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마물 토벌
가짜 환자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구실은 만들어 두었으니 이제는 마을을 샅샅이 뒤져볼 차례 였다.
백우진은 아침 식사를 마친 제갈연지를 찾아갔다.
“백 공자…!”
“잠깐얘기 좀하자.”
“네!”
두 사람은 건물 뒤편에 있는 그루터기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았다.
백우진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마을에까지 들어온 건 좋은데 한 가지 맹점이 있었어.”
진법에 가려진 수상쩍은 마을을 발견하고, 이곳에 도달한 것까지는 분명 어느 정도 성과라 할 수 있었으나 그 뒤 가 문제 였다.
제갈연지도뒤늦게 이를 깨달은듯,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여기 갇힌 거네요….”
“ 맞아.
| |.....
...
...
들어오는 게 무척 어려웠던 것처럼, 나가는 것 또한 자력으로 불가능하단 점이었다.
한두 번 정도야 사내에게 부탁할 수 있다지만, 빈번히 나갔다 들어오면 그 들의 경계심을 높일 수도 있으니 자력으로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진법에 새로운출구를 만들거나할수는 없는 건가?”
제갈연지는 고민에 빠졌다.
제 갈세 가 내에서 학문을 익힐 당시, 진법은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학문 중 하나였다.
막내가 진법 가로서 천재 적인 면모를 선보이 며 비교 대상으로 오르기 일쑤 가되는바람에 그마저도 포기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읽어온 진법서의 수 가적지는 않았다.
“지금으로선 말씀드리기가힘들어요….”
그럼?”
“진법을 이루는 핵심을 살펴봐야 해요.”
진법의 핵이란 말 그대로진법이 효용을 발휘할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적 인 방위에 놓인 기물들을 일컫는다.
잘못 건드리면 진이 변형되 거나 아예 파훼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눈에 보이 는 곳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을 터인데 .
“찾을수 있겠어?”
또한번 장고의 시간이 이어졌다.
진법의 효과, 범위, 형태 등이 그녀의 머릿속이 떠올랐다가사라지기를반 복한다.
이 윽고 눈을 뜬 그녀 가 힘 찬 목소리 로 대 답했다.
“할수…, 있어요!”
…
마을에 거주 중인 사람들은 서른 명 정도였다. 대다수가 중년 또는 노년이 었고, 네다섯명 정도만이 약관을 조금 넘은 청년들이었다.
청년과 중년은 화전을 일구고, 노인들은 소일거리를 하며 마을을 휘휘 걸 어다닌다.
틈만 나면 도시로 떠 나고 싶다며 청년은 투덜대 고, 중년은 쓸데 없는 생 각 말고 밭이 나 잘 갈라며 핀잔을 준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풍경. 그렇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한편의 역할극을 보는 기분이야.’
그들에게선 으레 느껴져야 할 삶의 정취 라는 것이 느껴 지지 않았다. 얼마 없는 사람들끼리 저렇게 지내면 자연스럽게 자아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연기에 능한 배우들이 한 편의 연극을 연출하고 있는 것만 같 았다.
조원들은 저마다 이 일, 저 일을 도와가며 마을에 녹아들기 시작했다.그 사이, 구왕수는 환자 역할로 집에 틀어박혔고, 제갈연지는 간병을 핑계로 빠 져나와 밖으로 나돌기 시 작했다.
“차,찾았다…!”
그리 크지도 않은 마을을 이 잡듯이 헤매 기를 이틀여, 제 갈연지는 마침내 진법을 이루는 핵심 기물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동에 묻혀 있던 핵심 기물 은 알 수 없는 글씨들이 마구 적힌 벽조목 토막이었다.
“이건….”
나무 표면에 빼곡하게 쓰인 그림 인지, 글씨인지 모를 무언가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그것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
“주변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어 ….”
진법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한 기가소모된다. 대체 어떻게 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글자들이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여 진법 을 유지시 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이럴때가아냐.”
솟구치는 탐구심을 발휘할 때가 아니다.
