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화 蓬 요녕에서
하오문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다.
문파를 이루는 구성원 대다수가소매치기, 기녀, 점소이와 같은 하류 인생 들이기에.
그들이 있는 이상, 하오문의 눈과귀 또한 멀지 않는 셈.
백우진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그들을 찾았고, 요녕 지부의 장을 맡고 있는 교서가 그를 맞이했다.
그가 권하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
.....
......
“미리 전해 들었겠지만, 몇 달 전 이곳에 조사를 나온 현무단의 정보가필 요해.”
다짜고짜 본론.
교서는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현재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정파의 떠오르는 신성, 옥면신룡 백우진.
그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는 눈앞에 있는 백 우진을 보았다.
욕 한번 시원하게 내 질러주고 싶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
정파에서는 독고천의 뒤를 잇는 신성이라고 일컫는데, 글쎄.
‘기생 끼고 술이나 퍼마실 줄 아는 기생오라비 같은데 ….’
발그레한 얼굴과 반쯤 풀린 눈동자, 결정적으로 몸에서 풀풀 풍기는 술 냄 새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 다였다.
별 안간 분노가 솟구쳤다.
‘젠장, 내가왜 이런고민을….’
사흘 전, 복면을 쓴 이들이 이곳에 들이닥쳤다.
요녕 지부에 속한문도들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이 심처에.
그들의 실력은 눈부셨다.
이곳을 지키던 호위들을 눈 깜빡할 사이에 때려눕히더니 자신의 목에 칼 을들이 밀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하나.
며칠 뒤 찾아올 백우진에게 자신들이 건네준 거짓 정보를 전달하라는 것.
일단 살고 봐야 했기에 알겠다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고민할 수밖 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 최 근 하오문은 백우진을 최 우수 고객으로 보고 있었기 에 .
그가 원하는 것은 일단 문내 기 밀 사항만 아니 라면 뭐 든 내 어주라는 보고 가 있었다.
‘어쩌지? 어떡하지?’
그의 비루한 눈으로는 백우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불가능했다.
반대로 복면을 쓴 이들의 실력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긴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내 렸다.
“말씀하신 정보, 여기 있습니다요.”
그는 두툼한 종이 뭉치를 그에 게 건넸다.
이는 자신이 모은 정보가 아닌, 복면인들이 건네준 정보들이었다.
공손하게 내밀어진 종이 뭉치를손에 쥔 백우진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는 뜨끔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써 웃어 보였 다.
그러자 그는 시선을 거두어 종이 뭉치를 사라락 넘겨 보았다.
‘드,들키진 않겠지.’
그들이 건네준 정보는 교서 또한 읽어 보았다.
아예 허황된 정보는 아니었다.
다만 일부분이 교묘한 거 짓으로 덧씌워 져 있을 뿐.
‘당장 알아차릴 순 없을거야.’
원래 정보를 알고 있는 자신마저 두 정보를 동시에 놓고 비교해야만그 차 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교묘했다.
그러니 대충 종이 몇 장 넘겨 본다고 이를 알아차릴 순 없을 터.
‘놈이 돌아가면 일단 튀자.’
영 아닌 것처럼 보이지 만, 자신보단 윗줄의 고수임 에 분명한 백우진.
칼질 한 번에 이곳의 모든 이들을 제압했던 복면인.
‘둘다 싫다!’
그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이곳을 뜨리라.
무미 건조한 눈으로 정보를 훑어 내 려 가던 백 우진 이 어느 시 점 에 서 손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그는제 품에 종이 뭉치를 갈무리한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는 잘쓸게. 대금은 나중에 치를 테니, 달아두고.”
“예! 살펴가십시오!”
느릿한 걸음으로 심처를 빠져나가는 백우진.
웃는 얼굴로 배웅하는 교서.
잠시 시간이 지나고, 백우진을 멀리서 지켜보기 위해 매복시켜 두었던 부 하가 돌아왔다.
“갔습니다.”
기 다리 던 말이 들려오기 가 무섭 게 , 그는 미 리 싸둔 짐을 챙 겼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당장이곳을 뜬다!”
