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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91화 (91/215)

<91화〉위기

사천당가의 손님 대접은 상당했다.

아주 넓은 방을 홀로 사용하면서 끼니마다 하나 같이 별미 라 할 만한 음식 들을 차려주었다.

심지어 언제쯤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도 없으니 이대로 살아도 무방하겠 다 싶을 정도.

나태해지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실제로 그는 다른 이들에게 나태한 사람 처 럼 보이 게 끔 행동했으나, 실제 로는 끊임 없이 머 리 를 굴리는 중이 었다.

“그러니까, 가주전에는 전담 시녀가 아니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니까요. 길을 잘못 들었다가쫓겨난 애들도 있어요.”

“에이, 고작 그런 걸로 쫓겨나?”

“원래 우리 같은 아랫것들처지가 다그런 거 아니겠어요.”

이 것저 것 잘 챙 겨주기는 하지 만, 행동반경은 제한되 었다. 이곳 객당이 내 당에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만 깊숙하게 들어가려고 하면 무사들이 나타나 그의 발길을 제 지했다.

그러니 지금의 그로선 끼니 챙겨주고, 방 청소해주는 시녀들이 유일한 정 보통이었다.

원래 부잣집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곳 주인보다 일하는 이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다. 그녀들과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법 쏠쏠한 정보들이 딸려 나왔다.

“다른재미난 얘기는 더없어?”

“아이 차암, 벌써 밤이 늦었는데….”

예 쁘장한 시 녀 가 몸을 배 배 꼬며 눈을 흘깃거 린 다.

그녀 에 게 서 어 떤 충만한 의 지 가 느껴 진다. 조금만 손을 대 면 그대 로 뜨거 운 밤으로 이 어질 것만 같은 분위 기 가 조성되 기 시 작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럼 얼른 가봐야겠네.”

“뭐,뭐라구요?”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쪽을 유혹하기 위한 시녀의 행동이 무척 이 나 어색하고 딱딱한 걸로 봐서는 그녀 또한 적잖은 결심으로 이곳에 온 것일 테 니 미 안할 만한 행동이 지 만, 백 우진은 그녀를 밀어 내 야만 했다.

“그럼 푹 쉬세요, 흥!”

이 쪽 보고 들으라는 듯이 콧방귀 를 뀌 며 문을 닫고 나가는 시 녀.

“휴우….

백우진이 작은 한숨을 내쉬는 사이, 문 반대편에 나 있는 창문에서 검은 인영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흐응, 의외네.”

뒤 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백우진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 보았다.

그곳엔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표정을 하고 있는 당선영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과한 동작으로 제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모양새에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 졌다.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아니? 전혀 아닌데?”

오리발을 내미는 그의 모습에 당선영이 살포시 웃으며 다가와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그리곤손을 들어 흐트러진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궁금하네.”

“뭐가.”

“우리 백 공자님께서 왜 저 여인을 마다했을까.”

백우진이 라면 분명 자신이 근처 에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 다. 만약 그가 자신의 존재를 몰랐다면과 같은 가정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사내를 잡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

그녀는 그저 자신의 물음에 그가 어떤 식으로 답할지가궁금했을뿐.

향긋한 냄새가콧속을 가득 메웠다. 여기에 취하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몸에 두른 기운을 풀어내고 짐승이 되 어 그녀와 뒹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만큼 그윽하고 감미로웠다.

“에이.”

백우진은 최악의 선택 대신 제 얼굴을그녀의 가슴위에 내려놓았다.

“어머.”

그녀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다.

백 우진은 가녀린 그녀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난임자가있는 몸이거든.”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대답에 속절없이 미소가그려졌다.

그의 뒷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던 손으로 제 가슴에 엎드려 있던 백우진 의 양볼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이대로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오늘 그녀가 심처의 삼엄한 경계를 뚫어내고 이곳까지 온 것은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 었 다.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그리고…,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입 가는 미소 짓듯 입 꼬리 가 올라가 있는데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슬 픔이 사무친다.

무릎 위 로 은근한 무게 감을 더해주던 그녀 가 자리 에 서 일 어 났다. 그리 고 백우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조용히 따라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곧장 지붕 위로 올라섰다.

