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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85화 (85/215)

<85 화〉사천당가

아무리 늑장을 부려도 한 달이면 충분한 사천행의 여정을 석 달로 잡은 만 큼, 백우진은 하오문의 정보를 토대로 직접 추린 지역들을 모조리 찾아가 그 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강행군을 거듭한 끝에 신룡조는무려 네 마리의 마물을 토벌하는 데에 성공했다.

마물을 전문적으로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림맹 멸마대(滅魔隊) 소속 한 개의 조가 한 달에 한 마리에서 두 마리 정도의 마물을 토벌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학관 생도로서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을 달성한 것이 나 다름없었으나, 그들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인정할수밖에 없겠어.”

“네 …. 아무래도 마교가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발견한 네 마리의 마물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하나 같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도 입구가 절묘하게 가려진 동굴에서 발견 됐다는 점과 동굴의 입구에 소리와 기척을 차단하는 소음진이 설치되 어 있 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무림 에서 암약하는 마교의 광신도들이 인간이 나 동물을 마기 에 물들여 평소처럼 인간들을 마음껏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숨겨두고 있다는 것

“분명 마인이나 마물은중원에 혼란을주기 위해서 만드는거 아니었나?”

“맞아요….”

신예화의 물음에 제갈연지가답했다.

그들이 적지나 다름없는 중원에 숨어들어 마인이나 마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평화로운 중원에 혼란을 야기하기 위함이다.

마인이 출현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치 안은 나빠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공 포가 각인된다. 그리고 그 공포는 무인들에게도 전염되 어 하루가 멀다고 전 투가 벌어지는 청해성으로 향하는 무인들의 숫자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 다.

지금이야의기 넘치는 무인들에 의해 전선이 고착화된 상태지만, 이대로 가면 언제 청해성이 뚫리고중원 전체가전쟁의 화마에 휩싸일지도모를 일 이다.

“숨겨두는 이유는 결국 하나겠지.”

백우진의 옆에 딱 달라붙어 신예화와 제갈연지의 눈초리를 사납게 만든 당선영이 말을 꺼냈다.

“한번에 확터뜨리기 위해 모아두는 거밖에 없잖아?”

마인 한 마리는 주변에 작은 혼란을 야기할 순 있어도 거대한 혼란을 야 기할수는 없다.중원 각지의 무림맹 지부와 멸마대 소속무인들이 눈을 시퍼 렇게 뜨고 있는 한은 말이다.

그렇다면 한 마리 가 아니 라 수십 , 수백 마리 가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난다 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온몸을 잠식할 것만 같았는지, 조원들의 몸 이 한차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이상하지 않소?”

경지가 가장 뒤처진 탓에 토각귀 토벌 이후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 있던 장삼이 몸을 일으켰다.

“기실 그것이 지금보다 나은 방법임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그러는 이유가 있지 않겠냔 말이지.”

장삼의 말에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대 로 마물은 한 마리 씩 간헐적 으로 나타날 때보다 수십 , 수백 이 한 꺼번에 나타날 때 비로소 더욱 강력한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그러지 않다가 이제야 마물들을 숨겨놓기 시작 했다. 예전과지금, 대체 무엇이 달라졌기에 그들의 방법이 바뀌기 시작했을 까.

골똘히 생각하던 백우진의 머릿속에 아찔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물을 제어할 방법을 찾은 거라면.”

“아…!”

“헉!”

마물은 기본적으로 이지를 상실한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피를 탐하는 살육의 본능 뿐, 누군가의 명을 따라 움직일 정도로 높은 지능을 보 유하고 있지 않다.

그것이 지금까지 마교도들이 마물들을 숨겨둘 수 없었던 이유다. 주변에 작은 동물 한 마리만 지나쳐 가도 불구대천의 원수를 발견한 것처럼 달려드 는 놈들을 모아둘 방법 이 없었던 것이 다.

헌데 백우진이 발견한 마물들은 조금 특이했다.

동굴 입구에 진법이 펼쳐져 있다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안에서 발생 한 소음이나 기척을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잡아두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동굴 안에 있던 마물들은 백우진을 비롯한 신룡조가 동굴 입 구에 다가선 순간 그들의 인기척을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뜻이 된 다.

그럼에도 녀석들은 선공을 가하지 않았다. 제갈연지의 손에 의해 진법이 해체되고 나서야 그 육중한 몸을 일으켜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와 그들을 공격 했다.

