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화〉마물 토벌
눈 깜빡할 사이 에 사방으로 피 가 튀 었다.
급격히 몸을 뒤튼 백우진의 움직임에 심장이 아닌 어깻죽지에 칼날을 박 아넣은 구왕수가 쥐고 있던 비수에서 손을 떼며 곧장 뒤로 물러났다.
“조장!”
이를 황망히 지켜만 보고 있던 장삼이 뒤늦게 달려오자 상황이 불리하다 여 긴 구왕수가 뒤 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빠져 나가 줄행 랑을 쳤다.
장삼은그를쫓는대신 백우진의 상처를 살피기 위해 다가갔다.
“괜찮으시오!”
“후우….
곱상한 얼굴에 핏줄이 불거져 있는 것만 봐도 그가 커다란 고통을 참고 있 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상처 가 생 각보다 깊소. 어서 치료부터 해야…!”
백우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일단광수부터 쫓아.”
날카로운 비수가 어깻죽지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허나 생명에 지장이 가는 곳은 아니 었다.
백우진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장삼의 앞섶을 부여잡았다.
“지 금 광수 놓치 면 그놈 목숨, 장담 못 한다.”
제 몸에 칼을 박아넣을 때 마주쳤던 광수의 얼굴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 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술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 만 무언가의 조종을 받고 있음이 확실했 다.
“혼자서는 위 험하니 당 소저와 함께 쫓아.”
“•••알겠소.
앞섶을 놓아주자 장삼이 곧장 신법을 운용하여 옆집으로 향했다.
쾅쾅!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당장 나오시오! 긴급 상황이오!”
다급한 목소리가 통한 걸까. 내부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야?”
신예화였다.
“조장이 크게 다쳤소. 그러니 빨리 치료를 부탁하오.”
“다, 다쳤다고요…?”
뒤이어 다가온제갈연지의 눈이 파르르떨렸다.
“조장은 옆집에 있소. 두 분 소저는 빨리 그쪽으로 가보시오. 그리고 당 소 저는 나와 함께 갑시다.”
“•••앞장서.”
당선영이 군말 없이 장삼의 뒤를 따랐다.
| |.....
!....
!..
“우,우진아…!”
빠르게 내달려 옆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혈향이 그녀의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백우진을 보았다.
“우진아!”
어깻죽지 부근에 날카로운 비수가 꽂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매우 심 각한 상처 임 이 틀림 없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백우진이 그녀에게 물었다.
“장삼은?
“다, 당소저랑같이 갔어.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광수가 누군가에 게 조종당하는 것 같아.”
“조종… 이라니? 그럼 설마 이 상처도….”
백우진이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우….”
답답한 한숨이 새 어나왔다.
“배,백공자…!”
백 우진이 크게 다쳤다는 말에 정신을 차리 지 못하고 방황하다 뒤늦게 달 려온 제갈연지 가 눈물을 쏟아내 며 다가왔다.
“어,어떡해.마, 많이 아플텐데…!”
“진정해.”
천천히 심호흡하고.
“후우, 하아….”
당황하는 와중에 도 백우진의 말에 침 착하게 따른 제 갈연지는 조금씩 안 정을 되찾았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의 어 깻죽지 에 꽂힌 칼을 살폈다.
“이, 일단 칼부터 뽑아야겠어요.”
그녀가 신예화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 짐에서 약들을 챙겨와줘요.”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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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반목하는 사이였지만 지금만큼은 마음이 일치했다.
옆집으로 돌아가 제갈연지의 봇짐 속에 있던 약 꾸러미를 챙겨 돌아오자, 기 다리 고 있던 그녀 가 깨끗한 면포와 지 혈 연고를 꺼 내 어 내 려놓았다.
“조,조금만 참으세요.”
“걱정말고 뽑아.”
“하아….”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잠재우며 피가 묻은 비수를 손에 쥐었다.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자 어깨에 파고들었던 날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통을 감내하는 백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소와 다 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관자놀이에 꿈틀거리는 핏줄이 그의 고통을 전해주는 듯했다.
마침내 칼날이 모두뽑혀 나왔다.벌어진 상처에서 핏물이 울컥 쏟아지기 시작하자 준비해둔 면포에 지혈제를 발라 환부를 압박하는 한편, 다른 한 손 으로는 어깻죽지 부근의 혈도를 점하여 피의 흐름을 잠시 늦췄다.
“제발, 제발…!”
상처로부터 배어 나온 피가 어느덧 면포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신예화가 새로운 면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어느 정도시간이 흐르자 면포에 묻어나는피가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 했다. 완전히 피가 멎었을 즈음, 제 갈연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 었다.
