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화 蓬 불쾌한만남
이른 아침.
백우진은 정무학관의 출입문 앞에서 한 사내와 만남을 가졌다.
“하하, 정말오랜만에 뵙는구려!”
“예,오랜만입니다.”
사내의 이름은 안세하.
백우진과 제갈연지가 함께 맡았던 호위 임무를 의뢰한 한성 상단의 상단 주였다.
그는 며칠 전 잠시 보았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한성 상단에 서찰을 전했다
•
이를 전달받은 안세하는 지체없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리 걸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그 대단한 옥면신룡께서 부르는데 그게 무에 대수일까!”
작게나마 인연을 맺어둔 후기지수가, 지금은 중원 전역에 명성을 날리는 옥면신룡이 되 었으니 말이다.
‘이건기회다!’
고수와의 인 연은 두고두고 쓸 데 가 많다.
만나자는 그의 요청에 이토록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으니, 나중에 작은 요 청을 하면 그 또한 흔쾌히 도와줄 터 였다.
“헌데, 어인일로 보자고 하셨소?”
그가 물었다.
“그게, 음….”
백우진은 대답을 망설였다.
여기까지 그를 부른 것은 제갈연지 때문이었다.
‘사과해야지.’
그녀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는 모르겠지 만 일단 사과는 하고 봐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최고의 밤을 선물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를 애태우고 말았다.
달아오르다못해 한풀 꺾여 식어버린 그녀에게 잊지 못할 밤을 선물하고 말리라.
‘그런데 어떻게?’
문제는바로그것.
대체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최고의 하루를 선사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 았다.
이에 대한 대답은 선영에몽이 일러주었다.
-알겠어 ? 중요한 건 분위 기 야. 세상 야릇하고, 낭만적인 분위 기.
분위기란다.
그래서 분위 기를 어떻게 조성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걸 왜 나한테 묻니? 웃겨, 정말. 네 가 알아서 해!
쫓겨났다.
여 자의 마음이 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에게 조언을 들은 이후 백우진 또한 열심히 고민해보았다.
며칠의 고민 끝에 답을 찾았다.
분위 기를 조성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분위 기 가 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학관 내 에 서 는 그러 한 분위 기 를 내 는 것이 쉽 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안세하를 불렀다.
“하하! 뭐든 얘기하시오.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한 일이라면 뭐든도울 테니. ”
그는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왔다.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싫지는 않았다.
그의 상단은 한창 성 장 중이고, 상단주인 그 또한 나쁜 사람은 아니 었으니 자신에 게도 이득이 되 면 되 었지 , 나쁜 일은 생 기 지 않을 테 니.
“몇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힘겹게 운을 뗐다.
조금 창피 하지 만, 해 바라기 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는 제 갈연지를 위 해서 라 면
“그러니까….”
백우진은 몸을 한껏 기울여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오,음, 허어…!”
이 야기 가 진행될수록 감탄하는 안세하.
말을 끝마친 백우진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그를 향해 물었다.
“가능합니까?”
안세하는 한껏 감동 받은 표정으로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준비해주겠소!”
그러니 나만 믿으시오.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한시름 덜게 된 백우진은 안세하와의 만남을 끝내 고 곧장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알아서 잘들하고 있겠지.’
처음에는 훈련하기 죽도록 싫어하여 억지로 굴려야만 했지만, 이제는 아 니다.
땀을 흘린 양보다 더 크게 돌아오는 성장세에 중독된 그들은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스스로 연무장에 나와 훈련을 거듭했다.
연무장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은 제갈연지의 일로 가득했다.
안세하에 게 분위 기 조성은 맡겨두었다.
이를위해 제법 커다란돈을 그에게 안겨주기까지 했으니, 걱정은하지 않 아도될 터.
‘이제 제갈소저와나갈빌미만 만들면….’
그녀가 마음 졸인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밤을 보 낼수 있으리라!
“흐흐흐흐흐흐흐흐.”
연신 음흉한 웃음 소리를 내며 연무장에 들어섰을 즈음이었다.
“저,저는 싫어요.”
제갈연지의 날카로운 음성이 귓가에 박혔다.
‘시싫다니.’
자신의 생각이라도 읽은 것처럼 때마침 건네오는 거절 의사에 당황한 백 우진.
이윽고 그는 그녀의 거절 표현이 자신에게로 향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뭐야, 저것들은.”
제갈연지의 주변에 불청객이 있다.
기가 막히게 잘생긴 사내가 하나, 얼굴만봐도 고리타분해 보이는 사내가 또하나.
적잖은 거리를 두고 선 제갈연지는 두 사내를 한껏 경계하고 있었다.
냄새가 난다.
요 며칠간 그녀에게서 잃은 점수를 한 번에 만회할 기회의 냄새가.
동시에 화가 났다.
감히 제 것을 함부로 건드리려 하는 저들의 행태가 심기를 어지럽혔다.
백우진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
연무장에 모여 몸을 풀기 시작한조원들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할 즈 음.
“잠시 실례하오.”
두 사내가 연무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귓가로 들려오는 낯익은 음성.
제갈연지는고개를 돌려 입구 쪽에서 걸어오는 두사내를 보았다.
“오라버니…?”
사내 중 한 사람은 그녀의 오라비 인 제 갈진이 었다.
“오랜만이구나.”
때마침 그녀를 발견한 제갈진 또한 썩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그러 다 문득 그녀 에 게 서 느껴 지 는 심 상찮은 기 세 를 느끼고 얼굴을 굳혔 다.
