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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19화 (119/215)

<119 화 蓬 금의환향 (»鐋稟«)

섬서성으로 떠날 채비를 어느 정도 갖춘 뒤의 어느 날의 밤.

백우진은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영웅비록의 첫 장을 넘겨보았다.

백리산에서 마기에 잠식된 태백호를구하고, 그의 조종을 받고 있던 마을 사람들을구원할때의 이야기가무척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남들에게는 새하얀 종이 위에 적힌 글씨의 색이 그저 검정색으로 보일 테지만, 영웅인 백우진에게는 전혀 다른 색으로보였다.

‘회색.’

글씨의 색깔을 확인한뒤, 다음 장으로 넘기자또다른 기록이 적혀 있다.

며칠 전 백우진이 말하고, 설수연이 꼼꼼하게 받아 적어 써 내려간 당가에 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오로지 철저한 사실을 기반으로 적힌 기록의 색은 동색이었다.

“이 정도면 꽤되겠는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백우진.

영웅비록.

판타지 세계에서는 성서라 불리던 이 책은 단순히 영웅의 발자취를 상세 히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고작 영웅의 기록을 자세히 남기겠다고 교단에서의 위세가 교황 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성녀를 고작 서기로 사용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기록은 부차적인 효과일뿐.’

영웅비록 그 자체가 영웅된 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보물이 기에 그런 것이 다.

백우진은 스승이었던 검귀들이 평생을 바쳐 이룩해낸 경지를 고작 십 년 만에 따라잡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용사로서의 뛰 어난 재능도 물론 한 몫 했겠으나, 그 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 한 것은 성서의 기능 덕분이 었다.

‘명성, 환호, 지지.’

음유시인이 그의 업적을 노래하고, 동네 꼬마들이 훗날 용사가 되겠다며 꿈을 키우고, 용사로 인해 구원 받았다며 찬양한다.

성서, 영웅비록은 그의 선한 업적 뒤에 따르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기록에 녹여낸다.

검정색 잉크로, 먹물로 작성된 기록은그것을 받아들여 철,동,은,금, 백색 을 머금는다.

변한 색은 곧 힘으로 치환한다.

그렇기에 성서는, 영웅비록은 깐깐하다. 오직 사실만을 담아야 하며, 일말 의 과장만 담겨 있어도 애써 적어낸 기록을 무(無)로 되돌린다.

당가에서의 기록을 설수연에게 전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생해야 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백우진은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회색 글씨 위에 제 손을 얹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글씨 가 미 약한 빛을 내뿜기 시 작했다.

회색의 빛무리는 영웅비록 위에 얹어진 손바닥을 통해 체내로 스며들었 다.

“후우….”

회색의 빛은체내 곳곳을 방황하다 이내 단전에 도달하여 제 모습을 탈피 했다.

단전을 가득 채운 선객과 똑같은 기운으로.

서로 한없이 가까워 진 두 기운은 이내 하나가 되 어 더 묵직해진 존재 감을 과시하며, 단전에 자리 잡았다.

‘이 정도라면.’

어 렴풋한 추측은 확신으로 변모했다.

다음 장을 펼친다.

조금 전과 같은 방식 으로 손을 올리 자, 이 번에 도 역 시 나 글씨 와 똑같은 동 색의 빛이 허공을 수놓다가 손바닥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간다.

회색빛과 마찬가지로 단전에 당도한 동색의 빛은 기운으로 변화하여 단 전에 녹아내렸다.

다른 점 이 라면 변화한 기의 양이 회 색보다 조금 더 많았다는 것뿐.

그때였다.

우득! 우드득!

전신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큽.

99

단전에 담긴 기운이 임계치를 넘어섰다.

하단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 갑자를 꽉 채운 것이다.

발붙일 곳이 사라진 기운들은 새로운 터전을 향해 길을 뚫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새로이 발견한 터 전은 심 장 어림 에 있는 텅 빈 공간.

판타지 세 계 에 서는 세 컨드 코어 라고 불리고, 무림 에 서는 중단전이 라 부 르는 곳이었다.

그것이 의 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초절정.’

