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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62화 (62/215)

<62 화〉마물 토벌

백우진은 곧장 야영지로 돌아왔다.

“무슨일이니.”

멀리 떨어진 곳의 기척을 느낀 당선영이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채 언제든 전투가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 었다.

“일단 모두 깨우고 나서.”

“그래.”

백우진이 장삼과 구왕수를, 당선영이 제갈연지와 신예화를 깨웠다.

조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밤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이요?”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되묻는 제갈연지.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 을 느낀 뒤, 그녀의 경계심이 빠른속도로 치솟았다.

“산속에 마을이 있다고해.원한다면 그곳에서 쉬라고하더군.”

“이, 이 산에 마을이 있단 얘기는….”

“없었지.”

두사람의 대화를듣고 있던 조원들의 표정이 덩달아무거워졌다.

“저 사내 가 우리 가 그토록 찾던 실마리인 것 같다.”

“그런것 같네요….”

백우진의 머리 가 맹렬하게 회 전하는 중이 었다.

이 밤중에 사내 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 냈음은 곧 그쪽 또한 자신들을 사냥하기 위 한 준비 가 끝났다고 얘 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정신들바짝차려.”

모든 걸 의심하고 또 의심해.

“섣불리 움직이면 곧장목숨이 날아간다 생각해.”

백우진의 몸에서 올을이 풀려나온 기운들이 여전히 긴장감이 부족해 보이 는 조원들을 옭아매 기 시 작했다.

“흐윽…!”

“하아응....”

그것은살기(殺氣)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단한번도느껴본 적 없는 농익고, 지독한 살기.

주변에서 엄습해온 기운은 말랑말랑해진 그들의 생존 본능을 단숨에 일 깨웠다.

조원들의 얼굴에 공포심이 어릴 즈음, 백우진은풀어냈던 기운들을 다시 거둬들였다.

“하아, 하아…!”

“쿨럭! 쿨럭!”

거칠게 숨을 내뱉고, 기침을 토해내는 조원들.

백우진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에는 미약한공포심이 서려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했겠지만, 격변하는 상황속에서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다.

동료들의 목숨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 었다.

“모두들 명심해. 우리는 과제를 위해 청해성 전선을 찾아가는 정무학관 생도들인 거다.”

“•••알겠소.

“아, 알았어.

조금이 나마 사내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한 연기 였다. 혼자였다면 신분을 더욱꾸몄겠지만, 조원들이 얼마나 연기에 능통할지 알수 없어 약간의 변형 만주었다.

야영지 준비가 끝이 났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에 불씨가 완벽하게 제거 됐는지 재차 삼차 확인한 뒤, 구왕수가 합류했다.

“ 가자.”

백우진이 앞장서고,조원들이 뒤따랐다.

중년 사내는 그와 헤어졌던 모습 그대로 횃불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하오. 야영지를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구려.

“괜찮소. 그럼 출발해도 되겠소?”

“ 따르겠소.

99

사내 가 발걸음을 돌렸다.

짚신을 신은 발이 거친 숲속에도 아랑곳 않고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산에서 오래 산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걸음걸이 에 백우진의 의구심 이 더욱 증가했다.

‘산에서 오래 산 사람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 ….’

이곳에 마을이 있다는 것만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애써 의심의 눈초리를숨긴 채 사내의 걸음속도에 맞춰 더욱 깊은 산속으 로 들어섰다.

사내가 쥐고 있는 횃불 하나에 모두가 의존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어둠이 엄습했다.

백우진이 나 당선영은 기감을 넓게 펼쳐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기민한 대 처가 가능하지만, 아직 기를 외부로 퍼뜨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조원들은 그렇지 못했다.

“잠깐 횃불 만들 시간 좀 주시구려.”

“•••그러시오.”

찰나의 정적 끝에 사내가 대답했다.

야영에 필요한 것들은 모두 준비해둔 상태였기에 횃불을 만드는 데 일다 경이면 충분했다.

화르륵!

조원들의 손에 불꽃이 여럿 솟아오르자 숨 막힐 듯 조여오던 어둠이 조금씩 물러났다.

그것이 꼭 맹수가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입맛을 다시며 뒤로 살짝 물러나 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출발하겠소.”

멈췄던 걸음이 이어졌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겨울에 비해 옷차림 이 얇아진 조원들의 얼굴에 추위 가 그대로 전해졌다.

“다들 봇짐에서 뭐라도 걸쳐.”

추위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전투력 손실 을유발한다.

걸음을 유지하며 봇짐에서 바람을 막을 만한 것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걸 치기 시작했다.

백 우진은 봇짐 에 있던 도톰한 외투를 꺼 내 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제 갈연 지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고,고마워요….”

추위가 아닌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로 대답하는 제갈연지.

그걸로끝이 아니었다.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 신예화에게 둘 러주었다.

“우,우진아.”

그녀의 감동어린 표정을 애써 외 면했다.

“내기 둘러서 체온 유지해. 전투원이 전투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상황 없게.”

“으,응!,,

앞뒤를 오가며 조원들을 두루두루 챙긴 뒤 돌아오자 당선영이 묘한 시선 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정하네.”

백우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진짜다정한게 뭔지 제대로못봤나보네.”

“흐응…? 그럼직접 보여줘.”