마을 하나의 존재를 지울 만한 진법은 한 개의 핵으로는 부족하다. 마을 의 크기로 보건대 최소 네 개 이상은 필요해 보였다.
허나, 걱정할 단계는 지났다. 하나의 핵심 기물을 찾았으니 이를 토대로 역 산하면 어디쯤에 있을지 가늠할수 있을테니.
“차,찾았다아….”
꼬박 반나절을 들여 네 개의 핵심 기물들을 모두 찾아낸 제갈연지의 신형 이 허물어졌다.
긴장이 풀린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그녀는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 와 핵심 기물로부터 얻은 정보들을 하나둘씩 정리해 나갔다.
“헤…, 헤헤.”
한 시진 동안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던 그녀가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들 어올렸다.
한 장의 종이 위에 빼곡하게 쓰인 글자들이 그녀가 도출해낸 결론이 었다.
곧장 집 밖으로 나와 마을 입구로부터 반대편에 숨겨진 벽조목을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빠르게 하나를 제자리에 놓고 묻은 뒤, 그로부터 조금 떨어 진 곳에 나머지 반쪽을 묻었다.
순간 주변의 기운이 미약하게 일렁거렸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진법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 밖으로 발걸음을 내 디뎠다.
“돼,됐다!”
진법의 영향 없이 무사히 밖으로 나오는 데에 성공한 그녀가 환하게 웃으 며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해 가 저물어 갈 무렵 이 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 가자 조원들이 피 로해 진 몸 을 이끌고 터덜터덜 돌아오고 있었다.
“배,백공자…!”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백우진 또한 밝게 웃어 보였다.
“서,성공했어요오…!”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잘했어.”
참지 못한 백우진이 그녀의 머리를 마구 쓸어내리고 볼을 만져대며 지금 의 기쁨을 마음껏 표출해냈다.
“흐에, 헤…, 흐엥…:
거침없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낸 제갈연지의 얼굴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 렸다.
…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백우진은 제갈연지가 미리 만들어둔 통로를 통해 마을을 빠져나왔다.
마을은 분명 석연찮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건의 진짜 범인이 없다.
“결국 여기 어딘가에 있단얘긴데.”
어둠이 내려앉은 이 산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진짜를 찾아낼 시간이다.
짙은 어둠은 그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시야적인 측면은 물론이 고, 공포와 같은 감정적인 측면에 서도 마찬가지 였다.
혼자인 만큼 거칠 것이 없어진 백우진의 신형이 빠르게 산속을 누비기 시 작했다.
이번에는 흔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산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가 숨어 있을 만한 지형을 찾아내 기 위 함이 었다.
지형을 따라 낮게 깔린 기운들이 주변의 지형 정보를곧장 읽어들였다.
‘여긴 아니고, 여기도 아니고….’
수상쩍 을 만한 곳들을 전부 들쑤셔 보았지 만, 위 험한 무언 가를 찾아내 지 못했다.
잠시 멈춰선 백우진이 심각한표정을 지었다.
“역시 또….”
진법으로 감춰진 마을을 보고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마을뿐만 아니라 사건의 원흉이 도사리고 있는 곳 또한 진법에 가려져 있는 건 아닐까하는.
지금의 수색을 통해 그럴 확률이 한없이 높아져 버렸다.
“뭐라 그랬더라.”
이럴 때를 대비해서 진법을 꿰뚫어볼 수 있는 방법을 제갈연지에게 배워 왔다.
진법이 펼쳐진 곳은 아주 미묘하게 기의 흐름이 다르고, 주변의 환경과 어 우러진 듯 보이지만 결국 주변을 투영하여 만든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 긋나거나 어그러지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아주 미 약하지 만 말이 지....”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맺혔다.
다른 건 몰라도 안력 하나만큼은 누구에 게도 뒤 지 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그다.
인지 자체를 못했을 때는몰라도, 인지한순간이라면 분명 찾아낼 수 있을 거 라고 확신하며 다시 한번 산속을 내 달렸다.
“어라…?”
못찾았다.
한 바퀴를 빙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백우진이 벙찐 표정을 지 었다.
