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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17화 (117/215)

‘환생인가?’

문득 그럴 생 각이 들 정도로 흡사했다. 같은 세 계 였으면 쌍둥이라고 해도 순순히 믿을 만큼.

‘가능성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

같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 아닌가. 하물며 용사도 돌려 쓰고 있는데 ,성 녀 나 신녀나 딱 봐도 비슷한 역할이 니 똑같은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 리 라 생각할때.

시야에 들어온그녀의 풍만한가슴이 생각을돌려 세웠다.

‘아,아니네.’

판타지 세계에서 성녀는 지독한 절벽이었다. 저렇게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환생 설은 사용 불가능한 폐 지 가 되 어버렸다.

환생설이야 어찌 됐든, 백우진은 그녀의 정체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만큼, 성녀처럼 치유를 담당할수는 없겠지 만 그녀가 했던 다른 일을 수행하는 역할일 테지.

하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불신하는 듯했다.

“우리가그걸 어떻게 믿소.”

헤벌쭉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장삼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아,그게….”

그녀 가 소매 속에 서 표지 부분이 가죽으로 되 어 있는 낡은 책 자를 꺼 내 어 보여주었다.

“이건 영웅비록이에요. 영웅님의 선업을 기록하기 위해 현천문에서 대대 로 전해져 내 려오는 신물이 랍니 다.”

“호오, 영웅비록이라.”

그녀에게서 책자를 건네받은 장삼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하며 표지를 손으로 넘 겨보았다.

아니, 넘기려 했다.

“아, 아니 이게…?”

헌데 넘어가지 않았다. 분명 손에 들고 흔들면 팔랑이는 가죽으로 이루어 진 표지가 분명한데 커다란 바위처럼 아래를 짓누르고 있어 아무리 힘을 주 어도 펼쳐지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살포시 웃은 설수연이 말했다.

“영웅비록은 오로지 기록의 주인인 영웅님과 기록을 써내려갈 자격을 갖 춘 신녀만이 펼칠 수 있어요.”

장삼에게서 책을 건네받은 그녀는 제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너무나도 손쉽게 책을 펼쳐 보였다.

“와아….”

“허, 책이 사람을 가리다니.”

그 모습을 본 신예화는 감탄했고, 장삼은 허탈해 했다.

설수연은 다시 책을 덮은 뒤 , 그것을 백우진에 게 내 밀었다.

“영웅 님께서도 한 번 펼쳐 보시겠어요?”

얼떨결에 책을 건네받은 백우진은 낡은 책의 표지를 넘겨보았다.

설수연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부드럽게 그 속이 드러났다. 첫 장에는 이미 무언가가 쓰여 있었다.

“이건….”

“영웅님께서 자아내신 첫 번째 선업의 기록이에요.”

책의 첫 장에는 마기에 잠식된 태백호를 잠재우고, 그에게 조종당하던 마 을 사람들을 구해냈던 백리산에서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본디 영웅비록의 기록은 신녀가하게 되어 있어요.하지만첫 번째 기록은 자동으로 기록이 되 었답니다. 영웅님을 어서 찾으라는 신의 안배가 아니었 을까 하고 저는 생 각해요.”

당장 신을 향해 기도라도 올릴 것처럼 경건한 표정을 짓는 설수연.

백우진의 짐작대로였다. 그녀는 판타지 세계에서의 성녀와 비슷한 역할 이었다.

‘성서도 그랬었지.’

성서를 신줏단지 모시듯 껴안고 다니던 성녀도 이와 비슷했다. 언제 어 디서나 용사의 곁에 있었고, 그가 행한 업적을 빠짐없이 기록해 나갔다.

마치 그것이 제 목숨보다소중한사명인 것처럼 하나도 빠짐없이.

“이제 저를 믿어주실 수 있나요?”

혹시 이것으로도 부족한 건 아닐까. 불안한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책을 덮었다.

“이런 것까지 보여줬는데 믿지 않을수는 없겠지.”

성서와 성녀, 영웅비록과 신녀.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역할을 등에 짊어진, 심지어 외모마저 비슷한 두 여 인이 나란히 떠오른다.