초인이라 불리는 화경의 바로 밑자락, 수많은 무인들을 좌절에 빠트리고 답보하게 만드는 초절정의 경지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콰득! 콰득!

중단전에 남은 기운들이 안착하자, 전신의 뼈와 근육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화경 상입경이 되어야 간신히 도달하는 환골탈태의 경지는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하는 초절정에 접어들게 되면서 육체 또한 그에 걸맞게 조금 변화하는 것일 뿐.

고통에 익숙한 백우진조차도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고통이 한 차례 휩쓸 고지나갔다.

절정일 때와는 또 다른 활력이 온몸에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백우진은 짙 은미소를 그렸다.

위기는 곧기회다.

그 말은 무림 인들에 게 도 통용되 는 말이 다.

섬서성에서 벌어진 장보도 쟁탈전으로 인해 대혼란이 바로 위기이며, 기 회였다.

제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담당 교수를 찾아가 섬서성으로 가겠다고 졸라 대는 다른 조의 조장들을 보며 백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보내주겠냐고.”

조별 과제의 선택 권한은 오직 조장에게 만 있으며, 이에 따른 책 임 또한 조장과 그를 따르는 조원에 게 있다.

정무학관에 입관하면 받을 수 있는 안내서에 적힌 규율 중 하나다.

이것만 놓고 보면 아무리 위 험하다고 해도 교수들이 그들의 행보를 막아 서는 것은월권이 아닐까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 밑에는 ‘단’으로 시작하 는 추가 조항이 존재한다.

단, 특수한 상황의 경우 교수진은 임의로 이를 불허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그특수한상황이지.’

보내 달라고 그토록 떼를 쓰는데 도 극구 만류하는 것은 이 미 위 에 서 어느 정도 이야기가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건대, 조만간출타중인 학관주를 대신하여 부관주 언진섭이 이에 대 해 말을 꺼내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수 있었다.

“정파는 이래서 문제야.”

너무 생각이 꽉 막혀 있다.

길이 막혀 있으면 우회할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그들과 달리 유연한 사고가 장점인 백우진은 오밤중에 신룡조의 담당 교 수인 염철진의 집무실 앞에 당도했다.

그의 집무실에 보고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한 줄짜리 보고서를 몰래 가 져다놓고 떠나기 위해!

보통 집무실은 만년한철이 섞인 자물쇠 가 걸려 있다. 하지만 백우진에게 그러한 것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십 영.”

그림 자가 드리워 진 곳이 라면 어 디든 자유롭게 이 동할 수 있는 그림 자 일 족, 십영이 오늘 마침 돌아와 주었기 에.

백우진의 그림자속에서 몸을 일으킨 십영이 잘 접힌 보고서를 받아들었 다.

“부탁해.”

다녀오겠습니다:

첨벙, 하고 그림자로 스며든 그녀는 눈 몇 번 깜빡일 시간 만에 보고서를 염철진 교수의 책상위에 올려놓고돌아왔다.

“음,좋아.

이 로써 모든 준비 는 끝마쳤다.

“그럼 전다시….”

만족스러워하는 제 새로운 주인의 표정을 보며 그림자 속으로 돌아가려 던 십영의 손을, 백우진이 붙잡았다.

“온통 회색빛인 세상이 뭐가좋다고들어가려고.”

“하지만….”

“달도좋은데 같이 좀 걷자.”

복면 위 로 살짝 드러 난 그녀의 표정 이 약간 붉었다.

“예….”

백 우진은 느릿한 걸음으로 밤길을 거 닐 었다.

십영 또한 그의 발걸음을 따라 제 속도를 최대한 죽여가며 걸었다.

“동생을두고온 거,후회되지 않아?”

그녀는 이곳으로 오기 전, 당가에 제 동생인 대영을 의탁했다.

백우진은 같이 와도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스 스로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곳이 더…,좋을겁니다.”

그녀는 이제 백우진을 온전히 믿는다.

길지 않은 시 간이 었지 만, 그동안 그가 보여준 마음이 며 행동은 하나같이 진심이었기에.

“석이는…, 옛날부터 싸우는 걸 무척 싫어했습니다.”

무공을 배우는 데에 있어 최적화된 육체를 지닌 것과는 별개로, 그의 성정 은 무척 이 나 순하고 여 렸다.

