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화 蓬 궁수와 광수
구왕수와 남궁수의 비무를 일주일 앞둔 시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원들을 상대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다대일 비무를 진행하고 있던 그의 시야에 구왕수가 들어왔다.
“차핫!”
“하압!”
모두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붓고 있을 때, 구왕수만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훈련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는 건가 싶어 공격을 해보면.
“윽!”
자신의 공격은 또 전력을 다해서 틀어막는다.
‘이 새끼 봐라.’
백우진은 그가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는 지금 머릿속으로 자신을 남궁수로 여기고 있는 거다.
비무의 내용은 백 초식을 버티느냐, 못 버티느냐.
녀석은 수비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백 초식을 넘기기 위해 지금부터 수비 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휴.”
냉정하게 말하면 저게 맞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방어를 단단히 굳힌 채 상대의 공격 을 받아넘기다가 빈틈을 노려 단숨에 형세를 뒤집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저래서야 누가 인정해주겠냐고.’
이번 비무에서 백우진이 원하는 건 구왕수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남궁수와 치 열하게 전투를 벌 임으로써 그를 둘러싸고 있는 나약한 인 식들을모조리 벗겨낼 셈이었다.
힘겹더라도 남궁수와 백 초식을 겨뤄낼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했다.
단, 저렇게 거북이마냥등껍질에 쏙 숨어서 공격을 받아내기만 해선 변화 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패배하더 라도 맞서 싸워 야만 했다.
상대방이 치열하다 못해 비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격렬하게 공수를 나 누어야 한다.
‘•••나름대로 머리를굴린 결과겠지.’
녀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자신의 의사와는별개로 비무는 성립되었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승리해야 만하니까.
다행히 녀석을 이기는 게 아닌, 백 초식을 버티면 이기는조건이니 수비적 으로 나서면 가능하리 라 생 각했겠지.
카아앙
백우진은 달려드는 조원들의 검을 모조리 걷어냈다.
“오늘 훈련은 여 기 까지 만 하자.”
“에? 진짜?”
“참이오?”
신예화와 장삼을 비롯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훈련하면서 일이 있어 백우진이 빠진 적은 있 어도 정해진 훈련 시간을 줄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
“열을 셀 동안 떠나지 않으면 계속 하고 싶다는 뜻으로 간주한다. 하나,
드 鶐….
“수고하셨소!”
“가,갈게!”
“내일 봐, 자기!”
체력으로나, 실력으로나 가장 강한 당선영마저도 학을 떼고 사라져간다.
빠르게 달아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여 흐뭇하게 웃고 있던 백우진은 슬 금슬금 제 곁을 지 나가는 구왕수에 게 말을 건넸다.
“광수는 남아야지?”
“•••아.”
혹시나했더니 역시나인가.
구왕수는 체념하며 고개를푹숙인 채 백우진의 앞에 섰다.
야.”
“어…?”
“그런 식으로 남궁수랑 싸울 거냐?”
“백 초식만 버티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 수비 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
백우진은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천천히 다가가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 렀다.
“광수야.”
“•••응.”
“내가이 비무를통해서 얻고싶은게 뭐라고 생각하냐.”
골똘히 생각하던 구왕수가 답을 말했다.
“남궁수와독고천 선배님의 검?”
지독하게도 일차원적 인 놈.
백우진은 녀석의 뒤통수를 가볍게 후려쳤다.
“그건 부차적인 수입이고.”
상대는 가볍게 때렸다곤 하나, 맞은 장본인은 아픈 법.
구왕수는 얼얼한 뒤통수를 매만지며 불퉁한 시선으로 백우진을 노려보았 다.
“그럼 뭔데.”
“인식의 변화.”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입에 담았지만, 구왕수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 이다.
“내가너한테 말했지.나만따르면 네가그토록바라는 명성,명예 같은것 들 전부 누리게 해주겠다고.”
“그랬지.”
“이게 그일환이야.”
“이 비무가…?”
얘를 정말 어쩌면 좋니.
이 정도만 말했어도 대충 알아들을 법도 하건만.
“자,보자. 광수야 집중하자?”
“어,어.”
“네가 검룡,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궁수랑백 초식을 겨뤘어.”
“으
O •
“그러면 사람들이 널 뭐 라고 생각할까?”
“ 아!”
뒤늦게 깨달은 구왕수.
“지 금의 너는 고작해 야 남궁수 따까리 였다가 백 우진 따까리 로 갈아탄 놈 에 불과해.”
“윽.,,
날카로운 사실적시에 찔린 표정을 짓는 구왕수.
본인의 의사는 없었지만, 남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 비무는 결국 그거야. 네가 남궁수랑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
“근데 그렇게 수비로 일관하면 비무를 본 사람들이 너랑 남궁수랑 비등하 다고 생각하겠냐?”
“안 하겠지.”
“그래.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구왕수.