후회,피폐고 나발이고 이 클리셰 덩 어리 작가는 아무래도 지 난 세 계와 똑 같은 길을 자신에게 걷게 할 생각인가보다.

백우진이 그녀의 존재를 받아들이 기로 했다. 그것으로 나눌 이 야기는 끝 났다.

압도적 인 풍만함과 어 여쁜 외모를 지 닌 여 인이 라는 점 이 제 갈연지와 신예 화로 하여금 불만을 가지게 만들었으나, 이를 대놓고 표출하지는 않았다.

자리를 파한뒤, 백우진은신녀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고 있어. 이곳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테 니.”

“네,영웅님 말씀을 따를게요.”

알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가슴에 잔잔하게 퍼진다.

너무나도 비슷한 외모 때문에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기억이 사무친 다.

나쁘지는 않았지 만, 마냥 좋지 만도 않았던 순간들이 .

“그럼 간다.”

묘한 표정으로 뒤 로 돌아서 는 백 우진 .

“아, 잠시만요.”

설수연이 그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영웅님께서 보셔야할 게 있어요.”

그리 말한 그녀는 백우진에게 영웅비록을 건네주었다.

“선대 문주님께서 혹 영웅님을뵙게 되거든, 비록의 뒷장을 꼭보시게 하 라고 하셨어요.”

“뒷장?”

“네. 글씨라고 해 야 할지, 그림 이라고 해야 할지 …,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 들이 그곳에 새겨져 있어요.”

당장 펼쳐 보려다 이내 책을 품에 넣었다.

그녀 가 뒤 늦게 자신을 붙잡고 말하는 이유는 분명 다른 이들에 게 보여선 안되기 때문일 터.

“그럼 보고 돌려줄게.”

“네 I”

그렇게 그녀를뒤로한채, 기숙사로돌아왔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작은 탁자 위에 비록을 꺼내 놓았다.

“뒷장이랬지.”

책을 펼쳐 그녀가 언급한 가장 뒷장으로 향했다.

그림인지, 글자인지 조금도 해석할수 없다고 말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뒷장에 적힌 것은 다름 아닌 한글이 었기에.

이 세상에서 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 었다. 그 말인 즉, 이것은 ‘NovelGod’이 자신에게 남긴 말이라는 것.

“허허, 이 새끼 봐라.”

판타지 세계에서 생활할때, 백우진은 성서를 이 잡듯뒤진 적이 있었다.

용사의 업적을 기록하기 위해 신이 직접 내린 책이라는 말에 녀석이 자신 에게 남긴 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맥 빠지 게 만들더니 , 생 각지도 못한 것에 남 겨두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신은 아니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남긴 문장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백우진에게 전하는 여덟 글자, 그보다 작은 글씨로 쓰인 한 줄의 추신이 전 부였다.

그가 남긴 여덟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이번에는 만나주지.」

마왕을 죽여 용사로서의 사명을 마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소원을 말하는 건 당연히 면과 면을 맞대고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래서 마 왕을 잡기 직전까지도 놈을 만나면 어떻게 하면 한 방 먹일 수 있을까 진지하 게 고민했다.

모든 일이 다끝난뒤,그의 예상은빗나갔다.

마왕군의 잔당까지 모조리 물리 치고 사람들이 우렁 찬 함성 으로 용사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을 즈음, 오직 그에게만들리는 신언(神言)이 들려왔다.

원하는 소원을 말하라고.

“아주 얍삽한 새끼였지.”

열을 받을대로 받은 백우진은 귀환이고 나발이고 한 번만 만나자고 얘 기 했다.

돌아온 대답은 원하는 소원을 말하라’였다.

한마디로 씹은 거다.

이후로도 한 대만 맞아주세요, 죽어주세요 등 다양한 소원을 빌었지만, 모 조리 무시당했다.

제풀에 지친 백우진은 결국 소원을 말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 나 지구로 귀환했다.

“그런데 이제 만나주겠다?”

백우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세상을 통틀어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 삼류 작가가 아닐까 하는.

그렇지 않고서야이 짧은 문장 하나로자신의 의욕을 이토록 고취시킬 순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두 번이나 개같이 굴리면 한 번은 만나주는 게 신지상정이지.”

