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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44화 (144/215)

<144화〉헐수마녀

이백 년이라는 시간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설상에나 등장하는 불로불사의 비법이 담긴 무공이나 술법을 익힌 이 가 있다면 모를까.

어떤 인간도 이백 년 동안살수는 없다.

말인즉, 그녀가 깨어난 이 시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원수와 벗, 그 무엇도 말이다.

‘허망하구나.’

벗은 아무래 도 좋았다.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친했던 이들은 지난 전쟁에서 모두 죽어버렸으니

다만 아쉽고 원통할 따름이다.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이리라 다짐했던 원수들이 그저 안락함속에 파묻혀 죽어갔다는것이.

그 한 가지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그녀의 마음을 짙게 물들였다.

‘결국이루지 못했구나.’

그녀는 복수심으로 제 몸을 불살랐다.

그들을 모두 죽인 뒤에는 자신 또한 한 줌 흙이 되 어 벗들의 곁으로 가리 라 다짐했건만.

어떻게든 끝을 보기 위해 백유성, 그 재수 없는 놈의 꺼림칙한 제안마저 받아들였던 것인데.

‘네놈은 마지막까지 날 기만하였구나.’

차라리 그 자리에 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귀신이라도 되어 놈들이 죽을 때까지 뒤에서 저주라도 퍼부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회한과 후회 속에서 허우적대 다가, 마침내 끝에 다 다랐다.

‘살 이유가 없다.’

목적마저 사라진 지금, 자신은 그저 살아 있는 송장에 불과했다.

백유성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이때까지 봉인해둔 듯하나.

‘내 알바는 아니지.’

그 재수 없는 놈이 바라는 것 따위, 들어줄까보냐.

삶에 대한 의지를 점점 상실해갈무렵.

“저기….”

놈과 똑같은 낯짝을 하고 있는 녀석이 다가왔다.

“혹시여기 출구가 어디…?”

그의 물음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둑놈처럼 돈 될 만 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 담더니 나가는 곳까지 알려달라니.

‘이놈도보통 이상한놈이 아니구나.’

얼굴을 보니 젊은 놈이 분명한데 상당히 낯짝이 두껍다.

모든 게 없다고 생 각하니,부정적 이나마 동요를 일으키 게 만드는 낯짝이 낫게 느껴진다.

그녀는 마지 막 아량을 베 푼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서 가장 가까운 출구가 숨겨져 있는 벽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아,감사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뒤 뚱뒤뚱 걸어 가는 백 우진을 보며, 그녀는 의 아 함을 느꼈다.

자신이 가리 키는 방향과는 정 반대로 걸어 가는 게 아닌 가.

저곳에 두고 온 무언가라도 있는 것인가.

그 작은호기심이 죽음의 늪에 걸치고 있던 발 하나를 밖으로 빼냈다.

‘죽는거야 언제든가능하니.’

놈이 왜 저리로 가는지 알아보는 것 정도야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고.

잠든사이 지나간오랜 세월 탓에 일시적으로 낼수 있는한계가제한되기 는 했으나, 그녀가 펼쳐내는 무리들은 전부 현경에 머물러 있다.

주변과 동화되어 완벽하게 제 모습을 감춘 그녀가 백우진의 발자취를 뒤 따랐다.

마주한 것은 그의 명령을 따르는 수십의 부하들.

그들의 면면을 살핀 혈수마녀는 놀란 표정을 지 었다.

‘청색 무복은 정파 놈들이고, 흑색 무복은 사파가 분명할진대 ….’

장중하게 흐르는 기운과 거칠게 흐르는 기운.

그것은 분명 정파와 사파 무공 특유의 흐름이 었다.

‘어찌 저놈이…?’

무림이 정과 사로 나뉜 순간부터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쯤으로 여기던 두 집단이 어찌 저 어린놈을 따르고 있단 말인가.

‘정녕 세상이 바뀌 기라도 했단 말인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평생 싸울 놈들이었다.

이백 년의 간극을 감안해도 놈들이 합심한 모습은 상상하려야 할 수가 없 다.

그들이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그녀 또한 그들을 따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서.

분노로 얼굴이 붉게 물든 그녀가 사납게 몸을 털어냈다.

“떨어져라, 이놈!”

그러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백우진의 신형이 허공을 날아 침상 위에 처박혔다.

콰직!

“억!”

충격으로 인해 부서진 침상의 잔해 속에서 백우진이 상체를 일으켰다.

“힘도 좋으셔라….”

본의는 아니지만, 안간힘을 다해 달라 붙었는데 고작 몸짓 한 번에 떨어져 나가다니.

새 삼 그녀의 힘 에 백 우진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 내 렸다.

