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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82화 (182/215)

<182 화〉초원

안 그래도 역겨움을 참고 있었다.

남의 피와 땀이 묻은 술을 마시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었 건만.

기어이 놈이 선을 넘고야 말았다.

백우진은 허리 뒤편에 둘러놓은 호리병을 풀어 맑고 깨끗한 술을 들이켰 다.

꿀꺽꿀꺽!

“푸하아! 이제야살겠네.”

오물로 가득 차 있던 위장이 조금은 정화되는 기분이다.

그 사이,내 침상 위로 떨 어져 틀어박혀 있던 바르탄이 얼떨 떨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족히 팔 척은 넘을 거구가 거칠게 몸을 흔들자 가라앉고 있던 흙먼지가 다 시 거세게 피어오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구먼.”

난데없이 험한꼴을 당한것치곤제법 음성이 차분했다.

사람이 극도로분노하면 도리어 차가워진다고 하더니, 그런 상황인 걸까.

아니면 나름대로 이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우진아!”

여 인의 청 아한 음성과 함께 움막 입구가 썩둑 잘려 나갔다.

모습을 드러 낸 이 는 월 도를 꼬나쥔 채 전투 의 지 를 활활 불태 우고 있는 신 예화였다.

그녀를 본 백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쟤 왜 저래.’

신예화의 상태가 이상했다.

바르탄을 향해 어 마어 마한 살의 를 뿜어 내고 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기 위해 자세 또한 낮추고 발끝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다.

마치 기회가왔다는듯이,아주진하게.

그것이 매우 기괴하게 보였다.

어딘가 비틀리고, 뒤틀린, 맹목적인 이상에 사로잡힌 광인(狂人)의 모습 같았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백우진이 손을 뻗어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예화, 힘 풀어.”

“어,어, 어어…?”

백우진의 낮은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스며들자,그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온몸을 꽉 조이고 있던 힘을 풀어냈다.

그와동시에 입가에 그려져 있던 뒤틀린 미소도, 전신에서 들끓던 투기도 모두 가라앉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약간 흐릿해 지 긴 했지 만, 그가 알고 있던 신예화의 모습이 었다.

그녀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했 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신예화의 뒤로 다른조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무슨일이야?!”

“배,백공자! 괜찮아요…?”

움막 한가운데에 굳건히 서 있는 백우진의 모습을 확인한 조원들의 표정 이 한층 편안해졌다.

백우진은 겸연쩍게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내 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는데,이거 영 쉽지 가 않더 라고.”

당선영은 움막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폈다.

납치된 게 분명해 보이는 여인들과 흙먼지를 잔뜩 뒤 집어쓰고 있는 바르 탄.

어찌 된 영문인지 굳이 듣지 않아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잘했네.”

칭 찬할 만한 일이 었다.

만약 제 목적을 위해 그들이 어찌 되든 나몰라라 했다면 오히려 크게 실 망했을 터.

“그럼, 평화적으로 해결하긴 글렀단 거네?”

그녀의 말에 백우진이 고개를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그렇지.”

당선영이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주변 정리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나오도록해.”

그녀 가 바라보는 곳에는 뒤 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병 장기를 꼬나쥐 고 있 는 부족의 전사들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새 양손에 암기를 빼곡하게 쥔 그녀가 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전부 제압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던 조원들의 기세가 단숨에 부풀어 올랐다.

보다 편한 움직 임을 위 해 가슴을 압박하고 있던 붕대 마저 모두 끊어 냈다.

그러자 억눌려 있던 그녀들의 굴곡이 되살아났고, 이를 본 바르탄의 얼굴 에 화색이 돌기 시 작했다.

“호오, 매우 아름다운 여인들이로고.”

그 순간.

쐐액-

그의 얼굴 옆으로 비도 하나가 쏜살같이 지 나가 두꺼 운 움막에 틀어 박혔 다.

창졸간에 비 도를 날린 이는 당선 영 이 었다.

그녀는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냉혹한 시선으로 그를 향해 경 고를 남겼다.

“한번만 더 그런 식으로 쳐다봤다간, 다신 앞을 못보게 될 거야.”

몸에 도는 피마저 얼어붙을 것만 같은 싸늘한 경고.

그녀의 주변에 있던 여인들 또한 이에 동의하듯 눈에 살기를 품고 있었다.

“허,허허.”

오싹했다.

처음이었다.

여인에게서 이토록 위압감을 느낀 것은.

“으흐흐흐하하하하하아하핫 !”

하늘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거센 웃음을토해낸 그의 눈에 담긴 것은 형 언할 수 없을 만큼의 짙은 탐욕이 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 야.,,

바르탄이 또 여인들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 할때, 백우진이 이를 막아섰다.

제 말이 끊긴 바르탄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백우진이 말을 이었다.

“남의 여 자 눈독 들이 는 거 아니 야. 그러 다 벌 받아요.”

타이르는 듯한 말투에 바르탄의 기세 가 더욱 흉흉해졌다.

“그럼 네놈을죽이면 주인 없는물건이 되겠구나.”

그가 거칠게 손을 뻗었다.

무기 거치대를부수며 손에 쥔 것은 그의 체구에 어울리는 거대한 도끼였 다.

저것으로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완벽하게 손질된 도끼날에서 짙 은 혈향이 뿜어져 나와 저도 모르게 코를 막고 싶을 정도.

바르탄의 입 가에 흉흉한 미소가 깃들었다.

“네놈을 두 동강 내고 저년들을 전리품으로 취하마, 흐흐!”