“마물들에게 미리 명령을 내린 거겠지.진법이 해체되기 전까진 밖으로 나 오지 마라, 라고.”

백우진의 설명을 들은 조원들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렇다면 어, 엄청 큰일이 난 거잖아.”

“으음…, 만약모든 마물들이 마교도의 명령을 따라모인다면 ….”

“•••대, 대학살이 벌어질거예요.”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마교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무자비한 살육을 벌이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야말로 생 지 옥이 나 다름없는 모습이 리 라.

“다, 당장 무림맹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해요.”

“맞아. 빨리 알려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야.”

제갈연지와 당선영이 백우진의 선택을 종용했다.

“가장근처에 있는 무림맹 지부는?”

“•••사천의 성도가 가장빠를 거야.”

이를대답하는당선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성도. 그곳에는 무림맹 지부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토록 가기 싫어하는 사천당가의 본거지이 기도 했다.

넓직한 바위에 앉아 있던 백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마물 사냥은 끝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성도에 다다를 때까지 강 행군을 이어갈 테니 다들 각오하도록.”

“예!”

평소였다면 누구 하나쯤 불만어 린 표정을 지 었겠으나 사태의 심 각성을 파악한 만큼, 모두가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조원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열다섯 곳에서 무려 네 곳에 마물이 숨어 있었다. 심 지어 이들 모두가학관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목에 포진되어 있었으니,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대체 몇이나 되는 마물이 몸을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조원들은 지쳤다는 말을 쉬 이 꺼내지 못했다. 휴식을 취하는 고작 몇 시간 차이로 큰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이 를 받아들이 지 못한 탓이 었다.

“오늘은 여기서야영한다!”

그 탓에 백우진의 책임이 더욱 막중해졌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조원들 중 누구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돌보며 휴식 시간을 조율해 야만 했으니.

이제는 몸에 익은 덕분에 야영 준비를 빠르게 끝마치고 건량으로 식사를 해결한 이들은 금세 곯아 떨어졌다.

“하아….”

오로지 불침번인 제갈연지만이 하염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 었다.

‘백 공자와독거미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졌어….’

학관을 떠나기 전, 그녀는 백우진으로부터 당선영과 당가에 대한 이야기 를 대 략적으로나마 전해 들었다.

그녀가 몹시 좋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고, 이로 인해 무척이 나 괴로워 한다 는 것.

제갈연지 또한 가문 내에서의 취급이 나쁜 편이었기에 그녀의 아픔을 이 해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백우진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싫었다 •

그녀가 고립되어 있다는 것도, 지금까지 고통을 참아오기만했다는 것도 모두 이해하고 동정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으으….”

질투심 이 자꾸만 몸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당가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가 만히 보지 못한 백우진은 그녀를 가까이에 두었고, 두 사람은 언제나 한눈에 잡힐 정도로 딱 달라붙어 있었다.

자신 이 자꾸만 처 량하게 느껴 졌다. 백 우진과 유화연 이 함께 있는 모습을 훔쳐보기 만 하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달빛 아래 에 서 용기 내 어 좋아한다 말하고, 서로의 몸을 끌어 안았던 그때 가 꿈처럼 느껴 졌다.

“우으으….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무릎을 당겨 양팔로 끌어안고 머리를 깊숙이 집 어넣고 소리를 최대한 죽 인 채 눈물을 흘려냈다.

훌쩍! 훌쩍!

대책 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훌쩍 이고 있을 때였다.

...

!...

.....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게 느껴지자그녀는 황급히 소매로 얼굴에 번 진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이윽고 걸음이 그녀의 앞까지 당도했다.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됐네.”

그녀가 우는 소리에 얕은 잠에서 깨어난 백우진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붙잡아 내리고 , 다른 한쪽 손으로 퉁퉁 부은 눈을 어루만졌다.

“많이 서운한가 봐.”

다정한 음성이 귀에 닿을 때마다속절없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이건…, 이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 또한 찬성한 일이었고,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도 생겼으니 자신의 마음 따위는 그 뒤로 미뤄 야만 했다.

그래 야만 하는데,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불안에 떠는 당선영을 보듬어 주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제갈연지에게 신경을 쏟을 시간은 줄어들었다.

미안해.

그녀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말을 이었다.

“나, 당 소저를 좋아해.”

그의 말 한마디에 제갈연지의 눈에서 느껴지던 생기가 급속도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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