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화 蓬 좋은 날
모든 게 완벽한 날이 었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한 하늘은 청명했고, 자신은 그 하늘 위에 올라가 있는 듯한기분이었다.
당선영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각양각색의 의복을 들고 방을 찾아왔다.
“오늘은최대한 예쁘게 꾸며야지?”
“네…!”
어릴 때부터 강제적으로 자신을 꾸미는 법에 대해 배워온 그녀의 감각은 확실히 남달랐다.
수많은 의 복을 뒤 적 이 며 그녀 에 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었다.
연보랏빛 계열에 감춰져 있던 그녀의 풍만한 가슴골이 제법 드러나는 복 장이었다.
얼굴을 뒤덮고 있는 앞머리는 가볍게 옆으로 넘겨 고정하고, 얼굴에 가 볍게 분칠을 하고, 가슴 속 설렘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보이도록 연지 곤지로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허리춤엔 예쁜 노리개를 차고, 치렁치렁한 의복 너머로 손이 드러날 때마 다 예쁘게 보이도록 반짝이는 팔찌도 착용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동경으로 제 얼굴을 확인하는 제갈연지.
“와아…!”
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동경 앞에 서 있는 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달 라져 있었다.
“너무 예쁘다, 우리 동생.”
“어,언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제 일처럼 기뻐하고 있는 당선영의 모습을 본 제갈연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 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따뜻한 감정 이 샘 솟았다.
어쩌면 이게 자매들의 우애란 게 아닐까.
감격 어 린 표정을 짓고 있는 제 갈연지 를 본 당선 영의 입 가에 짓궂은 미 소 가 그려졌다.
“우리 동생….”
빠르게 출수한 양손이 한껏 부푼 제갈연지의 양쪽 가슴을 움켜쥐 었다.
“히얏…! 어, 언니이!”
그녀의 놀란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물럭거 리는 당선영.
“어떻게 이 큰 것들을 그렇게 감쪽같이 숨겨 왔을까…?”
제갈연지의 얼굴이 점점 야릇하게 변해갔다.
이토록 누군가에게 가슴을 주물러진 적은 처음이었다.
“어,언니 그만….”
“이걸 진즉에 보여줬으면 그이도 단숨에 짐승이 됐을 텐데.”
당선영의 손이 떨어졌다.
그녀는 이리저리 뒤트느라 흐트러진 그녀의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어 주었다.
“잘다녀와.그이가뭐 해줬는지 나한테 얘기해주는거,잊지 말고?”
“네,네에.”
그렇게 배웅을 받으며 기숙사를 나서는 제갈연지 .
“와아….”
날씨는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쾌청했다.
생전 처음으로 사내들이 그녀를 보며 수군거린다.
예전에는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남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에 겁을 집어 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퍽 느낌이 나쁘지 않다.
이대로 그와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내고 나면, 평생 그의 곁에 있을 수만 있 다면.
자신도 그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좀 더 당당하게 제 모습을 내비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오늘 하루가 평생을 살아가며 잊지 못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되리 라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잠시 우리와 함께 가주셔야겠소.”
학관을 나선 지 얼마 되 지 않아 검은 복면을 쓴 무뢰한과 마주치 기 전까지 는.
…
최악의 상황 속에서.
그녀는 무력했다.
치렁치렁한 의복은 그녀의 손발을 어지럽혔고, 복면을 쓴 사내들의 실력 과 합은 심상치 않았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해보고 마혈과 아혈을 짚힌 그녀는 그대로 보자기 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어딘가로 이송되었다.
보자기 가 풀렸을 땐 커다란 나무에 몸이 묶인 채 였다.
| |...
!..
복면을 쓴 사내 중하나가무심한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얌전히 있으시오.그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납치를 한 대상에게 볼일이 없다는 말은 뻔했다.
자신을 빌미로 삼아 다른 이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는 뜻.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백 공자…!’
자신을 빌미로 이곳에 누군가를 불러낸다면 그것은 백우진 단 한 사람뿐.
잔뜩 겁에 질려 있던 그녀의 눈빛이 독기를 품었다.
“••백 공자에게 무슨 짓을 할셈인 건가요.”
“호오, 눈치 가 빠르시 구려.”
“대답해요.”
“흐음.
조금 전까지만해도 몸을 벌벌 떨고 있던 여인이 지금은 여장부와 같은 기 세를 내뿜고 있다.
