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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42화 (142/215)

<142 화〉헐수마녀

한기 가 올라오는 딱딱한 바닥 위 로 붉은빛을 머금은 머 리 칼이 부드럽 게 흐트러져 있다.

새하얀피부에 피처럼 붉은 입술.

백우진은 눈앞의 시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새하얀 피부와 붉은 머리카락, 그것은 분명 오래된 책에 남아 있었던 혈수 마녀의 외형적 묘사와 일치했다.

‘이게 혈수마녀….’

괴 이 한 감각이 등골을 스치 고 지 나간다.

무려 이백여 년 전에 천라지망을 뚫고 사라진 여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장이 위치한 가슴 부근이 검에 꿰뚫려 있었으니 시 체가분명할진대.

‘왜 당장에라도 살아날 것처럼 생생하지.’

뚜껑을 덮어 놓았을 때 짓눌리지 않았을까 염려될 정도로 높게 융기된 가 슴은 평온하다.

그녀가 숨을 쉬 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 그녀의 피부에서, 입술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죽은 자에게선 절대 느낄 수 없는 붉은빛 생 기가.

“난감하네….”

백우진은 손으로 제 뒷머리를 마구 헝클이 며 복잡한 심 경 이 담긴 눈으로 시체를 내려다봤다.

유산이 숨겨져 있을 거라 추정하던 장소에 혈수마녀 본인이 누워 있을 줄 이야.

“뭐뭐냐.

멀찍이 떨어져 단단한 준비태세를 취하고 있던 도경이 슬금슬금 다가왔 다.

그리고 보았다.

“헉.”

그 안에 살아있는 것처럼 누워 있는 시체를.

당장에 라도 튀 어 나올 듯, 커 다래 진 두 눈이 백 우진 에 게 로 향했다.

“이,이,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묻고싶은데 말이 잘나오지 않는듯했다.

“아무래도 혈수마녀 본인 같은데.”

“혀, 혀, 혈수마녀?!”

“그래.”

그녀의 시선이 재차 시체에게로 향한다.

중원 에 서 보기 드문 붉은빛 머 리 카락, 그것만으로도 누워 있는 시 체 가 혈 수마녀란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마,말도 안돼….”

추측과는 별개로 쉬 이 믿기는 힘든 일이 었다.

혈수마녀의 유산이 잠들어 있으리라 추측한 곳이니 그녀의 시체가 이곳 에 있다고 한들,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혈수마녀는 이백 년 전 사람 아닌가…?”

“맞지.”

“그 시간이면 인간의 시체는 뼈만남아야 정상일 텐데, 어떻게 ….”

백우진의 손이 그녀가누워 있는 자리의 바닥을 훑었다.

살짝 닿은 손끝으로 매서운 한기 가 스며들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떼어 냈다.

“이거, 빙옥 같은데.”

“빙옥이라면….”

빙옥(氷玉).

|  |.....

!....

...

.......

북해 빙궁의 비 술로 만들어 지 는 스스로 한기를 내뿜는 특별한 옥을 일컫 는다.

과거 혈교와의 전쟁 당시 비술서를 도둑맞는 바람에 더 이상 만들어낼 수 없는 물건으로, 유일하게 남은 하나는 궁주의 신물로 이용되 고 있다고 하는 데.

“이만한크기의 빙옥이라니….”

궁주의 신물로 이용되 는 빙 옥의 크기 가 고작 어 린아이 주먹 만 한 크기 라 고 전해지는데, 이 것은 사람 둘은 눕힐 정도로 거대하다.

예상컨대 이것을 북해빙궁의 인물이 보았다면 침을 뚝뚝 흘리며 달려 들었으리라.

“근데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 빙옥을 사용했다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빙옥을 시체가 눕는 자리에 넓게 깔아두었다면 그것 외에 다른 무엇이 있 을까.

“왜지…?”

그녀 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의 아함을 표출했다.

“글쎄.”

말 같지도 않은 이유 몇 가지가 떠오른다.

“그녀를 열렬히 사모하는 사내 가 시체나마 온전히 보존하고 싶었다던가.”

“윽…, 세상에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인상을 와락 구기 며 질색 하는 도경 .

아직 그녀는세상에 미친 인간들이 얼마나많은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약과지.”

온갖 인간군상을 마주친 백우진에게 이 정도는 애교에 가까웠다.

이보다 미친 인간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백우진의 시선이 시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색감이 넘치는 그녀의 얼 굴로 향한다.

‘빙옥만으로 이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극저온의 환경을 이용하여 시체를보존했다고 한들, 이토록 얼굴에 생기 가돌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입술만큼은 파랗게 물들어야 정상이 아닌가.

백우진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차갑다.

하지만 지금까지 빙옥 위에 누워 있는 시체를 기준으로 따지면 그렇게까 지 차갑지는 않다.

차가운 밖에서 한 시진 정도돌아다닌 사람의 피부 같다고 해야 할까.

이를 지 켜보고 있던 도경이 말했다.

“묘한 기분이야. 갑자기 눈앞의 시체가눈을 번쩍 뜰 것만같은….”

“야, 그런 말하면 진짜 눈 뜰지도 모른다.”

지 구에 서는 이 를 플래그성 발언이 라고 했다.

