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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72화 (172/215)

<172 화 蓬 늦은서찰

백우진은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훈련에 완전하게 몰두하고 있는 조 원들을 바라보았다.

“음,좋아.”

처음에만 해도, 못하겠다고 질질 짜던 녀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잘 단련된 전사들만이 남았다.

그들의 경지는껑충뛰었다.

정확한 건 붙어봐야 알겠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같은 연차의 하위권 용봉 과는 자웅을 겨뤄볼 만한수준까지 성장했다.

‘가장 많이 성장한 건….’

그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제 키보다 큰 월도를 젓가락 다루듯 하고 있는 신예화.

당선영을 제외 하면 가장 높은 경지 에 있던 그녀 가 놀랍게도 조원들 중 가 장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어이가 없네, 진짜….”

보통 경지 가 오르면 오를수록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죽도록 힘들어지는데, 그녀는 그런 거 모른다는 듯이 마구 나아가고 있다.

조원들 중 가장 강했던 이는 당선영이 었다.

그녀는 지난달 절정의 벽에 가로막혀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신예화가 절정 상입경을 넘어서더니 기어코 벽을 마주 하게 되었다.

당선영이 벽을 마주한 지 딱 열흘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비무 결과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열 번 싸우면 열 번 이기던 당선영이 이제 두어 번 정도는승리를 내어줄 정 도.

“슬슬 끝낼때가됐네.”

훈련만 주구장창 해서 경지를 끊임없이 상승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 만, 그 리 편할 리가.

뭉쳐 있으면 적어도쉽게 죽지 않는 단계까지는왔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실전으로 내던질 차례.

조만간 하오문을 또 열심히 들쑤셔서 마교와 관련된 정보를 모아볼 생각 이다.

“일단점심부터 먹을까.”

내리쬐는햇빛이 어느덧 정중앙에 다다랐다.

이는 정오가 되 었다는 증거.

쥐 어 짜내듯 훈련을 하고 있는 조원들은 끼니를 여러 번, 자주 먹 어주어야 했다.

그래야 안 쓰러진다.

“오랜만에 맛있는 거나좀 사줄까?”

조장 최고! 따위를 외치는 조원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서서히 다가가는데 , 분위기가 묘했다.

“언니...,저희 점심 먹으러 가요.”

“그래, 그러자.”

“아, 저기…! 저도 껴도 되 겠습니 까?”

당선영과 제갈연지 가 가장 먼저 착 달라붙었다.

그리 고 그들 사이 에 송희 연 이 슬그머 니 끼 어 들었다.

며칠 전 자신이 조언해준 대로, 그녀는 당선영 제갈연지에게 잘보이기 위 해 부쩍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앗,저도가면안될까요…!”

심지어 설수연까지.

당선영은 웃는 얼굴로 모두를 포용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떠나간다.

“이 보게 삼이! 오늘은 내 가 맛있는 걸 쏠 테니, 가지.”

“자네가?”

“흠흠! 가문에서 용돈이 도착했다네. 아주 두둑하게 말이야.”

“오오, 그렇다면 거절할수 없지 ! 어서 가세!”

장삼과 구왕수도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덩실덩실 엉덩이를 씰룩이 며 떠나간다.

“어,음….”

뭘까.

|  |...

!..

....

그들과 자신 사이의 이 어 마어마해 보이는 거리 감은.

졸지에 혼자 밥 먹게 생겼다.

“오늘은 선배님도 없는데.”

심지어 혈수마녀도 잠깐볼일이 있다며 하루 정도 걸린다고 떠난 상황.

그야말로 완전히 혼자가 되 었나 싶어 우울해지 려던 찰나.

“우진아…, 나랑 점심 먹자….”

신예화가 백우진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단 둘이 있는 건 지양하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그녀의 제 안을 거 절하면 양쪽 모두 쓸쓸하게 혼자 밥을 먹어 야 하는 상황.

‘표정도 별로 안좋아보이는데.’

그녀의 얼굴은 자신보다 더 우울해 보였다.

고독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쓸쓸한 눈빛과 씁쓸한 미소가 마음을 불편 하게 만든다.

“…그래, 먹자.”

백우진은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작 밥 한 끼 먹는다고 뭐 달라질 게 있으려고.

갑자기 울컥해졌다.

연인이 둘이나 있는데 그 둘 모두에게 잊혀졌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아프 다.

무언가이상하다.

신예화는지난 몇 개월간오로지 수련에 몰두했다.

‘더 강해 지 면 우진이 가 날 더 봐줄 거야!’

죽을 것처럼 힘들 때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단하나의 원동력.

멀찍이서 자신을 비롯한 조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백우진의 시선을 조금 이라도 더 붙잡아두기 위해 말그대로 사력을 다했다.

그 마음에 하늘마저 감격했는지, 그녀는 바라던 대로 빠르게 강해질 수 있 었다.

현실적인 목표는 당선영이었다.

그녀가봉의 자리마저 포기하고백우진의 조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그녀 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위 기감을 느꼈다.

‘이 것마저 빼앗기면 난…, 우진 이 와 마주 볼 수 없어.’

모든 걸 터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했던 사이는 이제 없다.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백우진이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도 안 다.

그런 그가 자신을 조원으로 두는 이유가 그나마 다른 조원들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것도.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자신보다 여러모로 출중한 당선영의 존재가 그녀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 겨주었다.

이대로 제자리에 머물렀다간 그의 옆에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래 서 그녀는 백우진 이 당분간 수련에 매 진한다고 했을 때 그 누구보다 좋아했다.

그렇게 훈련에 몰두하고 마침내 다다랐다.

