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29화 (129/215)

<129 화 蓬 서열정리

정과 사.

마주치기만 하면 언제나 싸늘하기만 했던 양 세력 간에 오랜만에 훈훈한 바람이불때.

이때라는 듯이 나타난 백우진이 던진 한마디가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었 다.

“우,우진아!”

백 명신은 대문 밖으로 나서는 백 우진을 애 타게 불렀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그래서 다른의미로 미칠 지경이었다.

예 전에는 여린 성격이 무인으로서 맞지 않는 것 같아 걱정 이 었는데, 한 번 죽다 살아나더니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그런 그의 걱정을 뒤로한채, 백우진은제 가슴팍에서 장보도를 꺼내들었 다.

“이 거 없으면 양쪽 모두 낙동강 오리알 신세일 텐데.”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장의 장보도요, 지금 이 상황을 이끌어갈 주도 권이기도 했다.

팔을 흔들 때마다 장보도가 펄럭였고, 양쪽 수장의 마음 또한 이리저리 흔 들릴 때였다.

“으음, 이보게.”

먼저 입을 연 것은 청룡단주 만승이 었다.

실수였다.

어느 한쪽의 힘이 커지는 것을 다른 한쪽이 두고 볼 리가 없는 이상, 이번 일에 한해서 정사의 합동 작전은 언제가 됐든 이뤄질 일이었다.

다만 일의 선후가 잘못되 었다.

“우리의 대화가 섣불렀던 것 같군. 내 사과함세:

깔끔하게 제 잘못을 인정하고 숙이고 들어오는 만승의 모습에 백우진의 화도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저도 잠깐 흥분했었습니다.”

“허허, 이해하네.”

두 사람 사이의 얼어붙은 분위 기는 다시 훈훈해졌다.

주도권을 다시 움켜쥐는 데에 성공했으니, 굳이 그와 척을 질 이유가 없었 다.

아니,오히려 친하게 지내는 게 좋았다.

만승은 무림맹이 자랑하는 주력 단체 중 하나인 청룡단을 이끄는 단주임 과 동시에 백우진이 언젠가 한 번쯤은 들러야만 하는 청성파의 제자였다.

그와 친분을 적잖이 쌓아두면 청성파를 방문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여러 이 점까지 고려해 가며 그와 좋은 분위 기를 이 어 나가고 있을 때.

‘‘흐 ”

흐-

흑풍대주 도경은 이를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그 소리가 제법 큰 탓에 조금 떨어진 백우진의 귀에도 톡톡히 들렸다.

그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오기 전에 들은 정보에 의하면 지금껏 낭인들과 장보도를 건 비 무를 펼쳤다고 들었다.”

“그런데.”

도경은 단숨에 무시무시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소리쳤다.

“흑풍대를 대표하여 너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장보도를 걸고 나와 비무를 하서자. 내가진다면 네게 진심으로 사죄하겠다.”

“••••••.”

녀석의 대찬 발언에 백우진은 아무런 대답도하지 못했다.

억지였다.

머리가 없는 게 아니라면 그간 낭인들의 비무에 어울려준 행동이 분위 기 가 과열되 는 것을 막기 위 함이 라는 것쯤 모를 리 가 없다.

더군다나 비무 조건도 이상했다.

이기면 장보도를 가지고 가고, 지면 사과를하겠다니.

“이 때는 깔끔하게 물러나겠단 말을 해 야 하는 거 아니 냐?”

백우진이 지적하자, 도경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본인 스스로도 억 지 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물러나겠단 말 한마디에 굴러갈 눈덩이를 스스로 감당키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싸워 보고 싶은 마음에 내던진 말이 었다.

‘흥! 그래봤자 놈은 사내.’

사내란족속들은 몇 가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혹시 쫄았느냐.”

‘님 쫄?’을 시전하는 도경.

그의 말대로 숙달된 조교 백우진 또한 사내 라는 족속의 테두리 에서 벗 어나지 못한 인간이다.

그렇기 에 저 말을 들은 순간 짙은 눈썹 이라도 꿈틀대 며 기분 나쁨을 표출 했을것이다.

평소였다면 말이다.

“안타깝지만 말이야, 흑풍대는 이미 비무 자격을 상실했어.”

“뭣…, 그게 무슨 말이냐!”

흑풍대는 비무를 걸 자격조차 없는 집단이라고 비난하려는 것일까.

잔뜩 성이 난도경이 제 등에 메고 있는 기다란도를뽑으려 할 때, 백우진 의 말이 이어졌다.

“너희 대표가 이미 나한테 한번 졌거든.”

그녀의 머릿속에 치욕스러운 패배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놈! 그때를 말하는 거라면…!”

“아니, 그거 말고.”

분개한 외침을 끊어낸 백우진이 흑풍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웃…!”

혹 기습이라도 가할 셈인가 싶어 반사적으로 기수식을 취하는 도경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흑의로 둘러싸인 흑풍대원들의 한가운데 .

