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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87화 (87/215)

<87 화〉이리오너라

감정이 고조된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고요한 숲속을 타고 흘러 잠든 이의 어 두운 귀에 닿기에 충분했다.

비록 깊은 잠에 빠져든 두 사내는 듣지 못한 모양이 나, 당선영과 신예화는 어느새 잠에서 깨어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욕심 많은 남자가 맞네.’

거기에 뻔뻔하기까지 하다.능력 있는 사내가삼처사첩을 이루는 게 대수 로울 게 없는 세상이라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내로서의 관점일 뿐 여 인의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사내에게 제 모든 애정을 아낌없이 내주었음에도 전부가 아닌 일부로 써 보답받는다. 이 얼마나불공평하고, 불합리한처사인가.

‘하지 만 어 쩐지 …, 제갈소저의 답을 알 것 같은걸.’

둘만의 애틋한분위기 속에서도 질투심은 들지 않았다. 다만, 생각해보았 을뿐이다.

그는 말했다. 자신을 좋아하고 있노라고. 그렇다면 지금 그의 고백이 언제 고 자신에 게도 찾아올 거라는 뜻이 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금 제갈연지가 서 있는 자리에 자신을 대입시켜 보았다. 과연 나라면 저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하게 될까.

답을 도출해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또 한 자신과 대 답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 라 확신했다.

‘누가 저 사내를 안좋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흠이라면 그와 함께 할 여인의 수가 자신과 제갈연지로 끝날 것 같 지 않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는 것 정도일까.

허나 그녀는 백우진을 믿었다. 그의 주변에 얽힐 여자관계 가 어떻든 다른 여자에 게 빠져 자신을 찾지 않을 일은 없으리 라고.

‘그렇게 만들자신도 있고.’

만에 하나 그가 다른 여자에 게 빠져 자신을 찾지 않게 된다고 하더 라도, 그를 되찾아올 자신 또한 있었으니.

짙은 고요 속에서 떨리는 음성이 전해졌다.

“저, 정말로…, 평생 곁에 두실 건가요?”

“으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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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음성이 뒤 따랐다.

옷자락이 휘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연지가 달려들어 두 사람이 서 로 껴 안게 되 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조,좋아요….”

너무, 너무 좋아요.

눈물기 섞인 목소리 가 가슴에 닿아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두 사람이 안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질투심이 살짝 올라오긴 했지만, 속 시원히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은 자신일 테니.

“왜,왜그래요…?”

“아니, 갑자기 오한이 살짝….”

백 우진은 등골이 오싹해 졌다.

당선영이 행복한 상상속에서 이를듣고 있는 반면,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 있던 신예화는 눈물로 제 옷소매를 모조리 적셔가며 울분을 삭여야만 했다.

‘왜,왜….’

단어 몇 개로는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분명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어느덧 너무나도 먼 사이처럼 느 껴진다.

가장 앞서 달리고 있었는데 잠깐 길을 헤맨 사이에 일직선으로 달려온 후 발주자가 자신의 등수를 꿰찼다.

“우진아, 우진아아….”

들리지 않을 소리로 연신 그의 이름을 부른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 었다. 자신이 헤매는 사이 그가 너무나도 달라져 버 렸기에. 그만큼 멀어졌기에.

아플 것을 예상했지만, 상상보다 더 큰 아픔이 뒤따랐다.

좋아하는 이가 자신에게는 점점 거리를 두면서 다른 이와는 한없이 가까 워 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부터 터무니 없는 고통이 수반됐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고, 대침을 깊숙이 박아 넣는 것처럼 아프다.

‘이렇게 아픈데 …!’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이토록 아프게 만드는 대상에 대한 애정 이 전혀 식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 었다.

암울한 미래뿐이다. 그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가 문제지만, 설령 다시 관계 를 회 복한다고 해 도 그녀 에 게 남은 것은 한 사내 를 둘러 싸고 있는 여 인 들 틈바구니 에 끼 어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일뿐이 다.

집에서 오는 편지를 읽어보면 어느 가문에서 혼담이 들어왔더라, 하는 식 의 내용이 적혀 있을 때가 적잖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열렬히 사모한다는 말과 함께 평생 자신 하나만을 보며 살겠 다고 맹세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백우진을 포기한다면 분명 한 사내에게 온 전히 사랑받는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를못하겠는 걸 어떡하라구!’

문제는 저 참담하고 참혹한 현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그가 많은 여인 중 자신에게 한 번 손길을 내어주는 모습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어떻게 ….’

이미 그녀의 생각은 전환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의 울타리 안에 들어 갈 수 있을지, 오로지 그 생 각만으로 가득 차올랐다.

엇갈리는희비 속에서 밤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길을 떠나 마침내 당도한 거지 패거리와 같은 모습 을 한 신룡조가 마침내 성도에 다다랐다.

그 꼬질꼬질한 모양새 에 주변을 지 나가는 사람들마다 화들짝 놀라 코를 틀어 막고 도망치 기 일쑤였다.

일단 몸에 가득 쌓인 피로와 땟국물을 벗겨내는 게 우선이겠다 싶어 객잔 에 들렀더니.

“거지 새끼들이 방은 무슨! 당장 안 꺼 져 ?!”

탐욕이 꽉꽉 들어찬 살이 푸들거리는 객주가 손에 침을 탁탁 뱉고 몽둥이 를 휘둘렀다.

참다못한 백우진은 싸늘하게 웃으며 품에서 정무학관의 생도임을 증명 하는 생도패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허 억!”

태세가 급변했다.

“아이고, 협객님들!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요!”

