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34화 (134/215)

<134화〉비밀

장보도의 비 밀을 모두 풀어 낸 다음날 새 벽.

백우진은 일찍 일어나 운기조식을 마친 만승과 도경을 회의소로 불러들 여 완전히 깨어난 장보도를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장보도에 이런 비밀이…!”

“•••헛고생 안해도돼서 다행이군.”

놀란 표정을 짓는 두 사람.

“이게 다.”

한껏 의 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백우진이 옆에 다소곳이 서 있던 제갈연지 의 어깨를 살포시 안은 채 끌어당겼다.

“우리 어여쁜 참모의 공입니다.”

너네는 이런 참모 없지?

놀리는 듯한 모양새에 두 사람은 썩은 미소를 지 었다.

“자, 잘하셨소.”

“•••대단하네, 아주.”

입 가에 짙은 미소를 그리는 백우진.

노회한 만승은 느꼈다.

‘자랑하려고 입이 근질거리는구나!’

이대로 두면 한동안은 제갈가 여식에 대한 칭찬만 반 시진 이상은 듣게 될 거라고.

이럴 땐 시작조차못하도록 먼저 입을 막는게 중요했다.

“흠흠! 장보도에 새롭게 떠오른문양이나글자들이 매우 직관적이군.”

“•••이거라면 금방 찾을 수 있을지도.”

순식간에 화제가 전환되는 바람에 말할 기회를 놓친 백우진의 얼굴이 시 무룩하게 변했다.

만승은 이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박수를 치며 분위 기를 환 기시 켰다.

“단원들조식 마치는 대로수색을 시작해 봅시다.”

거기서 회의는끝이 났다.

못내 아쉬운 표정을 하고 있던 백우진은 조원들과 간단하게 조식을 해결 한뒤,하나둘씩 집결하기 시작하는 청룡단과흑풍대의 앞에 섰다.

옆에 함께 서 있던 만승이 대신하여 소리쳤다.

“출발한다!”

검 대신 곡괭이와 삽을 쥔 흑풍대와 청룡단 무사들이 황무지로 쏟아졌다.

“뭘 찾으라고 했더라.”

“거암을 찾으라던데?”

장보도에는 유산을 숨겨둔 장소의 주변 지형이나 지물 등을 상세하게 적 어두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무려 이백 년 전에 만들어진 장보도 아닌가.

황무지 에 존재 하는 것들 대 다수가 오랜 세월 바람에 깎아내 려 점차 사라 지는것들이다.

분명 그 주변으로 다양한 변화가 생 겨났을 터.

‘가장 확실한 것 하나만 특정 한다.’

그렇기에 장보도에 적힌 표식들 중 이백 년이 지나도 거뜬할 만한 것을 골 랐다.

그것이 바로 거암(巨톾)이다.

장보도에 적힌 바로는 크기 가 사람의 수 배는 되는 크기 라 했으니 , 오랜 세월 바람에 깎여나갔다고 한들, 그크기가 어디 가겠는가.

“발견했습니다!”

“이쪽에도 있습니다아!”

드넓은 황무지에서 거암을찾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크기 가 제 각각이 긴 했지 만, 확실히 크다고 할 만한 것들이 발견되 면 각 단 체의 수장들이 찾아가 미 리 확인해둔 장보도의 내용을 떠올리 며 주변 지 형 을살폈다.

“여긴 아니었소.”

“이쪽도 마찬가지.”

장보도를보고똑같이 그려낸 지도위에 하나둘씩 빗금이 그어진다.

발견한 거암이 많을수록, 그들의 실망또한 쌓여갔다.

수두룩하게 그어진 빗금들을 보며 만승이 한숨을 내쉬 었다.

“금방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이 것도 쉽 지는 않구려.”

동이 틀무렵 시작되었던 수색은 해가중천에 걸린 지금까지 이어졌다.

선선했던 바람은 어느덧 답답한 더위를 머금었고, 일직선으로 내리쬔 뙤 약볕에 무사들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맺혔다.

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무사들을 본 백우진이 휴식을 선언했다.

무사들은 기 다렸다는 듯이 근처 에 봐둔 그늘로 황급히 몸을 숨긴 채 앞섶 을 펄럭였다.

“하아…!”

