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72화 (72/215)

<72 화〉정체

마을에 흩어져 제 할 일들을 하고 있던 조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좋은아침이오, 조장.”

가장 먼저 당도한 장삼이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 왔다.

“우리 할 얘기가 좀 있을 것 같지 않냐.”

“커험!뭐 굳이 따로나눠야할이야기까지야….”

도중에 백우진이 눈을 부라리자 황급히 말끝을 바꾸었다.

“조금 있다가 다 얘기하겠소.”

진작그럴것이지.

이 야기를 끝마칠 즈음 구왕수가 아기 백호를 품에 안은 채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깨어났구나, 백우진!”

백 우진은 그에 게 오라고 검 지 를 까닥거 렸다.

쭈뼛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그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내놔.”

“뭐,뭐를?”

“백호 내놔.”

“아…, 난 또.”

혹여 자신이 잠들어 있는 사이 깨어난 백호가 자신을 안고 있는 구왕수를 보고 부모라 생 각하면 어 쩌 나 얼마나 걱 정했는지 .

구왕수로부터 건네받은 백호는 여전히 잠든 채였다.

“얘,내가데려왔을 때부터 쭉 자고 있는 거냐?”

“응…. 한번도 안 깨던데.”

“흐음.”

.

!...

....

곤히 잠들어 있는 녀석의 코를 간질이자 갸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발을 휙휙 젓더니 이내 몸을 한바퀴 돌려 얼굴을 품속으로 더욱 밀어 넣으며 잠을 이어간다.

“어우, 심장이야.”

이 녀석은유해한 생물이 분명하다. 귀여워서 심장이 터질 뻔했으니까.

며칠째 쭉 잠들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숨소리도 고르고 만지면 즉각 반응하는 걸로봐선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겠다 싶어 일단은 두기로 했다.

“조장, 모두 모였소만.”

백호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사이, 조원들이 모두 모였다.

백우진은 조원들을 한 명씩 살펴보았다. 대다수 표정이 밝은데 당선영만 이 유일하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운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밤의 입맞춤은 어느 정도 충동적인 부분이 있기는 했다.

별일은 아닌 듯하여 시선을 거두었다.

“다들 이미 예상했겠지만, 며칠 전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불렀어.”

진실은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버린 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거대한 호랑이 마물과 술잔을 나눴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러니, 아주 격렬하게 싸우다가빈틈을 노려 녀석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었고, 죽기 직전 에 정신을 차린 녀석이 자신에게 백호를 부탁했더라는 식의, 듣는 이로 하여 금 손에 땀을 쥐 게 만드는 단편 소설이 뚝딱 만들어졌다.

“•••그렇게 겨우 이기고 나서 도중에 정신을 잃은 거다.”

“오오..., 마물이 된 태백호와싸워서 이기다니.대단하시오!”

“저, 정말고생 많으셨어요….”

조원들의 칭찬과 걱정이 쏟아지자 백우진의 코끝이 살짝 길어졌다.

백우진은 기분 좋은 손길로 백호의 털을 쓰다듬으며 장삼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깨어났나?”

“조장이 돌아오고 하루 뒤에 깨어났소.”

“상태는?”

“내 의원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겠소만, 창귀에 조종당하느라 기력이 쇠 한 것만 보충하면 큰 이상은 없어 보였소.”

“다행이네.”

하늘로 떠난산신의 어깨에 무거운짐이 얹어지지 않게 되었으니 참말로 다행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조장이 깨어나면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하였소.”

“조금 있다가 찾아가지, 뭐.”

“그러시오.”

장삼과의 볼 일을 끝마친 뒤, 다른 조원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특이사항 있나?”

“없습니다:

“없어요….”

하나둘씩 고개를 젓는 조원들. 백우진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 리며 장삼을 검지로 가리켰다.

“이놈만 남고 다들 돌아가서 쉬도록 해. 내 일 아침 일찍 산을 내 려갈 테 니 준비들하고.”

“네.,,

드디어 산을 내려간다는 생각에 신이 난 조원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 나둘씩 집을 나섰다.

백우진은 제 앞에 남아 있는 장삼에 게 시선을 던졌다.

“읊어봐.”

장삼이 난감하다는 듯, 설프게 웃었다. 차라리 궁금한 걸 직접적으로 물어봤다면 그것만 얘 기하고 끝내 면 될 터 인데 뭐 가 됐든 모두 꺼 내보란 식 으로 이야기를 꺼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 다.

“후우…, 내 얘기를 하기 전에 조장께서 먼저 내 궁금증 하나만풀어주시 오.”

“뭔데?,,

“조장은 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조원으로 삼기로 한 것이오?”

그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네 기운.”

