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마물 토벌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그 때문인지 백리산에 들어선 신룡조는 한층 더해진 한기에 평소보다 몸 이 더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앞서 걸어가는 백우진의 눈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슬슬 겨울잠에서 깨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한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 채였다.
백리산을 넘어가는 목적은 청해성에 도달하기 위해서였지.’
실종된 인원들 대다수가 청해성에 조금 더 빠르게 당도하기 위해 백리산 을 오른 이들이 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닌 곳은 그들이 밟고 지나간흔적을 따라 길이 생겨 나는 법이다.
백우진은 그 흔적을 따라 쭉 산을 넘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그들은 산의 반대편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어요….”
“나도 발견하지 못했어.”
“소인도 마찬가지요.”
모두가 이상한 점 이 라곤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백 우진도 마찬가지 였다. 눈이 빠지도록 집중했지 만 특이 점 이 라고 할 만 한 것은보이지 않았다.
산의 반대편까지 오는데에 대략반나절 조금넘는 시간이 지체됐다.
“슬슬해가 저물 거야.”
당선영이 말했다.
산의 특성상평지에 비해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야간 수색, 할거니?”
“해야지.”
“아아….”
“이런.”
백우진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낮의 수색은 산세와 지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다.
‘쉽게 풀리면 나한테까지 기회가오지도 않았겠지.’
낮에 무언가를 바로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사건이 었다면 ‘의 문’이 라 는 단어가 붙지도 않았을 터다.
밤이 되고 비로소 어둠이 내려앉아야만 녀석의 코빼기를 발견할 수 있겠 지.
산으로 들어서기 전, 백우진은 장삼과 구왕수를 따로 불러 그들에게 넌지 시 읊조렸다.
“이번 과제만 끝나면 내 가 거하게 쏠 테니까 힘들 좀 내.”
마을에 당도했을 때 가장 많은 음식을 먹고도 소식 한다고 꿋꿋이 주장하 는 장삼의 귀가 쫑긋거렸다.
“거하게 쏜다면…?”
“금양루(金陽樓).”
“헉!”
중원 제일의 상단으로 손꼽히는 황금상단. 그들이 건물을 지을 때부터 최 고급 자재를 쏟아부어 만들어 낸 곳이 바로 금양루다.
최고의 음식, 중원의 명주, 이름 날린 기녀만으로 가득 채워진 중원 최고 의루주.
하룻밤 술값으로 수백 냥은 우습게 깨진다고 알려 져 웬만한 명 가의 자 제들도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었다.
가난한 문파인 황산파의 제 자인 장삼은 물론이요, 나름 지 역 유지 라 할 만 한 가문의 자제인 구왕수또한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당장갑시다!”
“그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던 장삼과 구왕수의 기세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 솟았다.
조원들의 기세를 북돋는 것도 조장의 의무이자 필요한 능력이었다.
빨리 산으로 들어 가자며 일정 거리를 두고 앉아 있던 세 여인을 재촉하는 두사람.
“쟤들 왜 저래…?”
어리둥절한 신예화의 물음에 백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몇 마디 해줬더니 저러네.”
“•••아닌것 같은데.”
의 심 어 린 눈초리 가 쏟아지 자 백 우진 이 소리 쳤다.
“자, 다시 출발!”
당선영이 묘한 미소를 그리며 앞서 걸어가는 백우진의 곁에 따라붙었다.
“응큼하긴.”
아무래도 다 들었나 보다.
…
장삼과 구왕수를 필두로 호기롭게 시작한야간수색이 허무하게 막을 내 렸다.
지 나온 길을 중심으로 산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 만 유의 미 한 흔적을 찾지 못한것이다.
조원들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로 야영 준비를 끝마친 뒤, 작게 피운 불 주변으로 모여앉아 건량으로 배를 채웠다.
“너무 깨끗해요….”
제 갈연지 가 한숨을 내쉬 었다.
백 우진 또한 동의 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 거 렸다.
하오문 지부에서 왜 의문의 실종 사건으로 이를 분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야말로의문투성이구만.’
몇 달 사이에 사라진 이들만 서른이 넘는다.
누구 하나쯤 작은 흔적 이 라도 남겼어도 이 상하지 않을 숫자가 사라졌음 에도 백리산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상해.”
당선영이 말을 받았다.
“서른이 넘도록 사라졌는데 아무 흔적도 없다는 건 다시 말해서 그만큼 용 의주도하고, 위험한 무언가가 이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하니?
싱긋 웃는 당선영의 얼굴이 제갈연지에 게로 향했다. 그녀는 주먹을 꼭 그 러쥐었다.
“•••당선배님 말이 맞아요.”
이것이 연륜이라는 걸까.
그녀의 말이라면 일단 딴지부터 걸고 싶은 제 갈연지 였지만, 전부 맞는 말 이라불가능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 가 말을 이 었다.
“흔적 위주로 찾기보다…, 이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조사 방향을 다시 잡는 건 어떨까요…?”
제법 긴 문장을 말하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는지 몇 번이나 쉬어가며 말을 마친 제갈연지.
“놈의 흔적을 찾을 게 아니라, 놈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을 뒤지자?”
“네에….”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 었다.
놀랍도록 깨끗하기 에 도리 어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그러니 그것의 흔적을 찾기보다 산을 샅샅이 뒤져 범인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나,
숨기 좋아 보이는 장소를 찾자는 것이다.
“난 찬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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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영이 먼저 찬성에 표를 던졌다.
“나도 그게 나을 것 같아.”
신예화도 동의하자 백우진의 시선이 붙어 앉아 건량을 나눠 먹고 있는 장 삼과 구왕수에게로 향했다.
“우린 뭐든 상관없소.”
“해결만 가능하다면 뭐든 좋아.”
