임무 수행 점수가 모자라 뭐 라도 빨리 해치워 야겠다 싶어서 찾아간 의 뢰소에서 그를 만났다.

심지어 그가 먼저 다가와 같이 의뢰를 하자며 제안까지 해주었을 땐 심장 이 터질 뻔했다. 약간의 밀고 당기기와 함께 의뢰를수주한뒤, 제갈연지는 언제나처럼 그의 뒤를 몰래 따라다녔다.

그리 고 보고 말았다. 그림으로 그린 것처 럼 완벽한 사이로 보였던 유화연 과 백우진이, 서로를 향해 이별을 고하는 모습을.

“백 공자와유소저가헤어지는 걸보고 얼마나기뻤는지 몰라요!”

신이 난 아이처럼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설명하는 모습에 유화연은 검을 곧추세웠다.

“비무나 빨리 끝내죠.”

그녀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도려지는 기분이다. 유화연은 빨 리 이 기분 나쁜 비무를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허나, 그녀는 쉽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분명 유 소저가원해서 헤어진 걸 텐데 ….”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유 소저 같거든요.

그 말이 끝나기가무섭게 유화연이 달려들었다.

낭창낭창 휘 어들어간 연검이 제갈연지의 곳곳을 요격했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인 공격을 제갈연지는 차분하게 막아내며 틈 을 노렸다.

“기분 나빴어요? 미 안해요! 전 그저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 어요…!”

그 와중에도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싸움에 있어 가장중요한 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참 으로 솔직하여 분노에 싸여 검을 휘두를 때와 평정심을 유지한 채 검을 휘두 를 때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유화연의 연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크고 폭 넓은 변화를 보여줘 야 할 초 식들이 좀처럼 제대로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갈연지는 유화연과 자신 간의 실력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녀를 도발했다.

단 한 번이 라도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 만한 순간을 만들어내 기 위해.

‘바로 지금!’

과도할 정도로 깊게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보고 그 순간이 지금임을 확신 했다.

제갈연지는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해낸 뒤, 접힌 철선의 뭉툭한끝을 유화연 의 명치에 힘껏 내질렀다.

그녀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즈음, 유화연이 이를 악물었다.

‘질 수없어!’

어느새부턴가 백우진의 옆자리를 꿰찬 제갈연지.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만 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하아앗!”

유화연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내상까지 감수해가며 몸을 억지로 잡아 비틀어 어깨로 철선을 받아낸 뒤, 회수한 연검을 휘둘렀다.

“ 아!”

상황이 반전되 자 제 갈연 지 가 오히 려 위 험한 상황이 되 어버 렸다.

날아드는 연검이 그녀의 신체 곳곳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갔다.

“꺄아악!”

제갈연지가 피를 흩뿌리며 비무대 위에 쓰러지자 심판이 곧장 그 사이를 막아섰다.

“유,유화연승리!”

진검으로 하는 승부인 만큼 조금만 잘못해도 피가 뿌려지는 건 당연했으 나, 지금처럼 많은 피를 뿌리는 비무는 용봉 비무제 시작 이후 처음 있는 일이 었다.

“하아, 하아….”

유화연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황급히 그녀에게 다 가가려 했지만 먼저 당도한 이 가 있었다.

“배,백공자아.”

그녀 가 피 를 흩뿌리 며 쓰러 지 는 걸 보자마자 달려온 백 우진 이 었다.

그는 애 처로운 표정으로 아파하는 제 갈연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 를 이렇게 만든 유화연을 슥 쳐다본 뒤 말없이 비무대를 내려갔다.

헤 어지는 그 순간에도 보여준 적 없었던 그 싸늘한 시 선에 , 유화연은 심 장 이 쿵 하고 내 려 앉는 기분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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