십영은 누나로서 그런 동생을 더 이상 치열한 전투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님께는 죄송하지만….”

“됐어. 애초에 대영을위험한 일에 쓸생각도 없었으니까.”

백우진은 그녀를 향해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그런 약속이었잖아.”

마음 같아선 그녀 또한 동생과 함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능력이 탐이 났기 때문이다.

“아,그러고보니 대영의 본명이 석이라고했던가.”

“예.”

“그럼 십영은?”

“예 ?”

아, 저, 저는….

대답을 망설이는 십영.

그러나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백우진의 눈빛을 이 겨내지 못하고 입 을 열었다.

“희연…입니다.”

“성은?,,

“송….”

송희연.

십영 뒤에 한참이나쓰이지 않고방치된 그녀의 진짜 이름.

“앞으로 송희연으로 살아.”

하나의 그림 자가 아닌, 한 명의 동료로서 받아들이 겠다는 의 미였다.

그 마음을 느낀 걸까.

그녀는 촉촉해진 눈망울로 백우진을 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 것도 같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 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정무학관의 출입문 앞이 었다.

그곳에는 이미 신룡조 조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슬슬 출발하자.”

백우진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자, 구왕수가 불안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 게 물었다.

“저기…, 이거 괜찮겠지…?”

교수들이 극구 만류하는 일을 비밀스럽 게 행하는 만큼 불안한 감정이 앞 선듯했다.

“괜찮아. 모든책임은내가져.”

일 잘 해결하고 돌아오면 학관에서도 강한 처벌을 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어도 상관없고.’

퇴관 조치를 한다고 해도 백우진은 거리낄 게 없었다.

초절정 에 오른 정파의 후기 지수를 퇴 관 시 키 면 과연 누가 손해 일지 , 굳이 주판 굴려보지 않아도 답은 나오기 에.

‘열받게 하면 확 사파에 붙어버리지, 뭐.’

|  |....

....

사파라고 온통 나쁜 놈들만 모인 소굴은 아닐 테 니.

생각을 마친 백우진은 구왕수와 장삼의 어깨에 양팔을 두르며 작은 소리 로 속삭였다.

“얘들아, 너희는 금양루만 생각해.”

“그,금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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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매수됐다.

어깨동무를 풀고 선두에 선 백우진이 작은 소리로 외쳤다.

“자,출발하자.”

목적지는 섬서백가.

보고서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써두었으니, 명목상이라도 한 번쯤은 들를 생각이었다.

섬서성 백하현.

섬 서백 가의 초대 가주가 터 전으로 삼은 평화로운 땅.

이곳에서만큼은 거의 왕으로 군림하는 섬서백가의 대문 앞에, 백우진이 다다랐다.

“흐음.,,

낯익은 감정과, 그리움이 몰려온다.

물론 그의 것은 아니었다.

이 몸의 주인인 ‘백우진’이 남기고 간 것일 뿐.

‘웃긴 놈이야.’

이곳에서의 기억은 언제나 무시당하고, 차별받기 일쑤였는데 그리워하다 니.

‘아,그게 아닌가.’

백우진은 고개를 돌려 마찬가지로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제 옆에 서 있는 신예화를 보았다.

때마침 그녀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응? 왜?”

그녀 때문이리라.

이곳을 보며 그립 다는 감정을 자아내 는 것은. 그리고 이곳에 없는 또 다른 한 사람 때문이 기도 할 터 였다.

“아무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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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기대했는지, 입술을 삐죽 내미는 신예화.

백우진은 애써 무시한 채 대문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나 그렇듯, 섬서백 가 앞으로 걸어온 이들을 막아서려던 경비 무사들 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둘째 도련님?”

“어, 나야. 문열어.”

“오, 오오…!”

경비 무사하나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친 표정을 하더니 돌연 뒤로 돌아서 서 대문 안으로뛰 어 들어갔다.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아!”

“뭐 ?! 우리 둘째 도련님이 오셨다고!”

“아이고, 도련니 임!”

그의 외침 한번에 온갖 방문이 덜컹덜컹 열리더니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 기 시작했다.

“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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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만 보면 완벽한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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