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33화 (133/215)

<133 화〉비밀

이슬이 촉촉하게 내려앉은 이른 아침.

해 가 뜨기도 전에 잠에 서 깨어 야영 지를 정 리 한 무사들은 곧장 길을 나섰 다.

어느덧 숲길이 끝나고, 황무지 가 나타났다.

선두에 선 도경, 백우진, 만승은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보며 눈을 빛냈다.

“이곳 어딘가에 혈수마녀의 유산이 숨겨져 있다는 건가….”

“으음…, 막막하구려.”

장보도에 표시된 붉은 점은 대략적인 위치만 나타낼 뿐, 정확한위치는 알 려주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인즉.

눈 앞에 펼쳐진 황무지 일대를 전부 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

“미친 짓인 것 같은데.”

도경이 질린다는 투로 얘기했다.

만승 또한 이에 호응하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백 우진이 라도 다른 건 아니 었다.

눈앞의 황무지를 전부 들쑤시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쉬이 가늠조차되 지 않는다.

“일단 거점부터 세웁시다.”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며칠이 걸릴지도 모를 상황이니, 모든 활동의 기점이 될 거점을 세우는 게 첫 번째였다.

각 수장의 명을 받은 무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편한 야영지와는 다른, 오래 머물기에 적합한 천막들이 하나둘씩 세워 지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섬서백 가로부터 지원받은 것들이 었다.

가문에서 하나 같이 최상 품질의 것들로 지원을 해준 덕분에 백우진의 주 도권은 한층 견고해 졌다.

자신에게 모든 일을 일임한 채 이토록 좋은 물건들을 내어준 백영학의 의 도는 무엇일까.

‘이제 와서 잘보이려는건 아니겠지.’

설마 이토록 속 보이는 짓들을 해가며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아 니리라.

생각에 빠져 있는사이,회의소로운영될 천막이 지어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도경과 만승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백우진이 가운데에 앉는 것으로, 회의는 시작되 었다.

“이 황무지를모조리 파내려면 어마어마한시간이 필요할 거요.”

“맞아.더군다나우리 뒤에 달라붙은꼬리도 잊어선 안되겠지.”

혈수마녀의 유산을 찾기 위해 결성된 정사연합의 뒤를 졸졸 따라온 낭인 무리들.

연합측 무사들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금세 알아 차릴 것이다.

이곳 광활한황무지 어딘가에 혈수마녀의 유산이 잠들어 있고, 연합또한 아직 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쯤은.

그때가 되면 연합의 눈을 피해 땅을 파내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자들이 우 후죽순 생겨날 터.

여 러모로 답답한 순간이 었다.

‘이를어쩐다….’

여러 상황에서 기발한수를 떠올려낸 백우진.

하지만 지금만큼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생 각에 잠겨 회의소 내부가 침묵에 휩 싸였을 때.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일단오늘하루는 쉽시다. 쉬면서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고, 나오지 않는 다면….”

익살스럽 게 어깨를 으쓱이 며 말을 잇는다.

“땅이라도 팝시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 두 사람은 일단 그 제 안을 받 아들였다.

이 후 경 계 방침 이 나 뒤 따르는 낭인들에 대 한 대 응 방침 등을 논의 한 뒤 , 회의는 마무리되 었다.

밖으로 나온 백우진은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서책을 읽고 있는 제갈연지 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제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자 제갈연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백공자…!”

환하게 웃는 제갈연지.

“회의는 잘끝났어요…?”

“아니, 별로야.”

“아….”

“이 황무지를 다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고.”

백우진이 난감하다는 투로 말하자, 제갈연지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장보도를꺼내어 펼쳐보았다.

“장보도는 왜?”

그가 묻자,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나 장보도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진 않을까 해서요…. ”

“음.”

일리가 있다.

장보도란 건 애초에 자신이든, 다른 누군가든 숨겨둔 위치를 기입하기 위 해만든 것아닌가.

그런 것치곤 이 넓은 땅덩어리 위에 붉은 점 하나만콕찍어둔 게 수상쩍다

‘마교의 술수인가.’

장보도를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마교 놈들의 수작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대로 장보도에 자신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장보도를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찾은 것은 없었 다.

대신.

“흠흠, 제갈소저.”

“배,백공자….”

또 눈이 맞았다.

한창 혈기왕성한 남녀에게 치명적인 거리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

.....

제 앞에 타오르는 모닥불을 불빛 삼아 제 갈연지는 여 전히 장보도를 보고 있었다.

“아이, 참….”

낮부터 백우진과 낯뜨거운 행위를 하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소모하고 말 았다.

지금이 라도 철야로 장보도의 비 밀을 파헤치고 말리 라.

“우으.”

호기롭게 다짐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무림맹에서 비밀스러운 서찰을 전할 때 사용하는 방법들을 모조리 이용해 보았지 만, 장보도 위 의 지도에 는 여 전히 붉은 표식 하나뿐이 었다.

그녀의 얼굴이 축 늘어졌다.

“백 공자한테 도움이 되고 싶은데 ….”

그에 게 자그만 것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은데 좀처럼 풀리 지 가 않는 다.

그녀는 답답한마음에 장보도를품에 넣은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하아….”