부리기 참좋은 놈들이다.
불 앞에 모여앉은 이들이 하나둘씩 머리를 꾸벅꾸벅 조아리기 시작했다.
피곤할 만도 했다. 온종일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산을 돌아다닌 직후에 따 뜻한 불 앞에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 을 테지.
‘오늘 하루만쉬게 해줄까.’
병든 닭마냥 고개를 픽픽 숙이며 졸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측은지심 이 몰려왔다.
“오늘 불침 번은 내 가 설 테 니 까 다들 자라.”
“아, 아니에요. 저도 불침번설수 있어요.”
“나도 괜찮아….”
졸린 눈을 애써 뜨며 말하는 제갈연지와 눈을 비비는 신예화.
“내일부터 다세울 테니까오늘은 그냥자.”
“그래도….”
“응,명령0야.”
지난몇 달동안빡세게 굴린 덕분에 조장의 권위는 드높았다.
장삼과 구왕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드러누웠고, 제갈연지와 신예화 또한 미안한표정을 짓다가 백우진의 으름장에 몸을 뉘었다.
“나는 도와줄수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그나마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당선영이 턱을 괸 채 웃고 있었다.
“당소저도 지금은 내 조원이라는 거, 알지?”
이곳에 출발하기 전 합의한 사안이 었다.
지휘 계통이 둘로 나뉘 거 나 통제 할 수 없는 인원 이 존재하는 것은 언제 터 질지 모르는 벽력탄을 품에 넣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우진은 당선영에게 당당히 지휘권을 요구했고, 그녀는 순순히 응했다.
“조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네.”
요염하게 미소 짓던 그녀도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깔아둔 피풍 의 위에 몸을 뉘었다.
틱, 틱.
불편한 잠자리 지 만 그들의 피로도는 그런 것을 따지 지 않을 정도로 무거 웠다.
금세 잠이 든 이들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들려왔다.
백우진은 기감을 넓게 퍼뜨린 채로 앉아 타오르는 모닥불이 일정 크기로 유지되도록 땔감을 하나씩 집어던졌다.
‘확실히 뭔가가 있긴 있어.’
무섭도록 고요하다. 그 흔한 풀벌레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 산 전체가 짓눌려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인간은 아니야.’
일정 구역에 압도적인 힘을 지닌 맹수가 등장했을 때, 피식자들은 살아남 기 위해 숨을 죽이거나조용히 제 터전을 옮긴다.
인간이 산 전체에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명 마인 또는 마물, 아니면 그에 준하는 무언가일 터.
생각을 마친 백우진의 시선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잠들어 있는 제갈연지에 게 닿았다.그의 입가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미소가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역시 훌륭한참모감이었어.’
조금 전 그녀가 제안했던 작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인간은 모든 걸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 다. 그것은 용사로서 오랜 시 간 을 보내온 백우진에 게도 통용되는 말이 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마왕의 목을 칠 수 있었던 것도 백우진의 주변으로 그의 단점을 메꿔줄 다 양한 재능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 가 없었다면 보다 오랜 시 간을 헤 맸을지도 모른다.
약해진 불을 확인하고 큼지막한 땔감을 하나 집어던질 때였다.
바스락
주변에 펼쳐진 기감에 낙엽 바스라지는소리가선명하게 들려왔다.
사박사박
가벼운 발걸음.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생물체의 걸음이다.
‘인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놓아둔 검을 허리에 찼다.
발걸음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백우진은 그가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저 멀리서 작은 불빛이 일렁인다.
정확히 사람의 어깨 높이 즈음에서 흔들리는 불빛, 횃불이다.
이윽고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밤중에 산속을 돌아다니는 이라곤 믿기 힘든 마의 (싖衣)차림을 한중년 사내였다.
자신을 발견하고 일정 거리에서 멈춰 선 사내가 입을 열었다.
“늦은 밤중에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구려.”
“나도 마찬가지요.”
“혹 산에서 길이라도 잃은 거요?”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렇소. 일행이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잠깐 헤매다 보니 밤이 되었지 뭐 요.”
“일행이 있소?”
“저 뒤에 자고 있소. 나는불침번을 서는 중이었고.”
“그렇군.”
중년 사내의 고개 가 미 약하게 움직 였다.
백우진이 물었다.
“헌데 형장은 어이하여 이 밤중에 산길을오가시오? 그것도그런 차림새 로말이오.”
오히 려 상대 가 수상스럽 다는 듯, 경 계심 가득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그러 자 중년 사내 가 손을 흔들었다.
“오해 마시오. 산속에 내가 사는 마을이 있소. 밤중에 나온 것은 그저 먹을 거리를 찾으러 나왔다 돌아가는 길일 뿐이오.”
그의 대답에 백우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산에 마을이 있단 말이오?”
“그렇소. 적은 인원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모여 사니 마을이 아니면 뭐겠소 ” •
백 우진은 속으로 크게 당황하는 중이 었다.
‘이 산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오문이 전해준 정보에는 없는 내용이 었다.
녀석들이 일을 대충 한 걸까 생각이 들었지 만, 그렇다고 하기 엔 석 연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산속에 사람이 모여 산다면 그 수가 많든 적든 간에 흔적 이 남아야 하는데 , 이 산에는 백리산을 넘어간 사람들의 발자취만 겨우 보일 뿐, 다른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
백우진이 금세 웃는표정을 지었다.
“잘됐구려.혹 나와 일행이 마을에서 하룻밤머물수 있겠소? 내 사례는 톡톡히 치르겠소.”
중년 사내 또한 가볍게 웃어 보였다.그리고선 걱정하지 말라는듯,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나 또한돌아가는 길이니 어렵지 않은 일이오.”
자, 어서 일행들을 깨워 나를 따라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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