정확히는 그곳에 가장 덩치가 큰 대원의 뒤에 제 몸뚱어리를 숨기고 있는 노인의 앞이었다.

“이보쇼, 영감.”

코앞에서 들려오는음성에 노인, 잔추는슬며시 고개를들어 올렸다.

그의 입 가에 그려진 짙은 미소를 보며 잔추 또한 어색하게 미소 지 었다.

‘이런 떠그럴.’

단 한 수에 패 배하고 목숨을 구걸하여 살아 돌아간 그는 뒤늦게 자신과 칼을 맞댔던 이가 정파의 후기지수라는 소식을 접하고 대경실색했다.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매서운 논쟁을 벌이기에 절대 정파는 아니리라 생 각했건만!

‘심지어 내가정파의 어린놈에게 목숨을구걸했다니!’

이는 인생 최악의 오판과실수를 동시에 달성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지 경이었다.

그렇기에 그는숨었다.

섬서백 가가 눈에 아른거리 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덩치가 큰 대원의 뒤 에 숨어서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어 떻 게든 첫 만남에 서 만이 라도 모습을 보이 지 않기 를 바라고 또 바랐건 만.

‘대체 어떻게 찾아낸 게야!’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음은 물론이고, 가장 최 악의 상황에 들키고 말 았다.

“영감, 나랑 잠깐 가주셔야겠소.”

“끄응….”

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발을 내빼기도 애매한 상황.

그는최후의 보루로서 조용히 그의 귀에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속삭였다.

“그…, 내가 목숨을 구걸했다는 건 어떻게 좀….”

대원들에게 치욕스러운 부대주는 되고 싶지 않다는 건가.

“그 정도는 들어드리지.”

그를 통해 얻어낼 게 많으니 자그마한 것 하나 내어주는 것 정도야 무에 대수일까.

완만하게 합의를 마친 백우진과 잔추는 곧장 도경에게로 향했다.

“부,부대주…, 이게 무슨일입니까.”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잔추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주님. 장보도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럼 설마…?”

“예…, 그때 이 자에게 패배하였습니다….”

“그, 그럴 수가.”

도경의 불신어린 두 눈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믿기 힘든 말이었다.

초절정에 이른 고수 일섬필혈 잔추가 저 뻔뻔한 사내에게 패배했단 말인 가.

“으오... ”

도경은 고개를 떨궜다.

잔추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흑풍대를 대표하기에 충분한 인물.

그가 패배했다면 더 이상 물고 늘어지는 것은 추하다 못해 명예를 더럽히 는 짓이리라.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약속한 대로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미안하오. 내 무례를부디 용서해주시오….”

백우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뭐 용서까지야. 사람은누구나실수할수도 있는 건데 말이지.”

백우진은 친한 사람처럼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안그래?”

그리고 그녀만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도 소저.”

그 말 한마디에 발작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꼿꼿하게 세우는 도경.

이 는 분명 한 협 박이 었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자신의 비밀을 모두에게 발설하고 말겠다 는.

“그,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야…, 고, 고맙소.”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감사를표하는그의 어깨 위에 올려진 손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

은밀하고 끈적한 손길.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서 열 정 리 가 마무리 되 는 순간이 었다.

섬서백가에 유례 없는 인파가 들이닥쳤다.

기분 좋게 주둥이 하나만으로 서열 정리를 끝마친 백우진은 사람 좋은 미 소를 지으며 흑풍대와 청룡단 전원을 초대했다.

그 수가무려 백을 넘었다.

덕분에 객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해둔 모든 공간이 꽉 차는 것은 물론이고, 신룡조원들 또한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백호각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런 통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음식은 아직인가!”

“그, 금방 됩니다.”

“창고에 쌓아둔 이부자리를 모두 내오게, 어서!”

그들을 대접하는 데에 자신의 손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

!....

.

갑작스럽게 죽을 듯이 바빠져 한시도 쉬지 못하고 이쪽, 저쪽을 오가는 하 인들을 보면 미 안한 마음이 아주 약간 들긴 했지 만.

‘쌤통이다.’

이 몸뚱어리를 무시하던 집안에 작은 벽력탄 하나를 던져준 것 같아 통쾌 한 마음이 더 컸다.

그래봤자 긴 세월 축적해온 가문의 곳간이 마를 리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조원 모두와 모여 앉아 식사를 마치고 제갈연지와 함께 백호각 주변을 산책하듯 거닐고 있을 때였다.

“도련님.”

백색 무복차림의 사내가그의 앞에 나타나부복했다.

사내는 섬서백 가 내에서도 가주전을 지 키는 정예 무사 중 하나였다.

“가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 다.”

치 안 문제로 회의를 하기 위 해 화산파로 떠 났다던 가주이 자 아비 인 백 영 학이 돌아왔다는 소식.

이와함께.

“가주님 께서 곧장 가주전으로 들라십니 다.”

가급적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