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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03화 (103/215)

몸속 깊숙한 곳에 숨은 데다 그 양이 굉 장히 미 미하여 알아채 기 가 매우 힘들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의 정체는 마기가 확실했다.

“신기하네.”

평범한 기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라면, 마기는 범람하듯 쏟아지는 급 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날뛰고 폭주하여 결국엔 자신을 담은 그릇 또한 미쳐 날뛰게 만드는,평범한것에는 깃들수도, 깃들어서도안되는삿된 기 운.

백우진이 신기해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무리 미약한 기운이라 도활발히 날뛰다덧없이 사라져야할기운이 곧장 몸속 가장 깊숙한 곳에 숨 어 동면에 빠진 곰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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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지 않고 호리병에 담긴 술에 섞은 게 문제 가 되 었던 걸까.

‘아니, 그런 것보다….’

애초에 여기서 갑자기 마기가 튀 어나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몸속의 마기를 한 번 더 확인하여 지금 당장 문제 가 일어 나지는 않으리 라 는 것을 확신한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석벽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끔찍한실험의 잔재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더 욱크게 다가왔다.

이상하게 이어 붙여진 시체들을 보며 짐작하긴 했지만,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를 손에 넣은 셈 이 었다.

‘마교도였나.’

당가에 숨어든 쥐새끼들은 마교의 광신도들이었다.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끼니마다 한 알씩, 스물한 알의 환약을 추가로 먹은 그의 신체에는 적잖은 양의 마기가 여전히 동면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다시 한번 실험실 공동을 이 잡듯이 뒤졌다. 비밀통로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무려 수십 년을 써 가며 당가에 잠입한 마교도들이 이 잔 혹한 실험을 통해서 대체 무얻을 얻고자 하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마교도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나서 다시 본 실험체에는 그 목 적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덕분에 빠른 속도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탈출할 방법도 생각해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결행 일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뿐인데 .

“그간잘지내셨습니까?”

홀홀!

대부분의 명령을 그림자 일족에게 내려둔 채 정작 본인은 코빼기도 보이 질 않던 진미연이 시의적절하게 백우진을찾아왔다.

그것도 놀라운 손님 을 대 동한 채 로 말이 다.

“얘기했던 것과는 상태가 많이 다른 것 같군.”

염세 적 인 눈빛으로 이 쪽을 내 려 다보는 사내.

|  |...

!....

.....

“그렇지, 당신이 있었지.”

당가의 가주 당연신. 그가 진미연과 함께 백우진의 앞에 얼굴을 내비쳤다.

‘풀어야 할 의문이 하나 더 있었지.’

여름방학끝자락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숙제 하나를 기억해낸 기분이 다.

눈앞에 있는 당연신의 정체라는 숙제를 말이다.

백우진을 내려다보고 있던 시선이 진미연에게로 향했다.

“분명 배를 가르고, 오장육부를 확인하고 싶다지 않았던가.”

왜 아직도 백우진이 멀쩡하냐는 일종의 꾸지람이 었다.

“홀홀! 그러기엔 아까워서 말이에요.”

“아깝다…?”

“예.아주아주 아깝습니다.”

탐욕이 뚝뚝 묻어나는 음성.

이에 기분이 언짢아진 당연신이 눈살을 찌푸리자그녀가 달래듯 말했다.

“걱 정할 것 없습니 다. 그를 보다 나은 곳에 쓰기 위 함일 뿐이 니.”

이미 다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 에 당연신은 잠시 불만을 접어두었다.

“자아, 상태를 좀 확인해 볼까요.”

무릎을 꿇고 앉은 그녀는 백우진의 맨문을 잡고 진맥을 시도했다.

눈을 감은 채 그의 체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진미연은 가면 속에서 진한 웃음을 지 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군요.”

내뱉은 음성에도 그 기쁨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백우진을 위 아래로 훑었다.

