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02화 (102/215)

<102 화〉마기 («妓)

이 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 인 장난감으로 갖고 싶었던 새로운 장난감을 얻었다,

옷 너머로 보았음에도 손을 근질거리게 만들었던 그 육신을 직접 보고, 만 지고, 가를 때 과연 그는,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진미 연은 곧장 백 우진을 실험 대 에 올려놓았다.

‘가장 맛있는 건 천천히 먹 어 야 하는 법 이 지.’

그녀는 언제나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 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맛을 보는 건 긴 연구 끝에 이뤄질 일이지만, 잠깐 피부를 갈라 내부를 확인 하는 것 정도는 당장 해보아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여겼다.

“벗겨라.”

그녀의 말에 두 여인이 백우진의 의복을하나둘벗기기 시작했다.

“이야,팔자좋네.이렇게 여자들이 옷도 벗겨주고말이야.”

“허…!”

차가운 실험대 위에 오른 이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공포에 잡아먹힌 얼굴을 한다.

능히 그럴 만했다. 그들이 과연 무엇을 눈에 담기에 이토록두려운가싶어 시험삼아 누워본 자신 또한 가볍게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

헌데 그는 그것이 두렵지 않다는 듯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이제는 점점 그 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대체 얼마나 강인한지 시험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 사이, 두 여인이 백우진의 의복을 모두 벗겨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단단한 신체 가 진미 연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 아….”

아름답다.

지금껏 그녀의 손에 잘려 나간 신체들 중엔 한 지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미 녀도 있었고, 그보다훨씬 고강한 경지를 이룩해낸 무인의 것도 부지기수였 다.

벗겨 놓고 보면 그들 또한 인간이 었다. 남들보다 빼 어 나기는 했으나 이 처 럼 탄성을 내지르고, 몸을 젖어들게 만들지는 못했다.

‘어찌 사람의 몸이 이리도완벽하단말이냐…!’

극도로 압축된 근육들이 눈에 띈다. 대체 어떤 훈련을 해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오로지 실전을 위해서 만들어졌음에도, 조형미가 넘실거린다.

군침이 흐른다. 가면 밖으로 떨어져 내릴 뻔한침을급히 주워 담으며 체통 을 지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봐.”

조각 아니, 백우진이 넋을 놓은 채 서 있는 자신을 향해 말을 걸었다.

“죽이지는 않을거지?”

일말의 우려가 담긴 음성.

저도 모르게 나올 뻔한 암컷의 목소리를 정제하여 차분한 음성으로 대체 했다.

“홀홀…,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깐 열었다가말끔하게 닫을 테니 말입니다

사람의 신체를 가르는 걸 방문 여닫는 듯 말하는 어투에 백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자아, 그럼….”

그녀는소도를쥐었다. 지난수십여 년의 경험을 축적하여 만들어낸, 인간 의 피부와 근육을 가르기에 최적화된 녀석이었다.

“개복을….”

가장 먼저 배를 갈라 오장육부를 확인하리 라 마음먹 었다.

“개복을…….”

마음이 결심했으니 이제 행동이 따라주어야 할차례인데.

“으음…!

무언가에 붙들린 것처럼 소도를쥔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진미연은 손을 거둬들였다.

“허,허허.”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 몸이, 눈앞의 완벽한육체에 흠집을 내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아니, 극 도로 거부하고 있다.

무엇 하나 추가되 어도, 빠져도 균형이 무너질 것만 완벽한 육체를 가른다 생 각하니,죄 를 짓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슬슬 좀 추운데….”

알몸으로 차가운 실험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백우진이 불만을 토로했다.

진미 연은 고심 끝에 쥐 고 있던 소도를 제 자리 에 내 려놓았다.

“… 아무래도 계획을 좀 바꿔 야겠습니 다.”

“어,안갈라?”

진미연의 시선이 백우진의 얼굴로 향했다.

완벽하게 조형된 육체만큼이나 빼어난 미모가또 한 번 눈을 어지럽힌다.

명가의 자제든, 지역을 대표하는 미녀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고수든 간 에 실험대 위에 오른 것들은그녀에게 있더 모두 같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특별해.’

그런 그녀 가, 처음으로 백우진을 특별한 인간이 라 칭했다.

수려한 외모, 완벽한 육체미, 무엇을 눈앞에 두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 함까지 . 어찌 그를 평범한 인간이 라 칭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백 공자의 몸은 더 요긴하게 쓰여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진미연이 두 여인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벗겨두었던 의복을 그에게 입혀주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필요하니, 얌전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그의 육신에 대한 거대한 탐욕이 일었다. 언제까지고 그를 자신의 옆에 두 고 싶어졌다. 평생 자신을 충실히 따르며 보필할 동반자로 말이다.

다행히 최근 실험에 진전이 있어 어느 정도 방법을 생각해두었다. 성공 확 률이 불안정한 탓에 이를위해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했다.