피 가 멎은 환부를 바라보던 백우진 이 반대 편 손으로 허 리춤의 호리 병을 손에 쥐었다.
이빨을 이용하여 마개를 뽑아낸 뒤, 긴장감을 놓지 않기 위해 요 며칠간 참고 있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욱씬거 리는 고통 또한 조금 줄어드는 듯한 기분 이다.
백우진은 호리병의 입구를 환부에 가져간 뒤 이빨을 꽉 깨문 채로 술을 홀 려 냈다.
도수가 제법 높은 술이니 어느 정도 소독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한행동이었다.
끊임없이 술이 흘러내리자 어깨 주변에 말라붙은 피가 조금씩 벗겨졌다.
“피좀 닦아줄래.”
“네에….”
“나,나도도울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켜보고 있던 제갈연지와 신예화가 면포를 손에 쥐 고 벗겨지기 시작한 피딱지들을 닦아냈다.
제 갈연지는 말끔해진 환부 위에 금창약을 얇게 펴 발랐다. 그리고 면포를 얇게 찢어 만든 붕대로 어깨를 단단하게 감아 고정시켰다.
“많이 아프죠…?”
치료를끝낸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저었다.
어깨에 난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한 상처 따위 수 도 없이 많이 새긴 적도 있었으니까.
오히려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뼈 아픈 실책 때문이 다.
“잠시옷 좀 갈아입자.”
“네에.”
두 여인이 집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한뒤, 피에 젖은 의복을 벗고 여벌로 챙겨온 무복을 꺼내어 걸쳤다.
한쪽 팔만을 이용하여 힘겹게 의복을 다 차려입 었을 즈음, 밖에서 느껴 지 는 기척의 수가 둘에서 넷으로 늘어났다.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구왕수를 추적하기 위해 나섰던 장삼과 당선영이 어두운 얼굴을 한 채로 서 있었다.
당선영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놓쳤어.”
“당 소저가 추적술에 능하여 구 소협의 흔적을 따라 열심히 쫓아갔소만, 도중에 흔적이 끊어졌소.”
“흔적이 끊어져?”
“응. 누군가 흔적을 지운 것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뚝.”
이를 전해 들은 백우진의 안광이 번뜩였다.
“진법.”
“아…!”
“확실히진법이라면….”
그토록 돌아다녀도 발견하지 못한 진법이 그곳에 펼쳐져 있는 게 틀림없 다.
구왕수가 그곳으로 들어갔다면 이 사건의 원흉과 함께 있을 터.
‘아직 광수한테는 쓰임새 가 있다.’
자신들을 밖으로 내돌린 뒤에 구왕수를 조종한 걸 보면 상당히 영악한 놈 이다.
인질로서의 가치 가 남아 있는 그를 죽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거 라 생 각하지 만, 마냥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 다.
백우진은 곧장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지금 벌어진 일들은 전부 내 실책이야.”
“백 공자….”
“헤에…?”
“우,우진아.”
이곳에 모든 사건의 원흉이 없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수상한 점 은 있으나 무공 하나 배우지 않은 양민들임을 확인했으니 큰 사고는 일어나 지 않으리 라 생 각하고 바깥쪽으로 온 신경을 돌린 것이 패착이 었다.
모두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당선영이 손을 뻗어 백우진의 상체를 일 으켰다.
“사과는 받아들일게.하지만 지금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 거, 알잖아?”
“그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진 구왕수를 찾는 것. 그리 고 조종당하는 듯한 그 의 정신을 온전히 돌려놓는 것이다.
“지금부터 구왕수를 쫓는다.”
“상처가 제법 큰데 괜찮겠소?”
장삼의 우려 섞인 물음에 백우진은 처연한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보다 더 아픈 곳은 따로 있거든.”
이 실수를 만회하기 전까지 어깨에서 느껴 지는 고통 따위는 없는 거나 마 찬가지다.
조원들은 곧장 집으로 들어가 제 짐을 챙긴 뒤 그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럼 바로 출발… 은, 안되겠군.”
주변에서 수십의 기척이 느껴졌다.
가장 우려 하던 일이 벌어 졌다. 구왕수와 마찬가지 로 누군가에 게 조종당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척을 느낀 당선영이 암기를 꺼내어 쥐며 물었다.
“대응은?”
“제압까지만.”
“나한테 가장 어려운일이네.”
생긋 웃으며 선제공격을 위해 앞으로 나서려 하자 그녀보다 앞서 걸음을 내디딘 이가 있었으니.