천마딱대.

마교도 놈들 다 뒤 졌다.

희희 낙락하며 장의 끝자락에 작은 글씨로 새긴 추신 부분을 읽 어보았다.

「주연이 가지는 의미를 잊지 마라.」

하늘끝까지 닿아신계에 닿을 뻔했던 기분이 단숨에 추락하여 땅바닥을 뚫고 들어간다.

그가 남긴 마지막추신이 애써 잊고 있던 신예화와 유화연의 존재를 아주 강렬하게 상기시킨다.

언제나 진짜라고 여기고 살지만, 이 세상은 결국 ‘NovelGod’에 의해 집필 된 세상이다.

가짜와 진짜를 떠 나, 그가 바라는 방향성과 의도가 존재한다는 얘 기 다.

백우진은 주인공이다. 극을 이끌어가고, 가장 돋보이고, 부각되는 존재.

그렇다면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주연은 누구일까.

“유화연과 신예화….”

이 세상은공평하지 않다.

주인공인 백우진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세상인 만큼, 그에게 가장 가까 이에 있는 이들이 보다 더 많은 재능과 잠재력을 지니게 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백 우진 다음으로 이 세 상에서 가장 뛰 어난 잠재력을 가지 고 있는 이들이 바로 두 여인이라는 뜻이다.

’NovelGod'은 그것을 꼬집은 것이다.

이 세상 가장 강력한 칼이 되어줄 두 여인을 배제하는 어리석은 일 따위 하 지 말라며.

“진짜 싫다, 너란 새끼….”

백 우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 었다.

아무리 헐뜯고, 힐난해도 녀석이 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이 구르는 모습을 보며 배꼽을 잡고 방바닥을 데굴데 굴 구른다 고 해도, 결국 성공하기를 바라지, 실패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마지 막으로 남긴 추신은 결국 자신을 향한 조언이 라고 봐야 했다.

“무시하고 싶다.”

아주 격렬하게 무시하고 싶다.

오직 자신만 더 험한 가시밭길을 걷는 거라면 얼마든지 걸어줄 수 있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맨발로 용암이 절절 끓는 지옥의 길도 걸었는데 가시 밭길 쯤이 야 대수일까.

다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동료들 때문이 다.

그녀들을 멀리함으로써 더욱 험난해진 여정 탓에 동료 중 누군가가 목숨 을 잃는다면.

‘난더 감당못해.’

용사일 적에 제 곁에서 죽어간 동료들의 혼을 차곡차곡 쌓아 마음속에 거 대한 위령비를 세워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계다.

여기서 누군가의 죽음을 더 짊어져야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으리 라.

그렇다면 모두를 위해 그녀들을 곁에 두어야만하는가.

긴 밤동안, 백우진은그 어떤 답도 내리지 못했다.

신녀 설수연의 거처는 생각보다쉽게 정해졌다.

백 우진은 내놓은 자식 이 라 몰랐지 만, 학관에 서는 타인의 수발이 익숙한 명가의 자제들을 배려한다고 생도 한 명당 한 명의 수행원을 지정하여 학관 에 머물게 하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이를 전해 들은 백우진은 곧장 그녀를 수행원으로 삼았다.

그녀의 수려한 외모로 인해 묘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긴 했으나,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 었다.

“신룡조가 당가에 숨어든 마교도를 잡았다지 …?”

“대체 무슨요술을 부린 걸까.”

당가에 숨어든 마교도를 잡아내는 데에 신룡조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소식이 무림맹으로부터 전해지게 되면서, 신룡조의 위세가학관전체에 울 려 퍼진 덕이었다.

역대 최고의 신룡조가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으며 조원들의 치솟은 입꼬 리가 내려올 줄 모르고, 고민에 빠진 백우진이 한숨만 연거푸 내뱉고 있을 때

“조장, 그얘기 들었소?”

|  |.....

!..

........

장삼이 묘한 소식 하나를 물어왔다.

“무슨 얘기.”

“섬서 지역에 혈수마녀(血手魔女)의 장보도가발견됐다고하오.”

무림 하면 빠지 지 않고 등장하는 장보도에 관한 소식 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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