사내는 흥미롭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잠깐 시험할뿐이오.”
“시험…, 이라고요.”
“그렇소. 여러모로궁금한게 많아서 말이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선 백우진을 향한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 다.
“궁금한 건 당신이 아닌가 보네요.”
사내의 눈썹이 약간 치솟았다.
“생각보다 날카로우시군.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구려.”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항상 주눅 들어 있고 말을 더듬는다더 니.
혹 사람을 잘못 납치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당신의 주인은분명 학관 내부의 사람이겠죠.”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무엇이오.”
그것 외 에는 생 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 다.
그녀는 같은 신룡조원 외 에 친한 사람이 전무한 수준이 다.
자신이 오늘 외출한다는 소식은 자연스럽게 조원 외에는 알수가없다는 뜻.
허나, 조원들이 이러한 짓을 꾸밀 리는 없다.
조원들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나면 남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외출을 신청한교수님 …, 아니면 이를 처리하는 담당자….’
아니면 그들에게서 정보를 빼낸 다른 누군가가될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 다.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모든 게 밝혀질 테니.
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한껏 인상을 찡그린 사내에게 일침을 가했다.
“백 공자…, 아니,우리 그이에게서 가까스로살아남거든, 당신의 주인에 게 꼭 전해요.”
그녀의 눈동자에 울분이 맺혔다.
완벽했을, 완벽해야만 할 오늘 하루를 이리도 망쳐버린 사내의 주인.
“시간이 얼마가걸리든찾아내 줄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평생동안 처음으로 고대했던 하루를 망쳤으니.
“이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그 목숨으로 치르게 될 거라고 말이에요.”
선전포고와도 같은 그녀의 대담한 말을 제 주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 인걸까.
사내의 눈두덩 이 가 사정 없이 일그러 졌다.
“이년이…!”
솥뚜껑만한크기의 손바닥이 허공을 맹렬하게 가를때.
콰아아앙-!
사내의 우측에 우거져 있던 숲에 무언가가 날아와 주변 나무를 온통 으스 러뜨리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뭐,뭐냐.
연막처럼 피어오른 흙안개가 서서히 가라앉을 즈음, 사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과 함께 일을 도모한 동료들이 피를 게워내며 처참하게 쓰러져 있 는 모습이었다.
콰앙-!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리고, 앞선 위치에서 매복하고 있던 동료 하나가 이곳 에 메다꽂혔다.
그와동시에 그리 멀지 않은곳에서 거센 외침이 들려왔다.
“꼭- 꼭-숨어라-! 머리카락보일라!”
콰앙
주변을 빼곡하게 감싸고 있던 동료들이 날아와 우거진 숲이 초토화되 었 다.
“보이면 죽는다!”
언뜻듣기에 유쾌해 보이는음성.
허 나 이 를 들은 사내 는 지 금껏 느껴 본 적 없는 미 증유의 공포를 느꼈 다.
유쾌함으로 가장한 것은 살기의 덩어리 였다.
저 목소리를 내었을 백우진은 지금 자신들에게 필살의 의지를 전하고 있 는것이다!
“이,이런 미친.”
제 갈연지 도 그렇고, 백 우진도 그렇고.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얘 기 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강하단얘기는없었는데 ….’
제 주인에게서 들은 경지는분명 절정 상입경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이다.
자신 또한 절정 상입경 수준이니, 그와 맞상대하기 위해.
‘경지를 숨기고 있었나.’
자신은 동료들을 상대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백우진 은 자신을 뛰 어넘는 수준의 고수라고 봐야 했다.
‘최소벽에다다랐거나….’
최악의 경우, 제 주인과 마찬가지로 초절정에 이른 말도 안 되는 괴물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지도.
“후우….”
하나, 또하나, 이번에는 둘.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동료들이 전부 쓰러진 나뭇더미에 처박혀 고혼이 되었을때.
사내는 검을 뽑아든 채, 산을 오르는 백우진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어,마지막 한놈 찾았다.”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되리라고. :k * *
힘 조절에 실패했다.
아니 , 애초에 할 생 각 자체 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그래서 싹 다 날려버렸다.
오붓한 날이어야만 하기에 검도두고와서 주먹으로 말이다.
“어떤 새끼가내 걸 건드렸나했더니.”
