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68화 (68/215)

<68 화 > 호환(虎턤)

산신이라불리던 호랑이가 폭군의 면모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거 대하고 단단한 체구는 그 자체로 흉기 라는 것을 잘 아는 듯, 앞발을 휘 두르고 제 몸을 비틀어 사방을 초토화시키는등말도 안되는규모의 공격들 에 백우진은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크게 물러나야만 했다.

“완전 쁘띠 드래곤이야, 아주.”

과거 마왕의 심복이 되 었던 미친 드래곤과 싸운 경험이 떠올랐다.

몸의 길이 만 수십 미 터 가 넘는 녀석은 어떻 게 보면 마왕보다도 까다로운 면이 있던 상대였다.

눈앞의 호환은 비교도 안되게 작은크기이기는 하나, 자신 또한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상태니 , 그때와 비 슷한 상황에 놓인 느낌이 들었 다.

“나쁘지는 않지.”

다가가는 것조차 불허하는 커다란 공격은 다수가 상대일 때는 절대적인 위 력을 발휘하지 만, 의외로 일대 일의 대 결에서는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 한다.

실제로 백우진은 회피 반경을 크게 늘려 주변을 넓게 사용하는 것만으로 놈의 공격으로부터 별다른 위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좀 실망인데.”

백우진이 뇌까렸다.

“똑똑한 영물도 마기에 잠식되면 돌대가리로 변하는 걸까.”

영물이라면 본디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놈은 오로 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풀어내기 위해 마구 화풀이하는 식으로 싸워 대는 중이었다.

크르르르!

조롱 섞인 말 한마디가 제대로 꽂힌 것인지, 낮은 소리로 울부짖은 녀석의 움직임 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달려들지 않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온다.

......

!..

.....

........

“어라, 내가 또 말실수 했나.”

겸연쩍은 표정을 짓자 거리를 좁힌 녀석의 앞발이 날아들었다.

온몸으로 몸부림치 던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속도에 놀라 가까스로 몸 을 빼낸 백우진에게 재차, 삼차공격이 뒤따랐다.

“이크…!”

말 한마디에 크게 낭패를 보게 된 셈이나, 백우진은 오히려 잘됐다고 속 으로 생각했다.

규모가 큰 공격은 그만큼 피하기 쉽지만 반대로 말하면 가까이 다가갈 수 가없어 공격할틈이 없다는문제점이 생겨난다.

예전 같았으면 멀리서도 공격할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수단이 없다.

더군다나 백우진의 몸속은 현재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요란한 상태 다.

야금야금 퍼져가는 독기와 이를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한 내공이 서로 부 딪쳐 힘 겨루기를 하고 있기 때문.

시간이 끌리는 것만큼 지금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은 없으니, 더 까다롭더 라도 그나마 맞받아칠 수 있는 지금이 훨 씬 나았다.

콰아! 콰아아!

힘을 빼고 가볍게 휘두르는 앞발에서 공기를 찢다 못해 터뜨리는 듯한 소 리가저 앞발에 맞게 되었을 때의 미래를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백우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회피 를 이 어 나갔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 예 였다.

빠르고 맹 렬하지 만, 짐승의 육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 변화가 지극 히 적다.또한 어째서인지 놈은 마물이라면 마땅히 가져야할신체의 변화를 겪지 않았다.

‘영물이기 때문인가?’

일반 짐승과는 다른 영물이라 어느 정도 마기에 저항하면서 생긴 특이점 일지도 모른다.

또한 백우진이 녀석과 맞설 수 있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수비를 할 때에 드러나는 취선보와 주선검결의 무결한 방어 능력 덕분이 다.

취 선보와 주선검 결은 정해진 투로를 얼마든지 벗어나는 의외 성 이 존재한 다. 이는 곧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공격에도 당황하지만 않으면 대처가 가능 해진다는 장점이 된다.

부드럽게 휘 어가는 검은 상대의 직선적인 공격을 최소한의 충격으로 받 아내어 남은 힘을 자신에게 닿지 않는 방향으로틀어냈다.

또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주정뱅 이의 발걸음은 상대방의 예측을 불허 했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발과 꼬리, 날카로운 이빨의 공격을 정신없이 막아 내 며 땀을 쏟아내 는 백 우진의 입 가에는 차마 숨기 지 못한 미소가 남아 있었 다.

“내가정말미치긴했나 봐.”

빗발치는 공격을 단 한 치의 차이로 빗겨낸다. 이는 곧 날아드는 죽음을 생으로 바꾸는 행위 였다.

백우진은거기에서 커다란 쾌감을 느꼈다.

자신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으로부터 제 삶을 굳건히 지켜내는 것에 서 말이다.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오가는 검으로부터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 였다.

‘그윽하고, 좋구나.’

변과 환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화산파의 매화 검법은 일정 경지에 이르면 제 검에서 매화꽃을 피워내고,그향까지 재현하여 검을 맞댄 이를현혹시킨 다고했다.

검선이 환과유의 극치라고 평가했던 주선검결이 일정 경지에 오르자, 검 을 휘두르는 곳마다 그윽한 술 향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백우진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간 향기는 그에게 힘이 되 었고, 상대의 콧 속으로 들어간 냄새는 전의를 꺾는 독이 되 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흥분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조금만 술을 들이켜도 취기가금세 오르는법이다.

크르르…!

지칠 줄도 모르고 공격 일변도로 나서던 호환이 처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새하얀 털 속의 피부가 어쩐지 조금 붉어진 것도 같다.

