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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48화 (48/215)

< 48화 > 용봉 비무제軒迥퓒 쩤籌祭)

“어어, 밀지 마! 밀지 말랬다!”

“너나밀지마, 새끼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무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서로 밀고 밀리는 탓에 결승전에 앞서 흥을 돋우기라도 하듯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명진이다!”

결승 시작에 앞서 미리 도착한 명진이 차분한 걸음으로 비무대 위에 올라 섰다.

구파일방 중에 서도 가장 존경 받는 소림 사의 제 자답게 수많은 인파의 환호성이 뒤따랐다.

명진은 불제자답게 넉넉한 미소와 함께 주변을 돌며 한쪽 손을 내민 채 반장을 했다.

시간이 흘러 결승전 시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백 우진이 모습을 드러 낸 건 무림 맹주를 비 롯한 주요 인사들이 모두 자리 한 채 결승전이 시 작되 기를 기 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으.”

남자 관객 들의 야유를 부를 정도로 잘생 긴 얼굴이 었지 만 평소와는 다르 게 푸석푸석하고 초췌해 보였다.

“속 쓰려 죽겠네.”

어젯밤 당선영과 너무 오랫동안 술을 마신 게 화근이 었다.

“배,백공자아…!”

비 무대 계 단을 오르려 할 때, 제 갈연지 가 옷자락을 펄럭 이 며 뛰 어와 그의 앞에 섰다.

“오,제갈소저.”

“헤엑, 헤엑….”

어디서부터 뛰 어온 건지 숨을 헐떡 이며 그녀가 작은 손을 내밀었다.

펼쳐진 손바닥 위에는 익숙한 단약 한 알이 올려져 있었다. 백우진이 그토 록좋아하던 제갈세가의 숙취 해소제였다.

“이,이거….”

백우진은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역시 날생각해주는건제갈소저밖에 없어!”

감동에 겨워 제갈연지의 손을 꼭 붙잡고 마구 흔들자 그녀의 얼굴이 발갛 게 물들었다.

“헤,헤헤.”

“잘 먹을게.”

백우진은 곧장 단약의 껍질을 벗겨 입에 집어넣었다. 단약은 처음부터 고 체 가 아니 었던 것처럼 시 린 액 체 가 되 어 목구멍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 들어 갔다.

“꼬,꼭이기세요…!”

두 주먹을 불끈 쥐 며 응원하는 제갈연지.

백 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 인 뒤 한결 편해진 속으로 계 단을 올랐다.

“응?

......

!..

!..

......

그때 였다.

체내에서 이상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은.

“이건 뭐야.”

숙취 해소제를 먹을 때마다 가슴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졌던 청량감이 갑자기 전신 세맥에서 일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혈도를 타고 단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막대한 양의 내공이었다.

“너희가왜 거기서 나와…?”

마치 질 좋은 영 약을 삼키 고 운기 조식을 통해 내공을 축적한 느낌 이 들었 다.

실제로 내공의 양 또한 몰라볼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어젯밤 열화신독을 먹고 50년에 도달했던 내공의 양이 단숨에 60년, 1갑자까지 치솟았다.

황급히 고개를돌려 제갈연지를 찾았다. 내공이 모여들 때 느낀 청량감은 그녀 가 준 숙취 해소제 를 먹을 때마다 느낀 것이 었기 에 .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그녀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수줍게 웃고 있 는 걸 봐선 역시 그녀가준 숙취 해소제가 만들어낸 현상이 맞는 듯했다.

“여러 개를 먹어야 효과가 나는 영약이 었나?”

하나만 먹어선 소용이 없고, 잘 배합된 단약 여러 개를 먹고 난 이후에 야 효과가 비로소 나타나는 영약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에게 그러한 영약을 먹인 듯했다.

“허허, 이거 참.”

예상치도 못한 값진 보물을 숙취 해소제라고 넙죽 받아먹었으니 이를 어 찌 갚아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일단이기고나서생각하자.’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50년과 1 갑자. 이 10년 의 내공 차이에는 고작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한 간극이 존재했다.

“아, 이러면 정말 자신 없어지는데.”

질 자신이 점점 더 사라진다.

어느새 광택마저 나기 시작한외모로 비무대 위에 오르자 여인들의 거센 환호성이 들려왔다.