“내 눈은대체….”
무엇이든꿰뚫어볼수 있는 안력이 가장중요하다며 검에 미친 늙은이 둘 에게 평생을 맞아가며 익힌 안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 어버렸다.
“후우.
뜨거워진 머릿속을 애써 식혔다.
진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할수 있는 일은 없어졌다.
백우진은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마을로 돌아갔다.
며칠이 흘렀다.
“하아암.”
조원들이 모두 나가 마을 사람들을 돕거나 그들과 이 야기를 나누며 경계 도를 낮추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구왕수는 집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분하네….”
환자 역할을 맡게 되 어 다리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칭칭 감아둔 탓이 었다.
괜한 의심을 사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반쯤 감금된 신세였다.
그래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생하고 있다는 장삼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이 생활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혹 들곤 했다.
“오늘은 마을 밖으로 나갔다 온다고 했었나?”
겨울이 이제 거의 지나간 때라 아직까지 먹을거리가부족하다고 했다. 그 래서 주기적으로 산을 돌아다니며 먹을 만한 것들을 캐온다고.
조원들은 그 행렬을 따라나섰다. 그들과 함께 다니며 이리저리 말을 걸다 보면 유의미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황한 구왕수가 상체를 일으키며 목소리를 냈다.
“느구스?” 누 IIT ’
“잠깐들어가도 되겠소?”
“아….”
자신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온 중년 사내의 목소리 였다.
“다리를 치료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다고 들었소. 그래서 약초를 좀 캐왔 소만.”
“아! 드, 들어오십시오.”
구왕수의 허락이 떨어지자문이 열렸다.
중년 사내가 약초가 든 꾸러미를 손에 쥐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허름한 집에 하루종일 있으려니 답답하시겠소.”
“하하…, 별수 있겠습니까.”
꾸러미를 구왕수의 곁에 내려둔 중년 사내가 말했다.
“약초는 곱게 빻아서 다친 부위에 잘 바르면 될 거요.”
“잘 쓰겠습…, 으읍!”
구왕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려던 순간이었다.
지척에 있던 중년 사내가 팔을 뻗어 손에 감싸쥐고 있던 축축한 면포로 그 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이건…!’
면포에 가로막힌 채 한 모금 호흡한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낀 구왕 수가 황급히 발버둥치려 했지만 이미 온몸에 힘이 빠져가는 와중이 었다.
‘아,안…!’
구왕수의 의식이 무저갱 속으로 떨어졌다.
:k * *
“다들 고생들 하셨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한동안 먹을 걱정은 덜었다오.”
신룡조원 이 함께 한 먹거리 탐색은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마을 사람들이 들고 간 광주리에 어떻게든 먹을 만한 것들로 가득 채운 뒤 돌아온 조원들은 육체적인 피로 대신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며 집으로 향했 다.
“o o o ...I” --, — •
가장 먼저 집으로 들어선 백우진은 피풍의 위에 드러누운 구왕수로부터 들려오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듣고 그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프냐?”
“다,다리가…, 으으!”
붕대로 칭칭 감긴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소리 야. 다리는 그냥 연 기 잖아.”
으깬 감자를 제 얼굴에 뱉어낸 데에 대한 복수로 허벅지를 한 대 가볍게 때려준뒤 가짜로 칭칭 감았을뿐인 다리다.
그런 다리에 갑자기 이상이 생겼을 리 가 없잖은가.
백우진의 시선이 다리에 잠시 빼앗겼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리를 부여잡고 아파하던 구왕수의 눈이 흉측하게 빛났다.
“피하시오!”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느라 뒤늦게 들어온 장삼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짧은 순간, 백우진은 고개를 돌리는 대신 아주 짧은 범위 내로 기감을 퍼 뜨렸다.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비수 하나가 맹렬한 속도로 접근해오는 중 이었다.
‘늦었다.’
찰나의 방심과 자신에게 공격을 해온 대상이 구왕수라는 것.
전혀 예상치 못한두 가지가 겹친 탓에 날카롭게 벼려진 비수가 백우진의 몸에 꽂혔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