저 런 힘 을 마음대 로 휘 둘렀다면 어 떤 지옥도가 펼쳐 졌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하구만.’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그녀를 제압하기엔 힘이 모자라고, 방치하기엔 그녀가 저지를 일이 두렵 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하나뿐.

‘옆에두는수밖에 없다.’

적 어도 자신의 옆에 붙어 있도록 만드는 수밖에.

‘여길 찾아왔다는 건 지금까지 몸을 숨기고 나를 따라왔다는 거겠지.’

어떤 식으로든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뜻일 터.

“저어..., 선배님?”

백 우진이 최 대 한 공손한 태 도와 말투로 그녀 에 게 말을 건넸다.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더 일그러졌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놈이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구나.”

그의 검은 속내가 읽힌 탓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구나.’

눈앞의 젊은놈은 자신의 기 억속 백유성과 닮은 듯, 달랐다.

백유성 또한그러했다.

때때로 두꺼운 낯짝으로 뻔뻔하게 행동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태도를 싹 바꿨다.

행동거지는 거진 똑같은데, 그 안의 담긴 미세한 것에서 조금씩 차이가 났 다.

“가식 일랑 접 어두고 속내 를 드러 내 보거 라. 내 들어는 줄 터 이 니.”

그녀의 직구에 그의 안색이 흐려졌다.

‘역시…,쉽지 않은상대야.’

잠들어 있던 시간까지 더하면 무려 이백을 훌쩍 넘는 노고수다.

또한 잠들기 전에 현경에까지 다다랐으니 그 전의 나이 또한 그리 적지는 않았을 터.

이 십 대 중후반, 한창 완숙한 미모를 뽐내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백우진 과 마찬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노련함을 지니고 있다.

“그,음….혹 앞으로의 일정이나예정이 어찌 되시는지….”

그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혈수마녀의 고운 아미 가 단숨에 찌푸려졌다.

“이백 년 만에 깨어난사람에게 일정이며 예정이 있을 듯싶으냐.”

“ 아.”

이백 년이라는 시간이 그녀에게 모든 걸 앗아갔을 것임을 간과했다.

매 서운 눈매 속 눈동자는 혼탁했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이백 년의 시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를 확신한 백우진이 그녀에게 제안했다.

“그러시다면 저와함께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네놈과 말이냐.”

약간이지만 그녀의 귀가 쫑긋거렸다.

말투는 퉁명스럽기 짝이 없으나, 그녀의 호기심이 동했음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는 신호다.

“아무래도 이백 년간 변화한 세상을 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 않겠습니 까.”

그녀는 작게 고개를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겉으로 보기 엔 별로 바뀌 지 않은 듯한 세상이 나, 사람들과 섞 이는 순간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낼 터다.

이때 누군가 옆에서 설명을 곁들여준다면 확실히 세상에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내가 왜 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으리라 다짐했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녀의 시선이 손을 삭삭 비비고 있는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전부 저놈이다.

저놈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이 자신을 자꾸만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 고 있는것이다.

‘분통이 터지는구나.’

자신을 이 시대로 이끈 백유성.

그리고 그놈과 똑같은 낯짝을 하고 있는 놈에 게 생 긴 호기 심 .

이 두 가지가 더해져 놈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제가 삼시세끼 맛있는 것도 챙겨드리고, 이것저것 원하시는 건 다준비하 겠습니다!”

동시에 궁금했다.

• ••

!...

..

저놈은 대체 왜 자신과함께 가자고 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네가 얻는건 무엇이더냐.”

그렇게 물음을 던진 뒤, 날카로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이후에 내뱉을그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또 다른 속내 가 있는 건 아닌지 잡아내 기 위 함이 었다.

“얻는거라….”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입을 여는 백우진.

“가끔씩 비무나한번 해주시는 것 정도면 되지 않을는지.”

창졸지간에 생각해낸 답변은 곱씹을수록 좋은 제안이 었다.

현경에 이른 고수에게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다면 명가의 자제들이라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모시 려고 할 것이 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녀가혼란스러운 사이에 코를꿰자.’

백 우진이 속으로 다짐했을 때였다.

‘참이구나.’

혈수마녀 또한그의 얼굴에서 진실을 읽어냈다.

‘이해할수 없는 놈이로다.’

초식 한두 번이면 나가떨어질 녀석이 자신에게 무언가 얻을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그래, 좋다.”

장고 끝에 그녀는 그의 제 안을 받아들이 기로 했다.

알고 싶어졌다.

백우진이라는 놈이 대저 어떤 놈인지, 백유성과는 어떤 식으로 연결 고리 를지니고 있을지.

그러한 호기심들이 하나둘씩 모여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만 들었다.

그녀의 승낙에 그의 얼굴에 함지박만 한 미소가 그려졌다.

“환영합니다,호갱… 아니, 선배님!”

현경의 비무 노예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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