“구태 여 쇠 사슬로 몸을 구속하지 는 않아도 되 리 라 믿 겠습니 다.”

이곳에는 십여 명의 그림자들이 열두 시진 내내 회색빛 세상속에서 이곳 을 감시하고 있다. 내공을 쓸 수 없게 된 그가 이곳을 탈출할 방법 따위는 없 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곳을 빠져나가 는 유일한 수단인 출구쪽을 제외하면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 었다.

물론,최후의 안전장치를 달아둔 채로.

“이것을 팔에 찬다면 말입니다.”

진미 연은 그의 자유로운 팔과 다리 에 두 치쯤 되 는 두께의 고리를 매 달았 다. 이는 같은 부피 대비 몇 배나 무겁다고 알려진 묵철로 만들어진 묵환이었 다.

“오, 이런게 있었단 말이지.”

웬만한 이들이 라면 발을 떼는 것조차 힘 겨웠을 무게 였다. 그러한 것을 팔 과 다리에 채웠음에도 그는 오히려 좋은 걸 알게 됐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 반응이 묘하기는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묵환을 차게 된 백우진 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힘겹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그가 탈출할 방법은 없으리라 여겼다.

“자살 같은 시시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겝니다.”

자살 시도 또한 철저히 막아두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 당선영을 다 시 이곳으로 데리고 와 모진 고문 속에서 죽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으로 말이다.

“나도 웬만해선 그런 시시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아.”

“홀홀…, 그렇습니까?”

진심이었다.

그녀는 탈출하지 못할 거 라 확신해서 이 것저 것 편의 를 봐주는 듯하지 만, 백우진 또한 이곳을 탈출할수 있으리라확신하고 있었다.

‘내 가 탈출 경력만 수십 회 가 넘는 사람이 다, 이 거야.’

용사 생활하다 보면 이래저래 갇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는 한 번 갇히면 절대 빠져나올수 없다는, 현실에 구체화된 지옥이라불리는곳에 서도 당당하게 탈출한 자신이다.

온갖모진 고문으로 몸이 찢어지고, 갈라진 상태로도 탈출해 보았는데 이 정도쯤이야.

“그럼 이만모셔드리거라.”

두 그림자 여인의 손에 이끌려 갈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죄수들의 무덤이라 불렸던 감옥에 서도 당당히 탈출했던 나다!

그러니 이딴 실험실쯤이야조금만 공들이면 우습게 탈출할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지 ….”

이곳에 온지도 어느덧 일주일이나 지났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깊숙한 지하라 정확하게 날짜는 알수 없었지만, 시 간마다 끼니를 챙겨주는 그림자 일족의 여인에게 물어봤더니 그리 답해주었 다.

그동안 백우진은 아주 지랄견처럼 공동 곳곳을 돌아다녔다.

기괴한 시체들이 즐비한 거대한 공동에는 숨겨진 공간들이 많이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주변을 둘러싼 석벽 전체 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

보통 이런 곳은 자칫 일이 잘못되 면 개박살이 날 수도 있기에 어느 한 곳 정도는 비밀 통로를 파두기 마련이다.

그래 서 지금까지 곳곳을 구경하는 척하며 어 딘가에 있을 비 밀 통로를 찾 기 위해 눈이 빠져라 주변을 살폈지 만, 비 밀 통로 비슷한 것조차 발견하지 못 했다.

이곳의 탈출구는저 거대한쇠문뿐이라고했던 그녀의 말이 어쩌면 사실 일지도 모르겠다고, 백우진은 생각했다.

“이러면 답이 없는데.”

내공을 잃기 전 확인했던 그림자 일족의 수만 무려 열 명이 었다.

내공한줌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녀석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저 쇠 문을 열어 젖히고 탈출한다? 이는 탈옥왕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 었다.

“아,어떡하지.”

슬슬 햇빛이 그리워 지고 있는데.

푸념 섞인 말을 내뱉으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였다. 석벽으로 이루어 진 침소의 문이 빙글돌아가더니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식사하십시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자신의 옷을 벗기고, 이곳으로 안내도 해준 그림 자 일족의 여인 중 한 사람이자,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말문을 튼 이 였다.

그녀는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들고 있었다. 삼시세끼 맛있는 밥과 술을 달랬더니 그거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맛이 좋기는 한데 말이지….’

어쩐지 도축장에서 죽기 직전의 돼지를 포동포동 살찌우게 하는 듯한 느 낌을 지울 수가 없다.

“흐음.

백우진은 식탁을 내려놓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봐.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무엇입니까.”

딱딱한 음성. 하지만 처음 보았던 반쯤 감정을 잃어버린 반푼이 사내와는 달랐다. 그녀는 의 도적으로 목소리 에 감정을 배 제 할 뿐, 잃어버 린 것은 아니 었다.