하나의 인간이 아닌 예술 작품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듯한 눈빛.

“홀홀,공자께선 모르실 겁니다. 자신의 현재 몸상태가 어떠한지를 말입 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는 듯, 자신감을 풀풀 풍기며 말하는 모습이 우스워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내 몸에다 마기 박아놓은 거 말하는 거야?”

그의 말 한마디에 진미연과 당연신 모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부 릅뜬 채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그걸 어떻게…?”

진미연이 믿기 힘들다는 투로 물었다.

기존 속성을 거의 탈피하다시피 한 마기 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몸속 가 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두기까지 한 것을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내가좀예민한편이라.”

“무슨…!

무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축적해온 실험의 결과물이다. 예민하다고 해 서 찾을 수 있을 정도라면 성공작이라 자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놀란그녀의 얼굴위로 백우진의 음성이 다시 한번 이어졌다.

“너희들 정말대단하다.수십 년씩 썩어가며 당가에 알을박냐.”

마기를 들켰으니, 그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당연했다. 세상천지에 마기를 사용하고 있는 집 단은 오로지 마교 뿐이 니까.

“마인을 개량하는 게 중요하긴 해.”

그치?

조금 전의 발언이 헛바람을 들이켜게 할 정도였다면 지금의 발언은 숨쉬 는 걸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충격을 전해주었다.

백우진이 말한대로 그들이 당가에까지 숨어들어 이루고자 했던 비원은 마인을 개 량하는 것이 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손오공에게 긴고아를 씌우듯, 오로지 살육의 본능에 만 의존하여 제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날뛰는 마인들의 목에 목줄 을 걸기 위함이 었다.

감시 역을 통해 그가 공동 내부를 미 친 듯이 돌아다니 고 있다는 말을 들었 을 때만 해도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비밀통로를 찾기 위해 헛수고를 들이는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녀는 빠르게 안색을 회복했다.

“잘도 알아차리셨군요.”

또한 부정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체내에 마기가 스며든 것을 알았 으면 자신들이 자랑스러운 마교의 교도임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그것을 유 념한 채 실험실을 들여다 보면 이것이 무엇을 위한 실험인지 정도는 머리 좀 굴릴 줄 아는 이라면 금세 유추해 낼 수 있었을 터다.

‘허나 걱정할 일은 아니다.’

놀라기는 했으나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곳에 묶인 몸이다. 그리고 다신 제 의지를 지닌 채 밖으로 나설 수 없는 몸이 기도 했다.

그가 무엇을 알아차렸든, 밖으로 새 어 나갈 일은 없단 뜻이 었다.

어느새 차분해진 그녀의 숨소리를 들은 백우진이 입맛을 다셨다.

“에이.”

조금 흔들어보려 했더니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어차피 자신이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내 가 웬만한 건 다 알아차렸는데, 딱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답 좀 해주라 ” •

그는 자신의 몸을 가리 키 며 말을 이 었다.

“어차피 난 이대로 가면 마인이 될 것 같은데. 그 전에 궁금증 정도는풀어 줄 수 있잖아?”

마인의 본능에 목줄을 거는 것.

그것이 마인을 개량하기 위한 일차목표라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것을 넘어 이성이 남아있는 마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설마그것까지 알아차리실 줄이야….”

백우진의 몸에 심어둔 마기는 이를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닿는 모든 것 을 파괴하고 검게 물들여 담은 그릇마저 미쳐버리게 만드는 특성을 최대한 억누른 채로 마기를 주입하여 마인화 과정을 길게 늘이는 것.

길어진 과정에서 이성이 천천히 변해가는체질에 맞춰 적응하면 이성이 남 아있는 마인을 만들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긴 그녀의 비장의 한 수였다.

“확실히 이건 가능성이 제법 높겠어.”

백우진이 칭찬하듯 말하자 진미연은 가면 속에서 속절없이 웃고 말았다.