‘해치웠나…?’ 하면 어김없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적이 멀쩡하게 나타나는 등의 발언들.

도경은 코웃음치며 말했다.

“하, 말 한마디에 시체가눈을뜨면 세상이 잘도돌아가겠….”

번쩍!

시체가 눈을 떴다.

“어,음….”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단숨에 열렸다.

그와 동시에 별의 광채를 담아둔 것만 같은 보석 같은 눈동자가 세상에 드리워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멈춰 있던 가슴이 들썩이고, 코와 입으로 숨이 빨려 들어간다.

“시,시체가흐응….”

털썩!

그 광경에 놀란도경이 까무룩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찬란한 두 눈동자에 시 야가 또렷해 진 다.

그녀의 동공에 백우진의 얼굴이 한가득 담겼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와,눈이 무슨….’

검은 눈동자가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 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 없이 보게 될 것만 같다.

아름답고 찬란한 눈동자와는 별개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매는 매서웠다.

그녀의 고운 아미 가 살포시 찌푸려졌다.

“눈을 뜨자마자 네놈 얼굴을 봐야만 하는 것이 참으로 애석하구나.”

옥구슬이 또르르르 굴러 가는 듯한 고운 목소리.

듣기 좋은 음성과는 별개로, 그 안에는 미약한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네놈 얼굴이 더 어려진 듯하구나.또 경지를올린 게냐,괴물 같은놈.”

“아니….”

다짜고짜 괴물이 라는 말에 울컥한 백우진이 뭐 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네놈의 사족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나 말해보 거라.”

말문이 막혔다.

뭔 가 커다란 착각이 그녀와 자신의 대화 차원을 비틀어버 린 듯한 느낌 이 다.

그녀는 자신을 예전부터 봐온 사람처럼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서 시신경이 맛이 가버렸거나, 아주 먼 옛 날에 자신과 닮은 사람이 존재했거나.

둘 중하나겠지.

“저기,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백우진이 차분히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네놈…, 누구냐.”

그쪽에서 먼저 눈치채고 말을 가로챘다.

“상판대 기 는 내 가 아는 재수 없는 그놈이 맞는데,목소리 가 다르구나.”

그와동시에 뻣뻣하게 굳어 있던 그녀의 좌수가 백우진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오마나!”

화들짝 놀란 그의 신형이 가까스로 보법을 밟아 거리를 벌리는 데에 성공 했다.

손을 내질렀던 그녀, 혈수마녀 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 켰다.

“아쉽구나. 내 몸이 온전했다면 네놈의 목을 그대로 분리시켰을 것을.”

그녀는 진심으로 아쉽 다는 투로 말했다.

“가짜라곤 하나 그 재수 없는 얼굴을 피로 물들일 좋은 기회 였는데 말이 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목소리로 저렇게 말하니 오히려 공포가 한 층 더 살아난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 낯짝에 뒤집 어쓴 인피면구는 벗는 게 좋을 게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그녀의 손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 려들었다.

압도적인 기운이 손위에 차곡차곡 쌓이며 그 밀도를 더해간다.

손을 선명하게 뒤덮은 기운, 그것은 수강(手鵫)이었다.

“지금은 이게 한계다만, 네놈의 목을 치는 데엔 충분해 보이는구나.”

백우진이 침을 꼴깍 삼켰다.

대충 계산해보면 그녀는 무려 이백 년 정도를 누워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난 셈.

만년한철로 만든 무기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녹이 잔뜩 슬어버릴 시 간이 지나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곧장 강기를 뽑아내다니.

‘과거의 명성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네.’

제갈연지의 추측대로 그녀는 현경에 이른 고수가 확실한듯 보였다.

“지금부터 셋을 세 겠다. 그 안에 인피 면구를 벗지 않는다면 죽여달라는 뜻 으로 알겠다.”

하나.

둘.

그녀의 손가락이 하나둘씩 접혀간다.

백우진이 급하게 손을 들며 소리쳤다.

“잠까아안!”

세 번째 손가락이 반쯤 접힌 채로 멈추었다.

“뭔 가 큰 착각을 하시 는 것 같거든요?”

그는 곧장 얼굴을 쭉 끌어올려 제 목을 그녀에게 내밀어 보여주었다.

“제 가 인피 면구를 썼으면 어떤 자국이 라도 있을 거 아닙 니까.”

자, 보십쇼.

혈수마녀의 두 눈이 백우진의 새하얀 목덜미를 훑었다.

그의 말처럼 인피 면구를 썼으면 반드시 보여 야 할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이거진짜제 얼굴이거든요.”

의심 가득한눈빛이 백우진의 눈,코, 입을 차례로훑는다.

그의 얼굴은 그녀 가 알고 있는 얼굴과 닮았다.

아니, 빼다 박은 수준이다.

헌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초라한 기운이며 목소리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 이었다.

어쩌면 혹시.

그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네놈…, 설마그놈의 아들인 게냐…?”

“그놈이 누군데요.”

코앞까지 닥친 죽음 앞에서 제 결백을 겨우 증명해낸 백우진이 토라진 목 소리로 묻자, 혈수마녀가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누구긴! 백유성 , 그 재수 없는 놈 말이 다!”

네놈의 아비 !

“•••아닌데요?”

누구야,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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