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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44화 (44/215)

< 44화 > 용봉 비무제 (迥퓒쩤籌祭)

백우진과 황보준걸의 비무 이후 남은 세 번의 비무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 러 갔다.

남궁수는 낭인 출신으로 정무학관에 입관한 것으로도 모자라 용봉 비무 제 佒강에 까지 오르며 모두를 놀라게 만든 전랑(戰캞)을 상대로 승리했고, 무당파의 한백은 같은 구파일방인 아미파의 여검수를 상대로 제법 접전을 펼친 끝에 승리했다.

소림사의 명진 또한 손쉽게 승리했다. 상대 였던 유화연이 전날 제갈연지 와의 비무 이후로 깊은 내상을 입은 탓에 몇 합 겨뤄보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 며 기권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제부터 가 진짜 시 작이 라며 모두의 기대 가 한껏 올라간 상황에서 두 사 내가 비무대에 올랐다.

“내 인생을 너에게 걸었다아아!”

“남궁수야말로 정배다!”

“남궁의 힘을보여다오!”

소수의 도박꾼들이 남궁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를 응원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그의 우승에 제 인생을 갈아 넣다시피 한 인간들이 었으니.

허나,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남궁수가 아닌 백우진을 선택했다.

“백우진 ! 백우진 !”

“백 공자님! 이기세요!”

“실전된 취권의 적합한 계승자!”

“남궁수를 떨궈다오!”

이유는다양했다.

여성 관객들은 백우진의 인간 같지 않은 외모에 심장을 관통 당했고, 중장 년층은 백우진을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취권을 다시 부활시킨 일대종 사 수준으로 보기 시작했다.

또한남궁수가 아닌 명진, 한백에게 제 인생을 건 도박꾼들은 백우진이 남 궁수를 떨어뜨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응원의 물결에 한손 거들기로 했 다.

이렇게 되고 나니 남궁수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야, 이거 어떡하지.”

사람들이 날 너무 좋아하네 ?

그리고 이 것은 남궁수를 놀리는 데 에 써 먹 기 아주 좋은 상황이 었다.

‘빌어먹을.’

실제로 남궁수는 속으로 어마어마하게 욕지 거리를 내뱉는 중이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백우진을 연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 모두를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인기의 맛을 이미 봐버린 후였기에 그 후폭풍 또한 매우심각했다.

더욱 열받는 건 눈앞의 백우진이 웃는 낯짝으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남궁수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검을 뽑았다.

“닥치고 검이나 뽑아라.”

낮게 으르렁대는 음성에서 옅은 살기가 배어나왔다. 실제로 남궁수는 백 우진에게서 피를 보기 전까진 그를 이 비무대 아래로 내려 보내지 않을 생각 이었다.

표정과 기세로 그 감각이 여실히 전해졌지만 백우진은 그것마저도 즐겁다 는듯, 낄낄거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관객들이 자아내는 소리의 크기는 여전했지 만 그들의 감각이 날카로워 지기 시작하면서 전투에 쓸모없는 것들을 하나 둘씩 배제하여 크기를 줄여버렸다.

“비무시 작!”

여유 가득한 미소와 함께 상대에게 선공을 양보하며 승부를 진행하던 남 궁수가 처음으로 상대보다 먼저 움직 였다.

‘놈을 상대로대치가 길어봤자좋을게 없다.’

몇 번이나 마주친 경험을 토대로 그는 깨달았다. 눈앞의 상대는 언제 어느 때든 틈만 주면 주둥이를 나불거려 상대 속부터 터뜨리고 시작할 인간이라 는것을.

그의 손에서 창궁무애검법이 펼쳐졌다.

무림에서 대표적인 중검술 중하나를꼽으라고 하면 사람들 열 명 중 일곱 에서 여덟은 창궁무애 검법을 꼽는다.

보통 중검 이 라 하면 속도가 느린 대 신 파괴 력 이 강한 검을 얘 기 한다.

헌데, 창궁무애검법은 이 중검의 묘리는 충분히 살리되 속도 또한 상당 수 준까지 끌어올렸다.

