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45화 (145/215)

<145 화 蓬 해산

든든한 뒷배 가 생 겼다.

제대로 써먹으려면 아직 많은 과정을 거쳐야겠지 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 도 목숨 한 번쯤은 살려주지 않을까.

검은 속셈을 꽁꽁 숨긴 채, 그녀를 향해 포권을 취하는 백우진.

“정식으로소개 올립니다.섬서백가의 백우진입니다.”

그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혈수마녀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되도록이면 내 앞에서 그런 표정은 짓지 않도록해라.”

“예…?”

“무게감 있는 척하는 모습이 그놈과 똑 닮아 내 심 기 가 거슬린단 말이다.”

“아예.

대체 그 백유성이 라는 인간을 얼마나 싫어하는 걸까.

“헌데 선배님의 존함을 여쭤도…?”

“몰라도 되느니라.”

“그럼 일행들에게 소개할땐 뭐라고해야합니까.”

함께하기로 한 이상 일행들에게 그녀를 소개해야 했다.

이백 년 전 벌어진 혈사의 주인공인 혈수마녀 선배님이라고 했다간 발칵 뒤집어질 게 뻔하잖은가.

‘새출발하는게 좋을텐데.’

혈수마녀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으니 케케묵은 감정은 별호와 함 께 묻고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하고 그는 바랐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몸을 숨긴 채 네놈을 따라가마.”

그와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정확하게는 주변의 환경과 동화되고 있었다.

‘밤의 장막의 명백한 상위호환이네.’

밤의 장막은 어둠과 동화시킨 내공을 몸밖에 두르는 기술.

반면 그녀는 자연 그 자체를 몸에 둘렀다.

이 는 무공이 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마음이 일면 기운이 자연스레 동하는 현경의 경지에 달한 절세의 고수만 이 부릴 수 있는 기예 였다.

“이 상태로 네놈주변에 있을 테니 내 걱정일랑접어두거라.”

최소 기감이 극도로 발달한 화경 이상의 고수 또는 같은 현경의 고수가 아 닌 이상, 그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만약선배님께 볼일이 생기면 어찌합니까.”

“그거야 신호를 하나 만들어두면 될 일이지.”

백우진과 혈수마녀는 팔을 뻗어 주먹을 세 번 쥐 었다 폈다 하는 것을 신호 로삼기로 했다.

“그,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입니 다만.”

“뭐냐.”

그녀의 은신술은 백우진 또한 파악이 불가능했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사생활을 한시도 빼놓지 않고 모두 지켜볼 수 있다는 뜻.

그랬다간 모든 게 엉망이 되 어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 당선영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려 할 때라던가.

‘죽어버리고 말거야!’

남에게 보여주는 취미 따위는 없었다.

만약 그 상황에 서 혈수마녀 가 이쪽을 뚫어져 라 쳐 다보고 있다고 생 각하 면.

‘어라?’

나쁘지 않을지도.

속이 까만 남정네도 아니고, 겉모습만 놓고 보면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요염하고 아름답다.

솔직히 자신의 개인 취향에 가장부합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녀와 자신 사이에 이백 년이 넘는 시간의 격차가 존재하기는 하지 만.

가능과 불가능을 놓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는 자신 있게 대 답할 것이 다.

‘가능!’

애초에 사랑에 나이가무슨소용인가.

본인 마음에 들기 만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을.

“흐.,,

저도 모르게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자, 혈수마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느껴진 탓 이었다.

“눈을 파주랴.”

“아뇨, 예, 괜찮습니다.”

그녀의 살기어린 음성에 끈적끈적하게 기어 올라오던 음심이 땅바닥까지 처박혔다.

“평소대로 행동하거라. 네놈 사생활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눈치껏 빠져줄 터이니.”

“그러지 말고 신호를 하나 더 만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거라.”

결국 두 사람은 신호를 하나 더 만들었다.

손을 입 에 가져 간 채 로 헛기 침 을 두 번 하면 잠시 자리를 비 워 주기 로 하였 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흥, 대접이 소홀했다간 치도곤을 낼 터이니 잘하거라.”

“암요, 잘해야죠.”

앞으로 비무 스승이자, 든든한 뒷배 가 되 어줄 몸.

자신이 굶는 한이 있어도 그녀의 배는 맛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주리라.

혈수마녀 와 이 야기 를 마친 백 우진은 곧장 회 의 를 소집 했다.

그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하나였다.

“자, 탐색도 끝났으니 전리품분배를좀 해봅시다.”

지하의 비밀 공간에서 얻은 유일한전리품인빙옥을적절하게 분배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빙옥이 유일한 것은 아니 다.

그는 혈수마녀가누워 있던 자리 밑에서 두권의 서책과목함까지 찾아냈 지만, 구태 여 그것을 꺼 내 어 놓지는 않았다.

‘내가 먹어야지.’

그것을 꺼낼 때, 어깨에 들쳐메고 있던 도경은 갑작스레 떠안게 된 빙옥으 로 인해 자신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말인즉, 오로지 자신만이 서책과 목함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뜻.

‘달다, 달아.’

원래 남몰래 먹는 게 가장달고 맛있는법 아니던가.

“알다시피 그곳에서 찾아낸 것은 바로 이 빙옥입니다.”

