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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74화 (74/215)

<74화 > 어떻게 하면

“크하하하! 살고싶다면 네놈들이 가진 모든 걸…!”

“조져!”

“예!”

이름 모를 산속에서 한창 영업 중이던 산적 열다섯이 단숨에 묵사발이 되 어 일행의 뒤편에 따라붙었다.

“산채 찾아!”

“예!”

굴비처럼 엮어 다니는 산적들 때문에 숫자가 불어나 영업조차 포기하고 산채에 콕 박혀 있는 산적들은 산채까지 직접 찾아가 박살을 내주었다.

“난 얘 네 들 관아에 넘 기고 올 테 니까 다들 쉬 고 있어.”

“예….

그렇게 모은 산적들은 백우진이 직접 인근 현 관아에 넘기고 보상금을 챙겼다. 그 돈으로 건량이나 하루 맛있게 먹을 식량을 잔뜩 챙 겨 야영을 준비 하고 있는 조원들에 게 돌아가 안겨주었다.

“음,좋아.

마석의 정화할시간을 벌기 위해 그들에게 산적 토벌을 명령했지만, 오로 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겸사겸사그들에게 전투 경험을 채워주고 싶었다. 소수로 이루어진 신룡 조인 만큼 적은 수로 다수를 상대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칠 예정이다. 산적은 기본적으로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인 만큼 경험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에 매 우적합했다.

실제로 그들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숙련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수를 상 대하며 본신의 무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을 넘어 인근에 있는 동료의 위치 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합공하거나 적들을 갈라놓는 등의 움 직 임에도 능숙해졌다.

“헤,헤헤.”

“이제 마지막 산하나만 넘으면 학관이다아….”

강행군을 거듭한 탓에 그들의 정신 상태가 아주 조금 미묘해지긴 했지만, 원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법 아니던가.

‘마석 정화도 순조롭고….’

내단에 가득들어차있던 마기도제법 많이 정화되었다.학관에 도착할즈 음이면 소량의 마기만이 남아충분히 소유권을 주장할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는 했 다.

바로 당선영이다.

‘대체 왜 저러는거지?’

백리산을 떠난 이후로 그녀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만 다가가면 금세 멀어지고, 눈을 마주치려 하면 고개를 돌린다.

충동적인 하룻밤 분위기에 부끄러워 하는 거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건 또 아니 다.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얼굴에 선 그 어 떤 부끄러움이 나 창피 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렵다, 어려워….”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훨씬 더 긴 강호행의 끝을 알리는 정무학관의 커다 란 대문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이다!”

“따뜻한 물, 물을 다오!”

가장 뒤쳐져 있던 장삼과 구왕수가 앞으로 치고나갔다.

“저놈들 봐라.”

힘 들다, 힘 들다 노래 를 부르더 니 아무래 도 꾀 병 이 었나 보다. 다음 훈련에 꼭 참고하리라.

여인들의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기실 그녀들이 야말로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으,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저,저도요….”

출입문을 지키는 경비 무사에게 생도패를 보여준 뒤 학관에 들어서자 근 처를 지나다니던 생도들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야, 쟤네.”

“꼴이 왜 저러는거야?”

“누구한테 쫓기기라도했나.”

그만큼현재 그들의 인상이 강렬한탓이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 꼬질꼬질하기 짝이 없었고, 몇 번이고 거듭된 전투로 인해 여기저기 찢어져 누더기가되기 일보직전인 무복을 걸치고 있었 다.

창피함 때문에 빠르게 기숙사로해산할 법도하건만, 지난며칠간군기가 확립된 이들은 한곳에 모여 백우진의 명을 기다렸다.

“다들 정말고생 많았다. 사흘 정도푹쉬고, 나흘째 아침 회의실에서 모인 다.”

자, 해산.

말이 떨어지기가무섭게 조원들이 흩어졌다.유일하게 아직 자리를 지키 고 있는 이는 당선영 뿐이었다.

“당 소저.”

이때다 싶어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고생했어.그럼나도이만.”

다시 한번 그녀를 불러세우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뒤로 돌아선 그녀의 뒷모습에서 더 이상다가오지 말라는듯한기세를 풀풀 풍기고 있었기에.

“난감하네, 정말.”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 자신이 실수한 부분이 있나 싶어 몇 번이나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완벽했다.

당선영의 얼굴은황홀함에 물들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한 참을 붙어 있다가 떨어져 헤어지는 순간까지 쭉 그러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뒤, 아침에 마주했을 때부터 그녀는 달라졌다.

“그짧은사이에 대체 무슨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그 잠깐의 헤어짐 사이에 있었던 그녀의 모습을 훔쳐볼수만 있다면 유료 결제를 하고서 라도 보고 싶은 심 정 이 다.

“에효.”

한숨이 절로 나왔다. 원래 성격 같으면 저러다 말겠지 하고 그냥뒀겠지만, 그녀에 게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여인 중 유일하게 ‘백우진’이 아닌 자신과처음 만나 인연의 기틀을 맞이한 여인이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 었다.