장삼이었다.
“여기는 내게 맡겨주시오.”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훈련을 거듭할 때도 보인 적 없던 비장한 표정을 한 채로 나선 그를 향해 물었다.
“가능하겠어?”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양민들이 라곤 하나 다수를 상대할 땐 어떤 변수가 벌 어져도 이상치 않은 것이 전투다.
하물며 장삼은 조원들 중 가장 실력이 떨어졌다. 경지는 둘째치고, 움직임 자체가 능숙하지 않고 불안정하여 실력만 놓고 보면 온전히 일류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번 믿어보시오.”
자신감으로 가득한 말투였다.
자신을 숨기던 이들이 이토록 앞으로 나설 때는 대체로 숨겨둔 수를 보일 각오를 굳혔다는 뜻이 다.
“좋아.”
백우진은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투와 자신의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출발한다.”
백우진을 필두로 등을 돌린 조원들이 제갈연지가 미리 만들어둔 새로운 출구로 마을을 벗어 났다.
혼자가 된 장삼은 착잡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미처 내뱉지 못하고 숨겨두었던 말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조장의 잘못만은 아니오.”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장삼은 알고 있었다.
이곳이 정상적 인 마을이 아니 며, 마을 사람들 모두 제 정신이 아니 라는 것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도리어 숨겼다.
“난 당신을 시험하려 했소.
모두가 가짜 점쟁 이 , 거 짓말쟁 이 , 사짜라 불리 며 모두가 피해 가는 자신을 콕 집어 지명한 이유가무엇인지,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보며 그의 저력을 가늠하 려 했다.
“대체 그혼은무엇인지 궁금했소.”
평범한 신체에 눌러앉은 고귀하고, 고결하나 원래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상처에 뒤덮여 신음하는 그 혼은 대체 무엇인지.
그것들이 궁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내 호기심이 일을 그르친 게요.”
조원 인 구왕수와는 제법 친분을 나누었다. 가까스로 친우라고 부를 수준 까지 는 정 을 쌓았다고 생 각한다.
그런 친우에게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요상한 것이 붙어 이제는 생사 를 가늠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삼아.”
황산파에서 학문을 익히는 동안 문주이자 스승이었던 이가 그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지.”
백우진이 고개를 조아려 제 잘못을 시 인했듯, 자신 또한 잘못을 인정했어 야했다.허나, 자신이 가진 힘은모두에게 멸시받는 힘이었기에 차마나서지 못하고 또 뒤에 숨어야만 했다.
원 래 대로라면 이 대로 도망쳐 야 했으나, 이 번만큼은 그러 지 않으리 라 다 짐했다.
직감이 외쳐대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니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그렇기 에 늦게 라도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가까스로 의 지를 굳혔다.
굳은 결심을 하며 봇짐을 뒤져 꺼낸 것은 백우진과 실랑이를 벌여 겨우 챙 겨온 신장대와 방울이 었다.
“자아, 어서들 오거라.”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온 마을 사람들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자아내는 속도는 도저히 양민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눈 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과의 거리가 적당하게 좁혀졌음을 확인한 장삼이 좌수에 쥐 고 있던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짤랑!
방울이 흔들릴 때마다 자아내는 청명한 소리가 다가오는 마을 사람들의 귀를 자극했다.
“으극!
“흐어억!”
“꺄아아아!”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고통어 린 비 명을 내 지르는 이들.
장삼은 계속해서 방울을 흔들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빌어먹을 놈들.”
그의 눈에는 보였다. 마을 사람들의 등에 달라붙어 이들의 의지를 조종하 는 흉측하게 생긴 원혼들이.
신장대를 휘둘러 놈들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등에 붙어있던 것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더니 꼼지락대던 움직임을 멈춘 채 축 늘어 졌다.
털썩!
그와 동시에 마을 사람 또한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부러졌다.
장삼이 흉흉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고통에 신음하는 주민들을 보며 소 리쳤다.
“등짝…, 등짝을 보자꾸나아!”
퍼억! 퍼억!
신장대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바닥에 몸을 뉘 인 채 정신 을 잃었다.
“하아, 하아…!”
마침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제 압하는 데에 성공한 장삼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신장대에 풍성하게 매달려 있던 깃털들은 죄다 떨어져 나갔고, 이따금 방 울도 휘둘렀는지 곳곳이 찌그러진 채였다.
그는 백우진과 조원들이 떠나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속죄는됐을 거라믿소.”
그러니 구 소협을 구하는 일은 조장만 믿고 있겠소.
기력을 다한 장삼이 눈을 감으며 옆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