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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87화 (187/215)

<187 화〉선택

시비 한 명이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모용진천이 이를 권했다.

“마음에 안정을주는차일세.내키지 않겠지만,조금이라도들게.”

“•••잘 마시겠습니다.”

진한녹빛의 차를 입에 머금는다.

머금기 좋은 따뜻함과 구수한 맛과 향이 입과 코를 가득 메운다.

그러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불안하고, 분노하고.

하염 없이 불안정 한 상태 였다.

입이 쓰다.

그는 더 이상 차를 머금지 못하고 찻잔을 내 려놓았다.

“이제 말씀해주십시오.”

그저 듣고 싶을 뿐이 다.

안전하기로 따지면 관아보다 더 뛰어난 곳에서 바르탄이 어떻게 죽었는 지.

침통한 표정으로 찻잔을 쥐고 있던 모용진천이 입을 열었다.

“어젯밤자객이 들이닥쳤네.”

복면인을 쓴 자객들이 세가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닥쳤단다.

곳곳에 서 일어난 소요를 해 결하기 위 해 세 가의 무사들 또한 나뉘 어 야 했 고, 바르탄을 가둬놓은 감옥은 상대적으로 방비가 약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곳에 들이닥친 자객들은눈속임에 불과했네.”

그의 음성으로부터 잔잔한떨림이 느껴졌다.

이는 감내하기 힘든 분노로 인한 치욕 때문이 었다.

중원의 끝자락.

요녕에 자리를 잡는 문파나 세 가는 매우 적은 편이다.

그것은 정사 양쪽 마찬가지 .

“모용세가의 무사들은 이민족들의 잦은 약탈로 인해 싸움에는 능했으나, 기습에 대처하는 방식은 한없이 서툴렀어.”

우왕좌왕.

세 가를 습격해온 자객을 상대하는 무사들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한평생 이 민족들과 싸우며 무력 자체로는 그 어 떤 세 가와 견주어도 부족 하지 않을 수준이 라고 자부하는 그들이 었지 만, 그것을 제외 한 다른 부분들 이 전부 모자랐다.

기습에 대처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요녕은 그들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

이 민족을 제외 하면 천하의 모용세 가를 건드릴 간 큰 곳은 이 요녕에 존재 하지 않았다.

이는 모용진천 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 었기에 , 더욱 뼈 아팠다.

“정 말미 안하네:

그는 까마득한 후배를 향해 고개까지 숙여가며 사과를 건넸다.

여전히 화나고, 짜증이 치솟는다.

고생해서 겨우 얻은 단서가 허망하게 손아귀에 난 작은 틈새로 빠져나가 고말았다.

“후우….”

끓어오르는 분노와 짜증을 억지로 삼킨다.

그에게 화를 낸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

더 군다나 모용세 가에 다 놈을 맡긴 것은 어 디 까지 나 자신이 었다.

고작 꺼 림칙하단 이 유만으로 객 잔으로 돌아가 잘 게 아니 라, 세 가에 서 머 물러야 했는데.

이는 명백히 자신의 실책.

일이 이 렇게 된 데에는 자신 또한 한 몫 거든 셈 이 었다.

“흉수는 밝혀졌습니까?”

그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네. 죽은 자객의 시체를 샅샅이 살폈으나,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게 조금도 남아있지 않더군.”

백우진은 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하오문 지부에서부터 으슥한 산속까지 자신을 유인해냈던 복면을 쓴 자 객들.

그들 또한 그러했다.

그들을 이끌었던 두목의 시체에는 그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았더랬다.

“바르탄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독살이 었네. 어찌나 독한지 내장 전체 가 녹아 있었어.”

“그렇습니까….”

백우진은 고개를 떨궜다.

지난 며칠간의 고생이 전부 무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니.

‘그보다 더 최악인가.’

그때는 적어도 하오문에서 정보를 살 수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해졌으니.

요녕 전체의 하오문도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오문의 단점이자, 장점.’

여전히 일선에서 정보를 모으는 이들은 넘쳐났지만, 그것들로부터 값이 될 만한 정보를 뽑아낼 머리 가 죽어버렸다.

이는 지부를 통솔하는 지부장만 꽁꽁 숨어 있으면 끝없이 활동이 가능하 단 장점 이 되 기도 했지 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 선 반대로 단점 이 되 기도 했다.

‘하오문은 당분간 마비 상태라고 봐야겠지.’

한동안 그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놈들은 여러모로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그곳에서 하오문도가 떼죽음을 맞이한 것은 분명한 사실.

놈들이 도망친 것은 어 떤 식으로든 자신과 연관이 있으리 라고, 그는 확신 했다.

그들이 자신에 게 수작질을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유일했다.

‘만약 나한테 거짓 정보를 판 거라면….’

하오문 내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본단.

그는 그곳의 위치를 알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찾아가자.’

그곳을 찾아가 제대로 된 깽판을 쳐줄 테다.

그리하여 놈들의 기둥 하나쯤 뿌리 뽑힐 정도로 신명나게 털어먹어야지 .

“세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모든 것들을 지원토록 하겠네. 원하는 게 있다 면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말하게.”

“그 지원,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오문을 잃고 모용세 가의 적극적 인 지 지라.

아무래도 완전히 무로 돌아가진 않은 듯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가보겠습니다.”

“그러시게.필요한게 있다면 언제든찾아오고.”

“예,그럼.”

가주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백우진.

