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한껏 부풀린 당제우의 기세는 거세고, 거대했다. 절정은 이미 오래전에 넘 어선 듯했고, 지금까지 싸워본 생도 중 가장 강했던 명진보다도 몇 수는 앞서고 있었다.
‘약한 게 더 이상하긴 하지.’
오대세 가 중 일좌인 사천당가의 가주에 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당선영의 호위 가된 자다.
중원 무림의 수많은 무가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가문을 이끄는 가주의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그의 실력은보증되었다고보는게 맞을 터.
당제우의 신형이 검은 연기처럼 흩어졌다.용독술과 암기술외에 당가의 자랑으로 손꼽히는 보법이 펼쳐졌다.
쐐애액!
삐리릭!
어둠 속에 녹아든 그가 손을 흩뿌릴 때마다 다종, 다양한 암기들이 밤하 늘을수놓았다.
그중에는 시야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들도 있었으나, 눈만이 아닌 오감을 통해 날아드는 암기의 위치를 파악한 백우진은 막힘없이 검을 휘둘 렀다.
“당가의 보법이 일절로손꼽힌다더니,과연.”
백우진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가 보여주는 보법에 감탄했다.
독과 암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당가의 무인들은 서로의 코앞에서 칼을 맞 대는 다른 무인들과는 반대로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그렇기에 당가는 사천에 뿌리를 내린 이후 경신법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오랜 세월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보법과 신법은 당당히 무림의 일절로 손꼽히게 되었다.
밤과 함께 내려앉은 어둠은 당가의 경신법을 더욱 살려주었다.
흑의무복이 자아내는 착시 현상의 일종인 검은 아지랑이를 흩뿌리며 끊 임 없이 백우진의 주변을 압박하던 당제우가 별안간 우측에 서 나타나 단검
을 휘둘렀다.
카앙
검을들어 막기가무섭게 녀석은 어둠속에 몸을 숨기기 위해 재차보법을 운용했다.
허나 백우진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자꾸어딜가려고 그래.”
제법 애를 먹기는 했지만, 신묘한신법에 적응되기 시작한두 눈은그가사 라지는 순간 체중이 이동하는 방향을 포착할 수 있게 되 었다.
아지 랑이처럼 흩날리는 흑색 연기가 흩어져 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인지하 고 검을 내질러 녀석의 보법을 끊어 눈앞에 붙잡아 두었다.
“••••••!”
보법을 파훼 당한 당제우의 커다래진 눈으로부터 당황한 기색이 전해졌 다.
그가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 었다.
커다란 바위 가 가로막고 있는 시 냇물처럼 졸졸 흐르던 백우진의 기세 가 어느 시점부터 끝도 모르고 부풀어 오르는 것은 보았기 때문이 다.
“우웃…!”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세가 덮쳐오자 당제우는 재차 보법을 펼쳐 뒤 로 훌쩍 물러났다.
삼장은족히 떨어져 있음에도 이곳까지 기세가 여실히 전해졌다.
“•••네놈은 누구냐.”
당제우는 눈앞의 사내가 백우진의 겉가죽을 뒤집어쓴 다른 누군가일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 년 차에 접어든 그가 뼈를 깎고, 피를 토하며 이룩해낸 경지가 절정 중 입경이다.
이는 내로라하는 후기 지수들이 모인 학관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대 단한 실력이었다.
헌데.
“어떻게 이 년 차생도가절정 상입경을바라본단말이냐…!”
백우진이 내뿜는 기 세는 그 이 상이 었다. 완연한 상입의 경 지 라 보기 엔 손 색이 있어 보이나, 중입으로묶기엔 백우진과 당제우 사이에 제법 커다란 간 극이 벌어져 있었다.
“글쎄?”
익 살스러운 표정으로 어 깨를 으쓱이는 백우진.
만만하게 보였던 상대의 몸집이 단숨에 부풀려졌다.
조금 전과 같은 신경을 거슬리는 말투와 몸짓에도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그의 눈에는 백우진이 다른 무언가로 보이 기 시작했다.
‘이건마치…!’
당제우는 살면서 단한번, 동년배에게 지금과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제 사 년 차에 접어들었으며, 입관 당시부터 압도적 인 실력으로 파란을 일으켜 모두의 주목을 받더니, 이제는 다른 생도들과의 차이가 너무나도 벌어져 천외천이라 불리게 된 독고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 불리는 그가, 백우진에게 덧씌워졌 다.
