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화〉비보
조원들은 백우진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자갈타이 부족을 중심 으로 다른 부족들을 복속시 켜 하나로 만드는 데 에 주력하길 보름.
체계는 하나도 잡혀 있지 않지만 몸집은 확실하게 불어났을 무렵.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백우진을 걱정하고 있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중원 에 서 찾아보기 힘든 붉은 머 리 칼을 지 닌 아리 따운 여 인과 백 우진의 형인 백무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한 백무혁 이 건넨 한마디는 그들을 충격으 로 몰아넣었다.
“지금…, 뭐라고했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묻는 당선영을 향해, 백무혁은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 입에 담았다.
“우진이가, 납치됐다.”
“농담하는 거라면….”
그녀는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당선영은 백무혁이라는 사람을 안다.
그는 올바른 정파 후기지수의 표본임과 동시에 동생을 매우 아끼는 다정 한 형이다.
동료들과 가벼운 농을 즐기긴 했어도, 동생과 관련된 중요한 일에서 농이 나 던질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에 .
그녀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뒤에서 동요하고 있는 조원들을 일깨웠 다.
“다들 정신차려.”
그 말을 던지면서도 내심 반신반의했다.
과연 자신은 냉 정하게 이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가.
“넋 놓고 있을 시간 없어. 당장 그이를 구하러-.”
“불가.
조급하고, 성급한 행동.
그런 그녀를 막아선 것은 혈수마녀 였다.
당선영의 싸늘한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누구시죠.”
제 말과행동을 끊는그녀의 행동이 몹시 언짢았는지, 그녀의 말투에는 가 시 가 잔뜩 튀 어나와 있었다.
누구라도 한 번쯤 움찔하게 될 것만 같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혈수 마녀는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너희들로는 녀석을 구할 수 없다.”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세상 그 누구도 구할 수 없을지 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혈수마녀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녀로부터 백우진을 구할 수 있는 이 가 이 세 상에 존재하기 는 할는 지.
그것부터가 의문일 정도로, 천마는 그야말로 가공할 위용을 자랑했다.
처음이었다.
현경 에 오른 이 후로 그 누구에 게 도 느끼 지 못했던 벽 이 라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200년 전 천마를 보았을 때도 다소 막막하겠다 생 각이 들 뿐이 었는데 말 이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쉬 며 생 각을 정리한 그녀가 한마디 툭 내 뱉었다.
“천마다.”
그 말 한마디 가 혼잡하기 짝이 없던 움막 안의 분위 기를 단숨에 가라앉혔 다.
그녀 가 말을 이 었다.
“천마가 직접 나타나 녀석을 데려갔느니라.”
이를들은조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동시 에 그들은 의 문을 품었다.
“천마가 어째서 이곳에 …!”
이곳 정반대에 자리 잡은 십만대산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천마가 대체 무 엇 때문에 이 머나먼 이민족들의 초원에까지 몸소행차했단 말인가.
“처음부터 그 아이를 노리고 온 듯하더구나.”
당선영은 사정없이 요동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밑에 짙게 깔린 감정은불신이었다.
“천마가고작 후기지수에 불과한 그이를 납치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건가요?”
너 같으면 그 말을 믿겠냐는 식의 말투.
평소 같았으면 혈수마녀 또한 싸늘하게 노려보며 기세로 짓눌렀을 테지 만, 그녀는그러지 않았다.
“본녀가 보기엔 그러했느니 라.”
그저 무덤 덤 한 표정으로 그녀 의 의 문에 답을 해 줄 뿐.
당선영은 시선을 백무혁에 게로 옮겼다.
이 허무맹랑한 말을 듣고도, 그는 아무런 대꾸조차하지 않고 있다.
그저 분하다는 듯,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동생의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앞서 난리 칠 그가 가만히 있는다는 건 그녀 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쉬 이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던 천마가 몸소 행차하여 백우진 을 데 려갈 이유란 대체 무엇이 란 말인가.
그때 였다.
털썩!
| |....
!...
.....