이 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 며 적 당한 크기의 바위 에 걸터 앉은 도경은 분 한 얼굴로 조금 떨어진 곳에 각각 서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만승, 백우진, 잔추.

모두가 지쳐 있을 때, 그들은 여전히 평온했다.

초절정에 이른 세 사람은불침(끱侵)까지는 아니어도 한서(寒暑)로부터 받는 영향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그녀의 시선에 담긴 인물이 세 사람에서 한 사람으로좁혀진다.

일섬필혈(銜쪅必血) 잔추와 청운검(靑雲劍) 만승.

이 두 사람이 초절정에 이른고수인 건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무림에 발을 들여 여태 살아남은 노고 수들이니까.

허나, 백우진은 그들과 다르다.

그는 젊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심지어 자신보다 더.

그런데.

‘이 차이는대체 뭐냔말이야!’

그녀는 천재였다.

남들이 수백 번을 휘둘러 겨우 묘리를 깨달을 때, 그녀는 열 번으로 깨달 았다.

또 남들이 한 걸음을 겨우 내디딜 때, 그녀는 네다섯 걸음을 단숨에 뛰어넘 었다.

파죽지세 (破竹之勢).

그녀의 성장기를 표현하면 실로 그러했다.

그렇게 그녀는 고작 스물셋의 나이에 초절정으로 향하는 거대하고 막막 한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이 벽을 어떻게 그리 단숨에 뚫어낸 거지?’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서는 벽은 두꺼우나, 두드리다 보면 열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사정없이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뻥 하고 뚫려버렸다.

허나,초절정의 벽은차원이 달랐다.

안간힘 을 쓰고 발악해 도 흠집 밖에 나지 않는다.

절정에 오를 때처럼 마구잡이로두드리면 제 몸이 먼저 부서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인다.

|  |.....

!.

.......

전신을 난자하는 두려움과 막연함을 참아가며 자신은 이제 고작 한 줌 파 냈을뿐인데.

대체 그는 무엇으로 이 벽을 허물었단 말인가.

“긋…!”

패배감이 엄습한다.

자신보다 나이 가 많은 고수들과 싸울 때는 느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 의 패배감이.

동시에 호승심과호기심이 자극된다.

자신보다 앞서 벽을 허문 사내의 검은 어떠할지, 또그를 상대하면 자신 또 한 벽을 허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끌어내리든, 자신이 올라서든.

보란 듯이 제 머리 위를 노닐고 있는 사내를 발아래 두고 싶다는 정복감마저 치민다.

‘%으 布…” --, — •

달뜬 신음을 내뱉으며 그와 검을 맞댔던 첫 순간을 떠올린다.

‘부족해.’

적진 한복판이 라 침착하지 못했다.

그의 말 몇 마디에 이성을 잃고 단숨에 나가떨어지는 자신의 모습이 야속 하기만 하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싸울수 있을 텐데.’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눈길로, 그녀는 백우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k * *

뙤약볕 때문에 수색의 효율이 몹시 나쁘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수색이 가능할까고심하고 있을 때, 장삼이 다가 왔다.

“조장.”

“왜.”

“이곳에아주묘한 것이 있소.”

그제야 백우진은 장삼의 얼굴을 마주했다.

여느 때보다 심각해 보이는 표정을 보며 묘한 것’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위치는?”

“저쪽이오.”

그가 가리 킨 곳은 휴식 후 이 어 갈 수색 지 역 이 었다.

“정확히 뭐가보이는건데.”

“지박령이오.”

지박령.

자신이 죽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영혼을 일컫는다.

그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다수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거나, 이곳 에 미처 풀어내지 못한원한 같은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혈수마녀의 유산이 잠든곳에 지박령이라.’

어쩌면 혈수마녀 본인은 아닐까.

백우진이 물었다.

“성별도알 수 있나?”

“남성이오.”

“아,그래….”

아주 시원하게 빗나가는 추측.

하지 만 그 지 박령 이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예 감만은 사라지 지 않 는다.

“대화는가능하고?”

“으음, 거리가 제법 멀어서 가봐야 알 것 같소.”

“그럼 가봐야지.”

망설일 이유가 없다.

수색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나타난 지박령.

이 거 야말로 가장 큰 단서 아닌가.

