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화 蓬 궁수와 광수
짧은순간이지만, 백우진은독고천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는 본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지 만, 남을 위해 발 벗고 나서 는 성향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그가 남궁수를 직접 가르친다고 했을 때에도 그러려니 했다.
딱히 가르칠 것 같지도 않고, 가르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예상대로구만.’
그들은 모른다.
자신이 이 비무를 기획한 것은 오로지 남궁수를 조지고, 구왕수의 인식을 올리기 위해서라는것을.
오직 승리 만을 원 한다고 생 각했을 것 이 다.
그러니 구왕수가 수비 적인 초식으로 일관하며 시 간을 끌리라 예 상했을 것이고, 이를 상정하며 준비해왔을 터다.
“그런데 어쩌나.”
전혀 아닌데.
질 거라 생 각도 안 했지만, 져도 상관은 없다.
그간의 무례 猌 사과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놈 놀리겠다고 자신이 남궁이라는 성씨를 의도적으로 깔아뭉갠 건사실이니까.
백우진은 구왕수에게 적극적인 공격을 요청했다.
애초에 연검(連劍)을 사용하는 녀석에게 공격보다좋은 수비는 없으니 말 이다.
“잘한다, 우리 광수.”
머릿속의 작전을 그대로 끄집어낸 것처럼 상황이 흘러간다.
연이은 공격에 남궁수는 초식을 허비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빠져나온다.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녀석은.
“제왕검형이다!”
“그렇지.”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검법인 제왕검형으로 상대방을 압도적으로 찍 어누르려 하겠지.
“제왕검형, 참무섭지.”
비단 검과 검을 맞대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점유하는 검법.
“이걸 검법이라불러야하나 애매하긴 하지만.”
남궁세 가에 서 검형 이 라 부르니 까 검 법 이 라고 생 각해 야겠지.
공간의 점유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이점을 선사한다.
자신이 차지한 권역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행하려는 이와 비슷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이는곧둔검(뒫劍)의 묘리이기도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앞질러 검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제 공격으로 뒤바꾼 다.
“제왕검형이 나온 이상무리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구왕수는 쪼그라들었다.
조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느릿하게 내질러지는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며 뒤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이를 본 백우진은 웃었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은.
“계획대로.”
그의 머릿속에서도 벌어졌던 일이었기에.
백우진은구왕수에게 용감하게 싸우라고 말했지만, 백 초식 내내 그러라 곤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는 분명 그랬는데 중간에 계획을 바꾸었다.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이 뒤늦게 떠올라서였다.
‘제왕검형을 지금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지.’
고작 절정의 경지에서 펼쳐지는 제왕검형.
백우진은 얼마든지 깨트릴 수 있지만, 그보다 경지가 낮은 구왕수에게는 무리였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남궁수가 제왕검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한껏 몸을 움츠리고 원래 계획 대로하라고.
“이름하여 거북이 전법이다, 짜식아.”
낄낄낄!
이미 공격적인 면모는보여주었다.
모두가 구왕수의 색다른 모습에 놀라기까지 했으니 일차적인 목표는 이 룬셈.
이제 승리만 거머쥐면 모든 게 완벽해지는 것 아닌가.
“구소협이 잘배웠네요….”
옆에서 비무를 지켜보던 제갈연지가 녀석을 향해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누가가르쳤는데, 당연하지.”
“헤,헤헤.”
수비적인 초식은 제갈세 가의 특기 중 하나다.
그래서 그녀에게 부탁했다.
가장효과적으로 상대방의 검격을 막아낼 수 있도록 가르쳐달라고.
더군다나 남궁수의 대용으로 쓰이는 비무 상대 가 자신이 었다.
그에게는 한 검귀가 남긴 제왕검형과 비슷한 아니, 어떤 의미로는 뛰 어넘 는 공간검이 있지 않던가.
‘충분하겠지.’
깨트리는 건 여전히 불가하지만, 막아내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 증거로 구왕수는 한없이 밀려 나는 와중에 도 짓고 있는 표정 만큼은 그 리 나쁘지 않았다.
“슬슬 끝인가.”
어느덧 주고받은 초식이 팔십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왕수는 더욱 여유로워졌고, 남궁수는 더욱 다급해졌다.
그러한 다급함이, 절대 섞여선 안될 둔검에 스며들었다.
“저런:
제왕검형이 자멸하고 있다.
그때 였다.
넓게 펼쳐진 그의 기감으로부터 아주 작지만 날카로운 무언가가 허공을 가른 것은.
삐리릭
이 어마어마한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저긴가?”
백우진은 비무를 보며 술을 마시기 위해 준비해둔 주안상에 올려져 있던 젓가락 하나를 집 어 허공에 다 쏘아보냈다.
티잉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부딪힌 젓가락이 힘을 잃고 관객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내 이럴 줄알았지.”
백우진의 시선이 독고천에게로 향했다.
놈이다.
제갈연지를 납치하여 자신을 해코지하려고했던 가장 유력한 범인.
그 일을 계기로 독고천에 대해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다.
놈은 정파에 있지만, 정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라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 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라는 것을.
“찾았다.”
백우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윽고 나타난 곳은 대 연무장에 서 조금 떨 어진 곳에 위 치한 거대 한 나무 위였다.
그곳엔 선객이 있었다.
딱 봐도 저 수상합니 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검은 복면으로 제 얼굴을 가리 고 있는 자객.
“제길, 갑자기 웬 젓가락이…!”
그는 자신이 대롱으로 쏘아보낸 비침이 젓가락에 의해 막힌 것을 확인하 고 곧장두 번째 비침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야,그거 재밌냐.”