“예!”
그를 지키는 부하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따랐다.
요녕은 그들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길을 통해 요녕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며칠 전, 그들을 제압했던 복면인이 기다렸다는듯그들의 앞을 가로막았 기 때문.
“이상하군. 분명 일 처리는 똑바로 한 것 같은데, 왜 도망치는 거지?”
교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을 느꼈다.
의 아함이 섞인 그의 말투에서 씻어낼 수 없는 진한 살기가 느껴졌기 에.
그는 곧장 부하들과 함께 땅바닥에 몸을 넙죽 엎드리 며 복면 인을 향해 싹 싹빌기 시작했다.
“아이고! 말씀하신 대로 일은 다 처리했습니다요! 저희는 그저 백우진 그 놈에게 보복당할까 두려운 것뿐이니 제발 저희를 이대로 보내주십시오!”
“아,그런 거였나. 확실히 그렇군.”
예상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 잠시 오해했군. 어서들 지나가시게.”
그가 순순히 납득하며 길을 터주는 게 아닌가.
교서를 필두로 부하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그럼 부디 하시는 일 잘되시기를빌겠습니다요!”
“고맙네.”
덕담까지 나누고서 하나둘씩 그의 곁을 지나쳐갔다.
그때였다.
교서가 자신보다 앞서 걸어가복면인의 곁을 지나친 부하의 몸이 조각조 각이 나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본 것은.
“아, 아니, 이, 이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를 보지 못하고 복면인을 지나쳐간 부하들의 신형이 전부 토막이 났다.
떨리는 눈빛으로 복면인을 바라보는 교서.
“뭐 하나, 지나가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와 부하들을 모조리 도륙내고 돌아가는 동안 아무것도 보이 지도, 들리 지도 않았다.
복면인이라는 사선(死線)을 넘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부하들의 시체에서 짙은 혈향이 풍겼다.
“우, 우웨에에엑!”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 며 오늘 먹은 것들을 모두 토해낸 그의 앞으로 복 면인이 다가왔다.
검은 가죽 신발과 번뜩이는 붉은빛 섬광.
그것이 교서가 이승에서 본 마지막 물건이었다.
…
하오문에서 정보를 받고 돌아온 백우진은 곧장 침상에 누워 그들에게서 받은 정보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대단한건 없네.”
뭉치가제법 두꺼워 무언가 건질 만한게 많을 거라생각했지만, 착각이었 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도시에 들어선 현무단의 행적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머물렀고, 언제 어디에 들렀고, 또 언제 도시를 빠져나갔 는지 등.
정작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그들이 도시 밖으로 나가 어디로 향했고, 무엇을 보고 왔는지에 대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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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대해선안 됐던 건가.”
하오문의 대 다수를 이루는 문도들을 생 각하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아침으로 뭘 먹었고, 점심으로 무엇을 싸갔는지,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으며 시간을 보내기를 몇 시진.
어느덧 동이 틀 때가되었다.
“이제 아침이네.”
하루를 무사히 넘 겼다는 안도감이 느껴 졌다.
큰 습격은 없을 거라 단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미친놈들이 적일 땐 더 조심해야지.’
놈들은 마교.
미치 기로 따지면 인간을 배반하고 마왕에 충성하는 인간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놈들.
대규모 습격은 무리일지 모르나, 객잔에 숨어드는 것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단생각이 들어 밤을 지새웠다.
조금 헛고생 한 느낌 이 지 만, 조원들이 편히 쉬 었을 테 니 그거면 충분했다.
“몸이나 좀 풀까.”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정보를 읽어 내려갔더니 온몸이 찌뿌듯했다.
그는 검을 허리춤에 차고 객잔 뒤편에 있는 작은 공터로 향했다.
“딱 좋네.”
그리 크지는 않지 만, 혼자서 적 당히 몸을 풀기 에는 딱 좋을 만한 크기 .
백우진은 느릿한 동작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뽑혀 나온 검에서 시퍼 런 예 기 가 줄줄 흐른다.
“어허.”