서찰에 표시해둔 위치에 도달해서 본 것은 나무에 묶여 있는 제갈연지와 한사내.
그럭저럭 강해 보이 기는 하지 만.
“너는 아닌것 같네.”
고작해야 똘마니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핫!”
짧은 기합성과 함께 달려드는 사내.
결연함이 느껴지는 눈과 수비는 조금도 생각지 않은 과격한 공격.
“살기를 포기했구나, 너.”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동귀어진할 생각이 뻔히 보인다.
백우진의 신형이 일순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단 잠깐 있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등 뒤.
황급히 돌아서며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의 손이 더 빨랐다.
“큭…!
단말마의 비명과함께 몸이 그대로무너져 내렸다.
마혈이 짚힌 것이다.
“네가 어떻게 죽을지는 제갈소저의 상태에 달렸다.”
무시무시한 눈빛을 날리고 돌아선 백우진.
제갈연지에게 무서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눈에 주었던 힘을 풀고 다가갔다.
“괜찮아?”
“백 공자….”
그녀의 시선이 몽롱하다.
혹시 무슨 약에 취했나 싶어 황급히 맥문을 쥐어 보았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커다란나무에 단단히 묶인 줄들을 모두 풀어내자, 제갈연지가곧장 그의 품에 안겼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무서웠어?”
“으응, 아니에요….”
그녀 가 얼굴을 살짝 뒤 로 빼 며 고개 를 들어 올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멍한 눈빛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끈다.
“왜,왜그래?”
백우진이 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그녀가 헤실거리며 답 했다.
“나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던 거잖아요…?”
“그랬지…?”
“그, 그모습을 보니까…, 백 공자한테 사랑받고 있단생각이 들어서….”
“어,음.
다행히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다.
비로소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얼굴과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엄청 예쁘게 꾸몄네.”
이 는 제 갈연지 도 마찬가지 였다.
“배,백공자도요.”
“나는….
백우진의 얼굴이 흐려졌다.
주변을 둘러싼 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옷이 많이 망가졌다.
찢어지기도 했고, 놈들의 피가 묻기도 했다.
최고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 아무래도 그것은 물 건너간 듯싶 다.
“괜찮아요…. 지금도 엄청 멋있어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크으…!”
안 좋았던 기분이 다시 차오르는 느낌.
한껏 밝아진 백우진이 그녀를 품에서 떼어놓은 뒤, 마혈이 짚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내 에 게 다가갔다.
“내가 한방에 보내줄게!”
관대 한 처 사가 내 려 졌다.
사내도 이를 받아들인 듯, 조용힌 눈을 감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사내를 향해 겨냥할즈음.
제갈연지가 황급히 달려와그의 손을 제지했다.
“자, 잠깐만요.”
“왜?”
“이 사람…, 살려서 돌려보내고 싶어요.”
설마 자신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아서 불쌍하게 여기기라도 하는 걸까.
백 우진의 묘한 시 선으로 응시 하자, 제 갈연지 가 다급하게 손사래 를 쳤다.
“저,저남자뒤에분명히 이 일을사주한사람이 있을거예요!”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제가저 사람한테 말을남겼거든요….주인한테 가서 전하라고….”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사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읊어주었다.
이를 들은 백우진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살려줘 야지 !”
설마 그 얌전한 제갈연지 가 그런 대담한 선전포고를 건넬 줄이 야.
백우진은 짚어둔 마혈을 풀어준 뒤, 사내에게 말했다.
“네 주인에게 가서 우리 제갈소저가한말똑똑히 전해라. 알겠냐?”
“•••날 죽이 지 않은 걸 후회할 날이 올 거 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말에 백우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나한테 그런 말했던 애들, 정말 많았거든? 근데 지금은 없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 그가 말을 이 었다.
“내 손에 죽어서 전부 하늘나라로 떠 났거든.”
너도그러고 싶지 않으면.
“절대 내 눈에 띄지 마라. 봐주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까.”
“큭…!
살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에 사내는 침음성을 흘리며 곧장 뒤로 돌아섰다.
그리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줄행랑쳤다.
“그러다 날겠네, 날겠어.”
백우진은 뒤로돌아서서 제갈연지의 손을 잡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지?”
우리의 하루 말이야.
제 갈연지 가 환한 미 소로 고개 를 끄덕 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