“오오…, 이토록큰빙옥이라니!”

청룡단주 만승의 얼굴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음한지 기를 체내에 쌓는 무공을 다루는 무인들에게 있어 무가지보나 다 름없는 물건이다.

값어치를 아는 이 에 게 넘 길 수만 있다면 그들에 게 떨 어지는 돈은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

‘그만한 돈이 라면 무림 맹 에 서도 흡족해 할 터.’

그들에게 고스란히 바치는돈은곧 자신의 공적이 되리라.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거대한빙옥을둘러싼세 개의 세력.

지분을 어떤 식으로 나누어 야 공평 한가에 대해 치 열하게 싸울 준비를 해 야만 했다.

‘적어도 삼할은 챙겨야 한다.’

만승이 굳게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백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깔끔하게 삼등분합시다.”

“뭣…!”

“너…?”

앞으로 펼쳐질 치열한 입씨름에 대비해 정신을 무장하고 있던 두 사람이 입을 쩍 벌렸다.

“누가 더 고생했네, 안 했네, 싸우느니 정확하게 삼등분하면 좋을 듯한데 요.”

공적에 따라 빙옥을 나눈다면 가장 크게 얻는 것은 다름 아닌 백우진이다.

이는 두 사람 또한 이견이 없었다.

장보도의 주인인데다, 지하에서 정사의 무인들을 조화롭게 이끌어 단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고무사히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그가 입 싹 닦고 오 할을 먹는다고 해도 사실 그들은 받아들여야 하는 상 황이었다.

그런 그가 먼저 삼등분을 제 안했다.

“가장고생한 이가그리 말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구려, 험험.”

“•••네가그렇게 정한다면 뭐.”

두 사람 모두 저 커다란 빙옥의 삼분지 일만 가져올 수 있어도 대박이라고 생 각하고 있던 차였다.

백우진이 이 미 한발 양보한 상황에서 추하게 서로를 물어 뜯어가며 싸우 는 건 쓸데 없는 시 간 낭비에 불과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얼굴 붉히지 않고 모두가 기뻐하며 원만하게 합의를 마 쳤다.

‘계획대로야.’

양손 가득히 쥐게 된 백우진은웃고 있다.

전리품분배까지 이야기를 모두 끝마치기가 무섭게 청룡단은 무림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들이 서두르는 이유는 빙옥의 판매를 무림맹이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 이다.

가치를 아는 이라면 누구에게 팔아도 한몫 단단히 쥘 수 있는 빙옥이지만 ,그 누구보다 빙옥이 필요한 이들을 고르라면 단연 북해빙궁이 다.

대다수 무인이 빙공을 익히는 북해빙궁에게 빙옥을 들이민다면 그들이 어 떤 반응을 보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들 중북해빙궁과 연이 닿은곳은 무림맹이 유일했기에, 만승은 기꺼이 빙옥의 판매를 맡겠다고 답했다.

“우리도 슬슬 돌아갈까.”

청룡단을 떠 나보낸 뒤, 백우진은 조원들과 함께 백하현으로 돌아왔다.

조금 웃긴 것은 그들의 뒤 로 흑풍대 또한 줄지 어 따라왔다는 것.

그들의 선두에 선 도경을 향해 그가 물었다.

“년 집에 안가냐?”

거점에서 헤어졌어도 되는데 굳이 백하현까지 따라온 저의는 무엇일까.

“• • • 빙 옥을 판매 한 대 금을 모두 받은 뒤 에 복귀 할 생 각이 다.”

“굳이?”

“흥! 자꾸 캐묻지 마라.”

고개를 획 돌리는 도경.

‘일찍 돌아가 봤자지.’

사흑련은 그녀의 집임과동시에 숨막히게 만드는 철창이기도했다.

흑사패황의 자식이 라는 게 매번 문제 였다.

그것도 유일한 자식 .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흑사패황이 죽으면 그 뒤를 이을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곁을 지키는 호위들이 어찌나 답답하게 만드는지.

그런 곳으로 일찍 돌아가느니, 이곳에 길게 눌러앉으며 바깥 공기를 마시 는 게 이득이었다.

“뭐 •••,방 정도는 내줄 테니 천천히 있다 가던가, 그럼.”

저번에 확인해 보니 가문에 남는 게 방이더라.

그의 제안에 놀란도경이 황급히 고개를저었다.

“아, 아니 난그냥근처 객잔에…!”

|  |..

...

백우진은 도경의 입을 막았다.

“어허, 너 돈 많아?”

“…많은데?”

아, 얘 흑사패황 딸이었지.

그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냥 방 내줄 때 조용히 따라 들어와.”

그 다음의 말은 오직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이어졌다.

“그래야또나한테 도전도하고그럴 거 아냐…,응?”

백우진의 검지가 그녀의 등줄기를 훑고 내려갔다.

그 기묘한 감촉에 도경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너,너이 자식….”

뒤늦게 새빨개진 얼굴로 발끈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 조금만 기 다려라. 조만간 네놈 얼굴을 묵사발을 내줄 테 니 !”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진심으로 그를 짓뭉개고 싶어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아니면….

‘아,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애써 부정하려는 감각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음인지 .

그녀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사이, 가슴에 박힌 씨앗은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