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蓬 다툼
철새가 떼를 지어 이동하듯, 백하현에서도 일련의 무리가 떼를 지어 이동 을시작했다.
백우진이 이끄는 신룡조를 필두로 흑풍대와 청룡단.
그리고.
“역시 따라붙네.”
그 뒤 를 야금야금 따르기 시 작하는 낭인들까지.
“흥, 뭐 주워 먹을 게 없나쫓아오는 거겠지.”
도경의 말대로였다.
흑풍대와 청룡단이 백하현에 들어선 이후로 낭인 대다수가 실의에 빠져 돌아갔다.
..
.
하지 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 었다.
혈수마녀의 유산이 숨겨져 있는 곳까지 잘 따라가면 뭐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작디 작은 희 망 하나로 뒤를 쫓는 이들의 수도 제 법 많 았다.
“혈수마녀의 무공이 무에 그리 대수라고.”
도경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고작 한 명의 무인이 남기고 간 유산 때문에 자신이 이토록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새 였다.
“어…, 비록 악인이지만대단한사람인 건 맞는데요…?”
그녀의 말에 토를 단 이는 다름 아닌 제갈연지 였다.
도경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붙이자, 제갈연지는 히익, 하고 놀라며 백 우진의 뒤로 쏙숨어들었다.
그리고선 얼굴만 빼꼼 내민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혀,혈수마녀는…, 그 당시에 수십의 고수를 처참하게 죽였어요….”
도경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그래서?”
겁먹은 표정으로 꿋꿋이 말을 이 어가는 그녀를 보며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 그녀가죽인 고수들 중에는 수라도 가묵한도 있었고요….”
도경의 짙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수라도 가묵한.
그는 혈교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사파의 영웅이었다.
오랜 전쟁 끝에 사문으로 돌아온 그는 사파의 영웅으로서 어마어마한 인 기를누리다가 어느 날밤, 자신의 방에서 갈가리 찢긴 채 발견됐다.
혈수마녀의 짓이었다.
“수, 수라도 가묵한은 화경의 끝자락에 올랐던 고수니까….”
화경의 끝자락에 올랐던 고수가 제 방에서 싸웠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승부가 일방적 이 었음을 뜻한다.
현경을 눈앞에 둔 고수를 아무도 모르게 무참히 살해할 방법은 단 하나.
“혈수마녀는, 현경에 오른고수였을 거예요.”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얼굴을 숨기는 제갈연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가 이토록 많은 말을 했다는 것만으 로도, 백우진은 놀라울 정도였다.
백우진은 제 등 뒤에 숨은 제갈연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혈수마녀에 대해 잘아네.”
그녀는붉어진 얼굴로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배, 백 공자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싶어서….”
오직 자신을 위해 공부했단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한껏 껴 안아주고 싶었으나 주변에서 보는 눈들이 많은 바람에 머리를 격 하게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참았다.
그 모습을 본 도경은 또 한 번 인상을 찡그리 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 거나 말거나, 둘만의 분위 기 에 푹 빠져 있던 그는 조금 떨 어진 곳에서 육포를 양손에 한가득 쥐고 있는 신녀가눈에 들어왔다.
‘왜 저러지?’
육포를 건네줄 때만 해도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어 둠이 드리워져 있다.
언제나웃음 가득한 여인이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의아했다.
다가가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물으려 할 때, 청룡단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던 만승이 다가왔다.
“이제 슬슬 출발하세.”
“음…, 예.”
준비를 마치고 하나둘씩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무인들.
의문의 해소는 다음 시간으로 미루어두기로 하고, 백우진은 다시 발걸음 을 옮겼다.
행군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일행 모두가 일류 이상의 무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신법을 적절하게 운용한 덕분이 었다.
혈수마녀의 유산이 숨겨져 있는 곳까지 대략반나절 조금 안되게 남은 상 황에서.
“오늘은 이곳에서 휴식한다!”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문 뒤,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오전 즈음에 당도할 예정 이었다.
과연 무림맹과 사흑련의 정예 단체라해야 할지.
두 무력 단체는 매우 익숙한 일인 것처럼 야영 준비를 신속하게 끝마쳤다.
하룻밤이슬을 피할천막이 펼쳐지고, 깔개가깔렸다.
이 윽고 불 위 에 올려 진 솥에 서 제 법 맛있는 냄 새 가 솔솔 풍겨왔다.
건량을 대충 때려 넣고 만든 죽 비슷한 음식이었지만, 맛은 제법 훌륭했다.
섬서백가에서 먹으라고 준비한 건량들이 전부 최고급 품질이었기 때문.
야영 중에 먹을 수 있는 음식치곤 뛰어난 맛으로 배를 채운 무인들은 삼 삼오오모여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캬,역시.”
백우진은 그들을 보며 감탄했다.