자신을 이토록 기쁘게 만들었으니 그에게 자그마한 질문의 기회 정도는 주리 라 생 각한 그녀 가 물었다.

“일단들어나봐야겠군요.뭐가그리 궁금한지 말입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우진은 턱짓으로 심란한 눈빛으로 이쪽 을 바라보고 있는 당연신을 가리 켰다.

“저거.”

“•••가주님에 대해 궁금하신 겝니까?”

그녀가 낮은 어조로 재차 물었다.

“가주인 척하는저놈의 진짜정체.”

처음만났던 날, 백우진이 ‘쫄?’을 시전했을 때 만큼이나, 당연신의 표정 변 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 당황과 당혹감이 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라도 있습니까?”

“많지.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건….”

진미연이 마교도라는 것을 상정할 때, 눈앞의 당연신이 진짜가 아닌 가짜 가 될 이유는 무척 이나 많지 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건 단 하나였다.

“약해.”

사내로서 참고 넘어가기 힘든 말이 몇 가지가 있다. 백우진이 당연신에게 시전했던 쫄?’과 마찬가지로 쾸해’, ‘너 무공진짜못한다.’, ‘너 나한테 졌잖

아.’ 등등.

차마 웃어넘기지 못하고 발끈하게 만드는 이른바 발작 단추라 불리는 것 들이다.

백우진의 입은그뒤로도 쉬지 않았다.

“나름대로 어디 가서 얻어맞지 않을 정도는되긴 하지만….”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놈이…!”

그 효과는 매우 대단했다.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던 당연신의 얼굴이 새빨간 분노로 덧칠된 것을 보 면말이다.

“고작 절정에 오른 애송이 주제에 감히!”

앞뒤 가리지 않고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휘두르려던 그의 앞을 진미연이 막아섰다.

“멈추세요.”

“비키시오! 내 당장 이놈을…!”

“멈추라 말씀드렸습니다.

마교 내에서 두 사람에게 주어진 서열은 엇비슷했다. 하지만 중요도를 놓 고보면 진미연이 약간더 위에 있다.

천하를 마교의 발아래 두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인 개량의 실험을 그녀가주 도하고 있기 때문이 었다.

“빌어먹을.

애써 분을 삭인 당연신이 단검을 허리춤에 도로 집어넣었다.

진미 연은 작게 숨을 내쉬 며 뒤로 돌아섰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십수 년간 당가의 모두를 속여온 그와 그녀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고작 이 주 만에 그것도 약관을 간신히 넘은 후기지수에게 파악당할 것이라 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었다.

“이미 확신하고 계신 듯하니, 발뺌한들소용없겠지요.”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으로 가져갔 다.

“맞습니다.”

얼굴에 빈틈없이 밀착되어 있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늙수그레한 그녀 의 음성이 단숨에 젊어졌다.

그것은 백우진이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낯익은 것이 었다.

이윽고 벗어던진 가면 속에는 정종구가 말했던 것처럼 젊고 아리따운 얼 굴이 들어 있었다.

어설픈 동작과 눈빛으로 백우진을 유혹하던 시녀의 얼굴이다.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눈치네.”

말투와 분위 기 마저 완전히 뒤 바뀐 그녀 가 한 걸음 더 다가와 고개를 숙였 다.

“하지만이걸보면 놀랄 거야.”

말을 마치기가무섭게 그녀의 살결이 요동치기 시작했다.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이목구비가 어느새 그 살결의 파동에 잡아먹혔다.

그렇게 잠시간요동치던 살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 라졌던 이목구비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되찾았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백우진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사람의 얼굴이 바뀌었다.

“어떠니.”

목소리 또한 바뀌 었다. 보다 낮고, 남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요염한 음성 으로.

“이게 내 본모습이야.”

얼굴, 미소, 음성, 말투, 손짓까지.

“당…, 소저?”

그것은 백우진이 익히 알고 있는 당선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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