비결은 바로 완급의 조절에 있다.

창궁무애검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초식의 진행 단계 에서는 오히려 힘을 빼고 전개하다가 검이 상대방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 순 간적인 폭발력을 실어 검에 무게를 더한다.

백우진의 지척에 다다른 검 또한그러했다. 쾌검식처럼 날아든 검에 어느 새 강한 무게감이 깃들었다.

“이크!”

백우진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해낸 뒤 한 걸음 물러나 신형을 바 로잡았다.

처음에는 막아내려 했지만 검에 실린 힘이 생각보다 더 무거워 보여 뒤늦 게회피를 택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데.’

남궁세가가 왜 천추제일검가라 불리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새끼가 천재는 천재야.’

딱 봐도 창궁무애 검법의 난이도는 웬만한 검법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난해한 수준이었다. 그걸 저토록 잘 다루는 걸 보면 남궁수가 뛰 어난 무재라 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었다.

재차 공격이 이어졌다. 하나 같이 까다로운 검로를 타고 들어오는 공격들 에 백우진은 검 한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기 바빴다.

그럴수록 남궁수의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짙어져갔다.

“흐흐! 피하기만해선 이길 수 없을 텐데.”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또 다시 자존감이 차오르다 못해 터 져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검, 일검을 피해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백우진은 앞에서 조잘 대는 남궁수에 게 쏘아붙였다.

“감 잡는 중이 잖아, 자식 아. 비 무 중에 자꾸 조잘대 는 거 아니 다.”

“••••••.”

비무 중에 제일 입을 많이 턴 놈에게 조잘대지 말라는 소리를 듣다니. 남궁수는 어이가 없다못해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남궁수가 입술을 짓씹 었다.

“오냐. 네놈 어깨에 칼부터 박아놓고 얘기하마.”

창궁무애 검법이 다시금 펼쳐졌다.

백우진 또한 처음으로 검을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내리쳐진 검을 비스듬히 막아낸 뒤 힘의 방향을 조금 떨어진 땅바닥으로 틀었다.

방향이 어긋난 검날이 비무대 바닥을 날카롭게 도려냈다.그충격이 검을 타고 고스란히 손으로 전해지자 남궁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오, 이제 되겠다.”

백우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공격을 흘려 내 는 데 에 도 준비 가 필요한 법 이 다. 힘 은 얼 마나 센지 , 속도는 얼마나빠른지, 공격 방향은 어디서 어디로오는지 등등.

지금까지 의 회 피는 이 모든 것들을 관측하기 위 함이 었다. 이는 곧 흘려 내 는 것뿐 아니라 이후에 있을 공격에도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백우진이 비어 있는 손으로 검지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검좀 부딪혀보자, 궁수야.”

“한 번 막아냈다고 기고만장하구나!”

그때부터 관객들 입장에 서 볼 맛 나는 비무가 펼쳐지 기 시작했다.

남궁수가 밑천을 드러냈다.

아무리 창궁무애검법이 뛰어나다고 한들, 그것 하나만으로 천추제일검가 라는 칭호를 얻을 수는 없다.

벼락과도 같은 빠르기로 상대방을 제 압하는 섬전십삼검(쪅電十三劍).

대성하면 일검, 일검에 검풍이 실린다고 전해지는 천풍검법(天風劍法).

창공을 누비는 제비의 모양새를 본따 만든 창궁비 연검(蒼舿뉧燕劍).

오랜 세월 쌓아온 남궁세가의 저력이자 자부심이 남궁수의 손을 통해 하 나둘씩 재현되 기 시작했다.

“눈이제대로 호강하는군!”

“이토록 많은 남궁세 가의 검술을 견식할 기회 가 올 줄이 야!”

수많은 검술, 그 안에 담긴 각기 다른묘리들이 백우진의 눈을 어지럽혔다.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판타지 세계에서 마왕의 목을 베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0년이 넘는 다. 그리고 지구에 있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唐년을 살았다.