괜히 정예 단체가 아니다.
제법 힘든 행군 와중에도 단 하루도 수련을 빼먹지 않기에 그들이 강한 것 이다.
백우진의 시선이 뒤에 앉아꾸벅꾸벅 졸고 있던 조원들에게로 향했다.
“해야겠지?”
“O 으”
—, 으 •
“아, 안그래도 슬슬 하려고 했소.”
눈치가 제법 빨라진 구왕수와 장삼이 빠르게 일어나 검을 뽑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뒤이어 일어난 것은 신예화였다.
그녀는 천막 옆에 세워둔 월도를 쥐고 유화연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비무어때?”
“•••좋아요.”
최근 절정에 오른 두 사람은 호승심을 불태우며 비무를 위해 멀어져갔다.
제 갈연지 는 육포 몇 조각을 먹고 곤히 잠든 백호를 품에 안은 채 , 무언가 를 유심히 읽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어려운 도형이 나 문자들이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선 가문으로 부터 건네받은 진법과, 기관술에 관련된 서책인 듯했다.
“으으
O 으 •
자신이 뭐라 말하기도 전부터 깊게 집중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뿌듯한 미 소를 짓는 백우진.
그의 시선은 끄트머리에 앉아 넋을 놓고 있는 신녀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그릇 안이 었다.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가 음식을 비우지 못하고 있다.
덜컥 겁이 난 백우진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설 소저?”
“아, 아앗… ! 여, 영웅님 …이 아니라 백 공자님!”
영웅이라는 표현은 어디에서 불리든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래서 백우진은그녀에게 다른 말로써 불러주길 권했고, 그녀는 이제 백 공자라는 호칭을 입에 붙이는데에 노력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 있어?
“네? 아, 아니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설수연.
백 우진은 그녀 가 들고 있는 그릇을 가리 켰다.
“없는 것치곤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은데.”
“우으….
정곡을 찔린 듯, 어색한 미소가 남아 있던 그녀의 얼굴이 단숨에 우울함으 로물들었다.
쭈그리고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백우진이 물었다.
“무슨 일인지 얘기해 봐. 그래야 도와주든지 할 것 아냐.”
“백 공자니임….”
눈물을 글썽 이는 설수연.
이토록 따뜻한 대접은 전대 문주였던 스승님이 전부였기에 그 애틋함이 더해졌다.
백우진은 그 나름대로 그녀에게 부채감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와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성녀에게 빚이 있다.
‘도움 많이 받았지.’
용사라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사리분별 못하고 앞장섰다가 죽을 뻔한 경험이 몇 번이던가.
그때마다 죽어가는 자신을 살려준 것은 성녀의 치유 덕분이 었다.
죽음에 이른 상처를 돌보는 것은 성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 게든 그녀에 게 보은하겠다고 말했지 만, 백우진은 지금 그 세 계를 떠 나와이곳에 있다.
그 부채감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가슴만 보면 아무리 봐도 같은 사람은 아닌 듯하지 만, 비슷한 얼굴이 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불안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그,그게요….”
결심을 내린 그녀가무언가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조, 조장!”
쭈그려앉은 백우진의 뒤로 장삼이 헐레벌떡 달려와 거친 숨소리를 토해 냈다.
다급한음성과 심상치 않은 표정이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케 했다.
“무슨일이야.
“지,지금 난리가 났소.”
그가 손가락으로 왼쪽 방향을 가리 켰다.
“빨리 저, 저리로 가보시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백우진이 신법을 운용했다.
조금 달리자 흑풍대와 청룡단 무사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여기까지 와서?’
순조롭게 합동이 이루어지고 있나 싶었는데 다툼이라도 벌어진 걸까.
“어,엄청나군.”
“분명 비무라고 하지않았나…?”
황급히 달려온 백우진이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 안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무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의 중앙에는.
“그럼 그게 전부 내 탓이 라는 거 야? !”
“그건 아니겠죠! 하지만, 제가 옆에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 을 것같네요!”
“이게…!”
‘‘흐 ” 흐-
살벌한 말다툼.
그리고 그보다 살벌하게 공수를 주고받고 있는 신예화와 유화연의 모습
이 보였다.
“이게 지금뭔 상황이래.”
분명 나쁘지 않은 분위 기로 비무를 하러 간 두 사람이 었다.
말다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비무 도중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리된 것 같 은데.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눴길래?’
그가 고민하는 와중에도 둘 사이 에 나누는 초식 이 조금씩 더 깊고,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둘 중 하나가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
고민을 멈춘 백우진이 곧장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멈춰!”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무사들이 백우진의 손동작을 따라하며 외쳤 다.
“멈춰!”
멈춰, 멈춰, 멈춰….
정사가 합심하여 외친 음성이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이에 놀란 두 사람은 그대로 멈춰 섰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