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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68화 (168/215)

<168 화〉이름

작전은 그야말로 대성공으로 끝났다.

구왕수는 연습 때보다 더 잘 움직 여주었고, 남궁수는 예상보다 못한 움직 임을 보였다.

그로 인해 비무 직후 남궁수가 생 각보다 약한 것인가, 아니 면 구왕수가 강 해진 것인가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긴 했지만, 구왕수가 옛날에 비해 눈 부신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만큼은 정론으로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구왕수의 인식은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언제나 남 뒤꽁무니나 따라다니 던 그의 주변을 서성 이는 이들이 생겼을 정도니, 말다한 셈.

더군다나 이번 작전은 예상치 못한 성과마저 거뒀다.

바로 독고천 이 었다.

“난 독고천 선배가 패배한 것 처음 봤어.”

“아무리 내기였다곤 하지만 자신의 검을 백우진에게 넘겨주는 걸 보니까 놀랍더군.”

학관에 입관한 이후로 어떠한 방식으로도 패배하지 않으며 거침없이 나 아가고 있던 그의 무패 행진에 제동이 걸어버린 것이다.

물론 본인이 직접 싸우지도 않은 단순한 내기였던 만큼, 그다지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학관의 생도들에게 확실한 무언가 하나 정도는 심 어주었다.

독고천도 패 배 할 수 있는 사람이 라는 것.

누군가는 인간적인 면모라며 오히려 그가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글쎄.

“그놈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할것 같은데.”

언제나 완벽한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 게 뻔히 보이는 인간이다.

놈은 이 작지만처음인 지금의 패배를언제까지나기억에 담아둘것이고 , 그것은 집요함이 되어 자신을 더욱 조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때도 볼만했지.”

자신이 비무대 위에서 독고천의 검을 판매한다고 외쳤을 때.

이를듣고돌아선 놈이 짓던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다.

당장 저놈을 죽일 방법이 없나 고민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어찌나 우습던 지.

아무튼.

모든 게 끝나고, 일상은 다시 안정을 되찾아갔다.

아, 안정을 되찾기 전에 약간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구왕수 때문이 었다.

백우진은 당선영을 부조장 자리에 앉혔다.

이는 당연했다.

그를 제외 하면 신룡조에 서 가장 강한 사람은 그녀 였고, 원래 독봉조를 이 끌었던 만큼 통솔적인 부분에서도 누구보다 뛰 어났으니까.

그런데.

“당소저. 내게 명령.곤란.”

정신이 출타해버린 구왕수가 또 말도 안 되는 화법을 구사하며 당선영에 게 시비를 걸어버렸다.

그녀는 최근 매우 온화한 성격으로 백우진을 대신하여 조원들을 이끌고 있지만.

“어머, 얘 뭐라는 거니.”

백우진을 만나기 전까지만해도그녀가모든 사내들이 기피하는독거미 였음을.

구왕수는 제 분수보다 세 배쯤 높아진 자존감 탓에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강자존. 부조장. 본인.”

직 역하면 간단하다.

내 가 더 강하니 부조장은 내 가 되 어 야 옳다.

“호호! 재미있네.”

당선영은 걸어오는 싸움에 절대로 물러설 여인이 아니 었다.

결국 두 사람은 비무를 벌이게 되 었고.

“사,살려주세요….”

구왕수는 보라색으로 변한 얼굴로 당선영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야만 했다.

“쯔쯔 어、스 •

99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백우진은 그저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안 그래도 콧대 가 또 높아져서 한 번쯤 눌러줄까 했더니, 본인이 알아서 쪼 그라들었다.

“웃기는 놈이야, 아주.”

당선영이 손으로 흔드는 해독제를 따라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구왕수 를 보며 피식 웃는 백우진.

한번씩 기어오르는꼴은 몹시 보기 싫지만,놈의 존재가은근히 조원들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인정해야겠다.

작은 반란이 막을 내리고, 훈련이 끝난 늦은 밤.

어 김 없이 혈수마녀는 나타났다.

“자,오거라.”

백우진은 제 앞에 서서 이쪽을 향해 손짓하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 라보았다.

요즘 그녀 가 이 상하다.

“호오…, 이번 수는 제법이구나.”

안 하던 칭찬을 해주는가 하면.

“이런, 아쉽구나. 조금만 더 다듬으면 성공할 것도 같다만….”

백섬검결을 하나의 검식으로 뭉치는 데에 실패한 그를 위로해주기도 했 다.

백우진은 그것이 너무나도 의 아하고,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왜 저렇게 변했지?’

혈수마녀 가 백우진을 무뚝뚝하게 대한 것은 그의 외 모 탓이 컸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백유성과 빼다 박은 얼굴은 보고 있기만 해도 기 분을 나쁘게 만들었기에.

동시에 선입견 또한 생겼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백우진 또한 백유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허나, 그가 혈수마녀를 위해 방을 내 어준 행동이 그녀의 인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다.

‘백우진은백유성과 다르다.’

언제고 쓰임새 가 있을 거라며 자신을 봉인시 킨 백유성과 달리, 백우진은 그녀가 더욱 편할 수 있도록 배 려해주었다.

그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유성과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는 와중에 그것이 결정타가 되 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더 이상 백우진에게서 백유성을 겹쳐 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그녀가변하게 된 이유였다.

“고생했다.”

땀범벅이 되어 땅바닥에 쓰러진 백우진을 향해 그녀가 가볍게 웃는 낯으 로 말을 건넸다.

백우진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 를 느낀 혈수마녀 가 의 아한 시 선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왜 그리 보느냐.”

“아뇨, 그냥….”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하지 만 이 것을 물어도 되 는 건가 싶어 차마 입 밖으로 내 기 가 애 매 한 상황.