“지붕위에 기관이나진법이 설치되어 있는곳이 있으니 내 뒤를잘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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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녀 가 먼저 하늘을 날았다. 백우진 또한 뒤 따라 반대 편 지붕에 안착했다.

내 당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갈수록 주변을 돌아다니 는 무사들의 수가 기 하 급수적으로 늘어 났다.

이곳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그녀가 아니 었다면 쉬 이 들어갈 엄두도 내 지 못했으리라.

제법 오랜 시 간 지붕 위를 내 달려 도착한 곳은 당가 뒤편의 산과 이 어지는 중간 즈음에 위 치 한 커 다란 전각 앞이 었다.

“여기는경비를서는 이들이 없네.”

고작 몇 장 앞까지만 해도 삼엄하게 깔려 있던 무사들이 이곳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사람대신 다른게 지키고있으니까.”

당선영의 뒤를 따라 전각의 문 앞에 도달한 백우진은 보았다.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기관진식과 진법을 말이다.

“이 안전체에 기관과진법이 설치되어 있어.그것도제갈세가에 막대한 금을 쥐어주고 부탁하여 만들었지. 제갈세가의 기관과 진법의 정수가 이곳 에 담겨 있다고해도 무방해.”

“확실히…, 엄청 위험해 보이네.”

전각을 바라보는 백우진의 육감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몰래 이곳에 들어가려 했다간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 거라고.

하지만 그의 옆에는 당선영이 있었다. 그녀는 아주 능숙한 손동작으로 문 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을 해체시켰다.

덜컥!

무언가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던 당선영이 애써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잡았다.

“들어가자.”

어둠이 짙게 깔린 문 너머로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밖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요상한 냄새들이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리자 당선영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냄새가 이상할 거야. 나도 옛날엔 냄새 때문에 무척 고생했거든.”

온갖 냄새들이 뒤섞여 있었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봐도 가히 좋은 냄새라 고 보기는 어려웠으나, 이것들이 한데 뭉치니 코가 비뚤어질 것만 같은 느낌 이다.

“이 냄새들은….”

예민한그의 후각은 이 냄새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해냈다.

당선영이 고개를끄덕였다.

“맞아. 온갖독이 만들어내는 냄새들이야.그래서 이런 외진 곳에 만들어 둔 거고.”

치익치익

그녀는 미리 챙겨온부싯돌을 이용해 벽과 기둥에 매달린 촛대에 불을 밝 혔다.

하나둘씩 불이 켜질 때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내부의 전경이 드러나 기 시작했다.

한쪽 벽에 작은 병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한눈에 봐도 가히 좋은 데에 쓰이 지는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다.

다른 한쪽에는 작은 우리에 갇혀 있는 새하얀쥐들이 어둠 속에서 눈을 빛 내고 있었다.

|  |....

!.

...

......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 지 않았다.

곳곳에 불을 밝힌 당선영이 다가왔다.

“눈치챘겠지 만…, 여긴 실험실이 야. 당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지.”

무엇을 실험하는지는 뻔했다.

“독을 연구하는 거구나.”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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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을 연구하는 것. 다른 가문이라면 무척이나 이질적이고, 이상하게 느껴 졌겠지만, 그것이 당가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이곳은 용독술과 암기술 로 정파 무림에 우뚝 선 가문이니까.

무인들이 강해지 기 위해 자신의 무공을 연습하고, 연구하듯 그들은 자신 들의 독공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독을 연구했을 뿐이니.

그것뿐이 라면 정 말 좋았겠으나, 이 퀘퀘하고 고약한 공간을 바라보는 당 선영의 눈빛에는 진한 슬픔과 회한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 있잖니….”

어렵사리 꺼낸 한마디에서 진한 떨림이 전해졌다.

“이곳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어릴 때부터 정무학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같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 내야만했어.”

그녀의 어깨가 들썩 였다. 한 자, 한 자 내뱉는 말에서 진한 습기가 느껴졌 다.

“이곳의…, 실험체로.”

“으아악!”

“끄헉!”

절규와 비명이 가득 찬 전장 속에서 신예화는 정신없이 월도를 휘둘렀다.

“하아, 하아…!”