위태위태하게 서 있던 설수연이 사색이 된 채로주저앉은 것은.
“아, 아아….”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어대고 있는 그녀를 보며 당선영은 뒤늦게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녀가 현천문의 후예를 자처하는 신녀이며, 백우진을 영웅이라 불렀던 사실을.
‘영웅은 세상을 구하는 존재라고 했었지 ….’
설수연이 말하기를, 영웅은 훗날 닥쳐올 커다란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 원하는 존재.
200년 전의 영웅은 현천문과 함께 혈교로부터 중원을 지켜냈다.
그렇다면 백우진은 어떤 위협으로부터 중원을 지키게 될까.
이에 대한답은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교.’
그리고 천마.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설 마 하는 생 각이 머 릿속을 스치 고 지 나갔다.
‘만약…, 천마가 이를 알았다면….’
천마가제 앞을 막아설 영웅이란존재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이 백우진임 을 알아차렸다면.
그렇다면 충분했다.
이 먼 곳까지 직접 행차하여 백우진을 데려간 이유로 말이다.
“하아…, 하아…!”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가정이 사실이라면, 백우진에게 주어진 결말은 단하나뿐이다.
훗날 제 앞을 가로막을 가장 커다란 장애물을 미리 발견한 이가 할 행동은 뻔했다.
삭초제근.
미리 싹을 잘라 없애는 것.
즉, 백우진의 죽음.
온통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떡하지 …? 어, 어떻게 해야….”
그녀는 끊임 없이 그 말만을 되풀이했다.
이대로그를죽게 두고 싶지 않다.
그러니 무언가를 해 야만 하는데, 새하얗게 변한 머리로는 그 이 상 생 각을 할수가없었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
그 가정 하나에 온몸의 피 가 메 마르는 듯한 느낌 이 들었다.
우왕좌왕하는 그녀의 곁으로 혈수마녀가 다가와 그녀의 명문혈에 손을 얹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거라.”
그녀의 음성이 비로소또렷하게 들려왔다.
명문혈을 통해 들어온 따스한 기운이 날뛰는 감정을 가라앉혀 준 덕이었 다.
어느 정도 진정 이 된 것을 확인한 혈수마녀 가 손을 떼어 내 며 모두에 게 말 했다.
“다시 앉거라.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당선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조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말을 따랐다.
‘저 여인은대체…?’
비로소 궁금해지 기 시작했다.
얼굴은 자신보다 몇 살 많지 않아 보이는데 옛날 사람 같은 말투를 하고, 말 한마디로 충격에 빠진 조원들을 전부 휘 어잡는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지 만 그것도 잠시 .
“천마의 뒤를 따르기 전, 녀석이 내게 남긴 말이 있다.”
그 말 한마디 가 다른 궁금증은 모조리 사라지 게 만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려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말했다.
“학관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라더구나. 그래 야만 돌아올 수 있다고 말 이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조원들의 표정이 엇갈렸다.
누군가는 희 망을 품었고, 또 누군가는 의 문을 품었다.
그중 의문을 품은쪽인 당선영이 입을 열었다.
“천마가 그이를 직 접 데 려 갔다는 건, 목적 지 가 십 만대 산이 란 거 겠죠.”
“•••그럴 테지.”
“그곳에 서 그이 가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 나요?”
그녀가묻자, 혈수마녀는 입을 닫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 또한 백우진이 남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에.
십만대산이 어떤 곳인가.
천마를 신으로 모시는 교도들이 거주하는 마교의 총본산이 다.
천마를 비롯해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마교의 온갖 고수들이 도사리고 있 는 곳이란 말이다.
그뿐인가?
십만대산 밑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마경이다.
평범한 사람은 발을 들이는 순간 미쳐 날뛰다가 이내 칠공에 피를 토하며 죽음에 이른다고 전해지는 사지 중의 사지.
만에 하나 생겨난 빈틈을 이용해 백우진이 마교를 벗어났다고 해도, 마경 에 발이 묶여 다시 붙잡힐 확률이 높다.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돌아올 것이다.”