“기운…?

“그래. 네 주변에 흐르는 기운이 남들과는 조금 독특했거든.”

“허,그것을 구별할 수 있단 말이오?”

장삼의 동공이 커질대로 커졌다.

‘설마 영기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자가 있다니!’

그의 말대로다. 좌도방문이라 멸시당했던 모산파의 절기들은 하나 같이 자연지기 외에도 다른 기운을 끌어다 사용한다.

장삼은 이를 영 기 (靈氣)라 불렀다. 허 나, 자연지 기 에 섞 여 있는 영 기는 극 소량에 불과했다.

‘역시 이 자는 특별하다.’

백우진의 경지를 아득히 뛰 어넘는 고수들도 장삼에게서 어떠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백우진이 누구도 가지지 못한 특별한 것을 지니고 있다고 봐 야했다.

“조장이 느낀 그 독특함은 내가 사용하는 영기 때문일 거요.”

“영기?

“그렇소. 내 줄곧 말해왔듯, 우리 황산파는 모산파의 후예요.”

“•••진짜였냐?”

그가 믿기지 않는다는투로되묻자, 장삼이 억울한표정을지었다.

“거짓하나 없는 진실이오!”

“어…, 그래. 일단쭉얘기해봐.”

믿을지, 말지는 다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듯한 태도에 잠시 울컥했지 만,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며 담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황산파는모산파의 절기들중 영술(靈術)을 이어받았소.”

“영술이라면…, 영혼과관련된 술법이라는뜻인가?”

“그렇소.”

장삼의 표정에 망설임이 생겼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사실나는…, 영혼을 볼수 있소.”

스승인 문주와 낳아준 부모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한 비밀이었다.

영혼을 보는 눈, 영안(靈眼)을 지니고 태어난 장삼의 삶은 그야말로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과 매 번 얘 기를 나누고 있으니 미 친 사람 취 급받 기 일쑤였고, 부모는 그런 장삼을 애물단지 취급했다.

우연히 마을을 지나가던 스승이 거두어주지 않았다면 분명 부모에게도 버려졌으리라.

“구천에 떠도는귀신을볼수 있다는거야?”

“그것도 볼 수 있고, 다른것도 볼수 있소.”

의미심장한 시선이 백우진에게 닿았다.

“…산사람의 영혼도볼수있나.”

“그렇소.”

백우진의 머릿속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 묻고 싶소.”

남의 몸에 들어앉은 자신의 영혼에 대해 발설한드래곤과 이를 전해 들은 연인의 차가운 시선과 음성이.

“당신은대체 누구요?”

그의 목소리에 덧씌워졌다.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비릿한혈향이 입속에 퍼졌 다.

“내가누구냐라….”

자신은 누구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던져놓은 질문이지만, 여전히 그 답은 찾지 못했다. 애초에 이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답이 아니었기에.

이 몸속에 들어앉은 자신을 그저 긍정해줄 이가 있다면, 비로소 자신이 누 구인가에 대한의미를찾을수 있지 않을까.

백우진은 그리 생 각했다.

“말하면 천기누설이야.”

장난스러운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뭐 …,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구려.”

장삼은 쉽게 납득했다.

정 체 가 궁금하기 는 하지 만, 천 기누설 이 라니 더 물을 수도 없다. 만약 그의 영혼이 탁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테지만.

‘저토록고귀한 영혼이니.’

그의 눈에 보이는 영혼은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함을 자랑했다. 그런 영혼을 가진 이가 악행을 저지를 리는 없을 터.

“아무튼…, 얘기를 계속하자면 나는 이 마을에 들어설 때부터 이상함을 눈치 챘소.”

“그런데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그렇소. 내 입장에서는조장이 가진 저력이 궁금했달지,왜 나를뽑았 는지 가 궁금했달지 .”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조원으로 뽑힌 만큼, 의구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이번 일에 대해선 왈가왈부할생각 없다.”

단.

“앞으로 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행동을 달리 해야 할 거야.”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장삼은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제 그럴 일은 없을것이오.”

장삼 또한 이 번 일을 통해 마음을 굳혔다. 좌도방문으로 멸시 당하는 제 문 파와 자신의 능력, 백우진이라면 적재적소에 활용해줄 거란 믿음이 피어났 다.

“그럼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자고.남은 얘기는차차풀어가는 걸로.”

“좋소.

“이제 마을주민들과얘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같이 가드리오?”

“됐어.”

질척대는 장삼을 뒤로한 채 집을 벗어났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이 모여 있는 중심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자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아낙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다들 나와봐요! 은인께서 오셨어요!”

아낙의 말 한마디 에 집 에 들어 앉아 있던 주민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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