하루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찾아낸 거대한동굴에서 나타난 것은무려 열 에 달하는 마인과 마물이 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명한의 존재로 인해 열이 넘는 마인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 라 생 각했지 만, 마지 막으로 나타난 마인의 존재 가 이를 모 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초절정에 이른 마인이라니.’

가장 마지막에 동굴을 나선 마인은 절정에 겨우 발을 걸친 수준이었던 마 물들과 달리, 고명한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전장을 휘젓는 순간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었다. 고명한은 이를 막아서기 위해 녀석과의 일 대 일 싸움을 시작했고, 남 은 마인들과 조사대원들이 맞붙기 시작했다.

고명한을 따라나선 네 명의 조장들은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 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조사대는 무려 아홉이나 되는 마물들을 상대로 질긴 싸움을 펼 쳤다.

신룡조 또한 마물 하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지금까지 연습한 대로 수비에 능한 제갈연지가 앞서 마물의 공격을 받아내고, 장삼과구왕수가 측면에서, 가장 공격력 이 강한 신예화는 주변을 서성 이며 조원들이 만들어준 완벽한 틈에 월도를 휘둘렀다.

“좋았어!”

“최고의 공격이었소!”

“자,잘했어요.”

허나 그들이 기뻐하던 것도 잠시 였다. 마물 하나를 잡는 데에 대부분의 힘 을 소모한 그들에게 또 다른 마물이 달려들었다.

“피,피해요…!”

제갈연지가 황급히 막아선 덕분에 다른 조원들은 무사히 물러날 수 있 었지만, 창졸간에 벌어진 기습을 막아낸 그녀는 적잖은 피를 토해냈다.

“쿨럭!

쏟아진 피의 색 이 까맸다. 이는 그녀가 내상을 입 었다는 의 미 였다.

신예화가 입술을 짓씹었다.

‘마음에 안들어!’

제갈연지는 백우진이 없는 신룡조를 제법 잘 이끌었다. 평소처럼 말을 잘 더듬지도 않았고, 무시무시한 기세를 뿌려대는 고명한을 눈앞에 두고도 해 야 할 말은 확실하게 내 뱉 었다.

신예화또한 그녀를 잘 따랐다. 다름 아닌 백우진이 직접 내세운 대리인이 니까.그녀의 말이 곧그의 말이라생각하며 따랐다.

허나, 백우진은 전투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조금 전의 기습 또한 자신이 막아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그 녀처럼 무거운 내상이 아닌, 가벼운 내상 정도로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

자책과 더불어 제갈연지에 대한 미움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우진이는 왜….’

저 런 계 집 애 가 좋다고 고백 까지 한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만큼은 정확히 파악했다.

마물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제갈연지는 미처 피할 생각조차못하고 막 아내기 위해 초식을준비 중이었다.

“비켜엇!”

날카롭고, 뾰족하고, 거센 음성이 그녀의 귀를 팍 찔렀다. 그와 동시에 다 다른 신예화가 제갈연지을 밀치고 자리를 잡았다.

달려오는 마물은순록이 마기에 휩싸여 변형된 녀석이었다. 안그래도 기 다란 뿔이 어지럽게 자라나 있고, 강화된 각력에 의해 돌파력이 무척 강하여 한번 뿔에 들이박히면 절명할확률이 높았다.

“o O ...|”

온갖 감정들이 휘 감겼다.

제갈연지에 대한미움, 백우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자책.

강렬한 욕망이 뒤를 이 었다. 더 이상 그의 기대를 저버 리고 싶지 않다는 순 수하고 거대한 욕망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제 키보다 거대한 월도가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을 흩뿌렸다.

“도, 도기 (刀氣)!”

“절정에 오른 건가? 이 상황에서 ?”

빛의 궤적이 그려졌다.

“히야아아앗!”

산을 울리는 기 합성과 함께 내 리 쳐 진 월 도가 마물의 거대 한 뿔들을 젓 가 락 부러뜨리듯 부수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콰직! 콰지지직!

이윽고 닿은 곳은 마물의 머리였다. 단단한 두개골 또한그녀의 신력을 버 텨내지 못하고 맥 없이 쪼개져 완전히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털썩!

머리를 잃은 시체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흥!”

그녀는 제 월도의 뒷면을 땅바닥에 내리찍으며 의 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밀친 방향에 맥없이 주저앉아 있는 제갈연지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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