“세상에…!”
친우의 말이 사실이었다.
괄목상대 (캉目相對).
말 그대로 오랜만에 본 누이는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정녕 연지가 맞느냐?”
“네에….”
제갈진이 쓰게 웃었다.
‘내 누이가 맞구나.’
여전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실력은 성장했음에도 아직까지 사람을 대하는 건 어려운 듯했다.
그는 제 옆에 서 있는 친우를 보았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제갈연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퍽 새삼 스럽다.
진심인가?’
술자리에 서 가족이 라는 말을 꺼 냈을 때만 해도 농에 불과하다 여겼는데.
!...
!.
.
지금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몰라보게 성장했구나. 장하다, 아주 장해.”
제갈진의 칭찬에 제갈연지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오라버니가 칭찬을….’
누군가를 평 가함에 있어 냉 철하다 못해 냉혹한 수준의 오라비 였다.
그런 그에게서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버 지 도 보시 면 기 뻐 하실 게 다.”
이어진 그의 말이 그녀의 기분을 요상하게 만들었다.
가문의 어른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양보만을 강요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탓이다.
‘아버 지 가 기 뻐 하신 다고 • • •?’
오라비와 동생 에 게 만 지 어주던 그 기 특해 마지 않는 표정을 자신에 게 도 보여주는 것일까.
지금으로선 쉬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상념을 지운 채, 그녀는 제갈진에게 물었다.
“절 보러 오신건가요…?”
제갈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이 친구지만말이다.”
그의 손가락이 옆에 있는사내에게로향했다.
한 걸음 뒤에 서서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던 사 내가걸어나왔다.
“벌써두 번째 보는구려.”
“아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그의 말투에 제갈연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 다.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비친 무례한 행동들이 떠올리 기분이 불쾌해진 탓 이다.
이를눈치챈 제갈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며칠 전 우연찮게 만났다고 들었다. 이 친구가 제법 무례하게 굴었다지?”
자신이 아는동생의 성격이라면 이러한 대답에 당당히 ‘예’라고 말할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녀 가 손사래를 치 며 아니 라고 답하면 적절하게 사과를 곁들여 분위 기 를 환기시킬 요령이었는데, 그의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네….”
제갈연지는 빈말로라도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고소심한목소리로 제 의견을 뚜렷하게 피력했다.
순간 당황한 제갈진이 벙찐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사내 가 정중히 고개를 숙 였다.
“그때의 무례에 대해 재차 사과드리겠소.”
“아,아니, 자네….”
그의 정중한 말투와 행동거지에 제 갈진은 크게 당황했다.
‘저 친구가고개를 숙이다니…?’
제 갈진이 본 친우는 오만한 사람이 었다.
아니, 그의 재 능을 생 각하면 오만한 게 아니 라 응당 가져 야만 하는 자존심 이라고 해야할까.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해오며 그가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정녕 내 누이에게 푹빠진 겐가?’
그가 사내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때, 제갈연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 며 답 했다.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기분은 풀리지 않겠지만, 사과는 일단 받기로 했다.
“하하, 고맙소.”
곧장 고개를 들어 올린 사내가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뭇 여인들이 보면 설렐 만한 미소건만, 그녀에게는그것이 왠지 모르게 석 연찮게 느껴졌다.
사내 가 말을 이 었다.
“내 지난밤의 무례를 사죄하고 싶은데, 괜찮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소?”
제갈진이 눈을 빛냈다.
친우가 승부수를 띄웠다.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손익을 계산했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명확하게 보였다.
“하하! 그래, 이 친구가 돈이 제법 많으니 어디 좋은 곳에서 식사라도 하는 게 어떻겠느냐.”
제갈진과 제갈연지의 시선이 뒤섞였다.
“읏….”
제갈진은 그녀에게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좋은 기회가될 테니 따라나서는 게 좋겠다고.
예전 같았으면 한껏 주눅이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 다.
“저,저는 싫어요.”
잠깐 말을 더듬긴 했지만, 그녀는 명확하게 제 의사를 표현했다.
“여,연지야.”
당황한 그가 누이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 해 뭐 라 말을 꺼 내 려 할 때 였다.
“댁들은 누구?,,
별안간 낯선 음성이 들리더니 , 눈 깜빡할 사이 에 제 갈연지의 옆에 웬 사내 가 짝다리 를 짚은 채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 가.
그순간, 제갈연지의 얼굴이 환하게 물들었다.
“백 공자…!”
백공자.
그 말 한마디 에 제 갈진은 눈앞의 사내 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자신의 친우와 비견될 정도로 수려한외모를 지닌 백 씨라면 물망에 오를 이는 딱 한 사람뿐이기에 .
제갈진이 그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내가흥미 가득한눈빛으 로나섰다.
“자네가 백우진이로군.”
키가 엇비슷한두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제법 하는군:
“좀 치네.”
서로를 인정하는 말이 었다.
사내는 백우진을 향해 손을 뻗 었다.
“자네의 명성은 익히 들었네.내가있는청해성까지 자네의 이름이 쩌렁쩌 렁 울리더군.”
백우진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소개를 안 한 것 같군.”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근육이 돋은 팔이 바위 처럼 단단해 지고, 핏줄이 울긋불긋 피부를 수놓기 시작할때.
제갈연지와 백우진을 차례로 일별한 사내의 입이 떨어졌다.
“반갑네, 독고천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