황무지의 밤은 날씨가제법 쌀쌀했다.

싸늘해진 팔을 문지르며 밤길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이보게.”

“왜 그러나.”

뒤 따르는 낭인들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도록 보초를 서고 있던 청룡단 무사들의 이야기 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난솔직히의문이란말이지.”

“무엇이 말인가.”

“혈수마녀 가 아무리 대 단하다고 해도, 결국 이백 년 전 사람 아니 냔 말이 야.”

“그렇지.”

“이백 년간무림이 이토록 발전했잖은가.그런데도 이백 년 전 무공하나 때문에 이토록 겁을 먹어야 하냔 말이야.”

조용히 엿듣고 있던 제갈연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무림은 지금까지 숱한 발전을 이룩했다.

근 이백 년간 나타난 대종사에 의해 많은 무공이 개발되었고, 발전을 거듭 했다.

그뿐인가, 구태여 무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도 발전을….

“아…!”

그러다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한 가지.

제갈연지는 설렘을 끌어안은 채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로 돌아가 장보도 를 꺼내어 보았다.

“그래, 이건 이백 년 전의 물건이잖아….”

이백 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에 현대에 와서 쓰이기 시작한 방식을 적 용한들 무에 달라질까.

그녀는 곧장 장보도에 얼굴을 파묻고, 코를 킁킁거려 냄새를 맡았다.

코를 쿡 찌르고 들어오는 시큼한 냄새.

그녀의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갈연지는 신법을 운용하여 백우진이 머물고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버,벌써 잠드셨나…?”

천막 안쪽이 어둡다.

평소 같았으면 내일 알려줘 야지 하고 돌아섰을 그녀는 정반대로 행동하 기 시작했다.

“백 공자아….”

천막 안으로 들어선 그녀의 눈에 간이 침상에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백우 진이 들어왔다.

사뿐한 발걸음으로 다가가자, 곤히 잠든 얼굴이 다시 한번 심장을 뛰게 만 든다.

‘바,반칙이야.’

얼굴만으로 사람을 달아오르게 만들다니 .

‘이,이럴때가아니지.’

지금은 장보도에 대해 알려줘 야 할 때다.

그녀가백우진의 가슴에 손을 얹어 가볍게 흔들자, 백우진의 눈이 서서히 뜨이기 시작했다.

“뭐야….”

게슴츠레 뜬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제갈연지를 발견한 백우진 의 입가에 가벼운미소가 그려졌다.

“대 담하네, 제 갈 소저. 나랑 같이 자기 라도 하려고온 거 야?”

“네? 아, 아니, 저…!”

그녀가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백우진의 팔이 먼저 움직였다.

자신의 가슴을 살포시 짓누르고 있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앞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백우진의 품에 안기는 꼴 이되었다.

“꺄흡…!”

졸지에 가슴을그의 얼굴에 파묻은 제갈연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같이 자자….”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는 그의 손길.

심장은 콩닥콩닥 뛰는데 자꾸만 수마가 밀려온다.

어이없게 잠들 뻔한 제갈연지가 황급히 눈을 부릅뜨고 백우진의 품에서 벗어나 소리쳤다.

“이,이러면 안돼욧!”

그녀의 날카로운 거부에 놀란 백우진이 황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제,제갈소저…?”

자신이 큰 실수라도 했나 싶어 당황으로 물든 백우진의 얼굴에 제갈연지 가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 아,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지, 지금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곧장 장보도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저 …, 장보도의 비밀을 푼 것 같아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제갈연지 .

그녀는 곧장 백우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모닥불 앞에 쭈그리고 앉았 다.

“구시대 무림에서 비밀 서찰을 전할때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어…, 글쎄.”

“특수한 약물들을 이용해서 원래의 내용을 숨기고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적었다고 해요.”

이 장보도 또한 구시대 무림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다.

그러니 정보를 숨기는 것 또한 그 시대를 기준으로 봐야만 했다.

제갈연지는 봇짐 안에서 작은 자기병 하나를 꺼내어 마개를 열었다.

시큼하게 톡 쏘는 냄새가 풍긴다.

“이걸여기에 뿌리고….”

그녀는 병에 담긴 묵빛 액체를 장보도에 빈틈없이 골고루 뿌린 뒤, 조심스 럽 게 들어 그대 로 타오르는 모닥불 위 에 가져 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닥불의 열기에 의해 장보도를 적신 액체가서서히 마르기 시작하면서, 그려진 지도위에 다른 문양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빈 지도 위 에 덩그러니 놓인 붉은 표식은 어느새 다양한 문양들에 둘 러싸여 있었다.

이곳에 특정된 위치를 찾아낸다면 혈수마녀의 유산을 찾을 수 있으리라.

“어,어때요, 백공자.”

내가 이 정도라고 뽐내듯 턱을 높이 들어 올리는 제갈연지.

그런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던 백우진은 이내 그녀를 향해 와락 달려들었 다.

그리곤 얼굴 여 기 저 기 에 입술 도장을 쾅쾅 찍 어대 기 시 작했다.

“아유, 이뻐 ! 아유, 정말!”

제 갈연지 가 최 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