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192화 (192/215)

<192 화〉홍성

“오랜만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내는 모르는 척 시치 미를 잡아뗐으나, 백우진은 어림 없다는 듯 콧방귀 를 뀌었다.

“시험하고 싶었어? 내가 널 알아볼 수 있을지, 없을지.”

백우진이 그리 말하자, 사내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대체 무슨 말을하는…!”

허나, 그의 말은온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사내를 향해 검지를곧게 편 백우진의 다음 말이 그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 었기에.

“너,진미연이잖아.

!”

틀림없다.

사내의 탈을 뒤 집어쓰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진미연, 그녀였다.

백우진의 시선이 그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향낭으로 향했다.

“고작그런 거 하나로, 네 썩은 냄새가숨겨질 거라 생각했어?”

어쩌나.

“너는그보다큰 향낭을 수십 개 몸뚱어리에 차고 다녀도 안될 텐데.”

그녀에게서 나는 악취는 지금껏 제 손에 묻혀온 무고한 피로부터 시작된 것.

수백 , 수천을 살해 한 몸뚱어리 에서 나는 악취 가 고작 향낭 따위 에 묻힐 리 가 없잖은가.

“하.”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내, 진미연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한숨임과 동시 에 탄식 이 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그저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여겼건만, 그가 자신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 이사뭇놀라웠다.

진미 연은 제 몸에 다 코를 박고 킁킁거 리 며 냄 새 를 맡았다.

제법 오랫동안 차고 다닌 향낭 덕분에 향긋한 내음밖에 올라오지 않는데.

“대체 내게서 무슨 악취가난다는 거지…?”

의문을 내비침과 동시에 그녀의 피부가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  |..

!...

...

이윽고 드러난 것은 당가에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새삼실감이 났다.

죽었어야 할 그녀가눈앞에 버젓이 살아있다는것이.

“놀랍네. 넌 분명 진즉에 죽었을 텐데.”

백우진은 당선영에게 그녀의 최후를 맡겼다.

수십 년을 농락당해온 삶이 조금이 나마 후련할 수 있도록.

분명 심장을 몇 번이나 꿰뚫고, 숨이 끊어졌음을 확인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녀가 살아있는 것일까.

그때의 상황을 떠올린 그녀가 짙은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아하핫… ! 당선영 그 계집애는 내 가 죽은 줄 알았겠지.”

날카로운 암기가 하나도 아니도 세 개나 심장을 파고들었을 때.

그때 그녀의 심장은 망가졌다.

“나도 그땐 그랬단다.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지.”

그러나그녀는죽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을 확신한 당선영이 멀어졌을 때, 다시 깨어나 멈춰 있던 숨을 토해냈다.

거친 숨을 토해내던 그녀는 흉흉하게 뚫린 제 심장을 더듬었다.

날카로운 암기로 인해 난구멍들이 검은 장막에 의해 모두 메꿔져 있었다.

“자,보렴.

진미연은 상의를들어 올려 제 가슴을 드러냈다.

풍만한 가슴 대 신 자리 한 것은, 검은색 으로 번들거 리는 단단한 흉골과 심 장이었다.

이를본 백우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검은 심장이 거세게 뛸 때마다 마기가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너…, 인간이기를 포기했구나.”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 라 부를 수 없는 존재 였다.

진미연은 더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를 수긍했다.

“그래, 난마인이 됐어.”

그녀에게 있어 마인에 대한 연구는 삶 전체를 바쳐서라도 이루어내야 할 과업과도 같은 것.

그런 과업에 있어 그녀는 제 몸뚱어리 또한 아끼지 않았다.

진미연은 제 몸에 마기를 주입했다.

당선영의 몸에 미약을 밀어 넣었던 것처럼, 수년에 걸쳐 극소량의 마기를 몸에 쌓아 아주 서서히 잠식되도록 만들었다.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맛보았다.

그녀는 급격한 신체적 변화도 겪지 않고, 평범한 여인의 몸으론 절대로 낼 수 없는 괴력을 손에 넣게 되 었다.