믿 기 힘 든 말이 지 만, 그녀는 믿 기 로 했다.
정확히는 천마와 떠나기 전 그가 내비친 표정을 믿기로 했다.
그때 그의 표정은 그러했다.
자신이 돌아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 었다.
천마를 앞에 두고 그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음은 그에게 무슨 수가 있어 서라고,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너희들은 몰랐겠지만, 본녀는 적잖은 시간 동안 녀석을 지켜봐 왔다.”
지금까지 지켜본 백우진은 적어도 겉으로만 믿음을 심어주는 인간은 아니 었다.
“본녀는 안다. 녀석이 이런 상황에서 거짓을 나불거릴 인간이 아님을.”
그를 잘 안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질투의 감정이 울컥 솟아 오른 당선영과 제갈연지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저도 알아요.우리 그이가그런 상황에선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거
“저,저도아, 알아요.”
설익은 질투를 뿜어내는 두 여인의 모습에 혈수마녀가 살포시 웃으며 입 을 열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한다면 백우진을 걱정하기보다 너희 걱정부터 하는 게 좋겠구나.”
“•••그게 무슨 말이죠?”
의 미심장한 말투에 자극을 받은 당선영이 날카롭게 쏘아붙이 자, 혈수마 녀 가 한쪽 입꼬리 를 말아 올렸다.
“너희 실력 정도로 밤에 잠이 오냐는 말이니라.”
갑작스러운 광역 도발에 조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 나 누구 하나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 직후, 그녀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쏟아져 그들을 모두 짓누르기 시 작했기에.
무거운 짐을 어깨에 맨 사람처럼 축 늘어지기 시작하는 이들을 보며 혈수 마녀 가 이죽거 렸다.
“고작 이 정도 기세에 짓눌려 어깨도 펴지 못하는 것들이 잘도 편히들 잠들었구나.”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말인들 약자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그들이 힘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을 때, 혈수마녀가 결정타를 날렸다.
“녀석은 단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느니라.”
그녀 가 말하는 녀 석 이 란 백 우진을 말함일 터.
조원들의 귀 가 쫑긋 세워 졌다.
“너희 모두를 가르치고 밤에 홀로 남아 검을 휘둘렀다. 수천, 수만 번을 휘 두르고 가장 어두운 새벽에 녀석은 방으로 돌아가 고슴도치처럼 감각을 가 시처럼 두르고 잠들었단 말이다.”
그는 천재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는, 문일지십(聞銜知十)의 재능을 지녔다.
하물며 그런 천재조차 밤잠 줄여가며 검을 휘두르는데.
“너희는 그저 또래보다조금 더 앞서 나가는 걸로 만족하고 있으니, 그간 녀석의 고충이 어떠했을는지 훤히 보이는구나.”
쯔쯔
효、스 -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 순간, 당선영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뿌득 하고 끊 어지는 듯한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못마땅하시면…, 직접 가르쳐주시면 되겠네요.”
그녀는 내공을 아낌없이 퍼부어 제 어깨를 짓누르는 기세를 덜어냈다.
그것으로도 고작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게 전부였지 만, 그 것으로 충분했다.
“말투가 예 스러 운 것으로 봐선 생 김 새 와 달리 저 희 보다 한참. 선배 님 이 신 것같은데….”
그녀는 한참에 힘을 주어 말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는 나이 공격.
제대로 먹혔는지 혈수마녀의 평온한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정 그러시면 저희에게 한번 알려주세요. 먼 옛날우리 나이일 때 선배님 께선 어떻게 훈련을 하셨는지 말이에요.”
의 도가 노골적 으로 느껴 지 는 도발.
이에 혈수마녀는 기꺼이 넘어가주기로 하였다.
그것이 백우진을 위하는 길이니.
“본녀도 궁금하구나. 너희들이 감히 본녀의 훈련 방식을 따라올 수 있을지 말이다.”
두여인의 섬뜩한 눈빛 싸움에 다른 조원들은혹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봐 숨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