그 말은 곧 그녀 가 진정한 그림 자 일족이 라는 뜻이 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입을 열어도 대응조차 않던데, 너는 왜 대답 을해주는 거야? 너희들끼리 그렇게 결정한 거냐?”

평소의 궁금증이 섞인 물음이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내 리깔더니 , 작은 목소리로 대 답했다.

“•••당신이 내 동생을 살려주었기에 빚을 갚기 위함일 뿐.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동생?”

..

!....

“이곳에 들어오기 전 보았던 덩치가큰 아이가, 제 동생입니다.”

“••••••.”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잠시 다투었던 그 우람한 사내 가 동생이 었다니.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준 것은, 혹여 그가 당가 소속의 무인이 아닐까 생 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를 바라기도 했고.’

작은 바람도 담겨 있었다. 그가 부디 진미연의 부하가 아닌 당가의 부하이 기를.물론 아닌 걸로확정이 났지만, 그때는그랬다.

어쨌거나그때의 결정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적어도 제 말에 대답해줄 적이 라도 생겼으니 말이다.

“이봐, 하나 더부탁해도 될까?”

“무엇입니까.”

“복면 한번만내려주지 않을래.”

“• • •그래 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아니, 그냥.”

백우진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쁠것 같아서.”

“••••••.”

석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선 여인. 이윽고그녀는 날카로운눈빛을 쏘아붙였다.

“시 답잖은 얘 기는 여 기까집 니 다. 식 사나 하십 시오.”

그렇게 말한 그녀는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작은 환약을 하나 꺼내어 건 네주었다.

“오늘부터는 식후 이 환약을 드셔야 합니다.”

“•••무슨 약인데?”

“저도알지 못합니다.”

새 까만 환약이 손바닥 위 를 뒹 굴거 린다. 그 모습에 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그럼 이만.

그녀가 석벽 근처에 다가가자 다시 한번 빙글 돌아갔다.

“흐음.”

그녀가 사라진 석벽을 응시하던 백우진은 생각했다.

어쩌면 저 여인을 이용할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일단밥부터 먹을까.”

금강산도 식후경 이 라고, 일단 배부터 채우고 생 각하기로 했다. 최 근 팔다 리에 묵환을 차고 다닌 탓에 열량의 소모가극심했다.

와구와구!

적 잖은 양을 모조리 해 치 운 백 우진은 마지 막으로 남은 환약을 손에 쥐 었 다.

“영 꺼림칙한데.”

절대 좋은 약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실험체로 이곳에 있는데 몸보신 시켜 줄리는 없잖은가.

버리는 것 또한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끼니를 챙겨다준 여인은 떠나갔지 만, 이곳에 또 다른그림자 일족이 자신을 내내 감시하고 있었다.

‘죽는 약은 아닐 것 같기는 한데.’

백우진은 자신을 실험대에 올려둔 채 군침을 흘리던 진미연의 눈빛을 보 았다. 자신을 쉽게 죽도록 만들지는 않으리라는확신이 생길 만큼, 탐욕적인 눈빛이었다.

“이럴 땐 역시.”

그래도 믿는 구석 하나쯤은 아직 남아 있다. 허리춤에 찬 보패 호리병이 바 로그것이다.

칼은 물론이고 품에 지니고 있던 것들은 모두 빼앗겼지만 이것 하나만큼 은 보존했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술이 든 호리병에 불과했기에 비싼술이 들어있다고, 이건 절대로 내 어줄 수 없다고 강짜를 부려 겨우 수호해낸 것이 었다.

백우진은 연기를 시작했다.

“난쓴 약을 싫어하는데….”

반찬을 투정하는 어린애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리고 좋은 생 각이라도 난듯.

“ 아하!”

추임새를 넣으며 환약을 제 술병에 넣어버렸다.

“흐흐, 술이랑 같이 먹으면 덜 쓰겠지?”

난천재야!

자화자찬을 하며 술과 그 안에 담긴 환약을 집 어삼켰다.

내공을 사용할수 없어 음주선공을 운용할 때처럼 완전히 술에 녹이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것이 몸에 해로운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정화를 시켜주리 라 믿었다.

꿀꺽꿀꺽!

“캬하!”

술맛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깔끔한 화주에 약간 쓴맛이 더해진 정도일 까.

“으음.

이변을 느낀 것은 잠시 후였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웬 요상한 기운이 혈도를 타고 마음대로 흐르기 시 작하더니,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백우진은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체내를 관조했다.

‘어라.’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려 기운들이 사라진 곳을 살폈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 었다.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체내 깊숙한 곳에 꽁꽁 숨어버린 것일 뿐.

허나누구보다기를느끼는 데에 예민한백우진은 이를찾아내는데에 성 공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 제법 익숙한 기운이었다.

‘이거 마기잖아.’

마교도, 마인, 마물들이 몸에 두르고 있는 마기(魔氣)가, 신체 곳곳에 숨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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