그때 뒤에서 목소리 가 들려왔다.
스산한 음성.
‘고수!’
뒤를 잡혔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하기 힘든 고수라는 것.
곧장 연막탄을 터뜨려 시야를 가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어허.”
백우진이 녀석의 마혈을 짚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독고천이가시키드나.”
그의 물음에 놈이 소리쳤다.
| |..
!...
...
“난 그놈이 누군지 모른다.”
“지랄하고자빠지셨어, 진짜.”
무림에 발을 들인 놈이 독고천을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
동네 꼬맹이들도 아는 정파 제일의 후기지수인데.
“됐고, 나중에 네 주인한테 가서 전해. 자꾸 얕은 수 쓰다가 걸리면 손모가 지 날아간다고.”
그 말을 남긴 채, 백우진은 사라졌다.
이를 느낀 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아, 맞다.”
사라졌던 백우진이 다시 나타났다.
“내가 짠완벽한 판을 뒤 엎으려던 놈인데, 그냥 가기는 좀 그렇지 ?”
저번에 제갈연지를 납치하려 했던 놈을 그냥보내서 얼마나 아쉬워했는 데.
“착하게 살아, 새꺄.”
그리 말하며 다리 하나를 짓밟았다.
뿌득!
“끄악!”
고통어린 비명이 토해졌다.
다리가 제대로 꺾인 것을 보면 부러진 게 확실해 보인다.
“느그 주인한테는 기어서 가든가, 깽깽이 발로 가든가 알아서 하고.”
그럼 이만.
백우진은 그대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동시에 비무대 위에서 가장중요한순간이 펼쳐졌다.
마지막 한초식.
사력을 다한 녀석의 제왕검형과구왕수의 거북이 등껍질이 부딪히며 나는 굉음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끝났네.
마지막 백 초식이 끝났다.
당연한 말이 지 만, 두 사람 모두 꼿꼿하게 서 있었다.
말인즉, 구왕수가 승리했다는 것을 의 미했다.
독고천은 무덤 덤한 시 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이 내 소리 쳤다.
“이번 비무는 구왕수의 승리다!”
어 마어 마한 환호성 이 뒤 따랐다.
사람들에겐 묘한 심리가 있다.
강자와 약자가 맞붙을 때, 강자의 승리를 당연하게 점치면서도 약자의 승 리를 기대한다.
왜냐고?
뻔한 건 재미없으니까.
매번 강한 놈이 강하답시고이기면 약한 놈은대체 언제쯤 이겨보겠나.
“구왕수! 구왕수!”
“잘 싸웠다, 구왕수!”
“대단하다!”
그러한 심리가 그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이번 비무의 승리자인 구왕수에게로 고스란히 쏟아졌 다.
자, 그럼 가볼까.”
백우진은 곧장 비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는 익 살스러운 표정으로 환한 미 소를 지 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수에게 다가갔다.
“수금하러 왔습니다, 고객님〜”
남궁수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또 당했다.
구왕수에게 패배했음에도, 눈앞의 얄미운 놈에게 패배한 것만 같은 느낌 이 들었다.
그래서 더 처참하고, 참혹했다.
“•••가져가라.”
그는 제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뒤, 허리춤에서 풀러 백우진에게 건네주었 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호들갑 떠는 목소리에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지만, 그는 패자였다.
이곳에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었기에.
조용히 뒤안길로 물러났다.
“자,이제 첫번째 수금은끝냈고.”
백우진의 시선이 독고천에게로 향했다.
과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묻는 그.
“어라, 선배님! 왜 제 검을 차고 계십니까?”
비무에서 승리한순간, 그의 허리춤에 채워진 검은 자신의 것이 아닌가.
“으음.
그는 일말의 침음성을 흘리며 허리춤에서 검을 풀어냈다.
아쉬움이 뚝뚝묻어났지만,그는 이내 미련 없이 백우진에게 검을 건네주 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당했군, 그래.”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독고천.
백우진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뿐만은아닐겁니다.”
앞으로도 쭈욱 당할 거 라는 얘 기 였다.
독고천은 웃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좋은 검이니 소중히 다뤄주시게.혹시 아는가? 나중에 또 내기를하여 내 가 가져올 수도 있지 않겠나.”
그의 말은 꼭 다음에는 지지 않을 테니, 그때까지 자신의 검을 잘 간수하 고 있으라고 말하는 것처 럼 들렸다.
“뭐,저야 좋은 내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응할 생각이니 언제든 찾아주십시 오.”
남들이 보고 있다.
백우진은 그들을 의식하며 독고천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하하! 그럼 다음에 보세나.”
독고천은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뒤, 비무대 위에 서 내려갔다.
‘다음에는 제대로 짓밟아주마, 이놈!’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 화를 참아내며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느릿한 걸음으로 연무장을 빠져 나가려 할 즈음.
그의 귓가에 백우진의 커다란 목소리 가 들려왔다.
“자아, 날이 면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닙 니 다!”
이따금 열리는 오일장에서나 들을 법한 장사치의 말투를 따라하며 운을 떼는 백우진.
이에 궁금해진 독고천이 걸음을 멈춰서 뒤로돌아설 때.
“조금 전까지 독고천 선배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검! 싸게 팝니드아앗!”
낄낄낄낄!
그의 말한마디가관객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나! 내 가 살래 ! 금자 한 냥!”
“어딜 날로 먹으려고? 나는 세 냥!”
“학관에 사기꾼 새끼들이 왜 이리 많아?! 여기 열 냥줄 테니까, 나한테 바 로 팔아!”
신성한 비무대 위에서 경매가 벌어졌다.
독고천은 찰나지만, 곧장 날아가 저놈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 을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