한 번 맛본 달콤한 과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백우진에게 실험실이 파괴되기 직전까지도, 제 몸에 마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죽음의 순간,그녀의 실험은 마침내 성공하게 되었 다.

죽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염원에 체내에 잠들어 있던 마기가 호응하여 죽 어가는 신체를 강제로 붙들었다.

깨어난 그녀는 사람의 탈을 쓴 무언가가 되 었다.

혈관을 흐르는 피, 심장, 뼈, 근육까지 온통 까맣게 변했다.

뼈는 강철보다 단단해졌고, 가죽은 짐승이 물어뜯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 을 정도로 질겨졌으며, 근육은 가볍게 손을 휘두르면 주변의 지형 자체를 바 꾸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아낼 수 있게 되 었다.

그뿐 아니라, 체내에 들끓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를 운용하면 제 신체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상적인 형태를하게 된 제 몸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문득 궁금해졌다.

정확하게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하면 지금과 같은 현상으로 마인을 양산할 수 있을지.

“그때부터 난 이곳에 몰래 처박혀 연구를 거듭했단다. 내가 겪은 마인화 를 어떻게 하면 이끌어낼 수 있을지,끝없는실험을하면서 말이야.”

마음 같아선 이상형에 가까운 마인의 모습을 한 자신을 내비치기 위해 마 교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공들여 빼 앗은 당가를 도로 빼 앗겼다.

그것은온전히 그녀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가 백우진의 신체를 탐내 지만 않았더 라면, 그때 곧장 목숨을 끊어 놓았더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지금 돌아가봤자 패배한 개 신세를 면치 못할 터.

그녀는 당당하게 제 주인 앞에 서고 싶었다.

그리 고 고하고 싶 었다.

당가는 잃었지 만, 그보다 중요한 것을 얻 었노라고.

“그런데 설마 여기서 모두를보게 될 줄은몰랐어.그분도, 너도말이야.”

“그분?”

백우진이 반문하자, 그녀는 더없이 짙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분. 곧 천하를 발아래 두실 나의 주인님.”

황홀경에 물들어가는 그녀의 표정을 본 백우진의 얼굴은 반대로 딱딱 하게 굳어갔다.

마교의 광신도들에게 주인이라불릴 자격을 가진 이는 세상천지에 딱 한 사람뿐.

천마(天魔).

천하제일인이자, 만마(萬魔)의 주인.

그녀의 말이 사실 이 라면 백 우진 이 쓰러뜨려 야 하는 최 후의 상대 가 이 곳 에 있다는 말이었다.

놀라운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영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전했다.

“우리와 같이 가자.그분께서 너를 데리고오라명하셨어.”

분명 백우진이 변장한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으 나,주된 목적은제 주인의 명을 따르기 위함이었다.

이를 들은 백우진은 크게 놀랐다.

하늘마저 굽어보는 그 천마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단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이 었다.

천마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들의 계획을 몇 번이나 깨부순 원수 아닌가.

당장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만나자니 .

“흐음….

골똘히 고민하던 백우진이 그녀에게 물었다.

“싫다면?”

그러자그대답을 기다리기 라도 했다는 듯, 그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네 뒤에 있는 형, 그리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을 도모하고 있 는 네 조원들.”

거기까지만들어도 물음에 대한 답으로는 충분했다.

“제안이 아니라 협박이었구만.”

“그래, 맞아.”

지금의 자신은 그런 걸 물을 처지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미다들켰겠지.’

백무혁의 말대로라면 이 판에 끼 어 있는 것은 이 민족과 마교뿐만이 아니 다.

‘그 빌어먹을 놈.’

뭐든지 도울 것처럼 얘기하며 나섰던 모용진천과모용세가.

정녕 그들 또한 저들과 한패라면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읽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

뒷맛이 더없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외통수에 너무자주 걸리는데….”

용사로서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그들의 꾀임에 너무나도쉽게 걸 려들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요녕에 왔을 때부터 감각이 자꾸만 삐걱거렸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발을 뺄 수 있을 상황이 있었을 텐데, 그걸 전부 놓 치고 질척거리는 진창에 두 발을 모두 빠트리고 말았다.