근처에 있는 만승에게 수상쩍은 곳을 수색해보고 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백우진은 장삼과 함께 신법을 운용하여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곳이오.”

그가 멈춰 선 곳은 장보도에 나타난 지형지물과는 전혀 연관성이 느껴지 지 않는, 흙먼지만 잔뜩 불어나는 황무지의 한가운데 였다.

“여기가 확실해?”

“그렇소. 고작 열 걸음 거리에 지박령이 메 여 있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근방에 존재한다는 것이 조금 꺼림칙해진 백 우진이 기감을 한껏 끌어 올리고 전신의 감각을 활짝 열어젖혔다.

먼지 바람만 가득한곳에 흐르는 기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잡힌다.

또한 느껴졌다.

장삼이 가리킨 곳으로부터, 일반적인 기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기운이.

그것은 장삼의 몸 주변에 흐르는 것과 비슷했다.

다른 점 이 있다면 위 에서 아래로 강물이 흐르듯, 끊임 없이 움직 여 야 할 기 운이 일정 지역에 고정되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까.

“흐음, 저기인가.”

장삼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무언가 아는 척하는 게 우습지 않은 가.

상당히 오만불손한 눈빛으로 옆에 있던 백우진을 힐끔 쳐다보던 장삼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시선이…?’

조장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의 시선 끝과 자신이 보고 있는 지박령의 위치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 다.

“•••보, 보이시오?”

장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백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느껴지는 정도.”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이상, 영감을 개방하기 위해선 최소 수십 년의 수련을 필요로 한다.

영술을 개발한모산파의 장문인 또한오랜 시간고련을 거듭하여 이뤄낸 것이 아니던가.

‘으음,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다른 이 들과는 확연히 다른 그의 상태를 떠 올린 장삼이 고개를 주억 거렸 다.

보기만 해도 숭고해지는 그의 영혼에다 대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그는 현재 지박령과 다를 것 없는 상태 였다.

메 여 있는 장소가 다를 뿐, 그 또한 타인의 육신에 깃든 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니까.

어쩌면 그러한 체험이 그의 영감을 자연스레 자극하는 것일지도 모르겠 다고, 그는 생각했다.

백우진의 음성이 장삼의 상념을 일깨웠다.

“대화부터 시도해봐.”

“ 아, 알겠소.

99

깊게 숨을 내쉬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장삼.

대 부분의 귀 신은 죽기 직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 한다.

눈앞의 지박령 또한그러했다.

여기저기 찢겨진 의복, 몸곳곳에 딱딱하게 굳은 핏자국, 함몰된 뒤통수.

누군가에게 당한 듯한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보시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간 장삼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공허한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텅 빈 시선으로부터 장삼은 많은 것들을 느꼈다.

뒤로 돌아선 장삼이 백우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대화는 힘들 것 같소. 이지를 대부분 상실하여 본능만이 남아 있는 수준 이오.”

“그럼 뭔가를 얻어내긴 그른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소.”

그 말을 남긴 채, 장삼은 다시 돌아섰다.

이지를 상실하고 본능만이 남아 있는 지박령과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 하다.

하지만.

“나는 땅에 메인 그대의 영혼을 해방시켜 줄수 있소.”

텅 비어있던 지박령의 눈동자에서 순간 미약한빛이 번쩍였다.

이곳에 해방되고 싶다는 본능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모양.

그렇다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해방되고 싶다면 내 말을 따르시오.”

지박령의 고개가 미약하게 움직인다.

장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이곳 어딘가에 숨겨진 장소를 내게 알려주시오.그러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박령의 검지가펼쳐졌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

그 손의 움직임이 멈춘 곳은.

…猌”

다름 아닌 지박령이 딛고 서 있는 땅이 었다.

‘땅 밑.’

장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백우진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혈수마녀의 유산이 이 땅 아래에 잠들어 있다면.

이백 년간불어닥친 바람이 유산이 잠든 장소뿐만 아니라, 이를 찾아내기 위해 장보도에 표시해둔 지형지물까지 전부 파묻은 거라면.

생각을 마친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신호탄 터뜨려. 이곳으로 모두 집결할 수 있도록.”

잠시 후.

집결 신호를 알리는 신호탄이 허공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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