그가 작게 호통을 치 자, 검에 서 흐르던 예 기 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무리 봐도 그건데, 이거….”
그는 머릿속에 하나의 검을 떠올렸다.
성검 (聖劍).
검의 형태는 매우 다르지 만, 느낌 이 무척 이 나 비슷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듯 손에 착 감기고 검집에서 뽑혀 나오면 고 장난 수도꼭지 마냥 예기를 줄줄 흘리는 게 꼭 성검과 비슷했다.
“비슷한거겠지.”
매번 같은 느낌을 받고, 같은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어차피 이곳이나,판타지 세상이나.
같은 놈이 써 내 려 간 소설 속 세 상에 , 비슷한 역할 아닌 가.
“그럼 검도 비슷한 거 대충 가져다 쓴 거겠지, 뭐.”
놈의 필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같은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또하나 있었다.
“얘는 말도 못하는것 같고.”
성검은 말을 할 줄 알았다.
판타지 세계 하면 떠올리곤 하는, 에고 소드.
검을 뽑아서 휘두를 때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오죽하면 예비용 검을 하 나 더 구해서 약한 놈들은 그걸로 잡을 정도였다.
“검은 역시이 정도가 딱이지.”
어찌 보면 열화판이라 할수 있지만, 백우진은 마음에 들었다.
손에 잘 맞고, 원하는 건 뭐든 벨 수 있고.
검이란 자고로 그 정도면 되는 법이니.
뽑았던 검을 다시 집어넣는 백우진.
거창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몸을 풀어주는 선에서 끝낼 요령으로 몸을 풀고 있을 즈음이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객잔주의 딸 홍연이 뒷마당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똑 부러지는 아이다.
고작 열 살 정도밖에 안 되 어 보이는데 호객행위를 하고, 아버지를 돕는 걸보면.
“일찍 눈이 뜨여서 말이다.”
“헤헤…, 그러시구나.”
홍연은 헤실헤실 웃으며 백우진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았 다.
“잠깐 있어도 돼요?”
“그래.”
무공을 수련하는 것도 아니고 몸을 푸는 정도니, 곁에 있어도 상관없겠지 .
백우진은 최대한 온몸이 풀리도록 몸 곳곳을 자극했다.
가볍게 뛰기도 하고, 팔을 벌리기도 하고, 무릎을 굽혔다 펴기도 하고.
이를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홍연이 읊조렸다.
“다른 무사님들은 그렇게 몸 안 푸시던데 ….”
백우진은 살포시 웃었다.
그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 금 백 우진이 하고 있는 것은 이곳에 선 알려 지 지 않았으니 까.
“이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오라버니만 알고 있는 방법이 야.”
“와…, 엄청 좋은 건가봐요!”
“좋은거? 좋은 거라.”
사실 좋은 것까진 모르겠다.
그냥 몸에 익었기에, 또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게 만 들어주기에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
“그냥 몸 적 당히 푸는 데 에 는 괜찮은 방법 이 지.”
“그럼 혹시 …, 저도 배울 수 있어요?”
초롱초롱한 눈빛이 이쪽을 향한다.
저 눈을 보고서 안 된다고 어찌 말하랴.
백 우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 를 끄덕 였다.
“그래, 가르쳐주마.”
어 린아이 가 따라 하면 건강 유지하는 데 에는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겠지 .
홍연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백우진.
쪼르르 달려온 아이를 앞에 두고 조금 전 선보였던 체조를 한 동작, 한 동 작씩 끊어서 보여주고 그대로 따라 하게 했다.
“이렇게 하는거 맞아요?”
“그래. 아주 잘하고 있다.”
몸을 쓰는 데에 제법 소질이 있는 건지, 처음 하는 건데도 몇 번 해본 것처 럼 곧잘 따라 하는 홍연을 보며 아빠 미소를 짓는 백우진.
모든 동작의 전수가 끝나고, 홍연이 물었다.
“근데 이건 뭐라고불러요?”
백우진은 가볍게 웃는 얼굴로 답했다.
“국민체조.”
“헤에, 국민체조….”
홍연도 백우진을 따라 미소 지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