그렇게 자책하고 있을 때,뒤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무혁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절대 제안을 받아들여선 안된다, 우진아.”

뒤로 돌아선 백우진은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백무혁 을 보았다.

“함정일 게 뻔하지 않느냐. 천마가 이곳에 있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말조심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미연의 날카로운음성이 그의 말을 잘라냈 다.

“천마신교의 교인 중 그 누구도!”

거센 외침에 마기가 넘실거린다.

“주인님의 이름 앞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아.”

“큭…!

99

백무혁이 이를 악문 채 그녀를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닥쳐라, 이 악녀야!”

동생을 그리로 보내선 안 된다고, 머릿속이 경종을 울린다.

“천마라는 이름 하나로 네놈들의 말을 믿어줄 것 같으냐!”

“너,이…!”

그는 천마라는 이름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여인을 자극하여 목숨을 잃 을 작정이었다.

천마, 그 가공할 악마에게 동생을 보내고 사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게 낫다고 여겼다.

허나그의 걸음은 몇 걸음 채 떼기도 전에 백우진에 의해 가로막혔다.

“형,미안.”

동생의 음울한음성이 귀에 들려온순간.

“우,우진….”

채 말을끝마치지 못하고,그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내공을 금제 당한 백무혁의 수혈을 짚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 었다.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제 형을 어깨에 들쳐멘 백우진이 진미연을 노려보 며 말했다.

“잘난네 주인에 대고맹세해라. 내 주변 그 어떤 사람도 털끝하나손대지 않겠다고.”

어….

그런 그의 모습에 진미 연은 기 가 찼다.

얌전히 포로로 잡혀도 잘해줄까 말까인 상황에서 제멋대로 목소리를 드 높이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난 그녀의 걸음이 성큼성큼 백우진을 향해 다가갔다.

“네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나본데, 내가손수 가르쳐줄…!”

쐐廣滯

그녀의 분노가 채 터지기도 전에 새하얀 빛줄기가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 나갔다.

!”

붉게 달아오른 뺨에 한줄기 핏줄이 그어졌다.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단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음에도, 검을 휘두르는 그 어떤 동작도 보지 못했다.

“주인을 등에 업고호가호위할 생각 마라, 역겨운 년아.”

오히려 백우진이 먼저 분노를 터뜨렸다.

“네년에게서 나는 악취 때문에 코가 비뚤어질 것 같으니, 한 걸음만 더 다 가오면 그대로 목을 그어주마.”

진미연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팔을 들어 제 목을 더듬었다.

‘저자식, 진심이야.’

거짓이라곤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진실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

‘대체 왜,왜…!’

억울하고, 화났다.

자신은 분명 이상적 인 마인이 됨 으로써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었을 텐 데.

어찌 저 젊은사내의 말한마디조차쉽게 거역하지 못한단말인가!

‘빌어먹을 새끼…! 내가조금만더 완성되면 네놈부터 죽이고 말겠어.’

그래.

그녀는 이상적인 형태로 마인이 되었으나, 그 힘 또한 이상적인 것은 아니 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많은 성장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쉬 이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

그때가 온다면 가장 먼저 백우진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이리라 결심 하며 그녀는 지금의 굴욕을 감내하기로 했다.

“•••좋아, 천마의 이름 앞에 맹세할게. 네가순순히 따른다면 네 주변의 누 구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어.”

울분에 차 씹어뱉는 그녀의 맹세를 듣고서야 백우진은 살기를 거두며 검 을 도로 집어넣었다.

“앞장서. 따라갈 테니.”

마치 자신을 하인 부리듯 하는 그의 태도에 진미연은 고개를 돌렸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말로상대하면 절대 안되는부류의 인간임을 다 시금 깨달았다.

“ 따라와.”

애꿎은 땅을 거세게 밟으며 앞서 나가는그녀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발을 옮길 즈음.

콰아앙-!

지하 전체를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이곳의 바로위, 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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