기다란 자루를 양손으로 쥔 바르탄이 가둬두었던 기세를 개방했다.

억눌려 있던 기운들이 일시에 터져 나와움막을 가득 메웠다.

“으.으아아…!”

가만히 서서 그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자갈타이는 그대로 주저앉 아 바지에 실금까지 하고 말았다.

끝을 모르고 부푸는 기운을 느낀 백우진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그가 생 각 이 상으로 강해 보여 서 猌 아니 다.

녀석의 주변으로 흐르는 기운 중에 익숙한 더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놈이 지닌 내력에 비하면 극소량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운 자체 를 배로 부풀리며 사납게 날뛰는 기운은 분명 그가 찾고 있던 마기 였다.

“죽어라아아아—!”

하늘을 뚫고 선계에 닿을 듯 웅혼한 함성과 함께 도끼가 내리쳐졌다.

쿠와아아!

심상치 않은 소리로 바람을 가르며 짓쳐드는 도끼날.

허나 백우진은 눈 하나 껌뻑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며 녀석의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크윽?!

한쪽 팔을 뻗어 도끼의 자루 부분을 붙잡고, 다른 한쪽 팔을 뻗어 바르탄 의 목을 움켜쥐 었다.

한 손으로 잡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두께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 목을 붙잡은 채 노려보는 백우진을 보며, 바르탄은 차갑게 웃었다.

“흐흐, 네놈의 애송이 같은 완력으로 내 목을 분지를 수나 있을 것 같으냐.

솥뚜껑 만 한 손이 그의 어 깨를 붙잡았다.

안으로 파고드는 속도는 놀라웠 지 만, 그뿐이 었다.

몸을 맞대고 선 영역은 근력의 영역.

제법 근육질이긴 하나, 자신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인 놈에게 자신의 근력 이 밀릴 리가.

“크윽?!

밀릴 리가 없어야하건만.

내공과 외공, 이중으로 보호받고 있는 목이 서서히 조여들었다.

극렬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당황 섞 인 눈으로 백 우진을 보았다.

전투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히죽거리는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다.

“힘도내가 이길 것같은데.”

.........

........

실전 압축 근육이 라고, 들어는 봤나 모르겠네.

두꺼운 목의 앞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손가락이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바르탄은 당장에 라도 숨이 멎어버릴 듯한 답답함과 고통을 동 시에 느껴 야만 했다.

“이,이놈…, 이이…!”

서서히 느껴졌다.

자신에게는 절대 가까워진 적 없던 죽음이란 것이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 오고 있음을.

그는 이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놔,놔라, 이 빌어먹을…!”

안간힘 을 써 가며 주먹을 휘 둘러 보았지 만, 놈은 얄밉 게 도 목을 꽉 붙잡은 상태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백우진의 싸늘한 시선이 그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잠깐자고 있어라.”

꽈득!

순식간에 목으로부터 가해진 압력이 그의 정신을 아득하니 먼 곳으로 떠 나보냈다.

“끄르르믉….”

거구 바르탄은 게 거품을 물며 그대로 쓰러졌다.

쿠웅!

잡고 있던 목을 놓자 거대한 체구가 땅을 울리며 바닥에 널부러진다.

백우진은 녀석을 그대로 붙잡아 한창 격렬한 전투 중인 곳 한가운데에 냅 다던져버렸다.

부족 전사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드리워지고, 이내 바르탄의 체구가 미 리 알아차리 지 못한 전사를 깔아뭉갰다.

“조,족장님?”

전사들 몇을 깔아뭉갠 채 게거품을 물고 널부러져 있는 족장의 모습을 본 전사들의 기세가 실시 간으로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잘려 나간 움막에서 걸어 나온 백우진이 전사들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말 아 올리며 읊조렸다.

“투항, 해야겠지?”

쨍그랑!

전사들이 쥐고 있던 무기를 땅바닥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격렬하리라 예상했던 전투는 생각보다 시시하게 막을 내렸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곳곳에 설치해둔 횃불 아래.

신예화는 아무도 없는 구석진 자리의 횃불 앞에 월도를 끌어안은 채 주저 앉았다.

요 며칠 사이 이상했다.

영문을 알수 없는 충동이 삽시간에 번져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두 번인가, 세 번인가.

한 번은 제 충동에 따랐고, 또 한 번은 따르려 다가 가로막혔다.

가로막은 것은 백 우진의 목소리 였다.

충동에 사로잡히 면 술에 잔뜩 취한 듯한 느낌 이 된 다.

몽롱하고, 기분이 좋아서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방해받고 싶지도 은느낌.

그런 와중에 백우진의 목소리만큼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다.

작게 읊조린 힘 풀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움직임을 멈춰 섰으니.

“기분 좋아….”

그녀의 입가에 봄처럼 화사한 미소가번졌다.

그의 말을 듣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명령을 듣고, 그를 따르면 잠시나마그의 것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에.

한편으론 아쉬웠다.

그가자신을 멈춰 세우지 않았더라면.

바르탄인가 뭔가 하는, 제 소중한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는 놈을 부수기 위해 달려갔더라면.

“음…, 헤헤, 졌을것 같은데.”

해맑게 웃으며 냉정하게 결과를 가르는신예화.

상대는 강했다.

온몸이 저릿저 릿할 정도로 거대한 기운을 뿜어냈으니 .

아마 초절정에 이른 고수가 아니 었을까 싶다.

만약 백우진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은그가쥔 도끼에 두 동강이 났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일까?

그런 결말도 나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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