원래 가격의 반값에 별채 하나를 빌린 신룡조는 따뜻한물을 길어 몸을 단 정하게 한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기름진 음식들로 끼니를해결하고 이 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간소하게 차려진 식탁위로 하나둘씩 모여든 조원들을 보며 백 우진이 말했다.

“식사 마치는 대로 너희는 곧장 무림맹 지부로 가서 보고를 하도록 해.”

그렇게 말하곤 어젯밤 미리 토막을 내둔 마석 네 개를 꺼내어 제갈연지에 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하오문이 물어다 준 정보를 토대로 마물이 있을 만한 곳을 추려내 표시해둔 지도 또한 내주었다.

“검증이 필요할 거야. 여기에 표시된 지역 위주로 돌면 마물을 발견할 확 률이 높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고, 거기에 백호까지 데려가면 완벽하겠 지.”

그저 귀여운 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아기 백호가 놀라운 쓰임새를 발휘했 다. 그것은 마물 탐지였는데, 자신의 후각이 닿는 곳에 마물이 존재하면 곧 장 달려 가 그 위 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끼잉! 낑!

안락한 품에서 벗어난 백호가 돌아가려 안간힘을 썼다.

“백호야, 한 번만도와주라. 응?”

백우진이 간곡히 부탁하자 백호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발버둥을 멈추고 제갈연지의 품에 안겨주었다.

“하으…!”

제 품 안에서 고분고분 있는 백호의 귀 여운 자태에 제갈연지 가 달뜬 신음 을 내뱉었다.

가만히 이 야기를 듣고 있던 장삼이 손을 들었다.

“조장께선 당가로 가실 셈 이오?”

“어.그쪽도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거든.”

“으음. 내 점괘로보아하니 조장의 오늘운세가제법 사나웠소.오늘조장 의 행운의 색이 파란색인데….”

“밥다 먹었으면 치울까?”

나불대던 입에다 음식을 쑤셔넣기 시작하는 장삼.

그가 진짜 모산파의 후예 였고, 영혼까지 볼 수 있는 특이 한 능력 자임은 알 게 되 었지 만, 그의 점괘가 단 한 번도 맞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적당히 배를 채운 이들이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당선영과 백우진이 무리 에서 빠져나왔다.

“멸마대와 함께 움직일 테니 큰 위험은 없겠지만, 알아서들몸 챙기고.”

백호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제갈연지를 보았다.

“나 없는 동안은 제 갈 소저 가 조장 대 리 야. 조원들 잘 이 끌어줘.”

“네에….”

여전히 불만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일 끝나면•••,둘이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하자.”

그제 야 그녀 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힘 차게 끄덕 였다.

“저,저만 믿으세요!”

과도하게 흥분한 탓에 말까지 더듬었다.

그 다음으론 묘하게 풀이 죽어 있는 신예화를 보았다. 마물과 조우하게 될 경우 백우진이 없는 이상그녀의 역할이 무척 중요해졌다.

“예화.”

“으,응….”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잠시 의 아했으나, 거기까지 신경 을 쓸 겨를이 없었다.

“조원들 잘지켜줘. 너만 믿는다.”

그저 믿는다는 말한마디가왜 그리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래, 일단우진이에게 없어선 안될 중요한사람이 되는 거야.’

가장좋은건 애정으로써 없어선 안될 사람이 되는것이겠으나,그것이 당 장불가능하다면 그에게 가장 믿음직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리라.

새로이 마음을 다잡은 제갈연지와 신예화를 필두로 그들은 무림맹 지부 를 향해 나아갔다.

아기새의 아슬아슬한 비행을 지켜보는 어미새의 심정으로 그들의 뒷모습 을 지켜보고 있던 백우진의 옆구리에 당선영의 손가락이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흐응…, 대체 제갈 소저한테 무슨 말을했길래 저렇게 기운 넘치게 걸어 가는걸까…?”

아찔한 말투에 백우진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냥조장으로서 단순한격려 정도….”

“믿어줘야 하는거니?”

“그냥 넘어가달란 거지….”

“뭐…, 좋아.”

고개를 살짝숙인 백우진의 시야에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이 들어왔 다. 짐짓 괜찮은 척하고 있으나, 지금부터 당가로 향한다는 사실만으로 내심 긴장하고 있는 것이리라.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부드럽게 감싸쥐었다.

“•••고마워.”

그러자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손을 살짝 이끌자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사천당가라는 명가가 자리 잡은 만큼, 성도는 넓고 번화한 도시 였으나 천천한 걸음만으로도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했다.

잠시 멎었던 떨림이 재차 전해졌다. 불안정한호흡을 이어가던 그녀가 백 우진을 올려 다보며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계획 같은 걸 듣지 못한것 같은데….”

당가에 거의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그가 자신에게 목표만 말 해주었지,그에 따른 계획에 대해선 일언반구말도꺼내지 않았음을.

뒤늦은 물음에 백우진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일단부딪쳐. 그럼 답이나와.”

“뭐…?”

그녀 가 크게 당황하는 사이,백 우진은 빠른 걸음으로 어마어 마한 위 용을 자랑하는 당가의 출입문 앞에 당도했다.

“멈추시오. 그대는…, 응?”

대문 앞에 서서 손을 들어 백우진의 걸음을 제지한 당가의 무인은 그 옆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였다.

우뚝 멈춰 선 백우진이 복식 호흡을 하며 우렁찬 소리를 내뿜은 것은.

“이리오너라-!”

도착하기가무섭게 사고를치는그의 모습에 옆에 있던 당선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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