‘네놈이 독고천과 같은 괴물이 란 말이냐.’
이 년 전, 그는 우연하게 성사된 독고천과의 비무에서 처참한 패배를 경험 했다.
그때의 기억이, 치욕감과 함께 되살아났다.
백우진의 기세에 억눌려 있던 마음에 반발심이라는 거센 폭풍이 몰아닥 쳤다.
‘똑같은 치욕을 반복할 성싶으냐!’
이를 악문 당제우가 제 앞섶을 풀어 헤쳤다. 풀려나온 옷자락 안으로 헤아 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암기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치욕스러운 패배를 경험한 이후, 자만심을 모두 내려놓은 그는 절치부심 하여 더욱높은 경지에 올라섰고, 당가에서는 이를 치하하기 위해 그에게 비 기 하나를 내 어주었다.
비기를 수련한 이후, 실전에서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는 독 고천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껴두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라 고판단했다.
“흡!”
당제우는 짧게 숨을 들이키며 제 몸을 맹렬하게 회전시켰다.
사람의 모습을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강한 회전력이 생겨나 하나의 작은 태풍처럼 보이기 시작할때쯤.
그곳에서 암기가 쏟아지 기 시 작했다.
회전력과 덧씌워진 검기에 의해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 한 힘을 내포한 채 였다.
‘야단났네.’
일말의 위 기 감을 느낀 백우진은 어느새 진지 한 표정으로 암기 들을 쳐 내 기 시작했다.
카앙 콰앙
어마어마한 힘과 기운이 실린 탓에 검으로 쳐낼 때마다 손목이 시큰거린 다.
‘저 한수에 모든걸 걸었구만.’
수십의 암기 가 쏟아지고 있다. 또한 저토록 맹렬한 회 전력을 만들어내 기 위해 내공을 뭉텅뭉텅 끌어다 쓰고 있을 터 .
저 비 기 가 끝나는 순간 당제 우는 숟가락 하나 들 힘 조차 없을 테 니 바꿔 말하면 이걸 막아낼 수 있으면 백우진의 승리고, 아니면 당제우가 승리를 거 머쥐게 된다는 뜻이 었다.
실전에서 이를 펼치면 끝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을 테니 이것이 야말로 필살기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최고로 적합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면 나도 한 수 꺼내 야겠지.’
본디 비 기 에는 비 기 로 맞서 야 하는 법.
검을 곧추 세운 백우진이 내부의 기운을 전부 끌어다 방출했다.
마침내 해방이라는 듯,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나온 기운들은 투명한 벽에 가 로막힌 것처럼 일정 공간에 머물렀다.
용봉 비무제에서 남궁수에게 선보였던 공간검의 발현이었다.
이윽고 멈춰 있던 걸음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쏟아지는 암기들은 더 이상 백우진에게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느릿 하게 움직인 검이 쏟아지는 암기의 경로들을 효율적으로 차단하여 일체의 침입을 불허했다.
‘뭐,뭐냐. 저검술은대체…!’
맹렬한 회전 속에서도 백우진을 또렷하게 지켜보고 있던 당제우가 속으 로 비명을 내질렀다.
느릿하게 움직 이는 검 이 빛살처럼 빠른 자신의 암기들을 모조리 막아내 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검이 대체 자신이 쏘아낼 암기의 방향을 어찌 알고 먼저 움직여서 막아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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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으아아!”
작은 태풍속에서 거센 비명이 들려왔다.
비 기 가 끝난 후 운신할 여 력 정 도는 남겨 두었던 당제 우가 사력 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전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고, 쏘아내는 암기는 더욱 매서워졌다.
허나 닿지 않았다. 그의 걸음을 조금 더 늦추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것 이 전부였다.
거대하게 부풀려진 백우진의 검이 어느새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그대로 휘둘러진다면 자신이 반으로 갈라지게 될 터.
“죽어라!”
자신 또한 그를 죽이기 위한 살수를 마음껏 펼쳤으니, 그 또한 자신을 죽 이지 않으리 라는 보장은 없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당제우가 마지막 한 수를 발휘했다. 옷자락을 털어 마지막 남은 암기들을 일시에 쏘아낸 것이다.
‘됐다! 이 거리라면…!’
그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 놀라운 검술도 코앞에서 쏟아지는 암기를 모조리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제법 많은 암기들이 백우진의 팔, 다리, 얼굴 등 신체 곳곳을 스치 고지나갔다.