어느새 이곳은 백우진의 권역이 되었다. 그가 자그맣게 움직일 때마다술 향기가 보다 넓게 퍼져 나간다.

“햐, 이제 명진이는나한테 절대 못 이기겠다.”

술에 극도로 취 약한 명진은 이 냄 새를 조금만 맡아도 금세 취 해 버 릴 터 다. 그때도 생각했지 만, 자신은 그에게 있어 최 악의 상대 였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호환은 살짝 어긋난 시점으로 이쪽을 노려보다 가 이내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등, 술에 취한 사람들이 보이곤 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허허, 고놈 참.”

본능밖에 남지 않은 마물도술에 취할수 있었던 건가.

“쿨럭!

별 안간 기 침 을 하자 검 게 변한 피 가 바닥에 뚝뚝 떨 어 진다. 이는 몸이 보내 는 경고였다.

‘슬슬 결판을 내야지.’

호환이 술에 취한듯한 모습을보이는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이를 놓치면 놈이 죽기 전에 자신이 중독되어 죽을 판이다.

내구도를 깎아내려 가면서까지 날을 세운 비수에 검기까지 씌웠음에도 작은 생채기밖에 남기지 못할 정도로 두꺼운 가죽으로 뒤덮인 놈의 숨통을 끊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찌르기.’

베기보단 찌르기. 그것도 모든 힘을 단 한 점에 집중한 찌르기로 놈의 거죽 을 꿰뚫고 심 장까지 밀고 들어 가야 한다.

생각을 마친 백우진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자세를 낮출 때였다.

[그리운 냄새가나….]

“어머, 시발.”

귀 가 아닌 머릿속에 울리는 인간의 것과는 거리가 먼 음성이 욕설을 자아 냈다.

알딸딸한 표정의 호환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눈이…?”

주목해야 할 점은 눈이 었다. 마기에 물들어 핏빛으로 물들어 있던 두 눈동자중 왼쪽 눈동자가 본래의 색인 청색을 띠고 있었다.

[그대는대체 누구인가.]

영험하면서도 살기가 들끓는 말투였다. 눈동자도 하나만 청색으로 돌아 온 걸 보면 마기에 잠식돼 있던 정신이 반쯤 돌아왔다고해석해야하는 걸까.

‘그런데 대체 왜?’

마기에 물든 인간이나 짐승이 원래대로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늦 든, 이르든 마기에 잠식된 순간원래의 모습과는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것이 다.

허면 대체 이 호랑이는무엇으로 말미암아 정신이 돌아오게 된 걸까.

[그대의 움직임에서 신선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더군다나 이 술 냄새는…, 종종 이곳을 찾아왔던 신선에게서 얻어 마신 술과 같은 향이 나는구먼.]

“어….”

아무래도 자신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그 호리병은 보패로군.희한허이 …. 본디 신선들은 지상의 존재에 게 무언가를 베풀 수도, 받을 수도 없을 터인데.]

布으 布으으 --□ ,----□ .

머리에다 대고 콧바람을 씩씩거리는 통에 백우진은 머리가 쿵쿵 울리는 듯한 느낌에 두통이 도졌다.

“남의 머리에다대고 흥흥거리지 마라.”

[아, 미안하이.]

“후우….”

지 끈거 리는 관자놀이 를 꾹꾹 누르며 놈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돌아온거야, 뭐야?”

[아주 돌아온 건 아니라네. 그리운 냄새를 맡아서인가, 신선의 기운 때문 인가. 마기로 인해 깊숙한곳에 봉인됐던 내 정신이 조금풀려났을 뿐.]

“애초에 그게 가능한 거야? 마기에 물들면 더 이상돌아올수 없는 걸로 아는데.”

[나도모르네. 다만, 수백 년간살아오면서 쌓인 기운이 마기와완전히 융 화되 는 것을 막아내 지 않았나 추측할 뿐일세.]

“그런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마기에 잠식된 인간을 되돌릴 단초를 얻을 수 있었을 터 인데.

“정신이 조금 깨어났다고했는데, 완전히 해방될 수도 있나?”

백우진의 물음에 호환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마기가 골수까지 침범한 상태일세. 잠깐깨어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죽이지 않고 살리는 방법은 요원하다는 말이었다.

“내 조원 하나가 당신 조종을 받고 여기에 왔을 텐데.”

[아, 오늘 창귀를 씌운그 인간이라면 동굴 안에 있네.죽지 않았으니 걱정 말게.]

“그래….”

마음 한켠에 쌓여 있던 답답함이 녹아내리자 백우진의 얼굴도 한층 편안 해졌다.

[이보게. 내부탁하나만들어주게.]

호환이 제 앞발을 들어 바닥을 내리 쳤다. 그러자 제법 커다란 구덩 이 가 생 겨났다.

[술 한잔만 주게나.]

한 잔이 라고 하기 엔 그 웅덩 이 가 몹시도 컸으나 문제될 것은 없었다.

호환이 뒤로 물러났다. 백우진은 구덩이 앞으로 가 호리병을 기울였다.

콸콸 쏟아지는 술이 어느덧구덩이를 가득 메웠다.

백우진이 뒤로 물러나자 기 다렸다는 듯, 호환이 달려들어 주둥이를 웅덩 이에 박고술을꿀꺽꿀꺽 마셔대기 시작했다.

[크르흥! 크릉!]

“아! 머릿속에다 대고 콧바람쏘지 말라고!”

[너무 기뻐서 그만.]

너스레를 떠는 호환.

이 새끼 생각보다 뺀질거린다.

슬슬 눈앞의 호랑이 가 거슬리 기 시 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