“맞서 싸운다?”
“그렇지.”
원하는 답을 들은 백우진이 곧장 땅바닥에 꽂아두었던 목검을 손에 쥐 었 다.
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구왕수.
“뭐하냐, 광수야.”
“어?”
“지금부터 나를 궁수라 생각하고 공격해야지.”
“아,알았어!”
특훈이 시작되 었다.
퍼억! 퍼억!
“악! 아악! 아파!”
“응〜 난지금궁수야. 네가꼴보기 싫으니까팰 거야.” “아아악!”
..
!..
!..
.......
몰입도는 최 상이 었다. :k * *
일주일이 쏜살같이 흘렀다.
독고천은 지난 보름간 학관 내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구왕수와 남궁수의 비무 소식을 널리 퍼뜨렸다.
심지어 그들 모두가 직관할수 있도록 대연무장을 빌리기까지 했다.
“남궁수가 이기겠지?”
“당연하지.”
“근데 백 초식만 견디는 거라면 구왕수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나?”
“자네는 남궁수가 좆으로 보이나?”
바글거리는 생도들.
모두가두사람의 비무를 직관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었다.
비무 정도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학관에서 생도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여든 이유는 두가지다.
첫 번째는 검룡 남궁수와 구왕수의 서사 때문이었다.
모두가 안다.
구왕수가 예전에는 남궁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부하1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런 녀석과 대장이었던 이가 싸운다고 하니 참지 못한 궁금증이 그들을 이끌었다.
두 번째는 바로 독고천의 존재 였다.
“독고천 선배 가 남궁수를 직접 가르쳤다며 ?”
“이야, 안그래도뻔한 비무인데 압도적으로 끝이 나겠는걸.”
학관에서 독고천의 위치는 가히 절대적 이라 할 만한 수준.
그런 그가 오랜 외유를 끝마치고 돌아와 후배들과의 내기에 끼어들었다 는사실이 퍼지자, 이 비무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도그를보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 연무장 주변은 생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교수들 또한 궁금하다는 듯이 연무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 었다.
“햐,판을 아주 제대로 깔았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보며, 백우진은 혀를 내둘렀다.
“판에 끼워주길 잘했네.”
독고천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아무리 떠들고 다녀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모 이진 않았을거다.
그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것을 보 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오히려 좋아….”
백 우진 또한 사람이 많았으면 하고 바란 것은 마찬가지 였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구왕수가 남궁수와 비등한 싸움을 선보이 면 소 문 또한 더욱 빨리 퍼질 테니 말이다.
“지금부터 구왕수와 남궁수의 비무를 시작하겠다!”
대연무장 위에 올라선 독고천이 외치자, 모두가 함성으로 보답했다.
심판은 독고천이 맡기로 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걸리면 조져버려야지.’
수 쓰다 걸리 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건 상식 이 니 까.
“남궁수와구왕수, 입장하라!”
반대편에 서 모습을 드러 내는 두 사람.
한쪽은 더없이 여유로워 보였고, 다른 한쪽은 과도한 긴장감으로 바짝 얼 어붙어 있었다.
백우진은 목각인형처럼 걸어 올라가는 구왕수를 향해 소리쳤다.
“광수야! 져도되니까 열심히 해라!”
그의 열띤 응원을 들은 구왕수의 표정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패배하면 이 많은사람들 앞에서 무릎 꿇고 남궁수에게 사죄를 해야하는 데, 그래도 괜찮다는걸까.
“지면 뭐 어때! 그냥 그대로 저승길로 직행하면 되 지 !”
“아….”
내감동돌려줘.
구왕수는 쓰게 웃으며 비무대 위에 올라섰다.
산산조각난 감동과는 별개로, 긴장감은 많이 풀렸다.
극도로 좁아졌던 시야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비무 조건은 다들 알고 있겠지 ? 백 초식 내에 승부가 나면 남궁수의 승리
, 그렇지 않으면 구왕수의 승리다.”
“예.”
“네!”
적잖은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두 사람.
독고천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무공을 배우는 학관의 생도들이 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 견을 나누었다.
과연 두 사람의 비무는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
“아무래도 초식의 수에 제한이 있는 남궁수가 적극적으로 나서겠지.”
“음. 구왕수는 버 티 기 만 해도 승리 니까 수비 적 인 태도로 나설 테고 말이 야
” »
모두가 그리 예상했다.
당연했다.
자신들이 저 자리에 섰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초식을 운영했을 테니까.
허나.
“비무를 시작한다!”
독고천의 외침에 비무가 시작되는 순간.
그들의 예상은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백 초식만 버텨도 승리하는 만큼, 수비로 일관하리라 예상했던 구왕수가.
“흐아아앗!”
거센 기합성과 함께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거친 함성, 신법과는 달리 매끄러운곡선을 그린 검이 쇄도하며.
비무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