“아, 아니…!”
말 그대 로 스치 고 지 나갔다. 위 험한 곳으로 날아오는 건 모두 쳐 냈고, 비 교적 위험도가 낮은 곳은 과감하게 포기한 선택과 집중 덕분이 었다.
제법 강한 독이 묻어 있었는지, 상처가 보라색으로 물들어 주변을 서서히 물들여 갔지만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어느새 멈춰버린 당제우 앞에 백우진이 우뚝 섰다.
조금 전부터 계속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던 미소가 만면에 가득했 다.
“내기 기억하지? 석달이다.”
남아일언 중천금이 야.
그 말과 함께 백우진은 쥐고 있던 검을 내 려놓았다. 그리고 구왕수를 이용 하여 단련한 권각술로 당제우의 전신을 잘근잘근 밟아주었다.
“꼬아아악!”
혹시 약속을 어길 수도 있으니 최소 석 달 정도 의방 신세를 질 정도로 다 져놓았다.
…
당선영은 제 눈앞에 드리운 얼굴을 보고도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할수가없었다.
‘꿈인가…?’
생각해 보면 조금 전부터 몽롱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얼마나 보고 싶 었으면 꿈에 서 백 우진이 튀 어 나오나 하는 생 각에 자조 섞 인 표정으로 웃고 있을 때, 어느새 창문에 걸터앉은 그가 팔을 뻗어 당선영의 볼을꼬집었다.
“ 아!”
짧지만 강렬한통증이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꿈아니니까 정신 좀 차려봐.”
힘 겨운 몸짓으로 창문을 넘 어 방 안까지 침 입 한 백우진이 곧장 침 상에 드 러누웠다.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 일단 나 치료 좀.”
“하아…?”
그제야 백우진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는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으나 전부 보라색, 녹색으로 물든 것으로 보 아독에 당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그녀는 곧장옷장을 열어 온갖 해독제 가 담긴 보따리를 꺼내 들었다.
침상에 걸터앉은 당선영은 백우진의 상처 주변에 흐른 피를 손가락으로 콕찍어 입에 가져갔다.
비 릿한 맛과 함께 알싸한 맛이 느껴 졌다.
“청사독….”
당가에서 특별히 사육하여 뽑아내는 청사의 독이 어찌하여 그의 몸에 남 아 있단 말인가.
그녀는 곧장해독제 하나를 꺼내어 백우진의 입에 가져갔다.
“아해.”
“ 아.”
벌어진 입속으로 해독제 가 흘러 들어갔다.
“웩,맛없어.”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에 당선영은 저도 모르게 살포시 웃고 말 았다.
그리웠다. 저얼굴, 표정, 말투가.
잠시라도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만끽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애 써 미련을 떨쳐내고 그에게 물었다.
“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그러 자 백 우진의 장황한 소설 이 시 작되 었다.
“아니,내가 당소저한테 가려고길을걷는데 웬 이상한놈이 여자기숙사 에서 불쑥 튀 어나오는 게 아니 겠냐고.”
그녀의 안색 이 살짝 굳어졌다. 조금 전 이곳을 빠져 나간 것은 자신의 호위 이자 감시자였다.
“그래서 내가 그놈 목덜미를 딱 잡았더니 글쎄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다 짜고짜 공격을 해오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묘한 기대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당선영.
백우진은그런 그녀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묵사발을 만들어줬지. 아마 당분간은 꼼짝없이 누워서 지내야 할 거야.”
한석달정도.
“하:
그녀의 입에서 기묘한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 각지도 않게 찾아온 일말의 자유를 기 뻐하며 받아들여 야 할지 , 아니 면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걱정하며 오들오들 떨어야 할지 모르겠다는표정이었 다.
“그래서 말인데, 당소저. 우리 여행이나갈까?”
한석달정도.
“ 아하하하!”
당선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과는 달리, 순수한 기쁨과환희로 가득 차 있는 소리였다.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서 갑갑하게 일 년을 더 보내 다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화끈하 게 그와 여행을즐긴 뒤 돌아가는 게 더 기억에 오래 남을 테니.
"좋아. 어디로 갈 거니?’,
깔깔대며 웃느라눈물까지 맺힌 그녀가눈가를 훔치며 묻자, 백우진은 기 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았다.
“사천.”
좋았던 그녀의 표정이 단숨에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