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蓬 미■경
백우진이 눈을 뜬 것은 쓰러진 뒤로부터 몇 시진 흘러 밤이 찾아왔을 때였 다.
“커억…!”
그를 깨운 것은 격렬한 고통이 었다.
손끝과 발끝을 타고 흐르기 시 작한 마기 가 몸을 잠식 하여 이 내 심 장과 폐 에 다다랐다.
아무리 선기를 지니고 있다곤 하나, 마경에서 몇 시진이 같은 자리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에 .
“크흑!”
그는 제 심장을 부여잡으며 다른 쪽 손으로 허리춤을 뒤졌다.
가까스로 호리병을 찾은 그는 곧장 술을 들이켜며 음주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주요 장기만을 지키며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던 선기가 단숨에 들고 일어서서 온몸을 타고 흐르는 마기와 맞부딪혔다.
“후우…, 후우…!”
싸움은 매우 격렬했다.
몇 시진 동안 쌓인 마기의 양이 상당하여 단숨에 몰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지 기 가 절로 튀 어 나왔다.
속절없이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미친 노인과의 술래잡기, 그리고 주변을 전부 짓눌렀던 보법.
‘천마군림보.’
위 엄과 공포라곤 조금도 느낄 수 없었지 만, 그는 분명히 그리 말했다.
진짜인가?’
쉬이 믿을수 없다.
이 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천마군림 보는 천마신공에 수록되 어 있는 보법 이 다.
그것을 사용했음은 그 노인이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뜻인데.
‘말이되나?’
천마신교 내에서 천마신공을 익힐 수 있는 존재는 단둘이다.
천마그리고 천마가될 자.
‘그 정신 나간 노인네가 둘 중 하나라고?’
순간 겨우 안정되어 가던 기혈이 다시 뒤틀릴 뻔했다.
그만큼 어이가 없었다.
그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 말도 안되는 생각을 허투루 떨쳐낼 수가 없다는것이다.
‘서른을 셀 동안 전력으로 달려온 나를 단숨에 잡아냈지.’
사방이 뻥 뚫린 곳이었다.
그런데도노인은단한치의 망설임 없이 제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그뿐인가?
고작 다섯으로 자신의 서른을 따라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노인의 경지가 보통이 아님을 알수 있다.
‘심지어 그 보법.’
| |.....
스스로 천마군림보라 밝힌, 땅을 구른 보법은 말도 안 되는 기현상을 일으 켰다.
그의 발끝에서 시 작된 기운이 제 멋대로 굴러 몸집을 불린 뒤 자신을 비롯 한 주변을 전부 찌부러뜨릴 듯이 내 리누르지 않았나.
무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천마는존재해왔다.
시대 마다 성별도, 생 김새도 전부 제각각인 그들에게 드러나는 공통점은 두가지.
천마신공과 천하제일인.
그들은 어김없이 천마신공을 사용했고, 그 힘은 가히 당대의 천하제일인 이라 부를만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정파와 사파는 천마신공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가지 초식에 대해 파악할수 있게 되었는데,그중 가 장 빨리 알려진 것이 다름 아닌 천마군림보였다.
그것이 천마신공의 초식 중 가장 약하기 때문은 아니다.
다만,중원에 모습을드러낸 역대 천마모두, 제 위엄을 세우기 위한수단 으로서 단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사용한 보법 이 기 에.
‘말 그대로 모든 걸 짓누르는 보법.’
위에서 아래로.
허공을 격한 발걸음이 땅에 닿을 때마다 주변을 짓누르는 기세를 발산하 는 보법.
웬만한 고수들도 쉬 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바닥에 처박힌 모습은 왕에 게 제 머리를조아린 신하의 모습과도 같기에.
노인은 볼품없었다.
그러나 그 기운만큼은 진짜 중의 진짜였다.
그 괴리감이 자꾸만 백우진을 괴롭혔다.
“크으…!”
일순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마기가 득세하여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음주선공이 아니었다면 진즉 주화입마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잡념이 많았다.
백우진은 이내 노인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먼 곳으로 밀어내고 체내를 관조했다.
‘완전 똥 밟았네.’
주요 장기를 제외한대부분의 자리에 마기가 들어찼다.
깨어 나는 게 조금만 늦었더 라면 심 장과 폐 에도 마기 가 침 투하여 영구적 인 손상을 입었을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이곳의 마기는 지금껏 겪은 마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끈적하고, 질기다.
지금도 체내에 침투한 마기가 혈관에 아교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애 를 쓰고 있지 않나.
이를 전부 해소하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기에 지금은 고비를 넘기 는 데에만 집중해야만 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뒤.
“후우…!”
백우진은 눈을 떴다.
굳어 있던 몸을 조금씩 움직이자, 찌릿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전해진다.
채 해소하지 못한 마기가 남아 운신을 방해하고 있다.
심 각한 수준은 아니 었다.
그냥 움직 일 때마다 저릿한 느낌 이 드는 정도일 뿐.
물론 이대로 두면 언제든 심각해질 수 있기에 최대한 빨리 해소하기는 해 야할 터.
“텄네, 텄어.