싸움이 라곤 중, 고등학교 때 부모 없는 고아새끼라 놀리는 일진들과 맞 짱뜬 게 전부인 몸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 영위한 唐년은 지난 10 년의 감각을 꼬질꼬질한 때로 뒤덮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唐년의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묵은 때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오우야.”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왕의 목을 따기 직전, 백우진은 눈으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보고, 이해 할수있었다.

그때의 감각을 어떻게든 표현하자면 신이 지녔다고 하는 전지와 전능 중, 전지(全知)를 눈에 옮겨다 심 어 놓은 기분이 라고 해야 할까.

보다 시야가 넓어지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속도를 잃고 느려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눈이 보다 많은 것들을 탐욕적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 다.

그때와 비교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작은 수준의 감각에 불과했지만 그 것만으로도 남궁수가 펼쳐내는 연검, 중검, 쾌검식의 요체가 낱낱이 발가벗 겨 졌다.

끊임 없이 다른 검술을 펼쳐내 던 남궁수가 움직임을 멈췄다.

부릅떠 진 두 눈은, 뒤통수를 때리 면 그대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커졌다.

“무,무슨짓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큰 충격 이 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 만큼 참을 수 없 는 치욕감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지금까지 펼친 검법들 하나하나가 남궁세 가의 자랑임과 동시에 남궁수가 자기 스스로 오만함을 인정하고도 도리 어 더욱 당당할 수 있게 만드는 자부 심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러한 검법들이 백우진에 의해 모조리 가로막혔다. 마치 검이 어디로 올 지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뭘 그렇게 놀라?”

허나백우진에겐 전혀대수로울 게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건 남궁세가의 검법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 니라 이를 펼친 남궁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네가검법을 개떡같이 펼쳐서 그런 건데.”

남궁수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개소리 마라! 난 지금 펼친 모든 검법을 대성했단 말이다!”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백우진은 귀를 후벼팠다.

“꼭 있어요. 초식, 내기 운용, 투로 다 익히면 검법 하나끝낸 줄 아는 새 끼들이.”

“뭣…!”

검법은 지구에서 학생들이 푸는 문제집과 비슷하다. 가장 먼저 공식과 이 를 통한 풀이법을 알려준 다음 이를 그대로 적용해 풀 수 있는 기초 문제를 낸다. 그리고 그걸 풀고 나면 이를 응용해야만 풀 수 있는 심화 문제를 내 사람의 머리를복잡하게 만든다.

검법도 마찬가지다. 초식, 내기의 운용, 투로 등을 온전히 익혔다는 건 기 초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과 같다.

기초를 익힌 검법이 발전해나갈 방향은무궁무진하다. 상황에 맞게 사용 할 수 있는 변초를 파생 시 킨다던가, 아예 검법 자체를 제 몸에 맞게 조금씩 수정한다던 가. 이 것들이 문제 집으로 따지 면 심화 문제 에 해 당한다.

남궁수는 이 모든걸도외시한 채 기초 문제만풀어놓고 문제집 다풀었다 고 말하는 고등학생처럼 어깨를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에 서 두 개 가 딱 좋아, 궁수야. 아무리 네 가 잘나도 그게 최 고야.”

형이 다 겪어보고 하는 말이야.

천재들만이 겪는 이상한 시간낭비가 있다.

기초를 워낙 빨리 떼다 보니 곧장 심화로 넘어가지 않고 기초만 여러 개를 동시에 익히는 짓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이러한 현상은 범재나 둔재에 게선 절대 일어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를 대 성하는 데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라다 여기기 때문에 다른 쪽에는 눈 돌릴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부끄럽게도 백우진 또한 용사일 적에 경험한 현상이었다.

“흥! 네놈의 말 따위에 흔들릴 성싶으냐.”

백우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쪽을 쳐다 보고 있는 남궁수를 향해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괜찮아,궁수야. 아직 이해가잘 안될 수 있어.”

백우진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검을 들었다.

“일단 맞자. 그럼 대부분 강제로 이해를 하게 되더라고.”

역사적으로도 이게 약일 때가 있었다더라.

꿀꺽!

남궁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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