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49화 (149/215)

<149 화〉조급함

당선영은느꼈다.

제갈연지의 두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락을 향한과격한의지를.

과격하다못해 난폭하게까지 보이는 그녀의 눈빛 속의지에 압도되어 침 을 꼴깍 삼킨다.

그녀는 생각했다.

올바른 방법으로 그와 맺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사달이 날 거라고.

나 때문일까….’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만든데에는자신의 새치기가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그녀 또한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백우진과 함께할 밤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나타난 자신이 그와의 하룻밤을 가로챘다.

물론 사전에 협의를 거쳤다고는 하나, 뜨겁게 달아오른 제 몸과 정신을 달 래기 위해 자신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들로 인해 울며 겨자먹기로 내린 결 정이었을 터.

“미안해요, 제갈소저.”

당선영은 손을 뻗어 미약하게 떨리고 있는 제갈연지의 손을 꼭 잡아주었 다.

그러자그녀의 두 눈에 드러나 있던 과한 열의 또한서서히 가라앉기 시작 했다.

‘그때는 너무급해서 그녀를 생각하지 못했어.’

지 닌 지식은 많았으나, 그때의 그녀 또한 어디까지 나 남자를 겪 어본 적 없 는 처녀였다.

그리고 눈앞에는 십수 년 동안 드리운 제 마음속 어둠을 모두 걷어낸, 세 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내 가 있었다.

‘후회는하지 않아.’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미 안한 마음만큼은 진심 이 었다.

“걱정말아요, 제갈소저.”

그러 니 지 금부터 라도 이 미 안한 마음을 담아 그녀의 뜻을 이뤄 주는 수밖 에.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제갈연지에게 확언했다.

“장담하죠. 며칠 내로 제갈 소저는…, 아주 황홀한 밤을 맞이하게 될 거예 요.”

내가그렇게 만들어줄 테니.

“날 믿고 따라와요!”

“네,네에…!”

두사람의 관계가 조금더 돈독해지는 순간이었다.

:k * *

제갈연지에게 호언장담할 때까지만 해도, 당선영은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이미 연인이나다름없는사이잖아?’

진도만 나가지 못했다 뿐이지, 제갈연지 또한 백우진의 여인이나 다름없 었다.

그럼 에도 아직 까지 몸을 섞 지 못한 것은 그저 계 기 가 없었을 뿐이 라고, 그 녀는 판단했다.

저돌적이고, 당돌한 당선영은 그 계기를 직접 만들었다.

모두가 잠든 밤에 아버지가 빚은 여아홍 한 병을 손에 쥐고 그가 머무는 방에 들이닥쳤다.

그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섞었다.

‘하지 만 제 갈 소저에 게 그런 걸 바랄 수는 없겠지 ….’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었기에 가능한 일.

제 갈연지 처 럼 부끄럼 많은 소녀 에 게 그러한 행동을 지 시 할 수는 없는 노 릇이다.

애초에 어울리지도 않을 테니까.

‘다행히 백우진은 성욕이 강해.’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그는 성욕이 매우 강한 편이었다.

자신이 돌아오고 나서 벌써 세 번이나선계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 정도로 농밀한 밤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는 그저 참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분위기만만들어주면….’

남녀간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분위 기다.

입을 맞출 분위 기 , 고백을 할 분위 기, 서로의 거리 가 점점 더 가까워 지는 분위기….

적당히 운치 있고, 야릇한분위기를 조성한뒤, 제갈연지가 약간의 신호만 보낸다면.

눈치 빠른 백우진이라면 그 이후의 일쯤이야 일사천리로 해낼 거라고, 그 녀는굳게 믿었다.

믿었는데.

“저어, 백공자….”

밤이 되어 훈련이 끝난뒤, 제갈연지가백우진에게 다가갔다.

“시,시간괜찮으시면 같이….”

“미안. 지금부터 개인 수련 시간이라.”

“아,네에….”

그가수련에 미쳤다.

원래도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단단히 미쳐버렸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거 절당하고 돌아와 풀 죽은 얼굴로 울먹 이는 제 갈연지를 보듬어주는 것 도이젠한계다.

‘쟤가갑자기 왜 저런담….’

무인이 수련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다만, 이건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잖 은가.

매번 귀여워 죽겠다며 죽고못 살것처럼 대하던 연인이 잠깐시간좀 내달 라는데!

“언니…, 제가 백 공자 취향이 아닌가봐요….”

어느새 호칭마저 편하게 변한두 사람.

눈에 눈물을 주렁주렁 매단 채 자책하는 그녀를 향해 당선영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그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니 …, 응?”

그녀를품에 안고 달래준뒤, 당선영은 굳은 얼굴로 연무장에 있는 백우진 을 찾아갔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위기다.

제갈연지의 자존감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백우진의 수련은 끝없이 이 어지고 있다.

‘그리고나도 더이상못참아!’

힘 들기 는 그녀 도 마찬가지 였다.

동생이 된 제갈연지에게 황홀한하룻밤을 선물하기 위해 그와의 시간을 포기했다.

그와 함께했던 마지막 날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녀의 몸은 나날이 뜨거 워 졌다.

‘오늘 끝을 봐야겠어.’

어느새 다다른 연무장.

그곳에는 백우진이 검을 쥔 채 서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표정으로.

“아

원래의 계획은 그러했다.

