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화〉마물 토벌
마을의 유일한 광원인 듬성듬성 꽂힌 횃불에 드러난 마을의 모습은 세월 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나름대로 여기저기 손을 본 흔적이 가득했지만, 전문가의 솜씨와는 거리 가 멀어 수명이 점차 깎여나가 간당간당한 느낌이 든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잠들었을 시간이니 조용히 따라오시오.”
그의 당부와 함께 백우진이 기감을 넓게 퍼뜨렸다.
‘확실히…, 사람이 사네.’
비어있는 집도 제법 있었지만 몇몇 집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잠든 사람 의 기척이었다.
곳곳에 드러난 흔적과 사람의 기척으로 말미암아 이곳이 진짜 마을이라 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다만, 그들이 이곳에 숨어 사는목적이 불분명할 뿐.
‘왜 이런 곳에서 사는거지?’
석연찮은 곳이다. 기척을 지워내는 것부터 환영으로 덧씌우는 상당한 수 준의 진법부터가 이곳을 평범한 마을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무시오.”
마을 가장 안쪽까지 다다른 사내 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집 두 채 가 나 란히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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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애 좋던 형 제 가 살던 집 이 오. 지 금은 도시 로 떠 나고 비 어 있으니 , 반반씩 나누어 사용하면 될 거요.”
“정말 고맙소. 이 은혜는 내 꼭 갚도록 하겠소.”
“빈집을 내준 것뿐인데 은혜랄 것까지야. 내일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은 푹 쉬시오.”
알겠소.”
사내는 제 할 일을 끝마쳤다는 듯, 곧장 돌아서서 왔던 길을 거슬러 갔다.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당선영이 다가왔다.
“너무수상하지?”
“으
O •
그의 곁으로 장삼을 제외한 모든 조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보게, 삼이.뭐하나?”
구왕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장삼의 어 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머리를 두어 번 흔들더 니 헛헛한 웃음 소리를 내 었다.
“허허, 이거 참.”
“무슨일인데 그래?”
구왕수가 궁금하다는 투로 물으며 옆구리를 콕콕 찌르자 자신에게로 향 한조원들의 시선을 마주한 장삼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닐세. 산속의 마을이라그런지 괜히 무서운 기분이 들어 서 그랬네.”
“하긴 나도 마을에 들어섰을 때부터 등골이 서늘하긴 했어.”
“그건 그냥 추워서 그런 거 아닌가?”
“커흠.
백우진의 시선이 만담꾼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삼에게로 향했다.
떨 떠름한 기색 이 역 력한 표정 이 다. 다른 이들은 눈치 채 지 못한 듯하지 만, 이따금 몸을 흠칫흠칫 가볍게 떠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분위 기 에 눌렸다고 하기 엔 일반적 이 지 않은 반응들이 었다.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를 한번 나누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뒤, 시선을 거 두었다.
“남녀로 나뉘어서 각각 한 채씩 사용한다. 단, 적진일지도 모르는 만큼 불 침번은 유지한다.”
대 놓고 집 앞에 다 불침 번을 세워 두는 우를 범 할 수는 없는 노릇이 다.
“집 안에서 남녀 각각한 명씩 한시진 동안불침번을 서는 걸로하자고.”
“네.,,
알겠소.”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 모두 이곳이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곳이 아님 을알고 있었으니.
“주어진 상황 내에서 푹 쉬도록.”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건 찾아오지 않는다. 어디에서든 오래 살 아남기 위해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이들 이다.
여성 조원들은 좌측, 남성 조원들은 우측으로 나뉘어 집으로 들어섰다.
바깥보다는 낫지만, 이곳에도 서늘한 기운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장삼이 별 안간 제 팔을 쓸어 내 리 며 몸을 부르르 떨 었다.
“왜 그러나, 자네?”
“그냥 추워서 그런 걸세, 추워서.”
백우진은 반쯤 부서진 가구며 잔재들을 옆으로 대충 밀어놓은 뒤 바닥에 피풍의를 깔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라.”
그런 다음 부싯돌을 켜 난로에 불을 피우고 가구들을 더욱 부수어 땔감으 로이용했다.
“첫 번째 불침번은 장삼, 두 번째가 나, 세 번째가 광수다.”
알겠소.”
“알았어.
무력이 가장 약한 장삼을 초번에 배치한 뒤, 백우진은 곧장 바닥에 몸을 뉘었다.
언제 상황이 벌어져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기감을 그물망처럼 주변 에 펼쳐놓고 눈을 감았다.
익숙한 감각이 몸을 엄습한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잠이 드는 기분.
이제는 낯설어졌을 거라 생각했던 그 감각을 이불 삼아 덮은 뒤 얕게 잠이 들었다.
사납게 으르렁거렸던 어두운 밤은 무탈하게 지나갔다.