조원들이 머물고 있는 객당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아,이젠어디서 단서를 찾나.”

난감하기 짝이 없다.

“•••아예 없는건아니네.”

있다.

단서가 있을 만한 곳.

지금으로선 그곳이 가장 유일하고 또 유력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곳이 생환을 장담할수 없는 사지 중에서도 사지라는 것.

“하무르 칸.”

이민족들의 초원.

그중에 서도 최 근 가장 공격 적으로 세 력을 넓혀 가며 스스로를 칸으로 칭하기 시작한 지도자.

마기를 사용했던 바르탄을 수하로 둔 인물.

그라면, 현무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그곳에 현무단이 붙잡혀 있을지도모르지.”

놈들이 직접적으로 마교와 손을 잡은 부족이라면 현무단 또한 그곳에 있 을 터.

어 느덧 객 당에 다다른 백 우진 이 음울한 목소리 로 외 쳤다.

“집에 가자.”

그의 말한마디에 당선영이 가장 먼저 문을 박차고 나왔다.

“괜찮니…?”

그들에게도 정보가 전해진 모양인지, 한껏 걱정하는 얼굴들로 백우진을 바라보는 조원들.

애써 웃는 얼굴로 그들의 걱정을 불식시켜주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독에 시달려 잔뜩 피로가 쌓인 몸뚱어리, 활화산처럼 들끓는 감정의 구렁 텅이.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만족할 만큼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을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다.

그들을 안심시키지 못하는 미소 따위, 지어봤자 아무런 의미 없을 테지.

“이제…, 어떡할 거야?”

신 예 화가 그의 눈치 를 살펴 가며 조심 스레 물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 한 곳, 단서를 얻을 만한 곳이 있어.”

그의 대답에 제갈연지는 골똘히 생각하다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 었다.

“혹시 …, 하무르 칸이라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백우진은 입 가를 끌어 올리며 그녀에 게 대 답했다.

“정답.”

그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실력은 크게 성장했으나, 담대함만큼은 여전히 벤댕이보다 못한 구왕수 가손을들었다.

“거,거기 엄청 큰부족이라며….”

“그래. 엄청 큰 정도가 아니라 대부족을 몇 개나 흡수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부족이란다.”

“히익…!”

질겁하는 구왕수.

그런 그의 모습에 백우진은 실소를 머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혼자 가려 했으나, 그것이 자신이 택할수 있는 방법 중 가장최악의 선택임을 깨달았다.

‘조원들도충분히 성장했어.’

혹독한 훈련으로 그들은 성 장했다.

예전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

비 밀로 할 시 간은 지 났다.

이제 모든 걸 들려주고, 보여준뒤 그들이 선택하게 해야할때다.

“놈들과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 방법도 생각 안 해봤고, 십중팔구 목숨이 위태로울 거야.”

무언가를 보태거나 빼지 않고 사실만을 담백하게 입에 담는다.

한 번도 그들에게 보인 적 없던 무덤덤한 말투와 태도에 그들의 안색이 한 층 더 흐려졌다.

그가 내뱉는 죽음이 라는 말은 유독 그러했다.

그 누가 내뱉을 때보다 어둡고, 무겁고, 차갑고, 내면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조별 과제랍시고모두 함께 왔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내 일이다.”

그들은 어디까지 나 도움을 주는 입장.

“이 앞은 고작 학관에서 묶어낸 가벼운 의리 따위로 행할 수 있는 일의 수 준을 넘어섰어.”

백우진은 그들을 아주 먼 미래까지 생 각하고 뽑았지 만, 그들은 아니 었다.

이들은그저 성공하기 위해, 중원에서 제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정무학관 에 입관했고, 어쩌다 신룡조에 속하게 되었을 뿐.

“난 내 일 다시 초원으로 떠 날 예정이 다.”

지 체하고 있을 시 간 따위는 없다.

지금도 마음이 사정없이 요동친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것은과연 백무혁을 생각하는 ‘백우진’의 잔존 사념일지, 아니면 자신이 걱정하는 건지.

이 를 알아내 기 위 해서 라도 자신은 그를 한시 바삐 구해 야만 한다.

“너희는 이만학관으로 복귀해. 이 이상 이곳에 머물렀다간 더 큰 일에 휘 말릴 수도 있어.

당선영, 제갈연지, 신예화등.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백우진은 이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시원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난 너희가 내 앞에서 죽지 않았으면 해.”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다들 객잔으로 복귀해. 그리고 오늘 내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내일 오전 에바로 떠나.”

오직 나를 위해서.

더 이상제 마음에 더없이 무거운돌이 쌓이지 않도록.

“일 마치고 최대한빨리 돌아갈 테니, 학관에 돌아가면 농땡이 피우지 말 고 수련이라도 하고들 있어.”

조장으로서 남기는 명령을 마지막으로 백우진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곳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는 하나의 통보였다.

조원 중에는 그와 남녀 관계로 엮인 이들도 있었기에, 선택지를 주어선 안 됐다.

그랬다간 그들은 제 의지가 아니라 그저 관성적으로 따르려 할지도 모른 다.

보다 공정한 선택을 위해선 통보를 남기고, 그들이 이를 거역할지 따를지 를 보아야겠지.

|  |....

!.

...

과연 그들은 순순히 돌아갈까, 아니 면 이곳에 남아 자신과 함께하려 할까.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앞서 말했듯, 그들이 자신의 앞에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

그런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을 따라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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