대충 말을 얼버무리려 할 때, 그녀가 인자한 웃음으로 그의 말을 이끌어 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일단물어보거라.사내 아니더냐.”

기운을 북돋아주는 말투에 백우진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그냥, 갑자기 선배님 존함이 궁금해져서요.”

문득 그런 생 각이 들었을 뿐이 다.

혈수마녀 라는 별호와 선배 라는 호칭.

그것외에 그녀에 대해 아는것이 극히 적다는생각과함께 그녀의 진짜이 름은 무엇일까 하고.

“흐음,본녀의 이름말이더냐.”

흥미롭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그것이 어찌 궁금해졌느냐.”

“어…, 그냥선배님과 지낸 지도꽤 됐는데, 아는 게 없는듯해서요.”

“그것도 그렇구나.”

그녀의 입 가에 의 미를 알 수 없는 작은 미소가 맺혔다.

“뭐,좋다. 지금의 너라면 본녀의 이름 정도는 알아도 되겠구나.”

묘했다.

그녀의 말투가꼭 임금이 신하를 내려다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나위에 섰던 백우진으로선 썩 기분이 나쁠 법도한데,그것이 그리 나 쁘지가 않았다.

달빛 아래에 선 적발의 미녀가 당당한 자태로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 는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기에.

“잘 기억해두거라.본녀의 이름은….”

붉은 머리만큼이나 붉디붉은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정혜니라.”

정혜.

그녀의 이름 두 자가 백우진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

‘시발….’

자신의 증조뻘 그 이상인 여인에게 이토록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어찌 해 석해야 할지.

백우진은 그것이 매우 난감했다.

“미친거야…, 내가 미친게 틀림없어.”

욕구불만? 그런 거 없다.

제갈연지와만족스러운하룻밤 이후, 참고 있던 당선영에게 쥐어짜였다.

그리고 다음날엔 제갈연지에게 붙잡혀 쥐어짜였다.

욕구불만이라는 단어는 백우진의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되어버 렸다.

그런데 뭐냐, 이 감정은.

“진정하자, 진정해.”

|  |.

........

손에 쥐 고 있는 호리 병을 입 에 다 가져 가 들이붓는 백우진 .

너무나도 의외인 모습에 잠깐이나마 색다른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그냥그랬을뿐,그외의 감정은….

“아니지, 아니지.”

중얼거리며 걸어가다 우뚝 멈춰 서는 백우진.

“내 가 왜 자기 합리 화를 하고 있는 거 야.”

그녀에게 느낀 감정이 어떻든, 굳이 이리 자기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나.

나이? 그게 무에 대수란 말인가.

가능과 불가능만 따지 면 되 는 것 아니 었나.

‘그래서가능? 불가능?’

그래 서 그는 스스로에 게 물었고, 답은 상상 이 상으로 빠르게 도출되 었다.

“오, 가능.

열 번을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온다.

가능하다.

사실 그녀를 보고 불가능이 라 외 치는 사내 가 있다면 그 사내 를 조사해봐 야한다.

성기능이 불구거나, 남자를 좋아하는 남색가.

둘 중 하나일 테니까.

“그래.

뭘 어떻게 하겠다고 마음먹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강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는 걸 구태여 막지 말자고 다짐할 뿐.

단순히 좋은 감정에서 끝나면 그뿐이고, 만약그녀에게 진심이 된다면.

“그땐 전력을 다할뿐이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러면 그만인 걸, 왜 굳이 혼란스러움을 느꼈는지.

생각이 단순명료하게 변하자,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마음속에서.

지향점이 모두 다른 탓에 이리저리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던 백섬검결의 초식들이 단순해진 생각아래 모두 같은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 가끔은 많이 생각하는 게 독이 되는 걸 잊고 있었구나.’

백우진은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그대로 검을 휘두르자, 허공에 한 줄기 빛이 그려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누가 봐도 감탄할 법한, 완벽한 호선.

그것이 의 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백섬검결의 각 초식에 담긴 쾌의 묘리를 단 하나에 녹여내는 데에 성공한 것.

“상상이상이네.”

가볍게 휘둘렀는데도 검속이 어마어마했다.

만약 제대로 내공을 실어 휘둘렀다면 주변을 순식간에 난도질할 수도 있 겠다는 생각이 든다.

쾌(快)를 넘어 섬(쪅)이라부를만했다.

그렇기에 백우진은 초식의 이름을 정했다.

“백섬 (白쪅).”

한줄기 빛살 같은 검술이니, 그 이름이 가장 명확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백가에서 나온 검술이니 그 이름 또한 따라야했고.

“이제집에나갈까.”

혈수마녀와함께 돌아갔으면 되는 길이 었는데, 굳이 방황했다.

갑작스레 변한 그녀를 보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 마음이 당혹스러워 서 그녀를 피했다.

이제 단순명료하게 해결했으니, 밤이슬 맞지 말고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다.

“아이참, 가가….”

“어허, 낭군의 말을 듣지 않을 셈인가.”

연인들의 야릇한 대화가.

“아, 이건 못 참지.”

백우진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어둡고 으슥한 학관의 변두리 .

나름대로 은폐엄폐 확실하게 한남녀가서로를 향해 야릇한손길을 뻗어 가고 있다.

어둠 따위로는 전혀 막을 수 없는 백우진의 드넓은 시야는 이를 정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응…?”

사랑을 나누는 그들의 그림자가 일렁 인다.

그들의 몸짓과는 별개로, 아주 부자연스럽게.

눈에 익은 현상이었다.

백우진의 안광이 더욱 깊어졌다.

어둠을 꿰뚫는 것으로 모자라, 그림자 속까지 꿰뚫을 수 있게 되 자, 보이 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 안에서 연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 한 여인.

십영 (十影), 송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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