“나중에 얘기해 봐야겠지….”

고백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차인 듯한 느낌에 백우진은 씁쓸함을 감 추지 못한 표정으로 터덜거리며 제 기숙사로 향했다.

|  |..

!...

.........

.....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힘들고 고단했던 순간들도 결국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듯, 모든 순간이 결국 시간 앞에 서는 희석되 고 바래 기 마련이 다.

기숙사의자에 앉은 그녀는 문득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시간이 약이라면,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이 아픔이며 고통, 그리움이 나 애절함 같은 것들은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나아질 수 있는 걸까.

‘잊지 못하겠지 ….’

잊기 위 한 노력 이 라는 것도 필요하다. 머 릿속에 가득 찬 생 각을 덜어내 고, 떨 쳐 내 야 할 부분은 억 지 로라도 떨 쳐 내 야 하건 만.

그녀는 그런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추악하고 저 열한 생각인 줄 알면 서도 그와 함께 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기를 꿈꾸고 또 바라고 있다.

차디찬 겨울은 그녀의 삶을 돌아볼 좋은 기회 였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욕망 자체가 잘못되 었다 여기지는 않았다.

보다 높은 자리 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 게 나 있다. 다만,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방식이며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는것이 그녀의 잘못이었다.

스스로 올라서 면 되 는 일이 었다. 무가의 여 인으로 태 어 났으니 부단히 도 노력하고 단련하여 남들이 우러러볼 경지에 올라서면 그만인 일.

자신의 무재 가 하늘까지 닿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해보지 않은 채 그저 쉬운 길을 택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 다.

진정 소중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부 잃어버렸다.

그는, 백우진은 이제 하늘에 뜬 찬란한 태양이 되었다. 그토록 인내하고, 감내 한 끝에 스스로 높은 곳에 올라갔다.

“차라리 과거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

그랬다면.

뒤늦게 용서 라도 구할 수 있었을 터 인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되 었다.

지 금 용서를 빌면 그는 과연 뭐 라고 생 각할까. 이 여 자가 후회 하고 내 게 용서를 구하러 왔구나 생각하기 보다, 강해지니까 뒤늦게 찾아와 꼬리를 흔 든다고 생각할 테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실수를 저질렀으니 이제는 포기해야 한다는 마 음과그럼에도 도저히 놓을수 없다는 마음이 매일 같이 전쟁을 치렀다.

마음이 황폐해졌고, 그것은 겉으로도 드러나게 되었다.

정무사화라는, 학년별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한 명에게 주어지는 별호가 무색할 정도로 초췌해졌을 때.

백우진이 이끄는 신룡조가 오래전부터 모두가 경원시했던 마물 토벌을 성공리에 끝마치고 금의환향 했다는 소문이 그녀의 귀에도 들려왔다.

“가가….”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칭호를 입에 담으며, 그녀는 그를 떠올렸다.

자신과 헤 어진 이후, 매 일 같이 성 장을 거듭한 그가 지금은 또 어 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화가 났다.

‘적어도 상상 정도는…!’

제 마음대로할수있는 것이 상상일진대, 그것마저 제대로하지 못한다는 것이.

분노는 충동심을 낳았고,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의 몸을 강제로 일으켜 세 웠다.그리고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백우진이 마물로 변한 영물을 잡았대!”

“들었어. 증거로 영물에게서 나온 내단을 제출했다지 ?”

“내단이라니, 완전히 빼도박도못하는증거잖아.”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백우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사이, 그는 또 한 번 학관을 떠 들썩하게 만들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중에서 백우진을 어디서 보 았다는 이야기에 집중하여 그의 위치를특정하는 데에 성공한뒤, 무작정 그 에게로 향했다.

“정말대 단해!”

“영물은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조금만 얘기해주라!”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있었다.

여러 뒤통수 사이로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올 정도로 보고 싶었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소룡회 에 서 보았던 때와는 또 달라진 그의 모습이 가슴에 틀어박혔다.

‘정말 많이…, 달라졌네요.’

동갑임에도 동생 같은 분위 기를 자아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완연한 사내로 변모해 있었다.

백우진을 둘러싼 인파에도 끼지 못한 채, 이따금 보이는 얼굴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거리.

남보다 못한 사이 가, 자신과 백우진 사이 에 놓인 거리 였다.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 한켠이 산산조각이 나 온데간데없이 사 라졌다.

남은 것은 이기적인 욕망뿐.

‘어떻게 하면….’

이 거리를 다시 좁힐 수 있을까요.

타는 듯한 갈증이 일었다. 그의 시선, 음성, 미소, 손길을 보고, 듣고, 느끼 고파 온몸이 메말라 비틀어질 것만 같다.

‘어떻게 하면.’

텅 빈 눈동자에 탐욕, 열망, 소유욕과 같은 음습하고 끈적끈적하고 추잡 한 것들이 급속도로 차올랐다.

대체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주는 그 눈길이며 미소를.

‘다시 내게로 향하게 할 수 있나요?’

그녀, 유화연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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