그녀 가 도발적 인 말투로 응수하자 백우진은 기 다렸다는 듯 팔을 뻗 어 그 녀의 손을 잡아 제 품에 집어넣었다.

당선영의 얼굴이 단숨에 붉어졌다.

“무,뭐하는 거야.”

“이 정도는 돼야 다정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

“•••알았으니까 빨리 놓지?”

백우진이 힘을 풀자 손을 쏙 빼서 가져간다. 그리고선 한없이 복잡해 보이 는 얼굴로 다른 한 손으로 온기 가 남아 있는 손을 꽉 붙잡고 있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다가도 막상 저돌적으로 나오면 금세 움 츠러드는 모습이 귀 엽다가도 안쓰럽다.

왜 저럴 수밖에 없는지 알고 있기에 더더욱그러했다.

‘조만간 끝내줘야겠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족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것을 끊어내 기 위해선 보다 강해져야 했다.

“조장, 정말 마을이 있기는 한 거요?”

“마, 맞아. 계속 걷고 있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으으, 추워.

추위 에 오들오들 떨며 말하는 장삼과 구왕수.

산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었다. 어둠속에서 이리저리 꺾어온 터라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다.

그때였다.

묵묵히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린 것은.

오랫동안 걸었음에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뒤에 바짝붙어서 내가밟는 땅만밟아서 따라오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명심하시오. 내가 밟은 땅만 밟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지장담할수 없소.”

의 미심장한 경고에 백우진은 조원들을 불러모아 조원 사이의 거리를 바 짝 좁혔다.

“준비된 것 같으니 다시 출발하겠소.”

사내의 걸음이 조심스럽게 변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매우 신 중해졌다.

그의 바로 뒤에 붙어있던 백우진은 사내가 내디딘 곳에 정확하게 발을 내 려놓으며 뒤 따랐다.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조원들이 줄줄이 뒤따랐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바로 뒤에 있던 제갈연지가 나지막한 목소리 로말했다.

“배, 백 공자. 이거…, 지, 진법 같아요.”

“역시 그런것 같지?”

백우진 또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내딛는 곳을 조심해야 할 정도라면 보통 함정이나 기관진식 또는 진법밖 에는 없다.

처음에는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여전히 마을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 는 것을 보면 진법을 통해 사람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떤진법인지는…, 모르겠지?”

“죄,죄송해요. 처음보는진법이에요….”

“죄송할 것까지 야.”

제갈세가는 진법에 조예가 깊은 가문이지만, 세상에 모든 진법을 알고 있 을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그치만…, 어떤 효용을 보이는지는 알 것 같아요….”

허나 진법은 결국 용도가 정해져 있는 법이 다. 제 갈세 가 내 에서 어느 정도 진법을 공부한 그녀는 이 진법의 효용 또한 알아차린 듯했다.

“환영진이에요…. 주변 산의 모습을 투영해서 사람의 눈을 가리고 있어요. 정해진 걸음대로들어가지 않으면 계속 같은곳을 돌게 될 거예요….”

그 외 에도 내부의 기척을 차단하는 효용 또한 지니고 있을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생 각보다 효용성 이 뛰 어 났다. 고작 산속 마을 하나를 숨기 기 엔 너 무나도

“이런진법,흔하지 않지?”

“네에, 진법에 능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해요….”

“그럼 제 갈 소저는 펼칠 수 있나?”

“시,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 가능은 할 것 같아요.”

괜스레 뿌듯해졌다. 이런 효용 있는 진법도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구축할 수 있다니.

‘보물이야, 보물.’

남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보물을 손에 넣은 기분이다.

대 략 삼백 걸음 정도 이 어 졌을 무렵 이 었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분위 기며, 공기 가 사정없이 요동치 기 시 작했다.

“당황하지 말고내 뒤를 따르시오.”

이윽고 몇 걸음 더 내딛고 나아간순간, 어둠으로 가득 찬 산속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이럴수가!”

“이게 대체…!”

불빛이 일렁이고, 산에서 맡을 수 없는 내음들이 풍겨오기 시작한다. 비로 소 인기척이라불릴 만한 것들이 기감에 하나둘씩 잡혔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볼품없는 촌락이 었다.

허나그것으로충분했다.조원들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드는데엔 말이다.

“진법이다.”

|  |....

.........

.

“지,진법!”

진법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이미 쓰이고 있다. 제법 명망 있는 무가에서 는 건물을 지을 때 진법가를 불러 유사시에 발동할수 있는 진법의 위치에 따 라 짓곤 한다.

허나대부분이 위기가 닥쳐왔을때 발동할수 있게 만들어졌기에 그들이 직 접 적으로 효과를 보는 일은 드물다.

이것이 진법이 가진 힘…:

“대단해…!”

조원들이 일일이 놀라고 있을 때, 백우진은 중년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봤 다.

진법에 꽁꽁 숨겨진 산속 마을.

누가 봐도 괴이쩍 고, 수상하지 않은가.

‘이런 곳이라면….’

누군가 사라진다고 한들, 그 흔적이 남지 않은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곳이 내가사는 마을이라오.”

피곤할 테니 어서들 들어갑시다.

사내가 앞장서자 조원들이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뒤따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백우진은 크게 타오르는 두 개의 횃불이 걸린 입구를 지나, 의문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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