해 가 떠 오르고 모두가 잠에 서 깨어 날 무렵, 내 일 보자는 말과 함께 사라 졌던 중년 사내 가 문을 두드렸다.
“아침거리를 좀 가져왔는데, 드시겠소?”
사내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작은 광주리를 보여주었다.
안에는 포슬포슬하게 찐 감자 몇 알이 들어 있었다.
“어제 듣기론 먹을 것이 부족하다하지 않으셨소?”
밤중에 먹거리를 찾으러 나왔다고 했던 사내 였다.
“부족하기는하나, 오랜만에 맞이한손님을 대접하지 않으면 산신께서 노 하실 게요.”
“산신…?”
“그렇소. 이곳은 본디 산신을 모시는 이들이 살아가는 마을이었소. 지금에 와선 대부분이 마을을 떠나 유야무야 변했지만.”
사내의 말투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것은 씁쓸함이 었다.
“그러니 사양 말고 받으시오. 배불리 먹지는 못하겠지만 허기는 채울 수 있을 거요.”
광주리를 내 미는 사내의 모습에 백 우진은 잠시 만 기 다리 라는 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봇짐 안에 있던 건량 일부를 가지고 나와그에게 건네주었 다.
“받기만하면 체할 것 같으니 가진 음식을 바꿔 먹는 셈 칩시다.”
“•••고맙소.”
건량을 받아든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급하게 산을 넘어가야한다고들었소만, 언제까지 머무를 생각이오?”
“으음, 그것이.
아직 이곳을 떠날수는 없다. 백우진이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사실 우리 조원 중 하나가 다리를 크게 접질리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한 상태요.”
“저런.”
“그래서 폐가 안 된다면 하루나 이틀 정도 이곳에서 묵고 싶은데, 가능하 겠소?”
“그러시오.”
중년 사내 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 였다.
백우진 또한 한시름 덜었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고맙소! 대신 이곳에 있는 동안 일손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오.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와드리 겠소.”
“말만들어도 든든하구려.”
잠시 이 야기를 나눈 뒤 , 중년 사내는 이 만 일할 시 간이 라며 뒤로 물러 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백우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을 안은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지만 진법 밖으로는 나가지 마시오.”
영영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
제법 섬뜩한충고를 남긴 채 중년 사내가 멀어져갔다.
감자가 든 광주리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선 백우진은 곧장 감자 하나를 쥔 채로 구왕수에게 다가갔다.
“광수야, 감자 먹자.”
“웬 감자야?”
“우리 마을 데 려다준 남자가 대 접한다고 준 거 다.”
“맛있겠다.”
구왕수가 감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만족어린 표정이 고스란히 드 러났다.
소박한자식.
분명 제법 잘 사는 집 자식 인데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작은 동네 이름 없는 무관 출신의 시골뜨기다.
“야,광수야.”
“으응?
볼을 크게 부풀린 채 쩝쩝대던 구왕수가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백우진을 쳐다봤다.
“쿨럭! 쿨럭!”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터진 기침에 입속에서 으깬 감자가쏟아졌다.
철퍽!
그 어떤 비 수보다 날렵하고 표홀하게 날아간 감자가 백우진의 얼굴 위 에 하나둘씩 안착했다.
“어,어어….”
예기치 못한 사고에 구왕수의 사고가 정지됐다.
‘주먹 ? 아니면 발? 설마 칼은 아니겠지 !?’
백우진에게서 날아올 흉기가 무엇일까 가늠하던 구왕수에게 닿은 것은 폭력이 아닌 따스한 말이 었다.
“천천히 먹어야지,광수야.”
“어,으, 응….”
다시 한번 거센 기침을 토해낼 뻔했다.
‘대체 왜 저러는거지?’
언제나 으르렁대던 인간이 다정한 말투로 걱정을 해오니 몸에서 두드러기 가날지경이다.
차라리 한 대 맞고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나저나, 광수야.”
“어,어?”
“우리가 이 사건을해결하기 위해선 이 마을에 며칠 머물러야 하잖아.”
“그,그렇지.”
알수 없는 불길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아까그사내가우리에게 언제까지 머무를 거냐고하길래, 일행 중에 다 리를 다친 이가 있어 운신이 가능할 때까지만 머물겠다고 했거든.”
“아…, 잘대처했네. 응? 그런데….”
우리 조원 중에는 다리를 다친 사람이 없지 않나?
혼잣말하듯 무심코 던진 물음에 구왕수의 불안감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아, 아니지?”
백우진의 친절한 말투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황 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뒤로 물러나려는 구왕수의 어깨를 조용히 출수한 백우진의 양손이 콱 붙 잡았다.
학관 여 인네들이 볼 때마다 환장하는 해맑은 미소가 그려졌다.
“환자가, 요기 있네?”
“아, 아니 잠깐…!”
꼬아아아악!
고통어린 비명이 조용한마을에 메아리가되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