“어머머, 백 공자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제발 여기 한번만 봐주세요옥!!”

“여기볼때까지나숨참는다! 흐읍!”

반대로 남자 관객들 사이에선 야유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취권을 통해 대통합을 이루어내긴 했으나 남궁수에게 내기를 걸었다가 박살이 나버린 무리들과 명진에게 내기를 건 이들이 백우진을 향해 야유를 보내는 것이었 다.

“이제야 뵙는구려.”

비무대 중앙으로 향하자 명진이 말을 걸어왔다.

“소림사의 명진이라합니다.”

그가 반장을 하며 제 소개를 했다. 백우진 또한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자 신을 소개했다.

“백우진이야. 잘 부탁해.”

섬서백 가라는 말은 굳이 넣고 싶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기 연으로 무공을 얻은 게 맞는지, 어떤 무공을 익힌 건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탐욕어린 시선을 보내온 탓에 없던 정마저도 거의 떨어져 나간상태였다.

“과연 남궁 소협이 패배한 이유가 있었군요.”

흐트러진 자세, 단련이 부족한몸뚱어리, 투지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흐릿한눈동자. 남들에게 얕보이기 일쑤였던 그의 모습에서 명진은무언가 다른 걸 본 듯, 더욱 진중해진 표정으로 두 눈에서 투기(鬪氣)를 내뿜었다.

“부디 좋은 승부가 되 길 바랍니 다.”

“그래.

짧은 대화를 끝으로 심판이 깃발을 쥔 손을 앞으로 뻗 었다가 위 로 번쩍 들 어올리며 소리쳤다.

“비무시작!”

와아아아아!

뒤따르는 거센 함성소리와 함께 명진이 자세를 낮추며 가볍게 말아쥔 왼 주먹을 앞으로 내밀며 기수식을 취했다.

언제 나 먼저 달려들어 상대 에 게 일격을 꽂아 넣던 때와는 달리 , 명진은 아 주 조금씩 발걸음을 앞으로 향하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의 눈은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는 백우진을 낱낱이 살피는 중이 었다. 어 디로, 어느 곳에 일권을 꽂아야 할까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흐흐흐흐.”

갑자기 백우진이 별안간 낮은 웃음을 흘렸다. 무언가 한 수가 있나 싶어 명 진이 내기를 끌어 보법을 밟을 준비를 하던 그때, 백우진이 호리병을 손에 쥐 더니 마개를 열어 무언가를 마구 마셔대기 시작했다.

“킁킁…, 이건…?”

코끝으로 전해지는 냄새는 분명 술이었다. 명진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신성한 비무에서 설마 술을 마실 줄이야!

‘빈틈!’

허 리까지 젖혀 가며 술을 마시는 모습은 빈틈 투성 이 였다. 명진은 그중 가 장 확실한 곳을 찾아 소림사의 절기 중 하나인 금강부동신 법(金惷不動身法)을 펼쳐 거리를좁혔다.

금강부동신법은 상체의 움직임은 최소로 한 채 땅을 박차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신법이었다. 상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탓에 부지불식간 에 상대는 품을 내어주고 만다.

“하아압!”

듣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할 것만 같은 거센 기합성과 함께 내지르는 그의 손바닥으로부터 또 하나의 절기인 대력금강장(大吥쵟惷掌)이 밀려 들어왔 다.

노리는 곳은 명치. 단 일수에 상대를 제압하여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부처님의 자비어린 가르침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명진이 다가오는 순간까지도 술만 벌컥벌컥 마셔대던 백우진이 어느새 검 을들어 대력금강장의 힘이 실린 손바닥을 막아낸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백우진의 볼이 불룩해졌다.

“구웨 엑.”

듣기만해도 소름이 끼칠 듯한소리와 함께 빵빵해진 입 속에서 불길이 쏟 아져 나왔다!

화르르륵!

“우웃!

전신을 휘감는 거센 불길에 놀란 명진이 황급히 뒤로물러나며 황급히 손 을 털어 제 옷에 붙은 불길을 꺼트렸다.

“이,이게 무슨…!”

무거운 침묵에 잡아먹힌 장내에서 유일하게 백우진만이 소리를 냈다.