자신보다 한두 단계 더 높은 곳에 있던 당선영과 같은 눈높이에 다다른 것 이다.

‘됐어, 이제 됐어!’

수십 번의 패배 이후, 당선영을 처음으로 이기게 된 날.

바늘 구멍보다 좁아져 있던 그녀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꽉 막혀 있던 시 야가 뻥 뚫리고,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만한 여유 가생겼다.

“어……?”

달라졌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공기,분위기,느낌까지 모든것들이 조금씩 달라졌 다.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시선을 나누고 있던 다른 여인들의 시선이 애틋해 졌다.

일방적인 시선이라면 모르겠으나, 백우진과 그들 모두가 어느 정도 교감 을 하고 있는 것처 럼 보였다.

자신만 쏙 빼놓은 채로 말이다.

“뭐 가 문제 지, 뭐 가 문제 야…? 나도 엄청 열심히 했는데 뭐 가 문제 인 걸까 …?”

알수 없었다.

오로지 그가 자신을 돌아보게 할 유일한 수단이라 여긴 무력을 갈고 닦았 더니,오히려 더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모르겠다.

저들 모두를 받아줄 수 있으면서 왜 자신은 받아줄 수 없는지.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저 애틋한 시선을 나도 나눠 받을 수 있지猌

상념에 빠진 사이, 모두가하나둘씩 점심을 먹으러 떠나고 있다.

신예화는 반쯤 죽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가장 먼저 떠나갔을 거라 생각한 백우진이 남아 있다.

그것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녀는 용기내어 다가갔다.

그리고 함께 밥 먹는 것을 허락받았다.

“우울하니까 맛있는 거먹자!”

그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더니 학관 내 가장 좋은 객잔으로 가 온갖 진미들을 시켰다.

그녀는 일부러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듯 먹었다.

‘이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어.’

그와 마주앉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더욱 길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저 먹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행복으로 배 가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기 에.

“뭐 하고 있어? 팍팍 먹어 야지.아니면 뭐, 다른거 시켜줘 ?”

“아, 아니야. 잘 먹고 있어!”

깨작깨작 먹는 자신을 보며 걱정하듯 말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감미 로워서.

문득,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멸망하여 온통 불바다가되어도, 백우진만 자신의 곁에 있어 준다 면 그래도 행복할 것 같다고.

“아우, 배불러.”

역시 별일이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집착 증세를 보인다고 해도 고작 밥 한 끼 먹는 사이에 이 상한 징후를 보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식사를 마친 백우진은 신예화와 헤어져 청룡각의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였다.

“백우진 생도님 !”

밑에서 누군가가 그를 부르며 헐레벌떡 올라왔다.

“여기, 백우진 생도님에게 온 서찰이에요.”

“아,감사합니다.”

서찰을 받아 든 백우진은 계단을 오르며 우측 아래에 적혀 있는 글자를 확 인했다.

백무혁.

“형이구나.”

오랜만에 형인 백무혁으로부터 온 서찰이었다.

사 년 차를 맞이해 실습을 위해 무림맹으로 파견나간 백무혁은 이따금 서 찰을 보내오곤 했다.

“오랜만에 오는것 같네.”

보통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씩은 왔던 서찰이, 굉장히 오랜만인 듯한느 낌이 들어 날짜를 세보니 오랜만인 게 맞았다.

“반년만인가?”

마지 막으로 도착한 서찰에 바빠져 서 한동안 서 찰을 보내 지 못할 수도 있 다고 적혀 있기는 했었는데, 설마 반년이나되었을 줄이야.

그는 제 방에 놓인 의 자에 앉아 서찰을 꺼 내어 펼쳐 보았다.

백무혁의 서찰은 대부분이 그러했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등.

처음엔 대부분 근황을 적어두고, 뒤에는 동생을 걱정하는 말을 남겨둔다.

지금도 비슷했다.

[내가 속한 현무단은 요녕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곳에 기이하게 생긴 마물을 봤다는 이 가 늘고 있어 이를 조사하기 위해 ….]

“응?”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던 백우진의 시야를 잡아끄는 한줄의 문장.

“기이한 마물?”

요녕.

마교가 웅크리고 있는 십만대산이 위치한 신강과 정반대에 위치한 지 역.

그 머나먼 곳에도 마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니.

“이 새끼들 정말 안 가는 데가 없구나?”

기이한 마물이라.

마물들은 원래 기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어 기이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놈 들인데, 그중에서도 기 이하다는 건 어떤 의 미 일까.

“궁금하네.”

백 우진은 으레 써 있는 자신을 향한 걱정 이 담긴 말들을 살짝 뛰 어넘 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자신이 열 살배기 어린애가 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좀 그랬다.

그렇게 마지막줄까지 서찰을 읽어 내려갔다.

[이번 조사가 끝나면 잠시 학관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늦어도 초가을쯤이 면 돌아갈 수 있을 테 니, 그때 보자꾸나.]

“••••••.”

마지막줄을 읽은그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가을…?”

백 우진 이 허 망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랗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금이 가을이잖아.”

그것도 초가을을 지나, 절정에 달한 상태.

묘한 불길함과 의 아함이 그의 등골을 간질였다.

백우진의 시선이 다시 서찰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전 대충 넘긴 자신에 대한 걱정어린 말들까지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너는 예전부터 더위에 약했는데 혹 더위를 먹지는 않을까 걱정이구나.]

그곳에 실마리가 있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 실마리 가.

“이건 지금도착해선 안되는건데.”

잘못된 것은 시기 였다.

이 서찰이 도착했어야 할 시간은 지금보다 전인,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 리고 있는 여름에 전해졌어야만 하는 서찰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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