한사흘동안 적당히 조절해가며 마인 사냥에 열중하려 했더니, 이 상태론 무리인듯했다.
“…돌아가자.”
제 아무리 제 몸 갉아 먹으며 수련하는 데 에 도가 텄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 다.
백우진은 복귀를 결정하고 곧장 천마신교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서 일단 몸부터 추스르고 다시 ….’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그때.
히히히히…!
불길한 웃음소리 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아니, 제발….”
으헤헤헤!
긴장을 하려고 해도 저 웃음소리만 들으면 긴장감이 싹 풀려버 린다.
어쩌면 저것도 천마신공 안에 있는 초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
길게 자라난 머리 칼과 수염을 흩날리 며 달려온 노인이 얼굴을 쑥 들이 민 다.
“깨, 깨, 깨어났구나! 사, 살았어 응! 대, 대단해!”
“••••••.”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한 노인의 말투에 백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몇이나보아왔던 것일까.
자신처럼 마기에 먹혀 마인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그, 그럼 우리 다시 노, 놀자. 너 , 너 내 가 잡았으니 까 이 , 이 번엔 네 가 수, 술래야.”
백우진은 생 각했다.
“…씨발.”
일찍 돌아가긴 글러 먹었다고.
…
그녀는 매 일 차를 마시며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따분하다.
요 며칠은 더욱 그러했다.
이유는…, 어느새 제 기감에서 사라져버린 백우진의 존재 때문이겠지.
그러나곧 다시 즐거움이 돌아올 터다.
“오늘로 사흘째인가….”
사흘째.
그가 돌아오기 로 약속한 날이 바로 오늘이 니 .
약속을 어 기 리 란 생 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남에게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며 기만해도, 제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았 기에.
“하.”
생각하고 보니 우스웠다.
“지금의 나는 녀석의 사람인가, 아닌가.”
어느쪽인지 모호했기에.
뭐, 이제 곧 알게될 것이다.
그가제시간에 온다면 그럴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 될 테니.
잠시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서서히 기감을 넓혔다.
남문 너머 마기가 넘실거리는 땅.
이따금 마인이 돌아다니는 기척을 제외하면 잠잠한그때.
익숙한 기운이 그녀의 감각을 어지럽혔다.
“이건….”
그녀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지금 막백우진의 기운이 그녀의 권역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 상태가 매우 심각해 보였다.
그녀는 곧장 전각의 지붕을 박살 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남문을 향해 날아온 그녀 가 자신을 보고 곧장 고개를 조아리는 무사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남문을 개방하라.”
“명을 받듭니다.”
그들은 곧장 움직여 남문을 열었다.
육중한 문이 거대 한 소음을 내 며 안으로 당겨 졌다.
그곳 너머로 작은 점 하나가 이곳을 향해 힘겹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남문을 빠져나와 그것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힘겹게 걸어오는백우진이 그녀의 동공에 맺혔다.
거멓다.
의복 밖으로드러난손, 목, 얼굴등이 전부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다.
이는 단순히 겉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또렷하게 느껴진다.
혈관, 뼈, 근육에 눅진눅진하게 달라붙은 마기들이 장기에까지 침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모습이.
‘예상은 했다.’
망신창이 가 되 어 돌아오리 라는 것쯤.
언제부턴가 앞길이 가로막힐 때면 제 몸을 몇 번이고 부숴 가며 활로를 찾 는 습관을 갖게 된 그였기에.
사흘 동안 박 터지게 마물들과 싸우며 제 수명을 또 갉아먹고 오겠거니 여 겼건만.
고개를 제대로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백우 진을 향해 그녀는 무덤덤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그런 꼴이 되면 속이 시원한가?”
“어….”
익숙한음성.
그제야 백우진은 고개를들어 올렸다.
“뭐야, 마중 나온거야? 안제.”
안제.
오직 직 계 가족과 그에게 만 허락했던 호칭 .
“그 이름은 이곳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다.”
“아,지금은 천마였지.”
그가 쓰게 웃었다.
천마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와 엇갈리게 될 운명을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 럼.
“죽으러 들어간것이었나?”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듯했다.
무덤덤한 제 말투에 서린 은은한 노기를.
“죽고 싶다면 말하지 그랬느냐. 내 친히 단칼로 베 어주었을 텐데 말이다.” 백우진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그녀를 만류했다.
“진정해, 진정.”
“진정?무슨진정 말이냐.나는더없이 침착한상태인데 말이다.”
“아,그러셔.”
백우진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그녀에게 보이지 않도록숨죽여 웃었다.
예 전과 똑같은 모습이 다.
이따금 무리하고 돌아올 때면 칼부터 뽑아 들고선 차라리 자신의 칼에 죽 으라며 난리를 치곤 했었는데.
“•••그래서, 마경에서 대체 무얼 마주쳤기에 그모양이 된 거지?”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은 다른 상념에 빠져들었다.
지난 이틀,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정신 나간노인네.
“글쎄….”
여전히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이틀간, 그는 마경에서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이 마석뿐이 아님 을 깨달았다.
“스승, 이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말하는 백우진은 더없이 기쁘다는 듯, 웃고 있었다.