낄낄낄!

그 웃음에 노년의 관객 하나가 벌벌 떨며 소리쳤다.

“취,취화구(醉火봇)다아!”

전설의 취권의 오의,취화구가다시 나타났다아!

먼 옛날 실전되었던 취권.그중에서도 비기 중의 비기로 오랜 시간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취화구가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며 소리치는 관객들이 하 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취화구라니….”

명진이 벙찐 표정으로 백우진을 쳐다봤다.

“정말그대는취권의 계승자였던 거요…?”

“허허, 이제부터 그러기로했어.”

이토록 좋아해 주는데 까짓거, 실전된 취권의 당대 계승자가 되기로 마 음먹었다.

“취화구라, 나름괜찮은 이름이야.”

괜찮은 비기명도 얻었으니 못할 건 없으리라 생각됐다.

명 진은 몸 곳곳에 서 느껴 지는 열 기 에 침을 꼴깍 삼켰다.

‘열기가 상당하다.’

빠르게 물러나서 이 정도로끝났지, 당황한채 그대로불길을 뒤집어 썼다 면 어느 한곳 크게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긴장과 별개로 명진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설마취권의 비기를보게 될 줄이야.’

실전된 취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관객들이 그토록 비명을 질러대는 걸 보면 절대 가벼운 무술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가 보여줄 취 권 이 소림의 무공과 어 떤 차이를 보일지 가 무척 이 나 궁금했다.

“그럼 다시 가겠소!”

명진이 힘차게 보법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왼손에는 소림이 자랑하는 대력금강장이, 오른손에는 또 다른 절기인 금 강나한권(쵟惷羅漢昈)이 동시에 펼쳐졌다.

이 순간만큼은 백우진도 제법 크게 놀랄수밖에 없었다. 권법과 장법을 각 손에 동시 에 시 전한다는 것은 한손으로 동그라미 를 그리 고, 다른 한손으로 네모를그리는 것처럼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장영(掌影)과권영(昈影)이 허공을 어지러이 수놓았다.각기 다른두무공 이 자아내는수많은 변초들이 백우진의 눈을 속이려 했다.

“오,제법.”

허 나 백우진의 눈을 속이 기 란 쉽 지 않은 일이 었다. 그는 수많은 변초와 허 초 속에서 내지르고 당겨지는 두 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하…! 정말 대단하구려! 이토록 내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상대는 백 공자가 처음이오!”

그는 제 실력에 대해 자만하지는 않으나 자부심은 지니고 있었다. 소림에 서 평생을 갈고닦은 무술은 또래들이 쉽 게 막기 힘들다는 것 또한 그의 자부 심중하나였다.

헌데 이번에 처음으로 완벽하게 가로막혔다. 명진은 그것이 못내 감격스 러웠다. 눈앞의 상대라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도 되겠단확신이 들었다.

“흐으읍!”

그가 전신에 내기를 퍼뜨리며 달려들었다. 백우진은 달려드는 그를 향해 가볍게 검을흩뿌리며 호리병 안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또 불을 쏟아내려는셈인가!’

명진은 전신에 퍼진 내기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불길을 뚫고 들어가 상대의 허를 찔러 주먹을 꽂아 넣을 셈 이 었다.

“차앗!”

십수 년간 단련된 단단한 주먹에 내 기까지 깃들었다. 그가 힘차게 몸을 뒤 로 당겼다가 달려들자 백우진 또한 기다렸다는 듯, 불룩해진 입에서 또 다시 무언가를 쏟아냈다.

조르르르륵

불꽃이라생각하고온몸에 힘을 단단히 준 채 달려들던 명진의 얼굴에 졸 졸거 리 는 물줄기 가 쏟아졌다.

“으읏!,,

백우진이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이었다.

졸지에 술을 뒤집어쓴 명진이 또다시 뒤로물러나 제 얼굴에 묻은술을 황 급히 닦아냈다.

“이,이런…!”

허 나 그윽한 향기는 이 미 콧속으로 들어 간지 오래요, 아무리 급하게 닦아 내도 명중률이 워낙 좋았던 탓에 일부는 입속으로 들어가 식도를 타고 체내 로 흘렀으니.

처음느껴보는술의 맛과 향에 명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딸꾹!"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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