여인을 야속하게 만드는 그의 이름을 힘껏 부르며 달려가혼구녕을 내줄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했는데.

“아…, 너무 멋있어.”

달빛 아래 굵은 땀방울을 흩뿌리 며 검 한 자루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는 모든 계획을 잊어버렸다.

한 폭의 그림? 아니다.

인세에 다시 없을 대가가그린 그림도 이보다 아름답고, 극적이진 않을 것 이다.

“으응….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그의 짙은 체취 가 전해진다.

침 상 위 에서 서로 뒤 엉 켜 한참을 뒤흔든 후에 풍기 기 시 작하던 진한 냄 새 .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가랑이를 오므렸다.

‘최악이야….’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당장에라도 그를 덮치고 싶을 만큼 몸이 달아올랐다.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토록 야속하다 여겼건만, 그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런 마음 도 사라졌다.

검을 휘두르는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어느 순간은 오로지 검에 몰두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표정을 짓는 가 하면, 또 어느 순간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한 얼굴을 하고 있다 •

무엇일까.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질 못하는 거니….’

모두가 그를 칭송하고 있다.

이제 막 약관을 벗어난 나이에 초절정에 올랐고, 단시간에 많은 일들을 해 내며 인정받았다.

길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쯤은 잠시 머물러도 될 텐데.

그는 멈출 생각조차 않고 있다.

모두가 그를 부러워하고 있다.

분명 그녀도 그랬다.

무인으로서 자신을 한참이나 앞선 그의 재능을 부러워했고, 또 탐냈다.

지금그의 모습을 보기 전까진 그랬다.

지금은 그저.

‘가여워….’

그가 가엾게 느껴졌다.

절대 풀 수 없는 저주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눈시울이 젖어들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 모습을 보면 걱정할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

“당 소저?”

하필 그가 자신을 보았다.

백우진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붙잡았다.

“왜 울고 있어. 무슨일이야.”

고개를 들어 올리자, 자신을 걱정하며 초조해하는 그의 표정이 보인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눈가를 적신 눈물을 훔쳤다.

“으응…, 아냐.그냥눈에 먼지가들어갔을 뿐이야.”

뻔한 거짓말.

그녀는 이 눈물의 이유를 그에게 설명할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감정을 눈치챈 걸까.

“어디 봐. 내가 입김으로 불어서 빼줄 테니까.”

백우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눈에 입김을 호 하고 불 어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렇게 눈치가빠른데 왜 그럴까정말….”

“무슨 뜻?”

백 우진 이 고개 를 갸웃거 리 며 되 묻자, 그녀는 고개 를 저 었다.

“아냐, 아무것도.”

여전히 의 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당선영은 그 어느 때보 다 자애 로운 미소를 지으며 팔을 뻗 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높은 곳에 있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말했 다.

“너무무리해선 안돼?”

“하하!”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여 자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 다.

어느 때에는 색기가 흐르다 못해 넘치는 요부 같고, 또 어느 때에는 모든 걸 품에 안고 녹여줄 어머니 같으니.

비단 당선영 뿐만이 아니 었다.

‘그녀도 그랬었지.’

이제는 영영 볼수 없게 된 그녀도그러했다.

평소엔 단단한 기사도로 똘똘 무장하고 있다가, 자신과 함께 있을 때에는 요염해졌다.

이따금 알수 없는 슬픔에 사무칠 때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비록 끝은 처참했지만, 그녀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이 다.

“당신 곁엔 나도, 연지도 있으니까…, 아응!”

백우진은 자신에게 힘이 되 어주는 말들을 잔뜩 늘어놓는 당선영을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나 걱정하는 거야?”

한동안 말없이 안겨 있던 그녀 가 그의 등 뒤 로 팔을 두르며 미 약하게 고개 를 끄덕였다.

“응…

|  |..

!....

..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 기 시작한다.

백우진은 이번이 두 번째 빙의다.

경험이 쌓인 만큼, 첫 번째 빙의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순조로 운 여정을 이어 나가는 중이지 만, 그는 알고 있다.

이 에 만족하여 고삐를 늦추는 순간, 소중한 것을 잃게 되 리 라는 것을.

‘빨리 끝을 봐야해.’

마왕의 목을 베는 데에 걸린 시간이 무려 십 년이다.

전쟁이 길어진다는 건 그만큼 싸우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더 많은 위 기 를 겪 어 야만 한다는 뜻이 다.

그리고 늘어난 위 기는 필연적으로 희생을 강요한다.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아.’

수많은 희 생 으로 말미 암아 강해 졌기 에 희 생 에 민감하고 나약해 진 정 신이 그를 다그쳤다.

더, 더, 더.

빨리, 빨리, 빨리.

속에서 다그치던 수많은 음성들이 사그라든다.

이윽고 찾아온 평온.

“고마워.”

무작정 빠르다고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걸 재차 깨달으며 몸을 옥죄던 것 들이 하나둘 풀려간다.

품에 안겨 있던 그녀가고개를들어 올렸다.

“알면 더 신경써주지 않을래?”

“지금보다 더?”

백 우진 이 놀란 표정으로 되 묻자 그녀는 고개 를 저 었다.

“나 말고.”

“•••그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백우진을 보여 당선영은 한숨을 내쉬 었 다.

지금까지 제갈연지가 내던진 추파가 그에게는 단한 번도 닿지 않았었던 모양.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직설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연지, 계속그대로둘 거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